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MOdulator and DEModulator, Modem통신을 위한 변복조 장치. 현재 모뎀의 변복조 회로는 거의 대부분 디지털 처리를 기본으로 하기에 내부적으로 ADC(Analog to Digital Converter)/ DAC(Digital to Analog Converter)가 달려 있는 경우도 있다.
1990년대에는 기존 유선 음성 전화망을 그대로 이용해, 마치 통화하듯이 통신망을 이용하는 전화 접속 모뎀(Dial-up MODEM)이 친숙했다. 현재 통신 장치는 대부분 모뎀이 있다. 케이블 인터넷이라든가 ADSL/ VDSL, FTTH, 기가 인터넷 등지에서도 모뎀이 사용되고 있다. 휴대 전화에 쓰이는 2G/ 3G/ 4G/ 5G/ Wi-Fi 통신칩도 모뎀 기능이 있다.[1]
OSI 7계층 데이터 통신 모델에서 소위 '1계층(Layer 1)/2계층(Layer 2)'이 보통 통합 모뎀칩 형태로 구현된다. Layer 1은 물리 계층(Physical Layer)이며 보통 무선 RF소자, 유선 케이블 접점을 말한다. Layer 2는 MAC계층 (Medium Access Control layer)로 멀티플렉서(Multiplexer), 디멀티플렉서(Demultiplexer), 디지털-아날로그 신호 간 변환(DAC/ADC)과 오류 정정 등 디지털 신호 처리, 간단한 통신 트래픽 제어(Slott Aloha 알고리즘, CSMA/CD, CSMA/CA 등) 등 다양한 기능이 디지털 논리 회로로 구현된다. 컴퓨터 공학(Computer Science)와 전자 공학(Electric Engineering)의 연계 접점인 임베디드 시스템 형태가 아닌 보다 하위단의 회로 설계 관점이며 ASIC/ FPGA와 같은 반도체 설계 단계에서 구현된다. 보통 컴퓨터 공학에서는 Layer 3계층 즉 컴퓨터 운영 체제 커널단에 구현된 TCP/IP와 애플리케이션 계층과의 접점인 버클리 소켓등을 활용해 통신 소프트웨어를 구현한다. Layer 3 이상에서 Layer1/2 계층으로 데이터를 떨어뜨리면 소위 '패킷'이라는 데이터 조각을 생성해 유무선 통신 회선으로 흘려보낸다. 전산학에서 Layer 2 계층 기능을 가르치는 이유는 실제 구현 보단 Layer 3에서 처리된 패킷이 어떻게 처리되어 통신선로를 타고 흘러가는지에 대한 원리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사실 랜카드, USB 동글도 같은 맥락의 장치들이며, 실제 구현은 정보통신학과나 전자공학 전공자들에 의해 심도 깊게 연구된다. 이러한 통신 모뎀은 삼성전자, 노키아, 에릭슨, 화웨이, 모다정보통신, D-Link, EFM 네트웍스(ipTIME), 히타치, 넷기어 등 통신 장비 설비 회사에서 주로 생산 판매된다.
2. 무선 모뎀
2010년대 이후에는 노트북과 태블릿 등 기기에서 무선 모뎀(Wireless Modem)의 사용이 꽤나 활성화되었으며, 내장 모뎀뿐 아니라 USB 형태의 외장 모뎀도 출시되고 있다. 이러한 무선 모뎀은 이동통신사의 3G, LTE, 5G 등 통신망에 접속하여 인터넷 연결을 지원한다. 구조적으로 휴대폰 단말기의 통신망 연결과 차이가 없으므로 개통이 완료된 USIM을 필요로 한다. 전화번호도 발급되므로 무선 모뎀을 통해서 문자 메시지를 받거나 전화를 걸 수도 있다. 단, Windows에서 사용하는 경우에는 문자 메시지를 수발신하거나 전화를 송수신하려면 해당 무선 모뎀 전용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한다.3. 전화 접속 모뎀
대표적인 모뎀 제조회사 중 하나인 U.S. 로보틱스의 외장형 모뎀. U.S. 로보틱스의 모뎀은 상당히 비쌌던 물건이라 갑부용 모뎀 취급을 받았었다. 애플 매킨토시 사용자들은 IBM PC 호환기종용으로 나온 ISA 확장 슬롯 모뎀을 쓸 수 없어서 U.S. 로보틱스나 글로벌빌리지의 제품을 주로 이용했다.
