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04:00:58

조시 깁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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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깁슨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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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깁슨
헌액 연도 1972년
헌액 방식 니그로리그 위원회(NC)

조시 깁슨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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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미국 스포팅뉴스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야구 선수 목록으로 약 25년 전 기록이기 때문에 21세기 스타들이 없는 것을 감안하며 보아야 한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베이브 루스 윌리 메이스 타이 콥 월터 존슨 행크 애런
6위 7위 8위 9위 10위
루 게릭 크리스티 매튜슨 테드 윌리엄스 로저스 혼스비 스탠 뮤지얼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조 디마지오 피트 알렉산더 호너스 와그너 사이 영 지미 폭스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자니 벤치 미키 맨틀 조시 깁슨 사첼 페이지 로베르토 클레멘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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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 깁슨
Joshua Gibson
생년월일 1911년 12월 21일
사망 1947년 1월 20일 (향년 35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조지아 주 부에니 비스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신체 185cm, 99kg
소속팀 멤피스 레드삭스 (1930)
홈스테드 그레이스 (1930~1931)
피츠버그 크로포즈 (1932~1936)
홈스테드 그레이스 (1937~1940, 1942~1946)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끝내 좌절된 메이저리그 진출4. 연도별 기록5. 여담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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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야구선수.

시대적 한계로 끝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하지 못한 비운의 니그로 리그 레전드로 이름이 높았으며, 2020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니그로 리그를 메이저리그 역사로 편입하면서 공식적으로 전직 메이저리거가 되었다.

2. 플레이 스타일

조시 깁슨은 실제로 베이브 루스만큼 홈런을 잘치는 우타자였다.[1][2] 게다가 포수였다. 그것도 한 해에 200경기 정도를 소화하였다. 야구팬이라면 포수가 훌륭한 공격력을 갖춘 것이, 그리고 한해 150경기 이상 꾸준히 마스크를 쓸 수 있는 내구력을 가진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포수가 한 해 200경기를 소화했다는 건 강철 체력을 넘어서 금강불괴라고 봐도 무방하다. 포수는 타격도 해야 하는 판에 수비에서 투수와 어깨관절과 팔꿈치관절 소모가 동급[3]인 엄청난 포지션이다. 현대야구에서도 투수만큼 토미존 수술이나 어깨수술을 많이 하는 포지션이며, 포수 출신 투수도 나올만큼 힘든 포지션이다.

또한 루스보다 불리한 환경에서 뛰면서도 최고의 홈런 타자로 불렸기에 타격 능력이 루스보다 더 뛰어났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물론 루스가 양키 스타디움빨로 홈런왕이 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구장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4] 하지만 깁슨은 누가봐도 불리한 구장에서 뛰었다. 소속팀이 홈구장이 없어 워싱턴 D.C. 피츠버그를 옮겨다니면서 경기를 했고, 두 구장의 펜스는 좌-중-우 순으로 각각 110-132-91, 124-128-98이었다. 우타자인 깁슨에게는 무지하게 불리한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Almost 800 홈런을 쏘아 올렸다. 게다가 당시 뉴욕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폴로 그라운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폴로 경기장을 개조해서 만든 야구장이라 중앙펜스까지의 길이가 147m라는 현대 야구기준으로 보면 이상한 구장이었는데 깁슨은 거기서 중앙을 넘기는 장외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폴로 그라운드 뒤 기차역에서 일하는 역무원이 승강장에 떨어진 공을 주워온 일도 있었는데 그 승강장에서부터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는 180m. 양키 스타디움 개장 이후 양키 스타디움에서 나온 장외홈런은 총 3개인데 그 중에서 깁슨이 날린 게 2개다. 약 20년 뒤 미키 맨틀이 간신히 하나 쐈을 정도고 그 이후에는 없다. 사첼 페이지 돔구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깁슨이 살아있었다면 저 지붕 다 때려부쉈을걸.'이라고 대답하기도.

