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仁興
1916년 12월 20일 ~ 1982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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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초기 한국 정치학 및 행정학의 정립에 기여하였다. 서울대 법대,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2. 생애
1916년 경상남도 김해군 출생. 배재중, 마쓰에고를 거쳐 교토제국대학 법학부 제2류를 졸업하였다.[1] 당시 제국대학 출신들이 주로 택하는 진로인 고등문관시험을 통한 관료의 길을 택하지 않고 학문의 길을 계속 걸은 그는 해방 직후인 1948년 신설된 부산대학 정치학과 교수로 처음 강단에 섰다. 6.25 전쟁 이후인 1952년에는 서울대 법대의 정치학 담당 교수로 임용[2]되었으며, 1955년에는 최초로 행정학 교과서를 집필하는 등, 행정학을 한국에 처음 도입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아울러, 미국의 대한 교육 원조 계획인 미네소타 프로젝트(Minnesota Project)의 일환으로 한국 행정의 과학화를 목적으로 하는 행정대학원 신설 계획 입안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1959년 법과대학 내에 행정대학원이 설립되었다.1960년대에는 서울대 법대를 떠나 타 사립 대학에 출강하다, 1966년부터 퇴임 시까지 성균관대 행정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이 시기 한국정치학회, 한국행정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80년 제5공화국 헌법 기초 시, 김운태, 라종일, 배성동 등과 함께 정치학 분과 연구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82년 별세.
3. 연구
국내 최초의 행정학 교과서 출간을 비롯해 현대 행정학을 한국에 도입하여 공법학과 분리되는 독자적인 분과 영역 수립에 기여하였다. 이외에도 지방자치론[3], 정치사상 연구 등을 주요 관심 분야로 삼았다.
[1]
당시 교토제대 법학부는 도쿄제대와 달리 세부 학과를 두지 않고 세부 학과에 해당되는 류(類)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이때, 제1류는 순수 법률학, 제2류는 정치학에 해당한다.
[2]
1975년 서울대학교 종합화 및 관악캠퍼스 이전까지 서울대학교의 각 단과대학은 소재지도 서울, 경기 여러 지역에 분산되었고 인적, 물적으로 독립된 하나의 독자적인 대학에 가까웠다. 문리과대학에 정치학과가 있었으나, 이와 별개로 법과대학 등지에서도 정치학을 담당하는 교수가 수 명 존재하였고, 정치학, 정치사, 외교사 등 관련 강의 역시 별도로 개설하였다.(마찬가지로 문리과대학 등지에서도 법과대학과 별개로 법학 관련 강좌를 개설.)
[3]
그러나 끝내 생전 지방자치제도의 도입을 목격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