끝판왕 취급을 받던 쿠리어 모뎀. U.S. 로보틱스사의 최고 프리미엄 라인급 모뎀으로, 모뎀 주제에 60만 원대에 달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가격을 자랑했다. 실제로는 덤핑으로 풀려서 1/5 정도의 가격에 구할 수 있었지만 이 모뎀은 지금도 20~30만 원대에 정식으로 팔고 있으며 중고 장터를 뒤지면 그거의 1/10 가격이다. 며칠을 연결해놔도 끊기지 않는다는 전설의 안정성을 자랑하는 제품으로 이름 높았다.
PCI 슬롯을 사용하는 내장형 모뎀. 다만 PCI 슬롯을 사용하는 모뎀은 대부분 소프트웨어 모뎀이어서 안정성이 처참한 수준이었다.
모뎀 연결음과 데이터 해석.
컴퓨터를 전화선을 통해 음성 신호로 통신하는 주변 장치를 의미한다. 컴퓨터의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음성 신호로 변환하여 전화선으로 송신하고, 전화선에서 수신한 아날로그 음성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여 컴퓨터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 후반까지 컴퓨터를 만져본 사람들에게 추억으로 남아있는 장치다.
아래에도 나와있는 음향 커플러 중 하나인 Livermore Data Systems Model A를 이용하여 레딧에 접속하는 영상이다.
이보다 이전에는 "음향 커플러 (Acoustic Coupler)"라는 녀석을 모뎀 대신 사용했는데,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모뎀은 전화선 케이블을 모뎀에 직접 꽂지만 저 커플러라는 녀석은 전화 수화기를 커플러 위에 얹어놓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전화로 송신하는 방식이었다.[2] 이 문서 아래쪽 '역사' 부분에서 Accoustic Coupler라고 써놓은 게 바로 이 놈이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영향으로 "카프라"라고 많이 소개되었는데,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실제로 보급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에 일본 책을 번안한 학습만화에서나 자주 보던 물건이었다. 애초에 대중화된 네트워크의 효시인 KETEL PC통신이 1989년에야 보급되기도 했고. 사실 천리안이 KETEL보다 빠르기는 한데 어차피 이 쪽도 본격적으로 보급이 시작된 건 1988 서울 올림픽 이후다. 이 때는 이미 2400bps를 넘어 9600bps 모뎀이 보급되던 시점이었다. TV드라마 맥가이버 에서 나온 적이 있다.
전화 접속 모뎀은 설치 방식에 따라 내장형과 외장형으로, DSP 처리 방식에 따라 소프트웨어형과 하드웨어형으로 나뉜다. 한국에서는 내장형을 주로 사용했지만 해외에서는 외장형이 좀 더 선호되었다. 가격은 외장형이 더 비쌌기 때문에 가격 때문에라도 내장형을 많이 썼다. 내장형이나 외장형이나 컴퓨터와의 통신은 RS-232C 통신 규격의 커넥터 표준인 직렬 포트를 사용했다. RS-232 규격은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이 나오기도 전에 모뎀과 같은 전송 장치를 위하여 만들어진 규격이었기 때문에 컴퓨터 아키텍처 춘추전국 시대에도 호환성이 있었다.
