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규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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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0B1727><colcolor=#000000,#ffffff> 노진규
盧珍圭 | Noh Jinky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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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92년 7월 20일 |
서울특별시 | |
사망 | 2016년 4월 3일 (향년 23세) |
서울특별시 광진구 건국대학교병원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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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과천초등학교 (졸업) 과천중학교 (전학) 역삼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한국체육대학교 (체육학과 / 학사) |
신체 | 178cm, 65kg |
종목 |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주종목: 1500m |
국가대표 | 2010-11~2013-14(총 4시즌) |
병력 | 예술체육요원[1] |
소속 | 강원도청 |
종교 | 불교 |
가족 | 부모님, 누나 노선영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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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남자 쇼트트랙 선수이다. 어린 시절 누나 노선영이 스케이트를 타러 갈 때 따라다니다가 쇼트트랙에 입문했다. 2010년대 초 남자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던 선수로, '제2의 안현수'라 불릴 정도로 촉망받았었던 스케이터였다.
2. 선수 경력
2.1. 2009-10 시즌
2.1.1. 2010 주니어 세계선수권
캐나다의 유망주였던 앙투안 젤리나스볼리외를 누르고 3관왕을 달성하며 주니어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을 한다. 원래 주목을 덜 받던 신예였지만 이 대회를 기점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2]2.2. 2010-11 시즌
2.2.1. 국가대표 선발전
이호석과 엄천호에 이은 종합 3위를 기록해 시니어 대표팀에 합류했다. 다만 어린 나이에 경험이 부족해 국제대회에서 잘 해낼 수 있겠나는 우려가 있었고, 거기다 같은 또래의 선수들 중에 가장 주목을 받던 선수들은 김윤재와 엄천호였고 당시까지 노진규는 이 둘보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던 유망주였다.2.2.2. 월드컵 시리즈
전반기에는 경험과 기술이 풍부한 노장들을 상대로 고전했으나 후반기에 점차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여론은 여전히 아직 성인 무대에서 활약하기에는 대표팀의 신흥 에이스로는 기량이 너무 낮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진규는 최종 세계랭킹 3위를 기록했으며[3], 그나마 이호석과 성시백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선전한 편이었다. 거기다 한국 남자 대표팀 전력이 약해졌던 또 다른 이유는 곽윤기와 이정수가 담합 혐의로 징계를 받아 대표팀에서 이탈했었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이제 막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신인인 노진규가 대표팀 성적을 이끌어 가야하는 상황에 놓였던 것이다. 4차 월드컵 5000m 계주 결승, 5차 월드컵 1000m 결승2.2.3.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
1500m와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해내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금메달 획득으로 인해 병역 문제도 해결할수 있었다.2.2.4. 2011 세계선수권
500m를 제외한 모든 개인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내 대회 최종 우승자가 되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며 포텐을 제대로 터트림과 동시에 비판 여론을 잠재웠다. 거기다 이 대회는 커리어 첫 세계선수권 우승에 혈안이 되어있었던 캐나다의 베테랑 에이스 샤를 아믈랭과의 맞대결이었으며. 새파란 신예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던 선수를 정면승부에서 이긴 것이다.2.3. 2011-12 시즌
2.3.1. 월드컵 시리즈
월드컵에서도 맹활약하며 상승세를 이어갔고 자신의 첫 월드컵 종합 우승을 달성했다. 6번의 1500m 경기에서 전승을하며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4] 4차 월드컵 1500m 결승2.3.2. 2012 세계선수권
대회 2연패에 도전했으나, 2011-12 시즌부터 징계가 풀려 국가대표에 복귀한 곽윤기와 그야말로 접전을 벌이다가 3000m 슈퍼파이널에서 1위를 내줘 종합 준우승을 기록했다.계속해서 무서운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신예 에이스라서 한국에선 그의 활약을 기대하였다. 자기관리만 잘해준다면 안현수를 잇는 한국의 차세대 쇼트트랙 아이콘이 될 수도 있었다. 여담으로 노진규의 롤모델은 자신의 한체대 선배인 안현수인데, 심지어 언론에서 붙여준 별명도 '포스트 안현수'다.[5]
2.4. 2012-13 시즌
2.4.1. 국가대표 선발전
전 시즌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을 놓쳐 다음 시즌 국가대표 자동선발에는 실패했지만 정작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해 별 문제없이 선발에 성공했고 당시 국내에서는 곽윤기이외엔 큰 경쟁자가 없다는걸 증명했다.[6][7]2.4.2. 월드컵 시리즈
1500m에서의 폼은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엄청났는데, 4차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안현수에게 내주고 은메달을 딴 것을 제외한다면 모두 금메달을 차지하며 총 6번의 경기 중 5번 승리했다. 특히 2차 월드컵 1500m 결승에서는 현재까지도 자주 회자되고 있는 레전드급 활약을 펼친 것으로 유명한데, 마지막 한바퀴 반을 남겨놓고 7위로 달리던 노진규가 아웃 코스로 모든 선수를 다 제치고 감히 엄두도 못 낼 만큼 압도적인 1위로 들어왔다.
