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333333,#191919><colcolor=#ffffff>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é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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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일 | 1951년 4월 ([age(1951-04-01)]주년) |
유형 | 영화 잡지 |
설립자 |
앙드레 바쟁 쟈크 도니올 발크로제 조셉 마리 로 두카 |
본사 | 프랑스 파리 |
언어 | 프랑스어 |
링크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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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 잡지. 1951년 4월, 앙드레 바쟁을 위시한 영화 평론가들이 창간했다. 제호인 Cahiers du Cinéma는 영화 저널(Journal of Cinema)을 의미한다.2. 특징
이른바 누벨바그라는 영화사의 거대한 흐름을 이야기 할때 빼놓을 수 없는 잡지. 영화를 본격적인 예술로 대접받게 만들었다. 영화 감독인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클로드 샤브롤, 장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등이 여기 평론가 출신. 어린 시절 레오스 카락스 또한 여기에 평론을 기고하기도 했다. 영화 감독의 작가주의라는 개념도 여기서 탄생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 다섯 사람이 주창한 것. 누벨바그도 다섯 명이 이끌었다.프랑스 잡지 아니랄까봐, 영화 예술과 미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지금은 많이 대중화 된 편. 최근엔 영어판도 나오기 시작했다.
매년 그해 프랑스에서 상영된 10대 영화[1]를 선정하여 순위까지 공개하는데, 누벨바그의 후예라서 그런 지 누벨바그 멤버들이 비평에서 손을 뗀 이후에도 계속 누벨바그 영화들이 10대 영화에 오른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장뤽 고다르의 영화들로, 50회도 안 되는 선정횟수 동안[2] 무려 24개의 영화가 선정되었다. 이는 그동안 선정된 영화의 4%가 넘는 수치로, 자기 영화가 20개 이상 선정된 영화 감독은 이 10대 영화 선정 역사를 통틀어 고다르가 유일하다. 10편 이상이 선정된 감독을 찾아봐도 역시 누벨바그 거장인 에릭 로메르(11개)가 있고, 누벨바그를 제외한 감독으로 보면 잉마르 베리만(14개), 클린트 이스트우드(10개),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10개), 필립 가렐(10개)이 있다.
박찬욱의 《 올드보이》를 열심히 까기도 했다. 하지만 봉준호와 홍상수는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
봉준호와 홍상수는 여러차례 10대 영화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굉장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봉준호의 괴물은 2006년 10대 영화에 이어, 2000년대(2000~2009) 전체 10대 영화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프랑스어가 되고 영화를 좋아한다면 읽어볼 만하다. 다만 오락적인 요소 보다 비평적인 요소가 강하고 프랑스인 특유의 장광설이 있다는 점은 유념해둘 것.
1988년 르몽드에 인수된 적이 있는데... 정작 현재 카예 뒤 시네마 필진들은 흑역사로 여긴다. 잡지의 자율성을 잃어버렸다는게 큰 이유다. 2009년 르몽드를 떠나 영국계 잡지에 인수된 이후로는 그나마 좀 나아졌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도 평론으로 밥 먹기 힘든지 의외로 월급 체계가 아닌 평론지에서는 흔한 원고료 체계라 한다. 참조.
이스라엘의 애니메이션 《 바시르와 왈츠를》가 표지를 장식해 영화팬들 사이에서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이 표지를 장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물론 자국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대하다. 《 페르세폴리스》가 예.)
1년의 차이를 두고 발간한 영화 잡지로 《포지티프》 지가 있는데 사이가 정말로 좋지 않다.[3] 양측에서 동시에 지지받는 영화가 드물어서 한쪽에서 열렬히 좋아하면 한쪽에서는 거의 악을 쓰고 까는 경우가 많다. 카예 뒤 시네마가 극렬히 싫어하지만 포지티브가 호평하는 프랑수아 오종 영화나 반대로 카예 뒤 시네마가 극찬했지만 포지티프가 2점을 투하한 알베르 세라의 퍼시픽션이 대표적이다. 워낙 유명한 앙숙이라 카예 뒤 시네마의 필진이었던 뤽 물레 감독 영화 알카사르 대작전에서도 풍자될 정도다.
2020년, 최근의 지속적 재정난의 결과로 카이에는 프랑스계 업체에 인수되게 되었는데, 잡지를 인수한 새로운 이사진과 편집부 간의 의견 충돌로 편집장 스테판 들로르메를 포함한 편집부가 총사퇴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새로운 이사진은 보다 주류에 친화적이고 상업적인 편집 방향을 주문했는데, 이것이 갈등의 불씨가 되어 총사퇴에 이르게 되었다고. 이 사건에 관해 리처드 브로디가 뉴요커 지에 쓴 칼럼 4월호를 마지막으로 기존 편집진은 카이에 뒤 시네마를 떠난다고 한다.
3. 연도별 베스트
자세한 내용은 카이에 뒤 시네마/연도별 베스트 문서 참고하십시오.4. 기타
5. 외부 링크
[1]
원래 초기 누벨바그 멤버가 비평가이던 시절에는 10개의 원칙을 철저히 지켰으나, 그들이 관여하지 않게 된 뒤로는 기준이 철저히 지켜지지는 않고 있어, 공동 10위 처럼 공동순위를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11개~14개가 선정되기도 한다. 공동 10위가 5개인 적도 있고, 공동 8위가 4개인 적도 있고, 단독 11위가 있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15개가 선정된 적은 없다.
[2]
잡지가 발간 된건 60여년 전이지만 10대 영화를 선정하지 않은 게 16회나 된다.
[3]
포지티프 첫 발간이 1년 뒤(1952년)인데도 별명이
프랑스의 문화 유산이다. 화가 안 날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