또한 깁슨은 단순히 홈런타자가 아니었다. 사첼 페이지는 자신이 경험한 최고의 선수로 조시 깁슨을 꼽았으며 조시 깁슨을 상대해본 투수는 훗날 깁슨을 방망이를 휘두르면 베이브 루스, 안치고 기다리면 테드 윌리엄스라고 표현했다. [5] 그를 평생 워싱턴 세네터스에서 뛰게 하기 위해 노력한 월터 존슨은 깁슨에 대해 흔들의자에 앉아서도 내 공을 받아내고 앉은 상태에서 공을 1마일 밖으로 던질 수 있는 포수[6]라고 평했다. 타격 능력 뿐만 아니라 포수의 능력도 출중했던 것이다. 애초에 당시 포수는 수비 능력만 보고 타격은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공수겸장 포수였던 조시 깁슨의 등장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공격형 포수라는 분야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현대 야구로 따지면 오타니 쇼헤이가 투타겸업으로서 2021년부터 보여준 임팩트를 14년 간의 선수 생활 내내 보여준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니그로리그는 기록집계가 상당히 부실했기 때문에 깁슨의 정확한 기록은 아무도 모른다. 명예의 전당에 걸린 그의 동판에는 깁슨의 홈런 개수에 대해 앞에서도 언급한 Almost 800 이라는 참으로 애매하기 짝이 없는 문구를 박아놨다. 니그로리그는 당시 유료관중을 받을 수 있었던 일요일 경기만 기록을 집계했는데 그에 따른 깁슨의 통산 홈런 개수는 115개.[7][8] 메이저리그 역대 통산 최다 홈런이 배리 본즈의 762개임을 생각해보자. 전 세계로 범위를 넓혀 봐도 세계 최고 기록이 일본 오 사다하루의 868개이다.

또한 당시의 니그로리그는 팀 간의 전력차가 너무 커서 하위권팀은 도저히 프로 팀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깁슨을 포함한 니그로리그의 여러 슈퍼스타들의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물론 니그로리그를 메이저리그와 완전히 동급으로 간주함으로써 대부분의 야구 레전드들이 니그로리그에서 배출되었다는 억지 결론을 내리는 몇몇 주장과는 달리 객관적으로 보면 니그로리그와 같은 전력차가 큰 리그는 상위권 팀의 수준이 어떻든 약팀 상대로 양민학살을 할 수 있는 구조니 기록에 거품이 낄 수 밖에 없고 사첼 페이지, 조시 깁슨이 메이저리그 갔으면 다 밟고 다녔을 거라는 추측은 지나친 비약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도 이 때문에 니그로리그에서의 업적을 100%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어찌됐든 니그로리그에서 최강자였던 선수들에 대해서는 그 역사성이 있다고 평가하여 명예의 전당에 입성시킨 것이다. 일종의 절충안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니그로리그의 통산 기록이 100% 온전했다면 베이브 루스를 뛰어넘는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았을 수도 있는 선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술했듯 남아있는 기록이 너무 부실하고, 니그로리그의 수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갑론을박이 많기 때문에 깁슨의 업적과 위상은 If의 영역으로만 남게 되었다.

3. 끝내 좌절된 메이저리그 진출

그런데 이렇게 출중한 야구선수가 왜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지 못했냐면, 그 이유는 단지 흑인이었기 때문.

그렇지 않아도 미국도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대에 하필이면 당시 메이저리그의 초대 커미셔너(연맹 총재)였던 케네소 랜디스 또한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사첼 페이지, 재키 로빈슨 등의 데뷔를 막았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구단주였던 빌 빅이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사서 니그로리그 선수들을 데뷔시키려고 하니까 내셔널리그를 협박하여 빅에게 필리스 구단을 매각하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이런 작자가 커미셔너였으니 결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빌 빅은 기어이 사첼 페이지를 영입해낸다.

