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2 19:10:24

적도 기니 민주당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45deg, #0073ce 11%, transparent 11%), linear-gradient(to bottom, #3e9a00 10%, #fff 10%, #fff 90%, #e32118 90%)""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color=#fff><colbgcolor=#0073ce> 상징 국가
역사 역사 전반 · 스페인령 기니
정치·사법·치안 정치 전반 · 적도 기니 민주당 · 적도 기니 대통령
외교 외교 전반 · 아프리카 연합 ·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 프랑코포니 ·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
경제 경제 전반 · CFA 프랑/중앙아프리카 · 적도 기니 에크웰(폐지)
국방 적도 기니군
문화 요리 · 적도 기니 축구 국가대표팀 · 스페인어 · 팡어
인물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지리 비오코 섬( 말라보) · 바타(적도 기니) · 시우다드데라파스 · 안노본 섬 · 코리스코 섬
민족 · 부비족 · 이그보족
}}}}}}}}} ||
파일:적도기니 민주당 로고.png
<colbgcolor=#0000AA><colcolor=#fff> Partido Democrático de Guinea Ecuatorial
한글명칭 PDGE
한글명칭 적도 기니 민주당
상징색
파란색
창당일 1987년 10월 11일
이념 권위주의
내셔널리즘
군국주의
정치적 스펙트럼 극우
대통령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사무총장[1] 제로니모 오사 오사 에코로
당사 말라보
상원 의석 수
70석 / 70석
하원 의석 수
100석 / 100석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기타

[Clearfix]

1. 개요

적도 기니의 정당이자 집권여당이다.

2. 역사

1987년 10월 11일에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대통령에 의해 창당되었다. 1991년까지는 민주당만이 적도 기니의 유일한 합법 정당이었다. 1991년부터 다당제가 허용되었으나 여전히 민주당이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다.[2]

극우로 구분되고 있으나, 실질적인 정치적 지향점이 있기 보다는 응게마 정권을 지지하는 집단이란 평가다. 아프리카 민족주의, 권위주의, 군사주의 성향으로 분류되고 있다.

2022년 11월 20일에 열린 총선에서 하원 100석 중 100석, 상원 70석 중 70석[3]을 얻으면서 적도 기니의 의석 170석 전체를 독점하게 되었다.

3. 기타

  • 적도 기니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재자였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4]의 아들인 필리베르토 은투투무 응게마(Filiberto Ntutumu Nguema Nchama, 1951~)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이 당의 사무총장을 역임했다.[5]

[1] 참고로 PDGE에는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없다. [2] 2023년 현재 적도 기니에서 허용되는 야당은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수렴(CPDS) 1개밖에 없다. [3] 정확히는 선거에서는 55석을 얻었고, 나머지 15석은 대통령이 임명했다. 물론 그 15명도 모두 PDGE 소속이다. [4] 성만 봐도 알 수 있듯 현직 대통령 테오도로 오비앙의 삼촌이었는데, 테오도로 오비앙은 마시아스 응게마의 최측근으로서 삼촌의 독재에 협조했지만 삼촌의 학정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결국 삼촌을 배반하고 1979년 쿠데타를 일으켜 삼촌을 쫓아내고는 삼촌을 처형하며 집권했다. [5] 참고로 은투투무 응게마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교육과학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2015년부터는 적도기니 국립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있다. 아버지가 민주 캄푸치아와 유사한 반지성주의 정책을 펼쳤던 것과는 정반대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