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으스타슈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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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와 창녀 촬영 당시. | |
출생 | 1938년 11월 30일 |
프랑스 지롱드 | |
사망 | 1981년 11월 5일 (향년 42세) |
프랑스 파리 |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감독, 각본가, 배우 |
활동 | 1961년 - 1980년 |
가족 |
아내[3] 아들(1960년생)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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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노동자 출신 영화감독.포스트 누벨바그라 불리며 고다르의 후계자로 각광받던 감독이었으나 극단적 선택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때문에 장편은 딱 두 편만 남긴 과작 감독으로 꼽힌다.
미성숙한 남성의 심리, 주변 여성 간의 비틀린 관계, 많은 대사량과 박식함, 68 혁명 이후 정치적 좌절감, 소통 없는 공허한 대화, 소외와 단절이 트레이드마크로 꼽힌다.
2. 생애
아버지가 공산주의자 석공인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카예 뒤 시네마 멤버가 되기 전까지는 파리로 상경해 철도업에 종사했다. 아카데미 체계랑 관련없이 시네마테크 등지에서 독학해서 영화를 배운 케이스. 유년 시절이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인데, 부모님이 이혼하고 한때 할머니 밑에서 자라는 등 불행한 유년기를 보내 본인이 밝히길 꺼렸다고 한다. 알제리 전쟁 당시 징집을 피하기 위해 자살 시도해 1년간 정신병원에서 지냈다.장뤽 고다르의 주말에 출연하고, 뤽 물레의 빌리 더 키드의 모험를 편집하면서 영화계에 들어섰다.
데뷔작 엄마와 창녀로 칸 그랑프리를 수상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2.1. 죽음
1981년 파리에 소재한 자신의 아파트에서 생일을 몇 주 앞두고 권총으로 자살하였다.자살 원인에 대해 여러 추측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설은 두 가지로 오랜 생활고에 시달린 것이 이유라는 것과 몇 년 전 아내의 자살로 인한 우울증이 심화되어 자살했다는 것이다. 또 으스타슈는 사망한 해 추락 사고를 당해 거동이 불편해진 것도 있었다.
생활고 문제는 어느정도 사실이었는지, 사후 영화 판권을 가지고 있던 아들 보리스가 MK2 등 기존 계약을 파기하고 저작권료 50%을 주장하며 비싸게 불렀다는 얘기가 있다. 때문에 2023년 이전까지 으스타슈 영화는 사실상 유실 영화로 꼽히곤 했다. 엄마와 창녀도 주연 배우 사망 당시 추모로 TV에서 틀어준 것 빼고는 프랑스에서조차 시네마테크 상영 이외에는 볼 수 없었던 영화였다. 그러다가 2023년 제작사였던 필름 뒤 로장주에서 판권을 획득해 전편 복원를 완료했다.
짐 자머시의 브로큰 플라워는 으스타슈에게 바쳐졌다.
고향 페삭에 헌정 영화관이 있다.
3. 필모그래피
이외 TV 영화 다수.
[1]
해당 상은 1967년부터 1988년까지 심사위원특별그랑프리 (Grand Prix Spécial du Jury)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현재의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
[2]
정확한 발음은 외스타슈다. [øs.taʃ
[3]
남편처럼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