이처럼 유색인종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한사코 거부했던 랜디스 당시 커미셔너의 고집 때문에 그는 평생의 숙원이었던 메이저리그 진출에 번번히 실패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943년 병원에서 뇌종양 판정을 받는다. 수술을 받으면 살 수도 있었지만 야구는 영영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깁슨은 메이저리그 진출이라는 자신의 꿈을 위해 수술을 포기했고 1946년까지 정말 하얗게 불태우지만 한해 평균 200경기 가까이 소화한 포수였던 그의 무릎이 결국 망가져 선수 생명이 끝나 버렸고 삶의 모든 희망도, 목표도 잃은 그는 이듬해인 1947년 1월 20일 뇌종양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향년 35세였다.

사망 3개월 후, 그의 평생의 꿈이었던 메이저리그 진출은 랜디소 사임 이후 후임 커미셔너인 해피 챈들러 덕분에 브루클린에서 흑인 2루수가 이뤄낸다. 이듬해 사첼 페이지도 41세[9]의 나이로 데뷔하고 같은 해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포수가 데뷔한다. 바로 깁슨이 동생처럼 생각해 가르쳤던 로이 캄파넬라.[10]

1972년 깁슨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된다. 그리고 2020년 니그로리그가 메이저리그로 편입되는 것이 인정되면서 메이저리거로 인정받았다. 니그로 리그의 부실한 기록 때문에 규정타석을 못 채워 그의 무지막지한 비율 스탯들[11]은 정식 기록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3위의 블랙 잉크 수치를 가진다.

사실 깁슨도 흑인 선수들이 흔히 빠지는 방탕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당시 거의 모든 흑인 선수들이 그랬듯 무절제한 생활을 했다. 늦게나마 메이저리그에 진출이라도 했던 사첼 페이지는 자기관리를 했던[12] 매우 드문 예에 속한다. 재키 로빈슨이 인종차별을 이기고 최초의 흑인 선수가 된 데에는 대학( UCLA)을 나왔고 군 생활 동안 사생활 논란이 없었던 것도 크게 작용했다. 그렇지 않았던 깁슨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도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었을 지는 미지수이다.

조시 깁슨 레전드 스토리

4. 연도별 기록

파일:MLB 로고.svg 조시 깁슨의 역대 MLB 기록[13]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30 MRS[14] 1 4 2 0 0 0 0 0 0 0 [-] .500 .500 .500 1.000 0.1 0.1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33 PC[16] 68 262 94 15 7 18 61 74 4 20 [-] .395 .442 .744 1.186 4.6 4.3
1934 65 272 76 19 4 15 56 59 4 30 .317 .395 .617 1.012 3.5 3.2
1935 44 194 62 11 4 10 48 57 10 24 .369 .448 .661 1.109 2.8 2.2
1936 50 208 68 7 4 18 51 66 6 30 .389 .478 .783 1.261 4.1 3.4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37 HG[18] 39 183 65 13 7 20 60 73 2 25 [-] .417 .500 .974 1.474 4.2 3.8
1938 46 199 61 11 4 13 53 54 2 29 .370 .467 .721 1.188 3.7 3.2
1939 27 120 41 4 3 11 34 46 4 18 .402 .492 .824 1.315 2.6 2.2
1940 2 9 1 0 0 1 2 2 0 3 .167 .444 .667 1.111 0.0 0.1
1942 48 198 53 7 2 10 44 52 1 35 .327 .447 .580 1.027 3.0 2.7
1943 69 302 116 22 9 20 93 109 4 52 .466 .560 .867 1.427 8.1 6.3
1944 49 199 59 8 6 9 39 49 3 23 .335 .412 .602 1.014 2.0 1.8
1945 46 190 56 6 5 8 37 40 0 32 .357 .466 .611 1.077 2.8 2.6
1946 48 186 54 12 3 13 34 52 0 15 .318 .373 .653 1.026 3.0 2.4
MLB 통산
(14시즌)
602 2526 808 135 58 166 612 733 40 336 [-] .373 .458 .718 1.176 44.5 38.3
  • 니그로리그 기록이 메이저리그의 역사로 인정되었으므로 니그로리그 기록이 포함되지만, 남아 있는 니그로리그 경기 기록이 부실하기 때문에 니그로리그 기록은 공식적으로 남아 있는 기록만 반영되어 있다.