과거 PC통신 프로그램에서 직렬 포트 설정을 해야 했는데, 마우스가 직렬 포트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설정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모뎀과 마우스가 충돌하기도 했다. 이유는 IRQ 충돌이었다. COM1, COM3가 IRQ4를, COM2, COM4가 IRQ3를 썼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한 컴퓨터에 쓸 수 있는 직렬 포트는 두 개뿐이었다. 그래서 마우스와 모뎀을 함께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우스와 모뎀이 쓰는 직렬 포트 번호의 홀짝을 다르게 해야 한다. 보통 마우스를 COM1으로 잡고 모뎀을 COM2나 COM4로 잡으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ATI Mach64 그래픽 카드는 IRQ3를 사용했던 탓에 저것을 쓰고 직렬 포트 마우스를 쓰면 마우스가 IRQ4, VGA가 IRQ3를 사용해 모뎀을 쓸 수 없다. 이런 경우 PS/2 포트의 마우스를 구해 써야 했고, 이를 지원하는 메인 보드나 ISA 어댑터 카드를 구해야 했다. 지금은 APIC(Advanced Programmable Interrupts Controller)와 MSI(Message Signaled Interrupts) 덕에 IRQ가 수천 개나 될 정도로 커지면서 이런 설정을 할 필요가 없다.
PC통신 붐과 함께 엄청난 보급률을 자랑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ADSL을 시작으로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슬슬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는 지역에서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사용해야 했으며 그때문에 전화 접속으로 편리하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원클릭 같은 서비스도 한동안 잘나갔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컴퓨터에 전화 모뎀이 붙어 나오는 경우가 드물지는 않았다.
MS-DOS 시절부터 모뎀을 통해 멀티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많이 나왔다. 한쪽은 전화를 걸고, 다른 쪽은 전화를 받아 연결하여 플레이하는 방식. 당연하지만 전화 요금은 거는 쪽만 나온다. 대한민국에서도 1990년대 PC통신 상에서 모뎀플레이 동호회가 생겨나 크게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스타크래프트도 1:1 모뎀 플레이를 지원했다.
하지만 그래도 모뎀으로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는 번호(014XY)는 2017년 8월 31일까지 살아있었다. # # 고속 인터넷을 설치할 수 없거나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한동안 유지하고 있었다. 2000년부터 폐쇄 직전까지의 모뎀 인터넷 이용 요금은 1분당 3원, 한 달 최대 4,000원이며 전화 통화료는 따로 부과되었다. 그런데 모뎀 속도는 이미 3G 시기에 따라잡혀서 3G도 안 들어오는 오지가 아닌 이상 별 의미가 없었다. 또 국토가 작고 도입 이후 인프라가 급속도로 깔리게 된 대한민국은 그런 오지도 없다.
현재도 간간이 쓰이고 있으며, 대부분은 이더넷이 보급되기 이전에 지어진 구축 주거시설에서 기존에 설치된 전화선을 통해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혹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FAX를 주고받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컴퓨터에서 읽을 수 있는 데이터 형태로 들어오는 거라 용지를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만약 서버에 모뎀이 설치되어 FAX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 이를 공유할 수도 있다. 프린터 공유와 방법은 같지만 다른 점이라면 FAX 공유는 윈도우 기준 서버용 운영 체제만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해당 서버가 속해있는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에서도 FAX를 주고 받을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구축된 서버를 'FAX 서버'라고 부른다.
모뎀이 사운드 카드 아키텍처와 유사해 통합되어 나오기도 하였다. 1990년대 초중반 ThinkPad 시리즈에 탑재되었던 mWave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프로세서 파워가 딸려서 심하면 모뎀으로 PC통신을 연결하면 사운드가 안 나온다든가, 둘 다 쓸 수 있어도 사운드가 모노만 나온다거나 하는 문제 때문에 인기가 나빴다. 또 인텔이 AC'97 오디오 규격을 내놨듯이 모뎀을 위한 MC'97이라는 규격을 내놨다. 하지만, 당시 모뎀의 황혼기였기 때문에 인기가 없었고 결국 인텔은 2004년 후속으로 HD 오디오 규격을 내놨으나 모뎀 규격은 내놓지 않았다.
절대 Wi-Fi스틱&공유기가 아니다!
