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 Eisen und Blut[1]
1. 개요
철혈 정책은 독일 제국의 국부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실시한 통일 방안이다.2. 상세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 왕국의 외무 대신이었다. 독일 통일은 프랑스 제2제국, 오스트리아 제국과의 외교적 방안을 통해서 이룰 수도 있었지만, 도무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따라서 그는 철혈 연설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1862년 의회 예산위원회에서 한다. 그가 외무 대신이 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은 때이다.
독일에서의 프로이센의 지위는 프로이센의 자유주의가 아닌 프로이센의 권력에 의해 결정될 것이오 [...] 프로이센은 유리한 순간을 위해 그 힘을 집중하고 또 유지해야 하며, 그 유리한 순간은 이미 수차에 걸쳐 왔다가 가버리기를 반복했소. 빈 조약 이래 우리는 우리의 건강한 정치적 통일체에 걸맞지 않는 형편없는 국경을 가지고 있소. 작금의 거대한 문제 앞에 이루어져야 할 결단은,
1848년과 1849년에 이미 범했던 거대한 실수인 연설과 다수결이 아닌, 철과 피로써 이루어져야 할 것이외다.
결국 군비 확장 정책이 추진되었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통해 이들을 격파했다. 결국 북독일 연방을 결성하고
독일 제국을 수립했다.비스마르크는 현실주의자로 외교적으로 일을 처리하되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는 타입이었으나, 이 연설로 인해서 마치 전쟁광같이 대중들에게 인식된 경향이 있다. 비스마르크는 전쟁은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예를 들면 영국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하여 해군의 군비를 늘리지 않고 영국, 프랑스 같은 열강들처럼 식민지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을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간파 했기에 국내에서 반발이 좀 있어도 식민지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으며, 프랑스를 고립시키기 위해 러시아 제국과 오스트리아 제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 삼제동맹을 맺었을 정도였다. 비스마르크가 퇴임 한 후, 빌헬름 2세는 세계 정책을 앞세워 전함을 건조하고 식민지 확보에 열을 올려 영국의 어그로를 끌었고,[2] 삼제동맹에서도 중립을 안지키고 오스트리아 편만 들다가 화가 잔뜩 난 러시아 제국이 삼제동맹을 탈퇴하고 프랑스랑 손을 잡아 비스마르크가 우려하던 양면전선까지 열어버렸다. 이게 비스마르크가 만든 체제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리자 바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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