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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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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0B1727><colcolor=#000000,#ffffff> 이호석
李昊錫 | Lee Hosu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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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6년 6월 25일 ([age(1986-06-25)]세) |
서울특별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초등학교 (졸업) 신목중학교 (졸업) 신목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스포츠지도학 / 학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 |
종목 |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주종목: 1000m, 1500m[1] |
신체 | 168cm, 62kg[2] |
국가대표 | 2005-06[3]~2011-12, 2013-14(총 8시즌) |
가족 | 부모님, 배우자, 남동생, 여동생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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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2009, 2010 세계선수권 2연패[4] 2007-08 시즌 월드컵 종합우승자 동계올림픽에 가장 많이 출전한 대한민국 쇼트트랙 선수[5] |
2. 선수 경력
자세한 내용은 이호석/선수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 평가
'다이나믹한 아웃사이드 패스'로 잘 알려진 스케이터로, 역동적인 움직임과 순발력으로 시원하게 트랙을 아주 크게 타는 게 특징이다. 아무래도 체구가 작고 가벼운 편이다 보니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택한 방법이 트랙을 아웃코스로 넓게 타며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인데, 이건 순식간에 굉장히 빠른속도로 피치를 올릴 수 있는 이호석의 엄청난 순발력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캐나다 단거리 스페셜리스트도 1:1로 붙으면 이호석에게 그냥 추월당하니 이호석의 스피드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스케이팅 기술이 굉장히 좋아서 아웃코스와 인코스 추월에 모두 능하며 안현수와 함께 역대 쇼트트랙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다.[7] 잘 알려진 아웃사이드 패스 못지 않게 인코스 패스마저 다이나믹한 장면을 많이 보여주는데 그 예시가 이호석의 트레이드 마크인 칼치기다. 칼치기는 팬들이 그의 크로스 기술[8]에 붙혀준 이름이다. 안현수의 크로스기술이 굉장히 안정감있고 정석적인 느낌이라면, 이호석의 크로스기술은 과감하고 거칠면서도 급격한 움직임이 특징이라 '칼치기'란 명칭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 거기다가 이런 움직임을 심지어 최대속도로 달리고 있는 상황 중에 '점프'까지 하면서 성공시키며[9], 웬만한 선수들은 시도도 못할 움직임을 자주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과감함은 이런 움직임을 가능케 해주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특유의 불안정성을 유발하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다. 쇼트트랙 역사를 통틀어서도 상당히 공격적인 성향의 스케이터인지라 안정성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으며, 안현수와의 비교에서 이호석이 가장 처지는 부분이 바로 이 스케이팅 안정성이다.[10] 이는 주종목이 아닌 500m에서 더욱 부각되는데, 준수한 단거리 실력을 가졌고 성적도 나쁘진 않은 편이나, 1500m나 1000m에 비해 넘어지는 장면을 확실히 자주 연출했다. 500m의 종목 특성상 중장거리 종목보다 힘을 더욱 싣어 전력 질주를 해야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11] 또 다른 단점이라면 역시 작은 체구 때문에 170cm를 조금 넘는 선수들한테도 몸싸움에서 밀린다는 것과[12] 작은 키 때문에 다리가 짧아 몸은 코너를 먼저 돌고도 골라인 날내밀기 경합에서 패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13]
올림픽에서 유독 임팩트 있는 사건(밴쿠버 1500m, 소치 5000m 계주)에 시달렸고 올림픽 개인전에선 은메달만 3개 땄다는 점, 그리고 국내에서 이런저런 근거없는 루머에 희생되어 실력에 비해 상당한 평가절하를 당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한 적이 있다: "댓글만 보면 저도 저를 욕하겠던데요?" 심지어 이 문서가 개설된지 얼마 안되었을 때는 이호석을 소개하려고 만들어진게 아니라 오로지 이호석을 까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파벌의 중심', '콩', '2인자' 드립이 상당히 심했다. 그럼에도 본인을 향한 악의적인 비방과 허위사실 유포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묵묵히 선수 생활을 이어간데다[14] 대표팀 최다 출전 기록을 경신하고 명예롭게 퇴장함으로써 진정한 대인배이자 레전드임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캐나다, 미국, 유럽 등 외국에선 예전부터 그의 업적을 높히 쳐주었다. 그나마 그의 은퇴 이후 수많은 악성 루머에 대한 진실이 어느정도 밝혀지고 2010년대 중반 남자 대표팀이 수년간 암흑기를 겪으면서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재평가와 인정을 받았다.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2인자들이 그렇듯 동시대의 안현수에게 가려져 과소평가 받는 비운의 선수였다. 반대로 그 안현수를 상대로 맞대결을 펼칠 수 있던 혹은 도전장을 내밀 수 있던 유일한 선수 또한 이호석이었다. 확실한 건 안현수가 2008년 부상으로 인해 이탈한 동안 세계 최고의 스케이터는 누가 뭐라 해도 성시백이나 곽윤기, 이정수도 아닌 단연 이호석이었다.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나 역대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 국적으로 가장 많은 메달을 받은 쇼트트랙 선수 중 한 명이다. 전이경, 박승희, 최민정과 함께 5개의 메달을 땄으며, 남자선수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승훈에 이은 역대 2위다. 안현수는 한국 국적으로 딴 메달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딴 4개로, 이호석보다 하나가 적다.
