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전파되자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에서
김양순,
이덕균,
박태화,
박진화,
김금복,
강순화,
손천일,
김원배,
승일상 등과 함께 주민들을 이끌고
4월 2일 저녁
학성산으로 올라가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후 이덕균이 사무소, 주재소, 학교로 들어가 건물을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박태화는 이덕균과 함께 군중을 지휘하여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신창공립보통학교로 가서 군중과 함께 투석하여 유리창과 문 등을 파괴했다. 정윤흥은 이때 일본 경찰한테 붙잡혀 대전지검공주지첨에서 보안법위반 소요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