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존 드 클리퍼드 John de Clifford |
출생 | 1388년경 |
잉글랜드 왕국 웨스트모어랜드 애플리 성 | |
사망 | 1422년 3월 13일 |
프랑스 왕국 모 | |
아버지 | 토머스 드 클리퍼드 |
어머니 | 엘리자베스 드 로스 |
형제 | 마틸다 |
부인 | 엘리자베스 퍼시 |
자녀 | 토머스, 메리 |
직위 | 제7대 클리퍼드 남작, 가터 기사단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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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에 프랑스 전선에서 활동했다.2. 생애
1388년경 잉글랜드 왕국 웨스트모어랜드 애플리 성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제6대 클리퍼드 남작 토머스 드 클리퍼드이고, 어머니는 제4대 로스 남작 토머스 로스의 딸인 엘리자베스 드 로스였다. 누이로 마틸다[1]가 있었다.1391년 아버지 토머스가 예루살렘 순레 중 지중해의 어느 섬에서 병사했다. 당시 2살이었던 그는 가문의 모든 재산과 작위를 물려받았으며, 웨스트모어랜드 고위 보안관의 직함도 수여받았다. 그러나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2세는 그가 어리다는 이유로 1398년 웨스트모어랜드 보안관 직위를 초대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에게 넘겼다. 그러다 리처드 2세가 무너진 후, 웨스트모어랜드 보안관 직위를 되찾았다. 1404년경 초대 노섬벌랜드 백작 헨리 퍼시의 손녀이자 헨리 '핫스퍼' 퍼시의 딸인 엘리자베스와 결혼했다.
1411년 9월 21일 처음으로 의회에 소집되었고, 1413년 헨리 5세의 대관식에 참여했다. 1415년 제3대 케임브리지 백작 코니스버러의 리처드가 헨리 5세를 암살하려는 음모에 그를 참여시키려 했지만 거부당했고, 음모는 곧 발각되어 리처드 등이 처형되었다. 1415년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이 재개된 후, 클리퍼드는 왕실 군대의 일원으로서 프랑스 원정에 참여했다. 1415년 8~9월 아르플뢰르 공방전에 참여했으며, 뒤이은 아쟁쿠르 전투에도 참여했다. 이후 세르부르 공방전 당시 사령관 중 한 명으로서 도시의 항복을 받아냈다.
1421년 5월 3일 가터 기사단의 기사가 되었으며, 1422년 다시 프랑스로 가서 모 공방전에 참여했다가 그해 3월 13일에 전사했다. 사후 몰튼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3. 가족
- 엘리자베스 퍼시(? ~ 1437): 헨리 '핫스퍼' 퍼시의 딸. 존 드 클리퍼드 사후 제2대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과 재혼했다.
- 토머스 드 클리퍼드(1414 ~ 1455): 제8대 클리퍼드 남작.
- 메리 클리퍼드: 네틀스테드의 필립 웬트워스의 부인.
[1]
? ~ 1446, 코비의 제6대 라티머 남작 존 네빌과 초혼,
코니스버러의 리처드와 재혼. 리처드가 처형된 후 코니스브러 성 등지에서 조용히 살다가 1446년 8월 26일에 사망해 요크성의 로슈 수도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