4. 논란
예전에 자신의 미니홈피에서 안현수 선수를 비방했다고 루머가 돌아서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 문제의 루머는 이호석이 안현수를 송재근 코치와 함께 '성찬'이라고 부르면서 합성사진을 올려서 외모에 대해서 비방했었다는 건데 사실은 합성사진의 주인공은 안현수가 아니라 '김성찬'이라는 쇼트트랙 선수였다. 김성찬과 이호석은 친한 친구 사이로, 장난을 친 것이였다.[15] 이 때 어째서인지 안현수도, 이호석도 제대로 해명하지 않아 사건이 더 커졌다.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1500m 팀킬 사건 직후 쇼트트랙 파벌 논란도 일어났다. 거기다 함께 넘어진 성시백은 2006년 국가대표 탈락으로 메달도 없어서 군대 문제가 있는 상황이었다.[16] 다른 종목에서 메달을 못 따면 메달 딴 이호석과는 달리 군대에 끌려갈 지도 모르는 실정. 게다가 국군체육부대는 동계 종목에 대해선 취급 안 한다. 이 당시 계주, 성시백의 주력종목인 500m도 남아 있었지만 상황만 놓고 보자면 성시백이 락커룸에서 이호석 멱살잡고 싸움 걸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 때 팀킬 장면이 연출되자 벤쿠버 외국 중계진이 "oh my god!!!"을 외치면서 난리 법석을 떨었다. 같은 나라 선수들끼리 팀킬하다가 메달이 두개나 날아간 상황이 지나치게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 개인주의가 강한 북미나 유럽선수들 조차도 같은 국적의 선수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때는 오히려 다른나라 선수와의 몸싸움을 차단하면서 도와주지, 굳이 무리해서 추월하려고 들지 않는다.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팀킬에 대한 의견 정리
- 비난 의견
어차피 메달권 안인데 뭐가 그리 급했나. 금은동이 확정이었는데 굳이 실격처리를 당할 정도의 반칙성 플레이를 할 이유가 없었다. 너무 욕심이 많았다.
어차피 메달권 안인데 뭐가 그리 급했나. 금은동이 확정이었는데 굳이 실격처리를 당할 정도의 반칙성 플레이를 할 이유가 없었다. 너무 욕심이 많았다.
- 옹호 의견
대한민국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왔지만, 엄연히 선수 대 선수로서 싸우는 것이다. 선수로써 이왕이면 동메달보다는 은, 더 잘해서 금. 이런 식으로 욕심이 나는 것이었다. 물론 대한민국 메달을 두 개나 날린 점은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다.
대한민국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왔지만, 엄연히 선수 대 선수로서 싸우는 것이다. 선수로써 이왕이면 동메달보다는 은, 더 잘해서 금. 이런 식으로 욕심이 나는 것이었다. 물론 대한민국 메달을 두 개나 날린 점은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애초에 같은 나라 선수끼리도 팀전이 아니라 개인전이고 자국 선수들의 충돌이나 넘어지는 건 종종 있는 일이라 비난하는 건 억지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 오히려 서로 짬짜미를 하면, 당연히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동이 된다. 나중에 본인의 말로는 첫 번째 바퀴 도는 중 다른 선수와 충돌한 탓에 왼쪽 스케이트 앞날이 망가졌고 성시백과 경합할 때 이 망가진 왼쪽 날이 말을 듣지 않아 충돌하게 된 것으로, 자기 잘못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멘트가 실렸다.
