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6 17:25:16

조동석

<colcolor=#fff><colbgcolor=#0047a0> 국필(國弼)
본관 풍양 조씨
출생 1845년
경상도 상주목 모서면 갈천동
(現 경상북도 상주시 모서면 석산리)
사망 1895년 6월 17일 (향년 50세)
안동부 상주군
(現 경상북도 상주시)
묘소 경상북도 상주시 모서면 석산리
학력 유학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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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

1845년 경상도 상주목 모서면 갈천리(現 경상북도 상주시 모서면 석산리)에서 풍양조씨 대종손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주하(趙胄厦)다. 1874년( 고종 11) 증광 생원시에 3등 9위로 입격했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가 시해당하자 국권 피탈의 위기를 느껴 이듬해인 1896년 음력 2월 10일[1] 이기찬(李起燦)· 허위·강무형(姜懋馨) 등과 함께 대구부 김산군(現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산군 군내면 읍내를 점령했다. 그리고 포군(砲軍)을 포함한 수백 명의 군사를 모집해 무장시켰으며, 이기찬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의병대의 군문도총(軍門都摠)에 취임해 의병 활동을 주도했다.[2]

이후 진용을 갖춰 대구부 대구군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으나 이 계획을 미리 간파한 관군에 의해 성주군에 주둔해 있던 진영이 공격을 받았고, 관군의 대공세가 잇따랐다. 결국 음력 2월 18일[3] 고종 의병 해산 조령이 내려지자 그해 4월 이기찬은 의병대장직을 사임했다.

이후 의병진을 해산하고 남은 의병들의 무장을 해제해 모두 돌려 보냈으나, 관군 및 일본군에 체포돼 1895년 6월 17일 순국했다.

200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1] 양력 3월 23일. [2] 강무형은 찬획(贊劃), 허위는 참모장(參謀將)에 선임했다. [3] 양력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