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3 12:52:00

자라투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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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 창시자
자라투스트라
زرتشت | Zoroaster
파일:자라투스트라.jpg
<colbgcolor=#293f6e><colcolor=#f8e6c0> 출생 미상 (기원전 1400~1000년 추정[1])
사망 미상 (향년 77세)
직업 종교 지도자, 예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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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자라투스트라
아베스타어 𐬰𐬀𐬭𐬀𐬚𐬎𐬱𐬙𐬭𐬀‎ / زَرَثوشترَه / Zaraϑuštra(자라수슈트라)
파슈토어 زرتشترا(자르토슈트라)
페르시아어 زرتشت‎‎(자르토슈트), زردشت‎(자르도슈트)
우르두어 زرتھوسترا۔(자라투슈트라)
그리스어 Ζωροάστρης(조로아스트리스)
라틴어 Zoroástres(조로아스트레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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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 Заратуштра(자라투시트라)
마인어 Zarathustra(자라투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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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 زرادشت(자라두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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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어 โซโรอัสเตอร์
터키어 Zerdüşt(제르뒤슈트)
프랑스어 Zoroastre(조로아스트르)
포르투갈어 Zoroastro(조로아스트루)
힌디어 ज़रथुश्त्र(자라투스트르) }}}}}}}}}

1. 개요2. 활동 시기3. 생애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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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명은 '스피타마 자라투스트라'. 고대 페르시아 예언자로, 조로아스터교[3]의 창시자다.

2. 활동 시기

자라투스트라의 활동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히 합의된 바가 없다. 아베스타는 이에 관한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역사적 자료들은 서로 상충되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인도이란어파 인도-이란 계통의 종교의 역사에 근거하여 그 시기를 기원전 1500년에서 500년 사이로 추측하기도 한다.

메리 보이스[4]나 브루스 링컨[5]과 같은 일부 학자들은 언어학 및 사회문화적 증거를 토대로 기원전 1500년에서 1000년 사이로 주장하기도 한다. 이 주장의 기초는 주로 조로아스터교 경전인 가타의 고대 아베스타어와 초기 베다 찬가 모음집인 리그베다 산스크리트어 사이의 언어적 유사성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가타가 사제, 전사, 평민 계급[6]으로 구성된 석기-청동기 시대를 묘사하고 있으며, 따라서 가타와 리그베다가 몇 세기 이상 떨어져서 구성되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알무트 힌체[7], 대영도서관, 유럽연구위원회(ERC)는 자라투스트라의 활동 시기를 기원전 2000년으로 추정한다.

사산조 페르시아 당시 전승에 의하면 조로아스터가 아제르바이잔이나 혹은 메디아의 라그[8] 일대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현대의 아베스타어 아베스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로아스터교 교조는 이란 동쪽 중앙아시아 방면 출신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베스타에 언급된 지역들이 대부분 오늘날 중앙아시아(아프가니스탄 포함)에 해당되는 지역의 지명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인더스 강이 언급되는데 반면 이란 서부에 해당하는 지역에 대한 언급은 극히 드물다.

3. 생애

자라투스트라는 스피타마 가문에서, 아버지 포우르샤스파[9]와 어머니 두그도바[10] 사이에서 태어났다.[11] 그의 이름은 ' 낙타를 다룰 수 있는 이'라는 뜻이며, 고대 페르시아어 형태로는 '자라우쉬트라'였을 것으로 보이고, 여기서 그리스어 형태인 '조로아스터'가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게는 네 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둘은 형이고 둘은 동생이었다.

그의 부모에 관해서는 이름 외에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가문의 직업이 무엇이었든,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제에게 맡겨졌으며, 종교 교사의 보살핌 아래 7살 무렵부터 사제직의 훈련을 시작했다.

15살[12]에 그는 신성한 허리띠를 받았고, 사제가 되었다. 그리고 20살에는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집을 떠나 방황하며 삶에 대해 고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0살[13]이 되었을 때, 그는 봄 축제(마이드요이.자레마)가 열리던 모임에 참석했고, 하오마 의식[14]에 쓸 맑은 물을 긷기 위해 근처의 강으로 갔다. 그는 가장 깨끗한 물을 긷기 위해 강물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가 다시 둑으로 나왔는데, 그때 그의 앞에 자체처럼 빛나는 존재가 나타났다. 그 존재는 자신을 '보후 마나(선한 의지)'라고 밝혔고, 그에 의해 자라투스트라는 아후라 마즈다의 현신과 다섯 불사신 앞으로 불려 갔으며, 그들 앞에서 영적 깨달음을 얻었다. 아후라 마즈다는 그에게 자신을 위해 사역하라고 명했고, 이 부름에 그는 온 마음으로 순종했다.

