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수단 내전 Second Sudanese Civil W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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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내전의 일부 | |
기간 | |
1983년 6월 5일 ~ 2005년 1월 9일 | |
장소 | |
남수단 지역, 청나일강 및 누바 산맥 주변 지역 | |
교전 국가 및 세력 | |
[[수단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남수단 방위군벌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수단 인민해방군 반란군 누에르 백군 [[우간다| ]][[틀:국기| ]][[틀:국기| ]] 우간다 저항군 [[자이르| ]][[틀:국기| ]][[틀:국기| ]] (1994년-1997년) 알카에다 (1991년-1996년) 이라크 [[중국| ]][[틀:국기| ]][[틀:국기| ]] 전투지원국: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 ]][[틀:국기| ]][[틀:국기| ]] (1986년~1991년) 콩고민주공화국 (1998년~2003년) 비전투지원국: [[이란| ]][[틀:국기| ]][[틀:국기| ]] [[벨라루스| ]][[틀:국기| ]][[틀:국기| ]] (1996년~) |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수단 인민해방군 남수단 해방 운동 수단 국립 민주 연합 아냐냐 II 동부전선 데르그(~1987년) [[에티오피아 인민 민주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1987년~1991년) [[에티오피아| ]][[틀:국기| ]][[틀:국기| ]] (1995년~1998년) [[에리트레아| ]][[틀:국기| ]][[틀:국기| ]] (1996년~1998년, 2002년~2005년) [[우간다| ]][[틀:국기| ]][[틀:국기| ]] (2003년~) 비전투지원국: [[이스라엘| ]][[틀:국기| ]][[틀:국기| ]] |
지휘관 | |
[[수단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가파르 니메이리 [[수단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스와르 알다하브 [[수단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사디크 알마흐디 [[수단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오마르 알바시르 파울리노 마티프 은히알 타르시세 렌자호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리에크 마차르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람 아콜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케루비노 쿠아닌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피터 파 지에크 [[우간다| ]][[틀:국기| ]][[틀:국기| ]] 주마 오리스 [[우간다| ]][[틀:국기| ]][[틀:국기| ]] 조셉 코니 [[자이르| ]][[틀:국기| ]][[틀:국기| ]] 모부투 세세 세코 오사마 빈 라덴 |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존 가랑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도미닉 딤 뎅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리에크 마차르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람 아콜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케루비노 쿠아닌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제임스 호스 마이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피터 파 지에크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피터 가데트 [[남수단| ]][[틀:국기| ]][[틀:국기| ]] 말릭 아가르 [[에티오피아 인민 민주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에티오피아| ]][[틀:국기| ]][[틀:국기| ]] 멜레스 제나위 [[에리트레아| ]][[틀:국기| ]][[틀:국기| ]]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우간다| ]][[틀:국기| ]][[틀:국기| ]] 요웨리 무세베니 |
병력 | |
수만 명 | 수만 명 |
피해 | |
1,000,000명 ~ 2,500,000명 사망 | |
결과 | |
포괄적 평화 협정 체결 2011년 남수단 독립 국민투표 실시 및 남수단 독립 남수단 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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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단군과 남수단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1983년부터 2005년까지 약 21년동안 지속된 전쟁이다. 제1차 수단 내전의 시작점이 된 남수단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내전으로 이어졌다. 이후, 남수단은 국민 투표를 통해 독립을 하게 된다.2. 배경
수단 공화국의 독재자였던 가파르 니메이리는 본래 아랍 사회주의 성향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란에서 이슬람주의 혁명으로 기존 정부가 붕괴한 것을 보고는, 자국 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란처럼 반란을 선동할 것을 우려하여, 1983년부로 이슬람주의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가파르 니메이리는 자국 내 전통적인 지주층, 기득권층 역할을 맡아왔던 이슬람 율법학자 회유하기 위해 수단에 샤리아 법을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무슬림 인구가 적었던 남수단 자치주에서 뜬금없이 샤리아 법이 도입되었다. 명목상이나마 자치 지역을 할당받았던 남수단에서 현지 주민들과 상관 없는 이슬람 율법이 도입된 것이다. 이미 남수단인들은 북수단 아랍인들이 남수단의 석유 자원을 수탈하면서 자신들에게는 제대로 이익을 분배하지 않고 차별한다는 피해의식이 있던 상황이었고, 남수단인들이 동요하는 것이 당연했다. 남수단인들이 샤리아 도입 시도에 반발하자 수단 공화국 군대는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였고, 여기에 분개한 남수단인들은 자체적으로 게릴라 민병대를 구성하여 수단 정부군에게 저항하였다. 수단은 제1차 수단 내전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금 내전의 수렁에 빠져들었다.3. 전개
내전 내내 수단군은 남수단 측을 압도적으로 밀어부칠 수 있었는데, 제1차 수단 내전 직후 남수단 자치주 측의 자체적인 무장 단체 운영을 금지했었고, 내전 발발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부터 막대한 군비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수단은 자체적인 공군이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걸프 아랍 국가들로부터 빠방한 지원을 받는 수단 공군의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내전이 진행되던중 쿠데타로 니메이리가 85년 실각했고 그 이후 민정 이양으로 민간 정부가 선출되었다.