"쇼트트랙에선 팀플레이가 없을 수가 없어요. 같이 올라가면 서로 도와주면서 할 수 있으니까요. 호석이는 이미 점수를 따놔서 다른 선수 좀 막아주고 도와준 적이 있는데 누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거예요. 동료를 위해 희생한 건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세상에 이렇게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중에 이호석은
성시백과 그의 어머니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으며,
성시백은 다음에 금메달을 받으면 된다고 하고 있고 그 어머니는 이호석 역시 편히 못 잤을 거라며 일단 지나간 건 잊고 다음에 대비하자는 분위기로 흘렀다. 다행히 이후 올림픽 경기 진행 중 두 선수가 다시 충돌하는 일은 없었다.참고로 2007년 국가대표 선발전 당시 이호석에게 막힌 '다른 선수'는 다름아닌 이승훈과 성시백이었다. 한 쪽은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가 다시 쇼트트랙으로 돌아왔고, 한 쪽은 이 사건 때문만은 아니지만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또한, 2006년 세계선수권 당시 이호석이 안현수에게 밀려 넘어지자 이호석의 어머니가 "실력 좋은 놈(안현수)이 아웃 쪽으로 추월했어야지, 안현수는 추월 욕심에 미친 놈이다."라고 언론에다 경솔한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더더욱 이호석의 안티를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흔히 이호석을 깔 때 주로 사용하는 것이 이 양보 드립인데,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당시 안현수보다 낮은 성적으로 은메달을 차지한 이호석이 '자기는 양보를 했는데 안현수는 양보를 안하는가'라고 했다는 것이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당시 이호석은 은메달 2개를 차지했고, 이런 그에게 언론에서는 혹시 양보한 거 아니냐고 물어본다. 올림픽 이후 거의 모든 이호석 인터뷰에는 이 내용이 들어간다. 사실 이준호가 KBS 쇼트트랙 해설위원을 맡았을 당시 1500m 결승 해설에서 이호석이 안현수에게 양보했다고 경솔하게 발언한게 문제였지만 그의 해설은 묻히고 양보 드립이 언급되는 기사가 양산되어 버리면서 마치 이호석 본인이 이런 발언을 한 것으로 굳어버렸다.
2006년 2월 13일 연합뉴스 기사에 의하면 이호석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고 했고 자신의 실력대로 탔다고 했다. 이 기사 외에도 수많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양보한 적이 없다고 부정한다.
양보 드립의 근원지는 2006년 3월 24일 서울신문 기사에서 '양보한 측면이 있긴 하다'라는 내용. 그런데 그 전까지 온갖 기자들의 인터뷰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고 꿋꿋히 주장하던 선수가 유독 한 기자에게만 갑자기 양보한 것을 수긍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나마도 이 기사에서조차 안현수가 들어오는데 충돌이 우려되어 적극적으로 막으려 않았다는 식의 이야기지, "예따, 현수 형 이거나 먹어." 라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기자가 어떤 식으로 선수의 발언을 해석해버렸을지 모르는 부분. 이 하나의 인터뷰를 제외하곤 2010년에도 이호석은 양보 같은건 한 적 없다고 꾸준히 주장했다.
이 인터뷰를 본 안현수는 이호석에게 실망을 하고, 힘들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이후 2010년 당시 인터뷰 다 짜르고 현수형이 양보 안했다라는 식의 짤방이 나돌면서 양보드립이 전면에 퍼지게 되었으며, 이는 2014년 현재까지도 그의 주 까임 소재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이호석은 2006년이고 2010년이고 자기는 양보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4.1. 파벌
파벌은 1990년대 이준호와 김기훈, 1세대 지도자인 전명규와 유태욱의 갈등부터 있었고, #1 #2 한체대 vs 비한체대 파벌의 분리는 2001년 경희인 출신[17] 이영하 교수의 1억 2천 500만원 촌지사건으로 시작된다. 이영하 교수는 한체대 교수 부임 시절 체대 입학과 관련하여 학부모들에게 금품을 받은것으로 수사를 받았고, 3년 징역이 선고되었는데, 이 사실을 고발한 사람이 이후 한체대 교수로 부임하는 전명규 교수라는 것이다. #1 #2 이영하 교수는 경희인이었고, 단국대 제갈성렬과 고려대 이규혁의 스승이기도 해서 #, 2002년 이후 부임하는 전명규 교수의 한체대와 경희-단국대를 시작으로 한 파벌갈등이 시작되게 된것이다.[18]2002년 안현수의 추천제 특별발탁으로 인해 파벌의 분리가 안현수에게 있는것으로 잘못알려진 것이 있지만, 그것은 아니다. 추천제 제도는 1995년 장명희 회장[19]이 직접 채지훈, 전이경, 김소희에게 혜택을 준 논란으로 시작되었다. 이때 항의를 했던것이 한체대 박세우와 이준호이다. # 그리고 1997년에는 부상을 당했던 김선태가 추천으로 올림픽 멤버로 올라갔으며[20], 한체대생 박세우는 부상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올림픽 기회를 얻지 못했다. # 2002년에는 전명규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뛰지도 않았던 16살 안현수를 특별 발탁해서 민룡과 이승재가 소외되었고, 2003년에는 김현곤(경희대), 김민정(경희대), 고기현(연세대) #이 2004년에는 송경택(단국대), 조남규(단국대) #가 토리노 올림픽 연맹 국가대표 추천 선수는 이호석(경희대) 최은경(한체대) 선수였다. # 이 추천제는 한체대와 비한체대 파벌 지도자들이 서로의 선수들에게 국가대표 자격을 주면서 갈등이 생겼으며, 소외되는 선수들이 발생할수 밖에 없는 제도였다. 결국 이제도는 2006년 파벌 갈등이 수면위로 올라온 이후 사라졌다. #
실제로 2003년 부상으로 김동성은 국가대표선발전에 뛰지도 않았음에도 추천제로 발탁되어 당시 김기훈과의 큰 갈등이 있어서 다시 국가대표 자격을 반납했던 일이 있었다. # (김동성은 전명규가 키운 선수이지만, 당시 김동성을 추천한 것은 비한체대 출신이었던 빙상연맹회장이다.) #1 #2
2003년 4월, 국가 대표선발전때 강윤미 (이후 한체대)등이 부당한 판정에 의해 실격 처리돼 국가대표에서 제외됐다고 주장하면서 그 배후로 유태욱 경기이사(비한체대 대표지도자)[21] 지목. 이 밖에도 이준호(반전명규와 비한체대를 대표한다) 여자팀 대표팀 코치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대표팀에서 나왔다는 주장 등의 의혹들 조사되었고, # 이후 여자팀은 김소희 코치와 최광복 코치로 바뀐다.
