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8 00:01:24

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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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第六) 후제(侯第)
59위 벽양후(辟陽侯) 심이기 60위 고경후(高景侯) 주가 61위 안평후(安平侯) 악천추

1. 개요2. 행적3. 기타

1. 개요

생몰년도 ? ~ 기원전 204년 또는 203년
이름 주가(周苛)
작위 고경후(高景侯)

초한쟁패기 유방의 장수이자 전한의 초대 어사대부.

2. 행적

원래는 사촌 동생인 주창과 함께 사수군(泗水郡)의 졸사(卒史) 일을 했다. 이후 유방이 패현에서 봉기하여 사수군의 태수와 군감(君鑑)을 공격할 때 힘을 보탰고 빈객(賓客)이 됐다.

한왕 1년(기원전 206년)에는 어사대부(御史大夫)의 자리를 받았다.[1][2]

한왕 3년(기원전 204년) 형양 · 성고 전역에서 유방은 곤경에 처했고 결국 형양성에서 항우에게 포위 당한다. 이 해 7월, 유방은 은밀히 탈출하면서 성의 수비를 위해서 위표[3], 한왕 신, 종공, 그리고 주가를 남겼다.

주가는 종공과 모의해서 한 번 배신한 전력이 있는 위표와는 성을 지키기 힘들다고 파악해서 위표를 죽였고 항전을 이어나갔으나 결국 성은 함락되고 항우에게 포로로 잡힌다.

항우는 주가의 기개를 높이 사 초나라의 장수로 삼으려 했으나 오히려 주가는 당신이나 빨리 한왕에게 항복하시오. 그러지 않으면 얼마 있지 않아 포로가 될 것이오. 라고 응수했고 격분한 항우는 주가를 팽형으로 죽인다.

이후 어사대부의 자리는 사촌 동생 주창이 승계하고 주가인 아들인 주성(周成)은 아버지의 공으로 고경후(高景侯)에 봉해졌다.

3. 기타

주창에 뒤지지 않는 독설가 겸 유방의 충신. 그 항우 앞에서도 독설을 퍼붓는 등 패기가 남달랐으며, 끝까지 형양을 사수하려 하는 등 유방에게 있어서 사촌 주창과 함께 신임하는 신하였다.
[1] 관영도 기원전204년 전에 어사대부가 된 적이 있는데 어사대부는 복수 임명이 되는지 불명. 어사대부(御史大夫)는 감찰직인데 이후 나오는 할 말 다하며 기개 있는 모습으로 봤을 때 그 자리에 잘 어울린다 유방이 판단한 듯. [2] 사촌 동생인 주창도 독설로 유명한걸 봤을 때 사촌끼리 비슷한 성격인 듯 하다. 주가 사후 주창이 어사대부를 맡기도 했다. [3] 위표는 팽성 전투 이후 배신했다가 한신에게 털려서 다시 돌아온 전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