하지만 500m는 거의 참가를 안했고, 했어도 준결승도 못 올라보고 탈락했다. 1000m에서는 여전히 순발력과 경기운영능력의 부족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이후 지난 시즌에 다시 한번 월드컵 종합 랭킹 1위를 달성하며 월드컵 시리즈 2연패자가 되었다. 여담으로 이 기록은 남자부에서는 역사상 리자쥔과 노진규 단 두명만 가지고 있는 기록이다. 노진규 이후로 월드컵 2연패를 달성한 남자 선수는 2023-24시즌 박지원 선수가 달성하기 전까지 11년간 나오지 않았다.[8]
2.4.3. 2013 세계선수권
주종목 1500m는 결승까지 순탄하게 올라갔으나, 결승에서 샤를 아믈랭이 빠르게 끌어올린 경기 템포 때문인지 아웃 코스 추월에 실패하며 나중에는 지친 모습까지 보이며 그 답지 않게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동안의 노진규의 활약으로 봤을 때는 비록 공식적으로 밝혀진 건 아니지만 스케이트 날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던 500미터에서 준결승까지 올라오는 저력을 보여주지만 준결승에서 량원하오와 안현수에 이어 3위로 들어오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노진규의 500m 성적을 생각한다면 큰 수확이라고 볼 수 있다. 1000m 준결승에서는 샤를 아믈랭과 안현수의 견제에도 2위로 골라인을 통과해내 결승 진출을 하나 싶었지만 네덜란드 선수와의 충돌로 실격판정을 받았다. 계주 결승에서도 실격 판정을 받아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2.5. 2013-14 시즌
2.5.1. 국가대표 선발전
선발전에서 3위를 기록하며 국가대표팀 승선에는 성공했으나, 신다운이 세계선수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였기에 노진규에게는 개인종목 출전권이 주어지지 않고, 계주에만 참가가 가능했던 상황이었다.1500m에선 거의 언터쳐블한 선수이기때문에 굉장히 아쉬울 따름이었다. 단 선발전 순위 1~3위를 기록한 신다운, 이한빈, 박세영 중 한명이 양보를 해준다면 1500미터 이벤트에서 경기할 수 있다. 참고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선 곽윤기가 이정수 대신 500m에 참가했다.곽윤기는 선발순위의 가장 마지막 순위였기 때문에 계주에만 참가가 가능했지만, 단거리에 약한 이정수가 그에게 500m를 양보해줬다. 문제는 1500m는 모든 한국선수들이 다 잘타는 종목이라는 것이다. 당시 노진규가 1500m 세계 최강자임은 사실이였지만 전통적으로 한국이 항상 강했던 종목인데다가 신다운, 이한빈, 박세영 모두 가장 메달가능성이 높은 1500미터를 양보해줄 가능성은 상당히 낮았다. 또 다른 문제는 곽윤기와 이정수의 짬짜미 사건이 대중에게 알려진 이후 한국 쇼트트랙의 이미지가 상당히 실추하였고, 아무리 좋은 의도로 저 셋중 한명이 노진규에게 1500m 출전권을 양보한다한들 언론에서 '코치의 외압', '또 다른 짬짜미?'하며 의혹이 터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2.5.2. 월드컵 시리즈
1차 월드컵 1500m에서 우승했으나, 샤를 아믈랭과의 거친 몸싸움으로 인해 어깨를 부상당해 2차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결승선을 통과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통증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여 대표팀과 팬들에게 걱정을 안겼다. 그러나 이때는 모두들 그저 어깨 부상일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나 '투병' 항목에도 나오듯 노진규는 실제로는 훨씬 심각한 병을 안고 있었다.우려하던 대로 개인전 출전권을 가지고 있는 신다운, 이한빈, 박세영은 부진과 국제대회 경험 부족[9]으로 1, 2차 월드컵에서 그야말로 죽을 쒔고,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3차 월드컵에서 이 3명이 극심한 부진을 하자, 급기야 3, 4차 월드컵에서 마저 이호석과 어깨 부상이 다 낫지도 않은 노진규가 투입되어 출전권을 1장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그야말로 분투를 했다.[10]
특히 3차 월드컵 1500m 결승 경기에서는 비록 아믈랭에게 파울을 한 것 때문에 실격을 받았지만[11], 5바퀴 남은 상황에서 꼴찌로 밀려 나갔다가 4바퀴 남기고 무려 두바퀴 반을 아웃코스로 스퍼트 하며 기여코 추월에 성공해 두번째로 들어온 이한빈과 압도적인 거리차로 1위로 골인하며 여전히 1500m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이때는 이미 종양이 발견되어 투병중인 상황에도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임을 감안하자. 4차 월드컵에서는 확연히 컨디션이 안좋은 모습을 보였고 노진규가 파이널B로 가는 굉장히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노진규는 남자 대표팀을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었고 500m 한 장을 잃게 된건 신다운, 이한빈, 박세영이 워낙 부진했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나머지 종목에서는 다행히 3장의 개인전 티켓을 다 확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월드컵이 끝난 후(당시까지 그의 몸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었던) 팬들 사이에선 1500m만큼은 노진규가 꼭 타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2.5.3. 부상