하지만 2004년 최광복(광문고와 단국대 졸업) 코치의 폭행으로 한체대 최은경과 당시 한체대 라인이었던 변천사는 죽기 직전까지 폭행당하였고, # 당시 여자팀 (진선유) 포함 모두 이를 고발하였다. 결국 여자 팀은 박세우(한체대) 코치와 전재목(단국대) 코치로 다시 변경되었고, 2달뒤 2005년에는 윤재명 코치(단국대)가 담당했던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선배 선수에게 안현수와 성시백이 폭행당했고, 당시 윤재명 코치는 이를 방조하였다. #
그리하여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당시 파벌이 남자대표팀은 송재근 코치(비한체대) - 이호석, 오세종, 서호진, 송석우(이상 비한체대), 안현수(한체대) / 여자대표팀은 박세우 코치(한체대) - 변천사, 진선유(이상 비한체대), 최은경, 강윤미, 전다혜(이상 한체대)였지만, 파벌 때문에 한체대파는 모두 여자대표팀에서, 비한체대파는 모두 남자대표팀에서 훈련을 했다.[22] 심지어, 남자대표팀이 금메달을 따고 세리머니를 하다가 KBS 이준호 해설위원한테 절을 하는 세리머니를 했는데, 안현수는 뻘쭘하게 있었다.
결국 파벌싸움은 선수들이 아닌 1세대 지도자들의 밥그릇 싸움이 계속되어 변형되어 온것이다. #1 #2 #3 그속에서 선수들은 지도자들의 폭행 폭언 전횡에 시달렸으며, 안현수도 이호석도 모두 파벌의 희생양인 것. 게다가 안현수보다 어린 나이의 이호석[23]이 파벌의 중심이 되어 안현수를 왕따시켰다는 말은 더욱 말도 안 된다. 더군다나 이호석은 안현수의 고등학교 직속 후배다.
이호석은 2005년에 대표팀에 합류하고 안현수와 같은 방을 같이 쓰게 됐었는데 이때 안현수가 이호석이 성인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서로 굉장히 친해졌었다고 한다. 참고로 안현수는 이호석과 같은 신목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하며,이호석이 주니어 시절때 자신의 싸이월드 이름이 '리틀안'이었다. 그만큼 안현수를 존경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도 존경하고 있다.
다만 안현수와 불화가 있었던건 이호석이 인정한 사실이다. 본격적으로 불화가 시작되었던건 토리노 올림픽 이후부터다. 이호석이 했다고 알려진 "양보드립"[24]때문에 안현수와 그의 가족들이 큰 상처를 받았으며[25], 심지어 한동안 국민들에겐 안현수가 과도한 욕심을 내는 이기적인 선수로 찍히는 일까지 벌어졌다.[26] 라이벌 관계였던 만큼 2006-07 시즌에도 치열한 경쟁이 이어져 한번은 둘이 레이스에서 부딪치는 상황까지 벌어졌었다. 이 시기에 파벌 관련에 대한 루머들이 굉장히 많이 양산되었는데 송경택, 김현곤 등의 비한체대 선수들과 합동작전으로 안현수를 방해하기도 했다는 모두 전혀 사실이 아닌 악의적인 루머가 많이 나왔다.
이호석은 인터뷰에서 빅토르 안과의 불화는 모두 진작에 아직 둘이 대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을 당시 끝났으며 여전히 예전처럼 친목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2011-12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안현수가 러시아로 가는 것이 확정된 상황에서 500m 결승에서 맞붙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이호석이 안현수에게 다가가 악수를 하기도 했다. 결과는 안현수가 날내밀기로 1위, 이호석이 2위였다. 하지만 이호석 같은 경우는 이미 선발이 확정된 상황이었기도 했고, 이호석이 안현수가 한국 선수로서 타는 마지막 레이스인 걸 배려해서인지 날내밀기를 했다면 이겼을 수도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날내밀기를 안했다. 이후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를 하고 나서는 거의 만난 일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그 날 인터뷰에서 기자가, 이호석이 안현수의 아버지인 안기원과 우연히 마주쳤었는데 몇 분 가량 서로 인사를 나누고 덕담을 주고 받는 훈훈한 장면이 나왔다고 언급했다.[27] 만약 5년 가량이 지난 지금까지도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면 안현수 아버지의 입장에선 인사도 받지 않고 그냥 지나쳤어도 이상할 게 없다.
