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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드 워렌(제6대 서리 백작)

파일:존 드 워렌(제6대 서리 백작).jpg
성명 존 드 워렌
John de Warenne
생몰년도 1231년 8월 ~ 1304년 9월 29일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서리 백작령
사망지 잉글랜드 왕국 런던
아버지 윌리엄 드 워렌
어머니 모드 마셜
형제 이사벨라 드 워렌
배우자 앨리스 드 뤼지냥
자녀 엘리노어, 이사벨라, 윌리엄
직위 제6대 서리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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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2차 남작 전쟁에서 왕당파로서 시몽 드 몽포르 등 귀족 반란군에 맞섰다. 이후 에드워드 1세 휘하에서 웨일스 정복 전쟁과 스코틀랜드 정복 전쟁에 참전했다.

2. 생애

조부는 앙주 백작 조프루아 5세 사생아이자 헨리 2세의 이복 형제인 어멜린 드 워렌으로, 서리 여백작 이사벨라 드 워렌[1]과 결혼한 뒤 서리 백작이 되었다. 아버지 윌리엄 드 워렌은 제5대 서리 백작으로, 제1차 남작 전쟁 시기에 많은 귀족들이 존 왕에게 등을 돌리고 루이 왕자를 잉글랜드 국왕으로 받든 것과는 달리 존 왕을 끝까지 지지했다. 어머니 모드 마셜은 초대 펨브로크 백작 윌리엄 마셜의 딸이다. 누이 이사벨라는 아룬델 백작 휴 도비니의 아내가 되었다.

존은 1231년 8월경에 서리 백작령에서 태어났으며, 9살 때인 1240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서리, 서식스, 노퍽, 요크셔, 링컨셔에 걸친 광범위한 영지를 물려받았다. 그는 성년이 될 때까지 피에트로 2세의 후견을 받았으며, 왕실에서 교육받았다. 1246년, 헨리 3세는 존을 사보이아 백작 아메데오 4세의 딸 중 한 명과 결혼시키려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1년 후, 존은 헨리 3세의 이복 누이인 앨리스 드 뤼지냥과 결혼했다. 1248년 존은 가족 소유 영지 일부를 받았고, 1252년 모든 영지를 인수했다. 그 무렵 그는 에드워드 왕자와 뤼지냥 가문이 속한 '궁정파'의 일원이었다.

1254년 에드워드 왕자와 함께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에드워드 왕자가 카스티야의 레오노르[2]와 결혼하기 위해 카스티야로 떠날 때 동행했다. 1255년 초대 웨스포드 남작 윌리엄 드 발랑스, 제7대 글로스터 백작 길버트 드 클레어와 함께 헨리 3세의 가스코뉴 원정에 참여했다. 1257년, 신성 로마 제국 로마 왕으로서 대관식을 치르기 위해 아헨으로 떠난 콘월의 리처드의 수행원 중 한 명이었다.

1258년, 시몽 드 몽포르 등 대귀족들이 뤼지냥 가문 등 외국인 고문을 왕실에서 축출하기 위해 옥스퍼드 조례를 강요했다. 헨리 3세는 압력에 굴복해 자신 대신 국정을 운영할 위원회 결성에 동의했다. 존은 옥스퍼드 조례의 조항을 추진하기 위해 선출된 위원회 인사 12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개혁을 지지하겠다고 맹세했고, 뤼지냥 가문이 잉글랜드에서 추방되었을 때 도버로 가서 그들을 전송했다. 하지만 1263년 제2차 남작 전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지자 헨리 3세 지지로 돌아섰고, 루이스 전투에 참전했으나 왕실군이 참패하고 헨리 3세, 에드워드 왕자, 콘월의 리처드 등이 생포되자 전장에서 탈출한 뒤 프랑스로 망명했다.

1264년 잉글랜드로 돌아와서 에드워드 왕자의 군대에 가담했고, 그 해 8월 4일 이브샴 전투에 참전해 시몽 드 몽포르 등을 척살하는 데 성공했으며, 1266년 5월 체스터필드 전투에서 알메인의 헨리에게 협력해 초대 더비 백작 로버드 드 페러스가 이끄는 반란군을 격파하는 데 일조했다. 그 후 에드워드 1세가 등극할 때 충성을 맹세했고, 1277~1283년 웨일스 정복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웨일스 평정에 큰 공을 세운 뒤 많은 영지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스코틀랜드 공략에도 관여했다. 1289년 솔즈베리, 1290년 버검에서 스코틀랜드와 조약을 체결한 귀족 중 하나였으며, 1296년 에드워드 1세와 함께 북쪽으로 원정을 떠나 4월 27일 던바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을 지휘해 스코틀랜드군을 완벽하게 격파하고 스코틀랜드를 일시적으로 복속시켰다.

이후 에드워드 1세에 의해 스코틀랜드 총독으로 임명되었지만, 몇 달 후 스코틀랜드의 혹독한 기후를 피해 대리인을 앉혀놓고 남쪽으로 떠났고, 이 때문에 윌리엄 월레스가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을 때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 1297년 9월, 윌리엄 월레스는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존 드 워렌에 파견한 적군을 격파해 스코틀랜드에 대한 잉글랜드의 통제를 약화했다. 이후 존은 군대를 재정비한 뒤 반격을 가해 베릭을 탈환하고 록스버러를 포위했지만 공략에 실패했다. 1298년 에드워드 1세가 폴커크 전투에서 윌리엄 월레스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을 때, 그는 여러 사령관 중 한 사람으로서 종군했다.

1304년 9월 29일 런던에서 사망했다. 외아들 윌리엄 드 워렌은 1286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손자인 존 드 워렌이 작위를 계승했다.

3. 가족

  • 앨리스 드 뤼지냥: 라 마르슈 백작이자 앙굴렘 백작 위그 10세 드 뤼지냥과 앙굴렘의 이자벨의 딸.
    • 엘리노어(? ~ 1282): 제7대 퍼시 남작 헨리 드 퍼시
    • 이사벨라(? ~ ?): 스코틀랜드 국왕 존 발리올의 왕비.
    • 윌리엄(? ~ 1286): 기사. 아들 존 드 워렌은 제7대 서리 백작이 되었다.


[1] 제3새 서리 백작 윌리엄 드 워렌의 딸. [2] 카스티야 국왕 페르난도 3세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