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27 17:41:55

주휘잡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6bd0e, #f9d537 20%, #f9d537 80%, #e6bd0e); color: #6700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81818,#e5e5e5
<rowcolor=#800000> 자립 자립 이자성 옹립
현무제 순덕제 의흥제
<rowcolor=#800000> 융무 정권 융무 정권 노왕 정권
소무제 동무제 노왕
<rowcolor=#800000> 흥업 정권 정무 정권
흥업제 정무제
명 황제 }}}}}}}}}}}}


명 비정통 황제
玄武帝 | 현무제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연호 현무(玄武, 1451)
주(朱)
휘잡(徽煠)
{{{#800000 부왕}}} 민장왕(岷莊王) 주편(朱楩)
생몰 ? ~ ?
재위 명 초대 광통왕
1429년 ~ 1451년
명 비정통 황제
1451년 8월 ~ 1451년 10월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명나라의 황족으로 홍무제의 손자, 민장왕(岷莊王) 주편(朱楩)의 아들이다.

2. 생애

1429년 광통(廣通)을 분봉받아 광통왕에 즉위했다.

주휘잡은 용력이 좋았다고 전해지며 그에겐 단유홍(段有洪)이라는 가솔이 있었는데 단유홍 역시 능력이 출중해 주휘잡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어느날 단유홍은 주휘잡에게 천하를 거머쥘 수 있는 역량을 지녔다고 아부하였고, 실제로 주휘잡은 그 말을 믿어 1451년 거병하고 현무(玄武)로 개원하여 경태제와 대립하는, 즉 독자적인 황제로 즉위하였다.

주휘잡은 단유홍 등을 보내 묘족을 지휘하게 하여 본조(本朝, 경태제조)를 공격하게 했으나 묘족의 수장 양문백(楊文伯)은 이를 꺼렸고 1451년 10월 단유홍이 주휘잡의 형제이자 민왕 주휘유(朱徽煣)에게 생포당하자 주휘잡의 계획이 탄로나게 되었다. 본조가 이러한 사실을 알자 군대를 보내 주휘잡의 작위를 삭탈했으며 그를 높은 담장에 연금시켰다.

이후 주휘잡은 복권받지 못한 채, 봉양(鳳陽)으로 보내져 명 황릉(皇陵)을 지키는 일을 맡았으며 1458년 경태제를 축출하고 즉위한 정통제의 자비로 주휘잡의 자녀들은 혼인권을 보장받았다. 홍치제 시기 특별사면령을 내렸을 때 주휘잡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기에 그 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