하지만 전쟁 와중에 민간인 학살 문제가 불거지면서, 서방 각국은 수단 공화국을 대상으로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걸프 아랍 산유국들이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수단 국민들을 다 먹여살려줄 수는 없는 일이었고, 그 결과 1989년에는 수단 공화국 정부 측에서 남수단을 대상으로 한 다시금 자치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타협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남수단 측과의 타협 시도는 수단 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들의 지지를 받은 오마르 알바시르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타협 시도를 되돌려놓았다. 본래 아랍 사회주의 성향의 정치인이었던 가파르 니메이리와 다르게 오마르 알바시르는 강경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 정치인으로, 서구의 경제제재 위협에도 불구 남수단 측과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였다. 그는 샤리아법을 강제하고 폭압적으로 찍어누르는 정책을 시행했으나,[1] 그 역시 남수단 측을 완전히 압도하는 데는 실패하기는 마찬가지였다.[2] 이러한 상황에서 제2차 수단 내전은 장장 20여 년을 이어갔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지원국들을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걸프 아랍 국가들이 계속해서 수단군이 남수단인들을 학살하는 일을 더 이상 지원/묵인하기 힘들어졌다. 특히 오사마 빈 라덴과 수단 공화국 측의 커넥션이 뽀록나면서 서방 국가들의 수단 경제제재도 심화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북수단에서 남수단의 독립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던 이유는 북수단은 척박한 건조지대인데 반해 남수단은 석유 자원은 물론 수자원도 풍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제제재가 계속 심화되면서 남수단에서 착취한 석유 자원들을 수출할 길마저 막혀버리자, 수단 공화국도 결국 수가 다 해버렸다. 2005년 내전 종료 이후 2011년 남수단 독립 찬반 국민투표에서 남수단 주민 대다수는 독립에 찬성하는 표를 던졌고, 그 결과 남수단이 독립하면서 20여 년에 걸쳤던 제2차 수단 내전은 남수단의 독립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4. 여파
장기간 내전과 경제제재의 여파로 수단 공화국은 빈곤국으로 전락하였으며,[3] 남수단 역시 독립 이후 수십여 년간 지속된 내전으로 사회 인프라가 무너지면서 독립 이후 극심한 사회 혼란에 시달리게 되었다. 제2차 수단 내전 와중에 사디크 알마흐디 같은 온건파들이 오마르 알바시르의 1989년 쿠데타로 모조리 축출된 것을 계기로 수단 공화국 정부는 자정능력을 상실한 막장 집단화되었다. 수단 공화국 정부는 자국 내 지역갈등 문제가 생기면 학살과 폭력으로 찍어누르는 방법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수단 내전 종료 이후 북수단 정부군들은 잔자위드[4] 민병대를 동원하여 같은 아랍 무슬림인 다르푸르 지역의 푸르족들을 체계적으로 학살하는데 이를 다르푸르 학살이라고 한다.군사적으론 97년 이후 남부 지역에서 수단군을 몰아내면서 사실상 승리한 상태였지만 이는 남수단 전체가 단결해서 달성한것이 아니었다. 즉 남수단은 국민들을 통합된 국가의 국민으로 단합시킬 리더십을 가진 정치인이나 단체가 없는 상태로 독립했기 때문에, 전후 다시 누에르족과 딩카족이 갈등하면서 남수단 내전으로 신음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