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샐리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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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 1990 | 1996 | 2000 |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등번호 22번 | ||||
테리 티글 (1984) |
→ |
존 샐리 (1986~1992) |
→ |
존 크로티 (1999~2000) |
마이애미 히트 등번호 22번 | ||||
브라이언 쇼 (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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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샐리 (1992~1995) |
→ |
보숀 레너드 (1995~1996) |
토론토 랩터스 등번호 22번 | ||||
창단 | → |
존 샐리 (1995~1996) |
→ |
앨빈 윌리엄스 (1998) |
시카고 불스 등번호 22번 | ||||
로드니 맥크레이 (1992~1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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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샐리 (1996) |
→ |
키스 부스 (1997~1999)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등번호 16번 | ||||
닉 맨티스 (1960) |
→ |
존 샐리 (1999~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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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 가솔 (2008~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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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토마스 샐리 John Thomas Sall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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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4년 5월 16일 ([age(1964-05-16)]세) |
뉴욕주 뉴욕시 브루클린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조지아 공과대학교 |
신장 | 212cm (6' 11") |
체중 | 116kg (255 lbs) |
포지션 | 파워 포워드 / 센터 |
드래프트 |
1986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1순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지명 |
소속 팀 |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1986~1992) 마이애미 히트 (1992~1995) 토론토 랩터스 (1995~1996) 시카고 불스 (1996) 파나티나이코스 BC (1996)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99~2000) |
등번호 |
22번 - 디트로이트 / 마이애미 / 토론토 / 시카고 16번 - 레이커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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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직 농구선수이자 현재 영화배우로 NBA 최초로 세 팀에서 우승을 경험한 선수이다.2. 선수 시절
고등학교 졸업 후, 조지아 공과대학교로 진학해 역대 통산 블록 슛 기록을 세웠으며 이러한 공헌을 인정받아 등번호 22번을 영구결번시켰다.대학 졸업 후에는 1라운드 11순위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지명되어 척 데일리 감독의 지도 아래 배드보이즈와 함께 팀의 2연패에 기여했다.96시즌을 디트로이트에서 보낸 샐리는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했으며 1996년 확장 드래프트를 통해 신생팀 토론토 랩터스로 이적하지만 평균 19.3분이라는 짧은 시간밖에 뛰던 도중 바이아웃 협상을 통해 자유계약 신분이 된다. 이후 10일 계약으로 시카고 불스에 합류해 피스톤즈 시절 팀 메이트였던 데니스 로드맨, 제임스 에드워즈와 함께 뛰며 팀의 96시즌 우승에 공헌했다.[2]