성시백과는 초등학교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었으며, 어릴때부터 같이 쇼트트랙을 시작했기 때문에 서로 라이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시백의 첫 국대시즌 초기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유인 즉슨, 2007-08 시즌 선발전에서 같은 파벌인 송경택의 대표팀 선발을 돕기 위해 1000m 결승에서 고의적으로 성시백과 이승훈을 방해했었기 때문이다. 이호석팬들도 그 수많은 까임꺼리 중에 이 하나만큼은 쉴드를 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다행히도 성시백과 이승훈 둘다 결국엔 국가대표선발이 되었지만 안현수가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자동선발이 된 상태였고, 이호석과 송경택이 각각 개인전 출전권을 따내 저 둘은 세계선수권에서는 계주멤버로 밖에는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결과론적이지만 만약 1000m에서 이호석의 방해만 없었다면 안현수의 부상으로 개인전 공석이 생겼을때 이승훈 대신 성시백에게 출전권이 갔었을테니 성시백 입장에서는 상당히 안타까웠을 것이다.[29]
성시백은 비한체대라인이지만 한체대 선수들과 굉장히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다.[30] 하지만 성시백이 2008년부터는 꾸준히 국대에 선발이 되고부터 선수촌에서 같이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 다시 친구 사이를 회복했다고 한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1500m 결승에서 벌어진 사고 때문에 둘의 사이가 완전 끝날 뻔도 했지만, 고의로 넘어진 게 아니었기에 다행히 성시백 선수의 어머니가 직접 나서서 잘 마무리가 됐다. 물론 사과를 받아준 성시백도 대인배다.
밴쿠버올림픽 5000m 계주 결승 진출 확정 후 |
5. 수상 기록
5.1. 주요 국제대회 성적
대회 | 금 | 은 | 동 | 합계 |
올림픽 | <colbgcolor=#ffe970,#554600> 1 | <colbgcolor=#c0c0c0,#444444> 4 | <colbgcolor=#cd7f32,#442910> 0 | 5 |
세계선수권 | 8 | 6 | 3 | 17 |
세계 팀선수권 | 3 | 0 | 1 | 4 |
아시안 게임 | 2 | 0 | 0 | 2 |
주니어 세계선수권 | 11 | 1 | 3 | 15 |
합계 | 25 | 11 | 7 | 43 |
월드컵 성적 | ||||
월드컵 랭킹 | 5 | 4 | 1 | 10 |
월드컵 메달 | 36 | 26 | 16 | 78 |
합계 | 41 | 30 | 17 | 88 |
올림픽 | ||
금메달 | 2006 토리노 | 5000m 계주 |
은메달 | 2006 토리노 | 1000m |
은메달 | 2006 토리노 | 1500m |
은메달 | 2010 밴쿠버 | 5000m 계주 |
은메달 | 2010 밴쿠버 | 1000m |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2008 강릉 | 5000m 계주 |
금메달 | 2008 강릉 | 1000m |
금메달 | 2009 비엔나 | 종합 |
금메달 | 2009 비엔나 | 1000m |
금메달 | 2009 비엔나 | 1500m |
금메달 | 2010 소피아 | 5000m 계주 |
금메달 | 2010 소피아 | 종합 |
금메달 | 2010 소피아 | 1000m |
1위 | 2010 소피아 | 3000m S.F. |
은메달 | 2006 미니애폴리스 | 종합 |
은메달 | 2006 미니애폴리스 | 1000m |
은메달 | 2006 미내애폴리스 | 1500m |
은메달 | 2008 강릉 | 종합 |
은메달 | 2008 강릉 | 1500m |
2위 | 2009 비엔나 | 3000m S.F. |
은메달 | 2014 몬트리올 | 5000m 계주 |
동메달 | 2006 미니애폴리스 | 500m |
동메달 | 2010 소피아 | 1500m |
동메달 | 2012 상하이 | 5000m 계주 |
세계 팀선수권 | ||
금메달 | 2006 몬트리올 | 단체전 |
금메달 | 2009 헤이렌베인 | 단체전 |
금메달 | 2010 보르미오 | 단체전 |
동메달 | 2008 하얼빈 | 단체전 |
아시안 게임 | ||
금메달 | 2007 창춘 | 5000m 계주 |
금메달 | 2011 아스타나·알마티 | 5000m 계주 |
주니어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2003 부다페스트 | 2000m 계주 |
금메달 | 2003 부다페스트 | 종합 |
금메달 | 2003 부다페스트 | 500m |
금메달 | 2003 부다페스트 | 1500m |
금메달 | 2004 베이징 | 2000m 계주 |
