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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역대 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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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초대 | 2대 | 3대 | 4대 | - |
박종세 (1982) |
정기주 (1982~1986) ★ ★ |
노주관 (1987~1991) ★ ★ ★ ★ |
이상국 (1992~1995) ★ |
미운영 (199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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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5대 | 6대 |
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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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
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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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규 (1997~1998) ★ |
최윤범 (1999~2001) |
정재공 (2001~2007) |
김조호 (2008~2013) ★ |
허영택 (2014~20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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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 11대 | 12대 | |||
조계현 (2018~2021) |
장정석 (2022~2023) |
직무 대행 최준영 (2023) |
심재학 (2023~ ) ★ |
[clearfix]
1. 개요
KIA 타이거즈의 前 단장. 기아자동차 사이클팀의 운영과 농구단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부단장으로도 재직했다.KIA 타이거즈 단장 시절 이전까지는 훌륭한 스포츠 기업인으로 평가받았으나, KIA 타이거즈 시절 정책 실패와 권위주의적 행보[1]로 인하여 팬들에게 큰 비판을 받았고,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가 된 장정석이 등장하기 전까지 프랜차이즈 최악의 단장이란 불명예를 얻었다. 무엇보다도 꼴아 시절의 단장이었다.
2. 프런트 시절
2.1. 사이클, 농구
1985년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기아자동차에 입사했다. 총무부로 발령을 받아 사이클 팀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남들에 비해 체격이 건장해서 사이클 팀을 잘 운영할 거라 여겨 지명을 받은 것이었다. 이 시절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인데, 조호성과 같은 훌륭한 선수들을 데리고 1988년부터 IMF 외환위기로 팀이 해체된 1997년까지 전국체전을 모조리 제패했고,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와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여러 개 땄기 때문.1986년 기아자동차는 농구단을 창단했고, 정재공은 농구단의 업무도 맡아보게 되었다. 허재, 김유택, 강동희 등이 속했던 농구단 역시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KBL 출범 초기까지 강팀으로 군림했다. 과장, 부장을 거쳐 마침내 농구단 부단장까지 오른 그는 2001년 기아자동차가 해태 타이거즈 야구단을 인수하면서 야구단 단장으로 부임했다.[2] 이 때까지만 해도 그의 평가는 매우 좋았다.
2.2. KIA 타이거즈 단장 시절
2007년,
정재공 단장에게 일침을 놓다 제지당하는
기아 팬들 |
2001년 시즌 도중 해태 타이거즈가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어 KIA 타이거즈로 재출범하자 단장으로 부임하였고, 2007년까지 KIA 타이거즈의 단장을 맡았다.
그러나 여러 문제를 일으키며 재임 후반기 2005~2007년 타이거즈 역대 최악의 암흑기를 작성하는 등 크게 부진하였고, 결국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악의 단장이자[3] 나아가 타 팀 팬덤 사이에서 욕먹는 이상구, 이윤원, 안현호, 홍준학[4] 못지않은 역대 최악의 비선출 단장 중 한 명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실제로 많은 타이거즈 팬덤이 팀이 결정적으로 무너진 시기를 정재공 체제로 꼽으며, 당시 감독으로 함께 팀을 작살내던 서정환과 함께 팀 역대 최악의 인물 중 하나로 큰 혹평을 받고 있다.