불스를 떠나 그리스의 파나티나이코스와 100만 달러 계약으로 입단했지만 연습 거부 등으로 논란을 일으켜 불과 한 달 만에 팀을 떠나 사실상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3년간의 공백기를 가지다가, 1999-2000 시즌 불스 시절 은사였던 필 잭슨 감독이 지휘봉을 막 잡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입단해 NBA 무대에 복귀했다. 당시 레이커스의 기둥이었던 리그 최강의 센터 샤킬 오닐의 백업으로 뛰었으며 팀의 우승과 동시에 NBA 역사상 처음으로 세 팀에서 우승 반지를 얻은 선수가 되었고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기존 버전에서는 샐리가 오닐에게 역할을 빼앗겨 제대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언급이 되었었는데, 애초에 샐리는 오닐과 경쟁상대가 아니었으며 레이커스 코치진이 그의 실력만 보고 데려온 것도 아니었다. 샐리는 전성기 시절에도 풀타임 주전이 아니었으며 배드보이즈 해체 이후 피스톤즈와 약팀 마이애미에서 로테이션 주전으로 나온게 비중이 가장 높았을 때였다. 95-96시즌에도 룩 롱리를 백업해줬던 샐리가 오닐을 상대로 출장시간을 빼앗기고 말고도 없다. 샐리는 젊은 시절부터 부상이 잦은 선수로 비교적 젊은 나이인 96년 10월(32세)에 사실상의 은퇴를 한 시점이었다.[3] 그러나 레이커스에 새롭게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도입하는 잭슨 감독은 트라이앵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베테랑 리더들을 영입하고 싶어했고, 이러한 측면에서 영입된게 샐리, 그리고 시카고 불스의 주전이었던 론 하퍼였다. 하퍼와 샐리 모두 성격이 좋고 리더쉽이 좋은 인물들로, 애초에 경기력 측면에서 크게 기대를 하고 영입한 선수들이 아니었다.[4]
3. 은퇴 후
4. 여담
거칠기로 유명했던 배드 보이즈 멤버들 중 조 듀마스와 함께 경기 매너가 좋은 선수로 분류되는 선수였다. 그를 두고 찰스 바클리는 "녀석은 싸움보단 애정이 넘치는 친구(He's more of a lover than a fighter)"라고 표현했는데, 아이러니하게 바클리는 피스톤즈에서 제대로 싸울 줄 아는 선수가 샐리, 듀마스, 토마스 뿐이었다고 평하기도 했다.[5]
[1]
원래 22번은 이미
엘진 베일러의 영구결번이다. 이후 파우 가솔이 이어받았고 2023년 3월 7일에 영구결번되면서 쓰지 못하게 되었다.
[2]
당시 샐리는 기량이 빠르게 하락하던 시기라 시즌 막바지이던 3월에 NBA에서 최하위급 선수들이 하는 10일 계약을 했고, 이후 잔여시즌 계약을 통해 정식으로 합류한다. 그러나 출장시간은 적어도 그의 농구센스, 리더쉽, 친화력이 높은 평을 받아 플레이오프 12인 로스터에도 합류하며, 평균 4.7분으로 작게나마 우승에 기여를 했다.
[3]
위에 공백이라 표현되었지만 그의 몸상태나 실력, 당시 그가 선수생활을 이어가려고 어떤 시도도 하지 않은 점, 나이를 생각하면 사실상 은퇴가 맞다. 32세는 당시 기준으로도 은퇴하기 다소 이른 나이인 것은 맞지만, 80년대 데뷔한 선수들은 현재보다 선수생명이 짧았기에 그렇게까지 이른 은퇴는 아니었다. 실제로 후술되는 론 하퍼는 은퇴한 상태에서 필 잭슨의 설득으로 합류한 선수였으며, 첫 우승 이후 축하연 자리에서 잭슨에게 웃으며 "이제 은퇴해도 되는거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잭슨이 이에 대해 "원하는대로 하게"라고 하자 "다음 시즌에 돌아오죠 뭐"라고 하고 실제로 복귀해 5번째 우승반지를 얻고 은퇴.
[4]
첨언하자면 둘이 경기력 측면에서 딱히 기대를 받은 선수들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들의 공헌도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 하퍼는 00시즌엔 주전 가드로서 시카고 시절부터 보인 준수한 수비와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였으며, 포틀랜드 시리즈에서 사실상의 위닝샷으로 이어지는 롱2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샐리는 45경기에 출전했으며 출장시간은 매우 적었지만 수비기본기가 뛰어난 빅맨으로서 코트 위에 있는 시간만큼은 괜찮은 공헌도를 보였다. 레이커스는 엘든 켐벨 이적 이후 호레이스 그랜트 영입 전까지 샤킬 오닐을 보좌해줄 수 있는 골밑 존재감이 있는 빅맨이 사실상 없었는데, 샐리는 이 점을 어느 정도 보완해줄 수 있는 백업요원이었다.
[5]
물론 여기서 89년에 이적했고 바클리 본인의 동료이기도 했던 릭 마혼은 제외한 평가일 것이다. 마혼은 피스톤즈에서 독보적으로 거칠고 싸움을 가장 많이 하는 '해결사'였으며, 바클리 본인과도 식서스에서 죽이 잘 맞는 동료였다. 배드보이즈에서 가장 악명이 높았던
빌 레임비어는 더티플레이어였지 싸움을 많이 하는 선수도, 잘하는 선수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