태릉 빙상장에서 훈련하던 도중 왼쪽 팔꿈치가 골절되는 부상[12] 으로 올림픽에 불참하게 되었다. 빙상연맹에서는 노진규를 대신할 선수를 경기심판위원회의 추천을 통해 상임이사회에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곽윤기에 이어 노진규마저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는 이상 이제 팬들은 남자부는 거의 포기한 상황이었다.이렇게 된다면 그의 대체 선수로 월드컵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데 일조했던 이호석이나 부상당하기 전까지 세계 1인자나 다름없었던 곽윤기가 뽑히지 않을까라고 예상했었다. 허나 이호석을 대표팀에 포함시키는 건 선발전에서 5위를 했었기 때문에 문제가 딱히 될 게 없지만, 5위권 밖에 있는 선수들 중 한 명을 뽑는 건 가뜩이나 빙상연맹의 이미지가 파벌 싸움, 짬짜미 사건 등으로 바닥을 치고 있는 가운데 더더욱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13] 이호석이 아니라면 6위 김병준, 7위 이정수, 8위 곽윤기 이 셋 중 한 명이 발탁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이정수는 선발전 탈락 후 미련을 버리지 못해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14]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차순위였던 이호석이 대표팀에 합류했고 대신 한국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3. 투병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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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월드컵 1차 대회 직후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실시한 검사[15]에서 6cm 가량의 종양이 발견되었다. 그나마 올림픽 출전에는 이상없다는 병원 측의 진단에 따라 수술을 올림픽 이후로 미뤘는데, 올림픽에 나가려고 진통제까지 달고 다니면서 훈련하다가 골절이 생기는 바람에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16]
그새 종양은 13cm까지 자랐다. 팔꿈치가 골절된 것은 이 종양 때문에 뼈가 약해진 탓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종양이 커지고 뼈가 부러진 것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선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 대한 문제이다. 종양 제거 수술을 할 때 왼쪽 견갑골 전부를 끄집어냈다. 견갑골이 아예 없으면 팔을 어깨 위로 드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왼팔은 쇼트트랙에서 코너를 돌 때 땅을 짚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견갑골 적출이 노진규의 쇼트트랙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태였다.
이후 상황은 선수생명이 문제가 아니라 진짜 생명을 걱정해야 할 수준이 되었다. 수술 이전 건국대병원 검사에서는 양성종양[17]만 발견되었고, 수술대에서도 처음에 언뜻 보았을 때는 거대세포종만 보였는데, 종양 안쪽으로 파고들자 골육종이 드러났다. 이 병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야구선수 이두환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병원에서 같은 병으로 같은 나이에 사망했다.
발병 시점으로부터 약 1년 정도가 지난 2015년 1월 14일, 노진규의 근황에 대한 실로 오랜만의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일단 체내의 종양은 다 제거가 된 상태이지만 수술한 시점에서 5년, 즉 현 시점에서 앞으로 4년은 더 재발이 없어야만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팔과 어깨의 기능이 많이 손상되었고, 투병 생활로 인해 체중도 선수 시절보다 10kg 이상 불어났다.
골육종 발병 이후 노진규의 근황 사진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는데, 2015년 4월부터는 노진규 본인이 SNS를 통해 최근의 자기 사진을 직접 올리기도 했다. 예전보다 약간은 토실토실해졌지만 건강을 많이 되찾은 것으로 보여졌다. 항암 치료로 다 빠졌던 머리카락도 서서히 자라고 있고, 중학교 교생실습을 나갈 정도였다.
그러나 한동안 소식이 거의 없던 와중 종양이 다시 악화되어 2016년 4월 3일 오후 8시[18]에 끝내 숨지고 말았다. 향년 23세. 누구보다 노력을 많이 하고, 올림픽에 나가려는 꿈도 간절했건만, 고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2년 앞두고 24세 생일을 3개월 앞둔 시점에서 안타깝게 요절했다.