블루투스에는 전화 접속 모뎀과 무선으로 연결하는 DUN 프로파일이 있다. 물론 블루투스가 보급될 쯤엔 다들 ADSL이나 케이블 인터넷 쓰는 상황이라 별 재미는 못 봤다. 아주 극초기 1.0 시절 일본 PC 메이커 정도가 관련 제품을 만들었을 뿐. 피처폰의 블루투스 프로파일 중에는 DUN 프로파일이 있어서 2G/3G 이동통신망에 모뎀처럼 연결하는 게 가능하다. 당연히 전화망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이동통신망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비스가 죽을 리가 없다. 현대의 스마트폰과 일부 피처폰은 테더링에 DUN 대신 PAN 프로파일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화 접속 모뎀용 PPP 클라이언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 흔적으로 노트북 등의 네트워크 어댑터 목록에 블루투스 모듈도 뜨기는 한다. 와이파이 핫스팟을 지원하지 않던 구형 모델에서 핫스팟 대용으로 써먹을 수는 있었다.[3] 요즘도 이렇게 쓰려면 쓸 수는 있지만 속도상 쓸 이유가 사실상 없다.
도스박스는 모뎀을 TCP/IP로 에뮬레이션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전화번호를 아이피 주소로 지정해서 연결하면 연결이 된다! 때문에 도스박스에서 이야기 등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atdt (IP주소 혹은 도메인)
명령어를 입력해 보면 실제 모뎀으로 접속하는 것처럼 해당 텔넷 서비스에 접속된다.[4] 이를 이용해
사설 BBS를 운영하거나, 모뎀을 통한 멀티플레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둠이 나오고 PC 게임에 멀티플레이가 보급될 무렵 당시 주된 통신수단이 모뎀이었기에 멀티플레이는 곧 모뎀으로 전화 연결을 해서 게임한다는 것이었으므로, 한동안 모뎀플레이가 PC 게임 멀티플레이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적도 있었다. 한국인 게이머들은 주로 모플이라고 줄여 불렀다. 그러다가 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모뎀이 저물며 모뎀플레이라는 말이 사라졌다.4. 전화 접속 모뎀 역사
컴퓨터 주변 장치 중에서 대단히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미 1940년대에 텔레타이프 장비 등을 연구하면서 나온 부산물로, 이걸 컴퓨터에 붙여서 전화선을 통한 원거리 통신을 해 보면 어떨까 하는 다소 단순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4.1. 2400bps(2.4kbps) 이전
1964년 제작된 Livermore Data Systems의 "Model A" 모뎀 시연 영상으로, 시연 마지막에 접속한 사이트는 다름 아닌 위키백과다.[5] ISA 슬롯이나 외장 병렬 포트에 연결된 모뎀의 전화선을 그냥 사용하는 것으로는 모뎀을 쓸 수 없다. 사용자가 직접 모뎀에 전화를 건 후 수화기를 리시버에 올려야만 비로소 모뎀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모뎀을 'Acoustic Coupler'라고 부른다.
최초의 모뎀은 1959년 미국의 벨 연구소에서 만들어서 AT&T에서 내놓은 Bell 101 모뎀으로, 군사용으로 쓰였던 SAGE 시스템에 탑재되었다. 접속 속도는 110bps(0.01KB/s)로 ISDN 시대를 넘어 LTE가 도래한 2020년대 기준으로는 환장할 정도로 느렸고 1959년 당시에도 그닥 빠른 속도가 아니었다. 1962년 후속 모델인 Bell 103에서는 접속 속도를 300bps(0.036KB/s)로 개량하여 조금은 쓸만해졌지만 여전히 느렸다. 이후 1980년대 초반 Bell 202와 212A를 내놓으면서 속도가 1200bps(0.15KB/s)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 규격은 ITU-T에 의해 V.22 표준 전송 규약으로 규정된다.
대한민국에서는 1980년대 중반 1200bps 규격의 모뎀부터 들어왔다.
4.2. 2400~4800bps (2.4k~4.8kbps)
1984년 ITU-T에서 V.22bis라는 규격을 내놓으면서 속도가 2400bps(0.3KB/s)로 올라갔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를 전후로 하여 들어왔는데, PC통신이 이때부터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모뎀의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보급했던 하이텔 단말기에 장착되어 있던 모뎀도 이 속도. MS-DOS 시절에 가장 대중적이었다.V.27ter 규격의 4800bps(0.6KB/s) 모뎀도 나왔지만 당시 모뎀 가격이 너무 비싸 대중화되지 않았다.