금메달 | 2004 베이징 | 종합 |
금메달 | 2004 베이징 | 500m |
금메달 | 2004 베이징 | 1500m |
금메달 | 2005 베오그라드 | 2000m 계주 |
금메달 | 2005 베오그라드 | 종합 |
금메달 | 2005 베오그라드 | 1500m |
은메달 | 2004 베이징 | 1000m |
2위 | 2004 베이징 | 1500m S.F. |
2위 | 2005 베오그라드 | 1500m S.F. |
동메달 | 2003 부다페스트 | 1000m |
동메달 | 2005 베오그라드 | 500m |
동메달 | 2005 베오그라드 | 1000m |
5.2. 올림픽 성적
- 5회 올림픽 메달리스트
- 1회 5000 m 계주 종목 올림픽 챔피언 (올림픽 신기록 수립. 2006년)
올림픽 수상 성적 | ||||
대회 | 금 | 은 | 동 | 포디움 |
올림픽 개인 메달 | 0 | 3 | 0 | 3 |
올림픽 계주 메달 | 1 | 1 | 0 | 2 |
합계 | 1 | 4 | 0 | 5 |
올림픽 메달 종목 통계 | |||||
대회 | 500 m | 1000 m | 1500 m | 계주 | 합계 |
2006 | - | 은 | 은 | 금 | 3 |
2010 | - | 은 | - | 은 | 2 |
메달 | 500 m | 1000 m | 1500 m | 계주 | 합계 |
금 | - | - | - | 1 | 1 |
은 | - | 2 | 1 | 1 | 4 |
동 | - | - | - | - | - |
합계 | - | 2 | 1 | 2 | 5 |
올림픽 상세결과 | ||||
대회 | 날짜 | 종목 | 랭킹 | 비고 |
2006 토리노 | ||||
2006년 2월 12일 | 1500m | 은메달 | ||
2006년 2월 18일 | 1000m | 은메달 | ||
2006년 2월 25일 | 500m | 12위 | ||
2006년 2월 25일 | 5000m 계주 | 금메달 |
전 OR , 6:43,376 분 (결승)
|
|
2010 벤쿠버 | ||||
2010년 2월 13일 | 1500m | 12위 | 결승 PEN DQ | |
2010년 2월 20일 | 1000m | 은메달 | ||
2010년 2월 26일 | 500m | 7위 | ||
2010년 2월 26일 | 5000m 계주 | 은메달 | ||
2014 소치 | ||||
2014년 2월 21일 | 5000m 계주 | 7위 | ||
5000 m 계주 2006년 올림픽 기록 OR 보유자
|
5.3. 세계선수권 성적
- 2회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 챔피언
- 세계선수권 타이틀 9개 (3000 m 1개 포함)
- 세계선수권 금메달 8개 (개인종목 금메달 6개, 계주 금메달 2개)
- 세계선수권 종합을 제외한 개별종목 5승 (3000 m 포함)
- 팀 세계선수권 타이틀 3개
세계선수권 수상성적 | ||||
대회 | 금 | 은 | 동 | 포디움 |
세계선수권 개인 메달 | 6 | 5 | 2 | 13 |
세계선수권 계주 메달 | 2 | 1 | 1 | 4 |
합계 | 8 | 6 | 3 | 17 |
세계선수권 성적 기록 | |||||||
시즌 | 종합랭킹 | 포인트 | 500 m | 1000 m | 1500 m | 3000 m | 계주 |
2006 | 은 | 60 | 동 | 은 | 은 | 5위 | - |
2위 | 13 | 21 | 21 | 5 | - | ||
2008 | 은 | 63 | - | 금 | 은 | 4위 | 금 |
2위 | PEN | 34 | 21 | 8 | - | ||
2009 | 금 | 89 | - | 금 | 금 | 2위 | - |
우승 | - | 34 | 34 | 21 | - | ||
2010 | 금 | 86 | 5위 | 금 | 동 | 1위 | 금 |
우승 | 5 | 34 | 13 | 34 | - | ||
2012 | - | - | - | - | - | - | 동 |
2014 | - | - | - | - | - | - | 은 |
세계선수권 성적 종목 통계 | |||||||
메달 | 종합 | 500 m | 1000 m | 1500 m | 3000 m | 계주 | 합계 |
금 | 2 | - | 3 | 1 | 1 | 2 | 9 |
은 | 2 | - | 1 | 2 | 1 | 1 | 7 |
동 | - | 1 | - | 1 | - | 1 | 3 |
합계 | 4 | 1 | 4 | 4 | 2 | 4 | 19 |
- 국가대표 팀으로 활약한 8시즌 중 6시즌의 세계선수권의 결과 기재. 수상기록이 없거나 세계선수권 참여를 하지 않은 시즌은 기재하지 않음. [31]
5.4. 월드컵 성적
월드컵 우승 기록 | ||||
종합 우승 | 2007-08 시즌 | |||
1000 m 1위 | 2005-06 시즌, 2006-07 시즌, 2008-09 시즌 | |||
1500 m 1위 | 2007-08 시즌 |
월드컵 수상 기록 | ||||
월드컵 랭킹 | 우승 | 2위 | 3위 | 포디움 |
종합 | 1 | 2 | 0 | 3 |
1000 m 랭킹 | 3 | 1 | 0 | 4 |
1500 m 랭킹 | 1 | 1 | 1 | 3 |