정재공은 과거 본인의 경력을 살려 프런트 야구를 천명하며 팀 내 운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으나, 결과적으로 그가 개입한 여러 정책들은 모조리 실패하며 팀을 본격적인 암흑기에 몰아넣었다. 최하위를 두 차례나 기록하는 등(2005, 2007)[5] 성적도 부진했지만 거액을 들여가며 데리고 온 선수들은 죄다 먹튀거나 기대치에 비해 좋지 못한 성적을 냈고, 이해가 가지 않는 감독 및 코칭스태프 인선 등 구단 운영 측면에서도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서 말그대로 자팀 전력을 박살내 버렸다. 대표적인 사례만 들자면,
- 손혁 + 김창희 + 8억 <=> 진필중[6]
- 정성훈 + 10억 <=> 박재홍
- 마해영 4년간 28억원에 FA 계약 체결[7][8]
- 조규제 2년간 4.5억에 FA 계약 체결[9]
- 심재학 3년간 18억에 FA 계약 체결
- 박재홍 <=> 김희걸[10]
- 김성한 감독 경질[11]
- 유남호 감독 선임 및 경질, 서정환 감독 선임
- 다니엘 리오스 <=> 전병두 + 세스 그레이싱어[12]
이렇듯 암흑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나 도의적으로도 매우 불량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박재홍에게[13] 술집에서 모욕적으로 폭행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이 건은 한동안 루머로 알려져 있었으나 2022년 박재홍이 스톡킹에 직접 출연해 당시 정재공 단장이 술에 취해 자신의 머리를 때렸고 왜 때리냐고 물었는데 "내가 너 머리 좀 때리면 안돼?" 하고 계속 머리를 때리자 이에 화가 난 박재홍이 술잔을 집어던졌다고 확인사살했다. 물론 야구단 단장이 선수보다는 갑의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재공 단장의 행보는 갑질이라고도 비춰질 수 있는 상황이기에[14] 부적절한 행보로 여겨진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을 비판하는 타이거즈 팬들의 목소리에 광주 무등야구장 입장 관중 ' 소지품 검사'와 ' 호랑이 사랑방' 폐쇄 및 약관 개정으로 응답했고 결국 기아팬들이 법정공방과 무등야구장에 정재공을 비난하는 현수막을 달기까지 이르렀다. 특히나 재임 마지막 해인 2007년은 팀 레전드의 KBO 역대 최악의 부진, 윤석민상의 원년, 김기아로 조롱받던 타선 등 온갖 부정적 대기록이 작성되고 성적도 최하위를 기록한 프랜차이즈 역대 최악의 시즌으로 꼽히며, 팬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서정환은 당시 프랜차이즈 역대 최악의 감독 소리를 들으며 신한카드 혹사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재공은 그를 감싸다가[15] 2007년 10월 9일 경질되었다. 후임으로 김조호 현대기아자동차 기획실 상무이사가 전무로 승진함과 동시에 새롭게 부임했다.
2021년 8월 26일,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과거 이야기가 짤막하게 언급이 됐는데, 당시 강태원 기아 타이거즈 스카우트와의 김선빈 계약금 관련해서 차이가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쪼그만한 애가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 라며 계약금 천만원으로 갈등이 있었고[16], 강태원이 결재문서를 계속 올렸지만 2번 정도 컷트를 당했고, 마지막 시도를 했는데 거기서 믿어보겠다며 정 단장이 받아 들였고, 이후 김선빈이 데뷔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자[17] 정 단장이 사과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능력적, 도의적으로 문제를 크게 일으켰는지라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장정석이 등장하기 전까지 팀 역대 최악의 단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여담으로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최악의 단장 데이브 리틀필드와 재임 기간이 같다.
3. 근황
기아를 떠난 후 자전거 제조업체인 JK6의 대표가 되었고 신개념 자전거 까롱(CARON)을 출시했다. # 다만 사업 과정에서 다른 업체의 기술을 도용하는 등의 문제가 생겨 사업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1]
후술할 썰들로 보아 선수들과도 시도때도없이 마찰을 일으킨 것으로 보이며, 현수막 검열 사건을 일으켰는데, 이는 2022년 삼성 라이온즈의 스케치북 검열사건의 원조 버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러모로 선수단과 팬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미숙한, 삼성 라이온즈의
홍준학 단장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2]
여담이지만 2000년대 초반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농구단은 엄청난 혼란기를 겪었는데, 김익환 단장 - 정재공 부단장이 동시에 야구단으로 떠나고, 연고지를
부산광역시에서
울산광역시로 옮기고, 모기업이
기아자동차에서
현대모비스로 바뀌는 일이 한꺼번에 벌어진데다 새로 부임한 프런트가 기아 색깔을 지우겠답시고 전성기 멤버들을 모조리 내쫓은 게 컸다.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비판 참고.
[3]
다만
장정석 단장이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가 되면서 동률 내지는 차악으로 떨어질 여지는 있다. 물론 그가 저지른 만행이 변하는건 아니지만.
[4]
참고로 이들은 안현호를 제외하면 전부 구단 역사상 최악의 시즌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인물들이다. 이상구는 2002/2003년 롯데 자이언츠, 이윤원은 2019년 롯데 자이언츠, 홍준학은 2023년 삼성 라이온즈를 만들어낸 원흉이며 정재공은 2007년 KIA 타이거즈를 만들어낸 원흉이라고 볼 수 있다. 안현호같은 경우 그의 책임으로 만들어낸 2016년 삼성 라이온즈는 이들보다는 다소 낫다는 평가를 받으나, 대신 단장으로써 업적이 전무하고 실책만 잔뜩인데다 기존까지 강팀이었던 삼성을 약체로 추락시켜서 비판받는다. 그리고 이윤원, 정재공, 홍준학의 경우 해당 시즌이 지나치게 막장이어서 결국 5년 이상 재임하던 팀을 해당 시즌을 마지막으로 떠나게 되었다.