그는 위대한 예지에 고무되어 동료들에게 새 교리를 설파하는 과업에 착수했으나, 누구도 그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 전승에 따르면 10년 동안 자신의 사촌인 마이드요이마흐[15] 단 한 명만 개종시켰다고 한다.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더뎠으며, 개종을 하더라도 새 신도들은 기존 종교[16]를 믿는 사제들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자라투스트라는 아후라 마즈다에게 이렇게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당신께서 제게 최선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행함이 사람들 사이에서 제가 고난을 겪게 만들 것입니다."
(야스나. 43. 11)

40세에 그는 동향 사람들의 완고함에 좌절하여 그들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고향으로부터 그다지 멀리 떠나지는 않았으나, 새 땅에서 그는 좀 더 나은 대접을 받았다. 거기에서 그는 왕비 후타오사의 호응을 얻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후타오사는 그의 가르침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왕비를 통해 카비 비쉬타스파 왕 또한 개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쉬타스파 왕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자, 이웃 군주들은 자신들의 땅에 새 신앙이 퍼지고 있는 것에 강하게 분개하여 전쟁을 걸어왔다. 이 싸움에서 비쉬타스파 왕은 형제와 조카들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전쟁의 최고 영웅은 비쉬타스파 왕 본인의 아들인 스펜토다타였으니, 그가 곧 페르시아 서사시의 이스판디야르이다. 결국 그들은 전투에서 승리했고, 이로 인해 조로아스터교는 널리 퍼지게 되었다.

자라투스트라는 총 세 번 결혼[17]을 했다. 첫 아내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아들 이사트 바스트라[18]와 세 딸[19]을 낳았다. 둘째 아내 또한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첫째 아들 우르바타트 나라[20]와 둘째 아들 흐바레 치트라[21]를 낳았다. 셋째 아내 흐보비는 아이를 낳지 않았던 듯하다. 후에 자라투스트라는 자신의 딸 포우루치스타를 흐보비의 친지이자, 비쉬타스파 왕의 지혜로운 고문이었던 자마스파에게 시집을 보냈다.

전승에 따르면 자라투스트라는 정확히 77세 40일에 자객[22]의 손에 살해당했다.

4. 기타

  •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현자 자라스트로와 영혼기병 라젠카에 등장하는 박사 짜라스트로가 이 사람의 이름을 따온 인물이다.
  • 카드배틀물인 듀얼마스터즈에 자라투스트라를 모티브로 한 조로스타란 캐릭터 겸 크리처가 등장한다(CV. 사이가 미츠키). 나름 상당한 미남자인데다가, 스타터 덱의 메인카드도 차지했던 캐릭터지만, 그 실체는 신이 되고 싶은 욕망에 가득찬 찌질이.


[1] 믿을 만한 외부의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예언자의 생존 시기를 서기전 1400년에서 1000년 사이 어떤 시기로 결론짓는 것이 자연스러울 듯하다. 그때는 그의 민족이 콰레즈미아로 남하하여 새 거처를 정하기 전 여전히 중앙아시아 북부에 살던 시절이다. (메리 보이스 『조로아스터교의 역사』 공원국 옮김, 민음사, 2020, p.247) [2] 일부 기록은 자라타스 [3] 자라투스트라의 영문 발음이 조로아스터이다 [4] SOAS의 이란학 연구교수였으며, 조로아스터교 연구의 권위자이다. [5] 시카고 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종교사 명예교수이다. [6] 조르주 뒤메질이 주장한 삼기능 가설 [7] SOAS 인도이란어파 연구자이자 조로아스터교 연구자 [8] 오늘날의 테헤란 근처 [9] '회색 말을 가진'이라는 뜻이다. [10] '젖을 짜는 이'라는 뜻이다. [11] 전승에 따르면, 증조부는 하에차트 아스파다 [12] 고대 이란에서는 이 나이부터 성인으로 쳤다. [13] 전통적으로 개인의 전성기이자 현자로서의 완숙기라 여겨지는 시기이다. [14] '하오마'라는 신성한 술을 마시는 의식 [15] 조로아스터교 경전 가운데 하나인 파르바르딘 야시트에서 '영감에 찬 말( 만트라)과 자라투스트라의 가르침에 처음으로 귀를 연 이'로 찬양된다. [16] 인도아리안 계열 다신교 [17] 고대 이란의 사제에게 결혼은 직업상 자격 조건이었다. [18] '초원을 갈망하는'이라는 뜻이다. [19] 막내딸의 이름은 포우루치스타, '매우 사려 깊은'이라는 뜻이다 [20] '남에게 명령을 내리는'이라는 뜻이다. [21] '태양의 얼굴을 가진'이라는 뜻이다. [22] 기존 이란 종교의 사제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