4.3. 9600bps (9.6kbps)
1988년 ITU-T에서 V.32라는 규격으로, 2400bps, 4800bps 규격과 같이 내놓았다. 변복조 방식을 바꿨기 때문에 좀 더 고속화가 가능했다. 대중화 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대한민국에서는 용팔이들의 사기가 성행했던 모델이기도 하다. 1990년 V.42bis 규격으로 데이터를 압축 전송할 수 있게 됐는데, 이 기술이 탑재된 2400bps 모뎀을 9600bps(1.2KB/s) 속도가 난다고 사기를 친 것. 실제로 압축되지 않은 데이터는 거의 9600bps까지 효과를 볼 수 있었지만, 당시 PC통신에 대부분 자료를 압축해 올렸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다. 2400MNP 모뎀이라고 한다. 다만 문자 스크롤 속도는 확실히 빨랐다. 2400bps 모뎀에선 1초에 4줄씩 나오던 게 거의 한 페이지씩 나올 정도였다. 또한 9600bps 모뎀 자체도 인기가 없었는데, 당시 PC통신의 회선들이 모두 2400bps의 속도만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이걸 사 봤자 느릴 뿐이었다.
4.4. 14400bps (14.4kbps)
1991년 ITU-T에서 V.32bis 규격을 내놓으면서 속도가 개선됐다. 한국에는 1995년경부터 보급이 가속화되었다. 이 보급을 앞당긴 것은 나우콤이다. 1994년 나우콤이 나우누리 PC통신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14400bps(1.75KB/s)의 고속 회선을 많이 확보했고, 이 덕에 PC통신이 빨라지자 고속 모뎀의 수요도 많아졌다. 또한 이때부터 PC통신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던 탓도 크다. 일부 모뎀 업체에서는 규격을 변형해서 19200bps(2.3KB/s)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아래의 33600bps(4.2KB/s)처럼 공식 규격은 아니라서 별로 보급되지는 않았다.4.5. 28800bps (28.8kbps)
1994년 ITU-T에서 내놓은 V.34 규격. 한국에서는 14400bps의 인기에 뒤이어 계속해서 인기를 이어나갔다. 하이텔과 천리안도 고속 모뎀 회선을 계속해서 확보하고, 내친 김에 28800bps(3.5KB/s) 회선도 계속 늘려나간 것이 원인. PC통신 사용자의 수도 계속해서 증가 추세에 있었다.4.6. 33600bps (33.6kbps)
규격은 똑같이 V.34인데, 1996년에 개선된 규격이다. 따라서 28800bps와 기술 내용은 같은데 속도만 33600bps(4.1KB/s)로 올린 기술. 바로 2년 후인 1998년에 ITU-T에서 57600bps(7.0KB/s)의 표준 규격인 V.90을 발표한 데다 28800bps 모뎀과 큰 차이가 없었기에 장점이 별로 없었지만, 발매 당시가 PC통신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때라 시류를 타고 제법 판매된 모델이다.4.7. 57600bps (56kbps)
이 때에 모뎀 역사상 유일한 규격 전쟁이 벌어졌다. 모뎀 칩셋을 제조하던 락웰과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K56Flex라는 규격을 밀었고, 당시 최대의 모뎀 제조업체였던 U.S. 로보틱스는 X2라는 규격을 밀었다. 이 때문에 U.S. 로보틱스의 57600bps 모뎀은 X2 규격으로, 락웰이나 루슨트 칩셋을 사용한 다른 회사의 모델은 K56Flex라고 나오는 일종의 혼란기가 약 1년간 도래했다.그러나 ITU-T는 어디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1998년 제3의 규격인 V.90을 표준으로 채택했다. 때문에 모뎀 제조 회사들은 이미 판매한 57600bps 모뎀을 펌웨어 업데이트 패치를 배포해 V.90 전송 규약을 지원했다.
