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22:45:05

찰스 에드워드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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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찰스 에드워드 러셀
Charles Edward Russell
파일:찰스 에드워드 러셀.jpg
출생 1860년 9월 25일
미국 아이오와 데이븐포트
사망 1941년 4월 23일 (향년 80세)
미국 워싱턴 D.C.
서훈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1. 개요2. 생애3. 한국의 독립운동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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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언론인, 작가, 정치가. 한국 독립운동에 참여한 독립유공자이기도 하며, 195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60년 9월 25일 미국 아이오와 주 데이븐포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에드워드 러셀은 <데이븐포트 가제트>의 편집자이자 유명한 노예 폐지론자였으며 할아버지는 침례교 목사였다. 러셀은 세인트 존스버리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고등학교 교육을 받았고, 신문사에서 아버지 밑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후 미니애폴리스 저널, 디트로이트 트리뷴, 뉴욕 월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코스모폴리탄, 뉴욕 헤럴드에 논설을 기고했고 1894년부터 1902년까지 뉴욕과 시카고에서 신문기자와 편집자로 고용되어 뉴욕 월드, 뉴욕 아메리칸, 시카고 아메리칸 신문사에서 재직했다. 1912년, 러셀은 J.A 웨이랜드와 프랜드 D. 워런이 발간한 사회주의 성향의 신문 <The Coming Nation>의 편집자를 맡았다.

러셀은 20세기 초 "추문 폭로자(muckrakers)" 로 불렸던 대표적인 기자였다. 그는 회고록 '맨손과 돌담(Bare Hands and Stone Walls)'에서 뉴욕에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감내할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근로조건과 임금 등을 보고 분노했으며, 대다수 고용주들이 직원들, 특히 이민자들의 안녕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을 끔찍하게 여기며 이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참상을 철저하게 발본색원하여 기사에 폭로했다. 또한 당시 도시에 만연했던 쓰레기를 처리하자는 운동을 제기해 교도소 환경, 철도, 교회 건축 환경을 포함한 수많은 미관 개혁을 시작하는데 상당부분 기여하기도 했다.

한편 러셀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신뢰(The Greatest Trust in the World,)"라는 제목의 서적을 저술해 육류 포장 산언의 끔찍한 방식을 폭로했다. 이 책은 미국의 유명 작가 업턴 싱클레어가 소시지 공장의 참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 소설 "정글(The Jungle)"에 영감을 주었고, 이로 인해 미국 각지에서 큰 시위가 일어났고 소시지 생산 방식이 개선되었다. 이렇듯 사회비판 기사를 쏟아내던 러셀은 전 세계를 여행한 후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을 더욱 확고하게 품고 자신의 신념이 사회당의 신념과 일치하다고 인식하고 1908년 사회당에 가입했다.

1909년, 러셀은 오스왈드 게리슨 빌라드, 윌리엄 월링, 이다 B. 웰스, 제인 아담스 등 63명과 함께 미국 흑인 지위 향상 협회(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 NAACP)를 결성했다. 그는 평생동안 NAACP 이사회에 참여해 왕성하게 활동했다. 또한 1910년과 19212년에 뉴욕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1914년 뉴욕 주 미국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역시 낙선했으며, 뉴욕 시장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그는 1915년경 미국이 독일과의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반전을 강력히 주장하던 사회당 내에서 소외되었고, 결국 1917년에 제명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 노동 민주동맹을 설립해 미국 노동자들이 제1차 세계 대전에 적극 참여하고 애국심을 확고히 가져야 한다고 선전했다.

이후 러셀은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잡지인 더 뉴 리더(The New Leader)의 논설 위원이 되었으며, 여러 책을 저술하다가 1941년 4월 23일 워싱턴 D.C에서 병사했다. 향년 80세.

3. 한국의 독립운동 지원

러셀은 1933년 1월 자신의 친구인 AP통신 특파원 립시 주니어를 이승만에게 소개하는 등 이승만의 외교 활동과 잡지 발행을 도왔다. 또한 1934년 7월 이승만이 발행인으로서 참여한 <원동잡지> 창간 작업에 참여해 그해 8월 창간호를 내고 편집인을 맡았다. 찬간호에는 자신을 비롯한 헐버트·밀러·킴벌랜드 박사 등 미국의 저명한 저술가들의 글을 실었다. 또한 10월 20일에 발행한 이 잡지 제2호에는 <한국인과 필리핀인>이라는 기살을 실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0년 찰스 에드워드 러셀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