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 2세 드 툴롱옹 Jean II de Toulong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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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1381년경 ~ 1427년 7월 10일 | |
출생지 | 부르고뉴 공국 | |
사망지 | 부르고뉴 공국 게르메냐트 | |
아버지 | 트리스탄 드 툴롱옹 | |
어머니 | 코트브룬의 잔 | |
형제 | 앙투안, 앙드레, 잔 | |
아내 | 카트린 드 로시용 | |
자녀 | 장 3세, 클로딘 | |
직위 | 세네시 남작, 툴롱옹, 라 빌뇌브 영주, 트루아 총독, 부르고뉴 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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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르고뉴 공국의 원수. 백년전쟁 시기에 부르고뉴 공국의 편에 서서 군대를 이끌었다.2. 생애
1381년경 세네시 남작이자 삼부회 고문을 맡았던 트리스탄 드 툴롱옹과 코트브룬의 잔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앙투안, 앙드레[1], 잔[2]이 있었다.1415년 1월, 부르고뉴 공작 용맹공 장에 의해 아르마냑파가 장악한 파리에 사절로 바견되었다가 투옥되었으나 곧 풀려났고, 1417~1418년 트루아 총독을 역임했다. 1422년 부르고뉴 원수로 선임되었으며, 부르고뉴 공국의 총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1423년 7월 31일 크라방 전투에서 부르고뉴군을 지휘해 잉글랜드 장성 토머스 몬타구가 프랑스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샤토 드 라 뷔시에르를 포위하고 있다가 프랑스 용병 움베르 드 그로슬리의 급습을 받고 생포되었다.
일부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크라방 전투에서 생포되었던 뷰컨 백작 존 스튜어트와 교환되었다고 한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그는 서퍽 백작 윌리엄 드 라 폴의 프랑스 포로가 된 형제 중 한 명과 교환되었다고 한다. 그 후 1427년 7월 10일에 게르메냐트에서 사망했고, 사후 게르메냐크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뒤이어 형제 앙투안 드 툴롱옹이 부르고뉴 원수로 선임되었다.
3. 가족
- 카트린 드 로시용: 도피네 원수 기욤 드 로시용의 딸.
- 장 3세 드 툴롱옹(1416 ~ 1462): 세네시 남작, 툴롱옹 영주.
- 클로딘 드 툴롱옹(1418 ~ 1477): 부르고뉴 공작의 시종이자 프랑스 국왕 루이 11세의 시종을 맡은 장 드 보프레몽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