V.90은 최대 다운로드 57600bps(7.0KB/s)/업로드 33600bps(4.1KB/s) 속도를 지원했다. 다운로드 규격을 디지털화해 빨라졌지만 업로드는 여전히 아날로그 변조로 전송해야 했기 때문. 이후 2000년에 업로드 규격도 디지털화해 업로드 속도를 48000bps(5.9KB/s)로 개선하고 V.44로 압축 효과를 개선하고(최대 6배 효율) 접속 시간을 줄인 V.92까지 나왔지만, 이미 이때는 고속 인터넷의 보급으로 모뎀이 사양길로 접어들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PC통신에서 V.92를 지원한 곳은 없었다. 또한 음성 신호로는 속도의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에 더 이상의 새로운 규격은 나오지 않고 고속 인터넷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전화국 간의 통신에서 음성 통화 1회선의 데이터로 64000bps(7.8KB/s) 또는 57600bps를 이용한다. 당연히 음성 통화를 통한 데이터 통신은 이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없다. ISDN는 다회선을 사용해 더 빠른 속도를 지원하며 ADSL, VDSL 등 고속 통신은 기존 음성 신호 대역이 아닌 곳을 사용한다.
다만 아직 고속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는 소수 사용자가 남아 있다고 한다. 2013년 미국에서 조사한 결과로는 아직 인터넷 사용자의 3%가 전화 접속 모뎀을 이용한다고. # 간단하게 정보를 검색하거나, 이메일을 확인하는 정도라면 사람에 따라 모뎀으로도 충분하게 써먹을 수는 있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이나 미디어 스트리밍 쪽으로 가면 헬게이트가 열리며, 56kbps로는 저음질의 음성 스트리밍도 벅찼지만 Opus 같은 손실 압축 코덱의 등장으로 음질 문제는 많이 개선되었다. 고속 인터넷 설치 가능 여부를 떠나서 카드 결제 단말기 등 일부 장치에서 전화 접속 모뎀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건당 39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편의점과 같이 수시로 결제하는 곳에서는 이미 대부분 퇴출되고 고속 인터넷으로 대체되었으나 결제 빈도가 낮은 일부 업종에선 인터넷 정액 요금보다 저렴해 한동안 이용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퇴출되고 긴급 기능으로나 들어있는(가끔 인터넷선이 나간다든지 해서 접속이 안될때 쓰는 용도로) 편이다.
2000년대 말까지만 해도 노트북에라도 달려 나왔으나 지금은 그마저 사라졌다. 그 이유는 팩시밀리 송신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인터넷 FAX 업체를 이용하지 않고 가정에서 직접 FAX를 보내려면 모뎀을 연결하는 방법이 가장 낫다.
굉장히 드물긴 하지만 1970~1990년대 지어진 옛날 아파트들의 경우에는 집 구조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전화 접속 모뎀이나 케이블 인터넷만 써야하는 곳도 존재한다고 한다.[6]
4.8. 소프트웨어 모뎀
1990년대 말부터 보급이 시작된 모뎀. 소프트모뎀 또는 윈모뎀이라고도 한다.모뎀은 전화선에서 음성 신호로 통신할 때 신호 처리가 필요한데 이를 담당하는 DSP가 있다. 소프트웨어 모뎀은 DSP 대신 CPU가 처리하도록 하고, 디지털 신호를 전화 신호로 송수신하기 위해 변환하는 ADC/DAC와 신호를 변복조하는 모듈레이터/디모듈레이터만 있다.
이는 CPU 성능을 잡아먹는다는 단점이 있으나, 저것이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의 CPU 성능으로는 차고 넘치는 수준이라 큰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값도 비교적 저렴했기 때문에 기존 방식보다 소프트웨어 모뎀이 더 많이 팔렸다. 다만 신호 처리를 DSP가 아닌 모뎀 드라이버 소프트웨어가 CPU를 통해 처리하기 때문에, 드라이버 소프트웨어가 구리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현재 PCI와 USB로 출시된 모뎀의 절대 다수는 소프트웨어 모뎀이다. 하드웨어 모뎀을 생산 및 판매하는 회사는 U.S. 로보틱스 정도만 남아 있다.
