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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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 제4대 대통령 조제프 카빌라 카방게 Joseph Kabila Kaban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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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7fff><colcolor=#ffc224> 출생 | 1971년 6월 4일 ([age(1971-06-04)]세) |
자이르 공화국 피지 | |
국적 | 자이르 공화국 → 콩고민주공화국 |
직위 | 제4대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 |
임기 | 2001년 1월 26일 ~ 2019년 1월 24일 |
정당 | 콩고공동전선 |
종교 | 성공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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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콩고민주공화국의 제4대 대통령이자 독재자.콩고민주공화국의 제3대 대통령이였던 로랑 데지레 카빌라의 아들로, 아버지가 암살당하고 약 8일 후인 2001년 1월 26일 과도정부 대통령에 취임한 뒤 두 차례 연속 대선에서 승리하며 2019년 1월 24일까지 18년 간 독재자로 군림했다.
2. 생애
2.1. 집권
아버지 로랑 데지레 카빌라의 뒤를 이어 중국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귀국 후 고속 승진을 거듭해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 발생 직후인 1998년 9월 합참의장에 올랐다.조제프 카빌라 카방게는 외국에서 주로 자라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인 링갈라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 하는 등 국내 정치 기반이 취약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집권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정치적 수완은 있는 인물이었다. 콩고 내전 당시 강경파였던 아버지의 노선에 끝까지 반대하며 타협안을 밀어붙인 게 이 인물이었고, 정국을 빠르게 수습하고 르완다와 우간다의 재개입 가능성을 차단해 전쟁을 동부 키부주 일대로 국한시키고 재빨리 전후 복구에 착수한 점 등은 높게 평가받는다. 조제프 카빌라 본인도 이를 치적으로 내세워 집권 이후 두 차례 연속으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다만 콩고 국민들도 조제프 카빌라가 이끄는 부패한 정권과 대통령 재임을 싫어해서 정권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시위들을 반복했지만, 성과는 미미한 상황이며 오히려 강대국들이 조제프 카빌라를 지원하고 있다. 2011년 11월 28일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조제프 카빌라 당시 대통령을 포함해 총 11명의 후보가 선거에 나섰다.
그러나 미국, 프랑스, 벨기에 등은 지하자원을 지속적으로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그들과 결탁한 카빌라가 대통령직을 지속하기 바랐다. 콩고민주공화국 국민들은 이런 강대국과 국제사회를 비난하며 카빌라를 더 이상 대통령으로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각국에서 시위를 벌였다. 한국에 있는 콩고민주공화국 교민들도 주한 벨기에 대사관 앞에서 같은 시기에 시위를 벌였다. 당시 수도 킨샤사에서는 150여 명이 시위 중 목숨을 잃기도 했다.
2.2. 2010년대
이후 콩고민주공화국은 2016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인구 총조사 실시를 포함한 선거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킨 데 이어서 20일 상원에서 선거법안을 심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야권에서는 당초 예정된 2016년 말을 넘겨 대통령·의원 선거를 치르려는 것으로 카빌라 대통령의 집권 연장 기도라며 비난했고, 2015년부터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인 킨샤사에서 조세프 카빌라 대통령의 집권 연장 움직임에 항의하는 시위가 3일째 계속되어 이 과정에서 시민과 경찰이 충돌해 42명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시위에 참여했던 한 목격자는 도로에서 불타는 타이어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돌을 던지는 시위대에 경찰이 실탄을 발사했다고 전했지만, 정부 측에서는 사망자는 모두 15명이며 대부분 물건을 약탈하다 사설 경호원의 총에 맞아 숨졌다고 주장했다. 다만 아프리카 등 기본적으로 정부를 믿지 않는 지역의 시위대 대부분이 초기 시위를 하다가도 폭도로 변질되는 일이 흔함을 감안하면 둘 다 맞을 공산이 크다.
결국 카빌라는 2015년 2월 5일 두 번째 임기가 끝난 뒤 내년에 물러날 것이라고 램버트 멘데 정부 대변인이 말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멘데 대변인은 이날 민주콩고 수도 킨샤사에서 기자들에게 "카빌라 대통령은 2016년 그의 임기를 마칠 것"이라면서 "민주콩고는 다시는 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제는 많은 독재자들이 저렇게 다시는 국민들에게 불출마를 하겠다고 거짓말을 해댔다는 점이다.
이러한 선언은 2014년 5월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카빌라 대통령이 임기 후 재선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를 지원하고 정치적 안정을 위해 3천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던 점도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가 순순히 물러날 가능성은 없으며, 2016년에 또 다른 개헌(?)을 추진하거나, 아니면 원조는 원조대로 받으면서도 다음 대통령들의 능력을 못 믿겠다는 핑계를 들어 막후 실세로 행세할 가능성이 더 높다. 무엇보다 콩고민주공화국 내에서 그를 대체할 대안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다. 3차 콩고 전쟁 당시 투치 반군들에게 탈탈 털리며 인구 100만의 고마시를 내주고 퇴각 중이던 콩고민주공화국군을 추스린 건 바로 카빌라 본인이었다. 이 때 이례적으로 동부에 바로 들어가 수습을 직접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가만히 있다가 털린 걸 봐서 그런지 일단 뭘 하려고는 하는 모양.