5. 여담

엑스파일을 단 한번도 빠짐없이 챙겨본 광팬이라면 '인간이 된 외계인'이라는 에피소드를 기억할 것이다. 니그로리그팀에서 베이브 루스만큼 홈런을 잘 치던 흑인 선수가 있었지만 알고 보니 외계인이었던 그는 동료 외계인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마지막 순간에 인간 친구가 그를 끌어안을 때 외계인은 죽어가면서 우리 종족의 피는 위험하다며 친구를 만류했지만 친구의 손에 묻어나온 건 인간과 똑같은 붉은 피였던 그 에피소드. 그 에피소드는 조시 깁슨에게 바치는 오마쥬라고 봐도 무방하다.

6. 관련 문서




[1] 야구에서는 좌타자가 우타자에 비해 유리하다. 강한 좌타자를 처리하기 위해 원 포인트 릴리프라는 이름으로 한 명의 타자만 상대하는 왼손 투수가 있을 정도. [2] 좌타자가 유리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이유는 1루에 더 가깝고, 타자 입장에서는 우투수가 좌투수보다 많으며(통상적으로 좌타자는 우투수 상대로 더 강력하다. 특히 사이드암 계열의 투수에게는 더 강한데 좌완 사이드암 투수는 거의 없다.) 반대로 투수 입장에서는 좌타자가 우타자보다 적으니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 [3] 물론 한번 던질때의 소모는 투수가 더 크지만, 투수는 선발은 한경기 던지고 쉬고 불펜도 두세경기 몇이닝 던지고 쉬는데, 포수는 주전이라면 많이 쉴 수 없고 거의 매경기 나와야 하므로 관절소모가 투수만큼 심하다. [4] 좌타자인 루스를 위해 양키스는 우측펜스까지 거리가 90m밖에 되지 않는 구장을 만들어줬다. 왼손잡이 홈런타자가 가장 많은 홈런을 날리는 코스가 바로 우측 펜스쪽이었다. [5] 테드 윌리엄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구안을 갖췄다고 평가되는 타자이며 통산 출루율은 무려 .482 [6] 참고로 월터 존슨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한명이라고 평가받는 선수다. 무려 100년전부터 시속 100마일의 공을 던졌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니... 그런 그가 이정도의 발언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깁슨의 실력을 알 수 있다. [7] 니그로리그의 일요일 경기는 무조건 더블헤더였다. [8] 일주일에 6~7게임 정도하니 하루에 똑같이 115개씩 쳤다고 가정하면 115 X 6.5 = 747.5개라는 기록이 나온다. [9] 이 나이를 아무도 안 믿는다. 최소 43세에서 50세라고 보는 쪽도 있을 정도.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조. [10] 캄파넬라 역시 평범한 선수가 아니고 브루클린 다저스의 포수로써 3번의 MVP를 따내며 엄청난 활약을 했으나 불의의 사고로 10년밖에 선수를 하지 못해 맘껏 기량을 펼치지 못한 선수이다. 그래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11] 타율은 역대 1위 타이 콥을 넘고, 장타율과 OPS는 역대 1위 베이브 루스를 넘는다. [12] 유흥을 아주 안 즐긴 건 아니지만 분명히 절제를 했기 때문에 늙어서까지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 [13] 니그로리그 기록이 메이저리그의 역사로 인정되었으므로 니그로리그 기록이 포함된다. [14] 멤피스 레드삭스(니그로리그 팀) [-] 기록 없음 [16] 피츠버그 크로포즈(니그로리그 팀) [-] [18] 홈스테드 그레이스(니그로리그 팀) [-] [-] 기록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