5. 동축 케이블 모뎀
케이블TV망으로 통신하는 모뎀이다. KT를 제외하고 모든 인터넷 업체들이 이 방식을 쓴다.[7] KT 또한 2021년에 KT스카이라이프가 HCN을 인수해서 자회사에서는 동축케이블모뎀을 볼 수 있지만, 그마저도 KT 인터넷의 재판매로 대체되고 있다.6. 광 모뎀
광케이블은 OSI 7계층의 제일 아래인 물리 계층일 뿐이고 그 위에 흐르는 데이터는 이더넷, PON, 심지어는 오디오 신호인 S/PDIF가 올 수도 있다. 같은 종류의 계층을 사용한다면 별개의 모뎀 없이 광케이블만 이어 주면 되지만 계층 종류가 다르다면 중간에 변환시켜 주는 장치가 들어가야 한다.FTTH 방식일 경우이거나, 기가 인터넷이 지원되지 않는 UTP가 들어오는 경우에 사용한다. KT의 UTP, GiGA fiber, FTTH-ALL 모뎀 또한 이 방식이며, SK broadband, LG U+, LG헬로비전이 이 방식을 사용한다.
7. 여담
통신사에서 임대하는 모뎀은 예전의 전화모뎀과 달리 태블릿, 스마트폰, IPTV, 사물인터넷[8]의 보급으로 24시간 내내 가동해서 노후화가 빨라졌는데도 내구연한이 없어 10년 이상을 교체 없이 그대로 쓰기도 한다. 모뎀의 노후화로 성능이 떨어져 인터넷이 끊기거나 느려지기도 하며 에너지 효율이 떨어져 온실가스와 전기요금은 두 말할 것도 없다.보통 24시간 틀어두기 때문에 구형 모뎀은 과열돼서 성능이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 모뎀 수명을 늘릴 방법이 몇 가지 있다.
- 받침대를 설치해서 모뎀 밑에 열기가 빠져나갈 공간을 확보하자. 페트병의 뚜껑 따위가 좋다.
- 써멀 테이프, 방열판을 장착한다.
- 하단에 쿨링팬을 배치한다. 스마트폰 충전기에 연결할 수 있고, 공유기 중에 NAS 연결을 위해 USB 단자가 달린 제품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 USB 전원 공급이 되는 것이 좋고, 과열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꺼두기 위해 온오프 스위치가 존재하는 것이 좋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스위치가 달린 USB 연장선을 1800원에 판매한다. 소음이 걱정된다면 크기가 크고 RPM이 낮은 것을 사자.
- 혹은 최소 10분 정도는 잠시 전원을 꺼뒀다 다시 켜둔다(...).
모뎀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소리가 컴퓨터를 나타내는 효과음으로 자주 쓰인다.
[1]
참고로 노트북 등에 모바일 통신 관련 모듈을 달면 모뎀으로 인식을 한다.
[2]
커플러coupler라는 게 바로 이 뜻이다. 전기신호를 음성신호로 변조해서 내보낸다는 뜻이다.
[3]
그나마 최근의 예시가 iOS 4로 업데이트한 아이폰 3GS. OS 업데이트로 핫스팟이 추가가 되기는 했는데 유선 핫스팟과 블루투스 핫스팟만 지원했었다.
[4]
이야기에서는 메뉴의 특수기능 - 전화 걸기 기능을 이용하면 되지만 길이 제한 때문에 이 방법을 쓰기 어렵다. 혼잣말 기능을 적극 활용하자.
[5]
극 초창기의 모뎀인 데다가 접속 속도가 고작 300bps로 1~2초에 고작 한 줄씩 정보가 내려올 정도로 매우 느렸고 1960년대 당시의 상당히 낮은 컴퓨터 성능과 용량을 생각하면 차라리
전보와
팩스를 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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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화선을 공유하는 DSL류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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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의 공기업 시절 자회사 형태로 운영되던 한통케이블TV가 있었는데 민영화 정책에 따라 39쇼핑(현
CJ ENM 커머스 부문)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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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컴퓨터만 있었을 때는 꺼 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