현재 콩고는 여전히 콩고 내전이 동부 국경지대 위주로 현재진행형이지만 2014년 들어서는 유엔 평화유지군한테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나가라고 요청하는 중이다. 그 이유는 2014년 10월 제이드 라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민주콩고가 청소년 폭력집단에 대한 경찰의 일제단속 과정에서 인권을 침해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던 것이 가장 유력한 이유로 보인다. 이후 정부는 스콧 캠벨 유엔 인권특사를 추방하고 유엔 직원들을 협박한 데 대해 유엔 당국이 비난하는 등 민주콩고와 유엔 사이의 갈등이 불거져서 일이 이렇게 됐다고 하지만 자신이 독재를 해먹기 더 쉬우니까 저러는 것도 있다. 기사 또한 콩고의 국력 자체가 르완다를 막지 못할 수준이 아니라는 계산도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당시 우방이었던 부룬디는 지금 내전 상태이고, 우간다는 요웨리 무세베니의 통제력이 예전같지 않다.
한편 2015년 3월 말루쿠 지역에 있는 무덤에서 사산한 아기 시신 300여 구와 강과 시내, 심지어 병원에서 버려진 태아들을 포함해 적어도 421구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는데 이게 학살 정황이 의심된다며 수사를 해달라는 말도 나왔다. 기사
2016년 12월에 보안군이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의 집권 연장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무력 진압한 데 따른 사망자가 최소 34명이 나왔다. #
2018년 12월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조제프 카빌라는 출마하지 않았고 그가 속한 여당도 후보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야당 후보인 펠릭스 치세케디가 콩고민주공화국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
다만, 제5대 콩고민주공화국 대선과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에서 조제프 카빌라가 이끄는 정당인 콩고공동전선이 야당이 되긴 했지만 국회내 최다의석을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에 펠릭스 치세케디의 정치 개혁 가능성은 어려울 듯하다.
2019년 3월 15일부터는 전직 대통령의 자격으로 종신 상원의원으로 재직중에 있다.
3. 평가
서방에 자원을 헐값으로 팔긴 했지만, 애초에 콩고민주공화국에 산업이라는 게 없는 상황에서 갑은 엄연한 서방인데다 르완다와 우간다의 압력으로부터 국가를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영향력에 휘둘리지도 않기 위해 서방세계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카빌라가 아니라 다른 자가 집권했다고 해도 달라질 점이 없는 게 현실이었고, 실제로 펠릭스 치세케디가 집권한 뒤에도 콩고민주공화국의 자원은 여전히 헐값에 팔리고 있다.또한 이 인물의 치하에서 그나마 경제가 좀 나아지고 그나마 동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인 노력으로 먹고 사는 게 가능해진 것도 사실이라 콩고민주공화국 국민들의 평가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1] 아프리카에서 먹고 산다는 건 중근세처럼 그냥 먹고 사는 것이 보장되고 내전이나 분쟁 등으로 총 맞아 죽지 않는 것이다.[2] 다만 비슷한 평가를 받던 부룬디의 독재자 피에르 은쿠룬지자도 결국 전면 내전이라는 대가를 받아든 것과 경제성장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다시 심화되는 걸 보면, 만약 그가 장기집권을 끝까지 밀어붙였을 경우 권좌가 흔들릴 가능성도 높았다.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여당과 모종의 합의를 했는 지는 모르지만 집권기간 벌어진 부패, 인권 탄압 논란 등에 대해 별다른 책임 추궁 없이 지내는 중이다. 권좌에서 순순히 물러난 전 독재자들이 그렇듯이 일단은 조용히 지내면서 여당이 크게 사고 치길 기다리는 듯.
카빌라가 이끄는 정당인 FCC가 의회 내 과반수를 차지하고 군부가 여전히 비호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모부투 시절이 더 나았다는 국민들의 의견도 만만치 않다. 모부투는 매우 부패하고 정적에 대한 탄압이 심하긴 했지만 이 때의 국가는 불안정하지 않았고 분쟁도 별로 없었기 때문. 오히려 내전 이후가 더 혼란스럽다며 자이르 시절을 높게 평가해 주는 의견도 있다. 다만 이런 의견도 비아냥을 많이 받는데, 수 십여년 동안 달라진 게 없는 데도 그저 옛날 기억이 희미해지니까 좋게 이야기한 듯.[3]
[1]
실제로
콩고민주공화국 중서부 지역은 반군이 활동하는 동부보다는 그나마 안정적인 편.
[2]
애초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동유럽,아시아,중남미 빈국들이 나아보일 정도로 열악하고 치안이 개막장인 곳이 매우 많은 지역이다.
[3]
다만 이러한 현상은
콩고민주공화국뿐만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몇몇
아프리카국가들인
차드,
말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소말리아 등에서도 나타나는 일인데
모부투 세세 세코와 비슷한 시기의 해당 국가의 지도자들이었던
차드의
프랑수아 톰발바예,
말리의
모디보 케이타와
무사 트라오레,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장 베델 보카사,
소말리아의
시아드 바레의 시절 역시 무능하고 억압적이었지만 반정부 세력의 무장능력이 빈약해서 국가적인 수준의 내전으로 발전하지 않아서 국가적인 혼란으로 발전하지 않아서 해당 시기를 그리워하는 여론이 없지는 않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