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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c700> 최경창 崔慶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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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최경창(崔慶昌) |
자 | 가운(嘉運) |
호 | 고죽(孤竹) |
본관 | 해주 최씨(海州 崔氏)[1] |
출생 | 1539년( 중종 33) |
사망 | 1583년( 선조 16) |
국적 | 조선 |
친인척 | 현손 최규서 |
종교 | 유교 ( 성리학) |
1.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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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세
최경창(崔慶昌)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가운(嘉運), 호는 고죽(孤竹), 본관은 해주(海州). 고려시대의 문신 최충(崔冲)의 19세손으로, 부친은 최수인(崔守人)이며 양응정의 문인으로 당나라 문학을 연구해 동문 백광훈, 이달(조선)과 함께 3당시인으로 불렸다. 성균관에서는 영의정 박순에게 배웠다.
1568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북평사(北評事)가 되었고, 예조, 병조의 원외랑을 거쳐 사간원정언을 역임하였다. 대동도(大同道) 찰방을 거쳐 1582년 종성부사(鍾城府使)를 지냈다. 1583년 방어사(防禦使)의 종사관에 임명되어 상경하던 도중 사망했다. 숙종 때에 청백리에 선발되었다.
[1]
전한공파. 시조 19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