합계 | 5 | 4 | 1 | 10 |
월드컵 메달 | 금 | 은 | 동 | 포디움 |
종합 | 0 | 1 | 3 | 4 |
500 m | 2 | 1 | 2 | 5 |
1000 m | 8 | 4 | 3 | 15 |
1500 m | 7 | 12 | 2 | 21 |
3000 m | 2 | 1 | 1 | 4 |
개인전 합계 | 19 | 19 | 11 | 49 |
5000 m 계주 | 17 | 7 | 5 | 27 |
메달합계 | 36 | 26 | 16 | 76 |
랭킹 + 메달 합계 | 41 | 30 | 17 | 86 |
월드컵 랭킹[32] | ||||
시즌 | 종합 | 500 m | 1000 m | 1500 m |
2005-06 | 2위 | 10위 | 1위 | 2위 |
2006-07 | - | - | 1위 | - |
2007-08 | 1위 | - | 2위 | 1위 |
2008-09 | 2위 | 5위 | 1위 | 3위 |
2009-10 | - | 11위 | 6위 | 4위 |
2010-11 | - | 20위 | 14위 | 8위 |
2011-12 | - | 7위 | - | 4위 |
2013-14 | - | 11위 | - | |
랭킹 20위까지 표기[33] |
ISU 웹페이지 계주 금 2개 누락 추가된 결과
[1]
안현수와 함께 국가대표를 했을땐 막 20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1500m에서도 체력적인 부담감이 없어서 안현수와 함께 둘이 다 해먹다시피 했지만, 이호석이 20대 중반에 가까워지면서 당시 전성기를 맞고있던
성시백과 상당한 지구력을 갖춘
이정수에게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었다. 그렇지만 선수 시절 내내 탑 클래스의 실력이었고, 일간에 1500m에서 큰 힘을 못쓰는 선수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2]
선수 시절
[3]
첫 시니어 국대시즌인 2005-06시즌은
빙상연맹 특별추천선수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권을 얻었다. 당시의
선발전 순위를 보면
오세종이 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을 획득했어야 했으나 당시에는 빙상연맹 고위 관계자들에 의한 특별 추천제도가 존재했었다. 단 2006년 세계선수권에서의 파벌 갈등이후 빙상연맹 추천제도는 사라진다.
[4]
남자부에서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2연패를 달성한 선수는
마크 가뇽,
안현수, 이호석,
리우 샤오앙 뿐이다.
[5]
3회 연속 출전으로 남자부에서는
곽윤기, 여자부에선
전이경과 공동 기록이며 전이경은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과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간격이 2년이라 4년 텀으로는 최초다. 2022년 여자 대표팀의
김아랑도 동률의 기록을 세웠다. 역시 올림픽에 3회 연속 출전한
박승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출전했다.
[6]
다만 은퇴할 당시의 나이는 27세로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었다.
안현수와
샤를 아믈랭이 각각 34세, 37세에 은퇴했으며 32세인
곽윤기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7]
참고로 워낙에 인상적인 아웃코스 추월을 많이 보여줘서 그런지 자주 보여줘서 인코스 추월이 가끔 과소평가가 될 때가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이 부문에서 또 자주 거론되는 선수는
곽윤기다.
[8]
크로스 기술이란 쇼트트랙의 인코스 추월 패턴 중 하나로, 호리병 주법으로 알려진 일반적인 인코스 추월 패턴이 코너의 탈출 직후 안쪽으로 파고드는 기술이라면, 크로스 기술은 코너의 진입 직전에 안쪽으로 파고드는 기술로, 선수들이 정석적으로 코너에 진입할 때는 원심력에 대항하고 코너 탈출 구간에서의 재가속을 위해 Out-In의 움직임 양상을 보이는데, 이때 순간적으로 생기는 빈틈을 파고드는 것이다. 따라서 크로스 기술은 In-Out, 혹은 In-In 의 움직임을 보인다. 일반적인 코너링이나 인코스 추월패턴에 비해 원심력에 대응하기 어려워 코너를 돌면서 바깥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에 이때 재추월을 허용하기 쉽다. 따라서 파고드는것 자체도 어렵지만 완벽하게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크로스를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인코스를 점유하거나 탈출 직후 빠르게 피치를 올려 재가속하는 스케이팅 기술이 요구된다.
