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FFFF><colcolor=#000000> 부르봉 공작 장 1세 드 부르봉 Jean Ier de Bourbon, Duc de Bourb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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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장 1세 드 부르봉 Jean Ier de Bourbon |
출생 | 1381년 3월 |
프랑스 왕국 부르봉 | |
사망 | 1434년 2월 5일 (향년 52세) |
잉글랜드 왕국 런던 | |
아내 | 마리 드 베리 (1401년 결혼) |
자녀 | 샤를 1세, 루이, 루이 1세 드 부르봉몽팡시에, 장( 사생아), 알렉상드르(사생아), 기(사생아), 마르그리트(사생아) |
아버지 | 루이 2세 드 부르봉 |
어머니 | 오베르뉴의 안 |
형제 | 이자벨, 루이 |
직위 | 부르봉 공작, 랑그독과 기옌의 총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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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 시기에 잉글랜드군에 맞섰지만 아쟁쿠르 전투에서 사로잡힌 뒤 잉글랜드에 끌려간 후 런던에서 옥사했다.2. 생애
1381년 3월 프랑스 왕국 부르봉 공국에서 제3대 부르봉 공작 루이 2세 드 부르봉과 오베르뉴 8대 도팽 베르트랑 2세 드 클레르몽의 딸인 오베르뉴의 안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이자벨[1], 루이[2]가 있었다. 1404년 랑그독과 기옌의 총독으로 임명되었고, 리무쟁에서 잉글랜드군을 공격해 생피에르와 생마리 요새를 점령했다.아르마냑파와 부르고뉴파 사이의 내전이 벌어졌을 때, 장 1세는 처음에는 부르고뉴 공작 용맹공 장을 지지했지만, 오를레앙 공작 루이 1세가 부르고뉴파의 선동을 받은 폭도에게 피살당하자 아르마냑파와 가까워졌다. 1411년 클레르몽앙보베시를 부르고뉴 파에게 빼앗겼다. 1412년 오세르에서 아르마냑파와 부르고뉴파와의 평화 협약이 체결된 후, 그는 일드프랑스의 용병 도적단을 물리치고 잉글랜드군으로부터 수비즈 시를 공략했다.
1414년 아르마냑파와 부르고뉴파간의 내전이 재개된 후, 그는 콩피에뉴와 누아용을 점령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수아송을 공략할 때 다리에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었고, 나중에 수아송을 공략한후 도시 수비대를 학살하고 수아송 수비대장을 교수형에 처했다. 뒤이어 아르투아까지 용맹공 장 1세를 추격해 바푸메를 공략하고 아라스를 뒤이어 공략했다.
1415년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가 쳐들어오자 내전을 중단하고 프랑스 무관장 샤를 1세 달브레의 소집령에 응했다. 1415년 10월 25일 아쟁쿠르 전투에 참여했으나 패배를 면치 못하고 잉글랜드군에 사로잡혔다. 이후 런던으로 끌려가서 멜버른 성에 갇혔고, 몸값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한 채 억류되었다가 1434년 2월 5일에 그곳에서 옥사했다.
3. 가족
- 마리 드 베리(1367 ~ 1434): 프랑스 국왕 장 2세의 아들이자 베리 공작인 장 드 베리의 딸. 1386년에 뒤누아 백작 루이 3세 샤티옹(1375 ~ 1391)과 처음 결혼했고, 필리프 다르투아가 사망한 후 외 백작 필리프 다르투아와 두번째로 결혼했다가, 1397년 필리프 다르투아가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사로잡힌 후 포로 생활을 하다가 병사한 뒤 1400년에 장 1세 드 부르봉과 세번째로 결혼했다.
- 샤를 1세 드 부르봉(1401 ~ 1456): 제5대 부르봉 공작.
- 루이 드 부르봉(1403 ~ 1412): 포레 백작
- 루이 1세 드 부르봉몽팡시에(1406 ~ 1486): 몽팡시에 백작.
- 사생아
- 장(? ~ 1485): 퓌의 주교, 클뤼니 수도원장, 생앙드레 수도원장, 부르봉 중장.
- 알렉상드르(? ~ 1440): 노트르담 드 보쥬 대성당의 주교.
- 기(? ~ 1442): 로안 남작의 시종.
- 마르그리트(? ~ ?): 리바데오 백작 로드리고 데 빌란드란도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