[5]
더군다나 2005년 기록한 최하위는 해태-KIA 창단 역사상 첫 최하위였다. 하물며 IMF 여파로 구단 재정이 좋지 못해 선수들을
이리저리 팔며 버텼던 해태 말기 시절에도 해보지 못한 리그 최하위를 그것도 두 번이나 했으니 팬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화가 날 일.
[6]
마무리를 보강하겠다고 두산에서 진필중을 트레이드로 영입했지만 문제는 진필중이 직전년도부터 하락세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KIA에서도 한 시즌 내내 거의 태업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등 부진했다. 결정적으로 FA가 되자마자 협상을 거부하고 LG로 떠나 버리는 등 진필중과 KIA의 인연은 1년만에 끝났다. 그나마 진필중이 FA로 LG에 이적한 뒤 보상금과 내야수
손지환을 보상선수로 받아와 몇 년간 잘 써먹었다 보니 KIA가 이득을 본 것도 있다.
[7]
사실 마해영의 먹튀가 강렬하게 남아서 그렇지 삼성에서 보상선수로 데려간 신동주 쪽도 하락세가 심하게 왔다. 2004년에는 백업으로 뛰면서 0.219의 타율(그래도 출루율이 0.291이었다.)을 보이다가 다시 KIA로 왔고 1할 미만의 타율을 치다가 은퇴했다.
[8]
하지만 마해영 쪽이 더 심각했던게 그나마 신동주는 연봉이 1억이어서 저렴했지 마해영은 계약금 11억을 이미 받은 상태에서 연봉도 4억씩이나 하는 등 KIA에서 전혀 연봉값을 못했고 게다가 감독과 싸우면서 팀 케미스트리를 박살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계약 기간을 못채우고 트레이드되어 간 LG에서 2년간 먹튀 행각이 압도적이라 그렇지 KIA에서 계약금과 2년치 연봉을 합쳐 약 20억을 지급했기 때문에 금액 면에서는 KIA가 더 손해를 본 게 맞다.
[9]
그나마 KIA 입장에서는 다행인 것이 애초에 적은 액수의 계약이었던 데다 현대에서 보상금만 받아갔다.
[10]
물론 지난 2시즌간 KIA에서 여러모로 말이 많았던 박재홍을 재트레이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단행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반대급부로 받아온 카드인 김희걸이 부진했고 결정적으로 박재홍이 SK에서 부활함에 따라 KIA가 손해를 본게 맞다.
[11]
물론 김성한 감독은
선수 폭행도 있고 한계가 보였지만, 후임자 유남호-서정환은 그야말로 팀을 박살내버렸기에...
[12]
물론 이후 리오스가 두산에서 맹활약한게 임팩트가 컸지만, 트레이드 직전 당시 리오스가 퇴출 의견까지 나왔을 정도로 부진했다 보니 교체해도 명분은 있었다. 거기다 KIA도 대체 외국인 선수로 들어온 그레이싱어가 맹활약한데다 전병두도 좌완으로 나름 쏠쏠했다 보니 마냥 손해봤다고 하기도 뭣하다. 무엇보다도 리오스의
치부가 드러난 지금은...
[13]
더군다나 이 때 KIA는
박재홍을 영입하겠다고
현대 유니콘스에다 내야수 유망주였던
정성훈에 현금 10억까지 얹어줬다. 물론 내야진 교통정리 겸 또 다른 특급 유망주였던
이현곤의 잠재력을 믿고 정성훈을 트레이드 카드로 쓴 거지만 현실은...
[14]
2000년대라 그냥 넘어갔지 2020년대 기준으로는 갑질에 가까운 행보이다. 아무리 술에 취해있던 상황인데다 본인보다 한참 어린 인물이라지만 엄연히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와 사장 관계인데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좋지 못하다. 물론 당시는 인권의식이 낙후된 2000년대이기에 이런 상황이 드문 것은 아니었다.
[15]
다만 신용운의 증언에 의하면 이제 막 재활한 얜데 (이렇게 막 굴려서) 내년에 안쓸 작정이냐고 서정환과 다툰 적이 있다고 한다.
[16]
당시 구단측은 2천만원, 강태원은 3천만원을 제안.
[17]
멀티히트 + 데뷔 타점,득점 + 도루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