[9]
2009-10 시즌 2차 월드컵 5000m 계주 결승
[10]
이런 스릴감 때문에 이호석의 스케이팅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안정성은 성적과 직결되는 부분인 만큼 선수 평가에 있어서는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
[11]
올림픽에서는 2번이나 500m 결승에 진출하지 못하고 넘어졌다. 토리노에선 준준결승에서, 밴쿠버에서는 준결승에서 넘어졌다. 특히 벤쿠버는 넘어지지만 않았다면 결승 진출이 유력했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소치에서는 5000m 계주 예선에서 넘어지며 온갖 비방의 대상이 되었다.
[12]
그래서 그런지 인코스보다 아웃코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13]
안현수,
성시백,
이정수 등의 선수들과의 막판 1:1 때 날내밀기 경합에서 거의 다 패했다.
[14]
2021년 기준으로는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 등 유명인들이 악성 루머나 악의적인 비방에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하는 경우가 많아서 왜 대응이 없었는지 의문이겠지만 이호석이 현역이었고 악성 루머에 가장 많이 시달린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유명인의 법적 대응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법적 대응 자체에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비슷한 시기에 전 프로게이머
임요환의 아내인
김가연이 본인과 남편인 임요환을 비방한 악플러들을 주기적으로 대량 고소했던 것도 김가연의 개인적인 논란은 둘째치고 단순히 '굳이 사소한 비방글까지 고소를 해야 되나?' 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는데 밴쿠버 올림픽 당시의 실책과 악성 루머로 여론이 최악이었던 이호석의 경우 법적 대응을 했다면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 커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15]
이쯤 되면 망상갑안현수를 까려고 외모가 비슷한(구분하기 힘든) 김성찬을 의도적으로 이용했다는 의견도 많았다. 애초에 이 시기에 이호석은 주니어 대표팀이었다. 성찬이가 보면 안된다는 댓글은 안보이나 보다.
[16]
다행히 쇼트트랙 500m, 계주 50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17]
경희중, 경희고, 경희대 학부, 경희대 박사과정
#
[18]
정확한 갈등은 경희대-단국대와 한체대였고 연세대나 고려대는 당시는 어느 파벌이라 특정할수 없다. 전명규 감독이 키운 채지훈과 전이경은 연세대고, 전명규의 추천으로 중국 감독을 시작하게 되었다던
김선태는 고려대, 전명규가 좋아했다는
김동성도 고려대이다.
[19]
장명희 회장은 반 전명규를 대표한다.
[20]
부상으로 올림픽에는 결국 뛰지 못했다.
[21]
이호석과
진선유를 지도한 지도자이기도 하다.
[22]
변천사, 진선유는 남자대표팀, 안현수는 여자대표팀과 훈련을 했다.
[23]
파벌싸움이 극에 달했던 2007년에 22세로 막내뻘이었다.
[24]
양보드립 항목을 참고. 이래서 기자들 앞에선 입조심하는게 가장 현명하다.
[25]
정확하게는 안현수-이호석 서로의 오해라고 보는 것이 맞다.
[26]
이것은 나중에 알려진 파벌의 실체와 밴쿠버 동계올림픽 사건으로 이호석에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
[27]
물론 사진으로만 나와서 실제로 그런 얘기를 한 건지 검증은 안 됐지만 둘다 밝은 얼굴로 인사를 나눈 건 사실이다.
[28]
우나리씨는 10년 가까운 안현수의 팬클럽 회원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도 이호석과 안현수 사이에 앙금이 남아 있었다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안현수를 10년 동안 응원해왔던 우나리 씨가 이호석과 함께 하는 자리가 마련될 수 있을 리가 없다.
[29]
월드컵에서 제한된 출전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가 된지 첫 시즌만에 세계랭킹 3위에 올랐다.
[30]
특히
안현수와 친하다.
[31]
세계선수권 결과 기재 : 수상기록이 없는 시즌 결과는 제외, 8위까지의 개인 종목 순위 결과와 포인트의 기록. 2023년 세계선수권 부터는 종합제와 3000 m 슈퍼파이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메달과 순위결과만 기재.
[32]
월드컵 랭킹 표기는 랭킹 20위까지 표기를 기준으로 한다. 20위를 넘는 성적은 전체 커리어의 상위 80%를 기준으로 기재한다.
[33]
랭킹 표기: 20위까지 표기(전체 랭킹기록 24개 중에 88%인 21개까지 표기)
분류
-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
- 대한민국의 남자 쇼트트랙 선수
- 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1986년 출생
- 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
-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2007 창춘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병역특례자/쇼트트랙
- 2014년 은퇴
- 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초등학교 출신
- 신목중학교 출신
- 신목고등학교 출신
- 경희대학교 출신
- 경희대학교 대학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