노진규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는 생전 마지막 글들이 2월 28일에 남겨져 있어, 2016년 3월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도전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당찬 포부를 이루지 못한 채 2016년 하늘의 별이 되었다. 쇼트트랙 팬들의 아픈 손가락이다. 그의 누나인 노선영 선수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삽질로 한 때 올림픽 출전이 힘들어졌었으나 러시아 선수들의 약물 파동으로 다행히 올림픽 출전권을 얻었고, 2월 12일 남동생을 위해 아름다운 경기를 펼쳤다.
2018년 4월 7일에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전명규가 그의 죽음을 재촉하게 만들었다는 진실이 밝혀졌다. 항암 치료를 빨리 시킬 수 있었음에도 당장의 성적을 위해 강제로 경기에 출전시켜 치료를 미루게 압박한 것이라는 노진규 어머니의 인터뷰가 방송되었다. 이에 대해 전명규 부회장은 어떠한 인터뷰도 응하지 않았다.
실제로 남자 쇼트트랙을 오랫동안 본 사람이라면 2013-14 시즌 당시 남자 대표팀이 비상 사태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개인전 출전 권한이 있던 3명의 선수가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이며 올림픽 무대의 개인전 출전권을 거의 모두 날려버릴 위기에 있었다. 이 때문에 전명규는 노진규의 병이 심각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 상태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채 무리하게 몇 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월드컵에 출전시켰고, 계주에서 마저 최약체 전력이었던 남자 대표팀이었기에 어떻게든 노진규의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강행할 생각까지 했던 것으로 보인다.
4. 평가
가장 큰 장점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지구력을 가진 대한민국 선수들 중에서도 체력이 최상급이라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쇼트트랙 체력 끝판왕이다. '체력 괴물'이라는 그의 별명에 맞게 1500m에서 엄청나게 강한데 아예 초반부터 일찌감치 선두로 치고 나가 그대로 1위로 레이스를 마치거나 트랙 세바퀴를 아웃코스로 돌고 끝에는 기어코 아웃코스 추월을 성공하는 장면을 연출해 낼 정도로 미친 중장거리 기량을 자랑했다. 또한 보통 선수들이 아웃코스 추월을 한번 실패하면 체력이 바닥나서 뒤쳐지기 마련인데, 노진규는 한번 실패하더라도 한숨 고르고 나서 한두번은 더 아웃코스 패싱을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역대급 지구력을 갖췄다. 성별은 다르지만 여러모로 진선유를 연상케 한다.
노진규가 초반부터 레이스를 이끌어가는 패턴의 경기들을 보면 다른 선수들이 노진규를 추월하려는 시도조차 못 해보고 레이스가 끝나버리는 경기들이 있는데, 이는 노진규가 초반부터 맨 앞에서 경기 중후반 쯤에 나와야 할 스퍼트를 지속적으로 내 다른 선수들의 체력을 일찌감치 말려버리기 때문이다. 운동신경과 스케이팅 기술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약하다 보니, 높은 강도의 체력 훈련을 통해 지금의 엄청난 지구력을 얻어 다른 단점들을 보완해 나가는 케이스였다.[20] 팀 동료였던 곽윤기는 이런 그의 스케이팅에 대해 기술과 경기운영능력 같이 한국 쇼트트랙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졌던 요소들을 갖추지 않고도 체력 하나만으로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며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평하기도 했다.[21]
사실 노진규 정도의 체력을 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강도가 굉장히 높다고 알려진 한국 쇼트트랙 스파르타식 체력훈련 이상의 체력 훈련을 해내왔다는 이야기이다. 몇 코치들이 언급하기로는 노진규의 성실한 훈련 자세가 이를 가능케했다고 한다. 많은 쇼트트랙 팬들도 노진규의 체력만큼은 안현수의 전성기때와 동급이거나, 아니 그 이상으로 평가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체력을 갖췄다. 이정수가 2015년 2월에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2011-12 시즌 그가 1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했던 당시, 에이스였던 노진규에게 맞춰져 있던 훈련 프로그램을 따라가는게 상당히 힘들었다고 하며 심지어 이게 몸에 무리가 와서 슬럼프와 부상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비록 징계를 받고 1년 가까이 운동을 쉬었던 이정수의 지구력이 완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체력이 강점인 이정수가 노진규의 훈련량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니 노진규의 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다.
성시백처럼 신체 조건이 좋아 체구가 큰 외국선수들을 상대로도 몸싸움이나 자리싸움에서 잘 밀리지 않고[22], 강한 지구력을 바탕으로한 힘도 굉장히 좋은편이다. 장거리에서 보여주는 아웃코스 패스의 스피드와 안정성도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추월과 코너링 등 기술과 유연성 면에서 약점이 있고, 레이스 운영과 자리잡기 센스가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아웃코스를 크게 도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에게 인코스를 잘 내주는 편이었다.[23] 또한 순발력이 워낙 약해 500m나 계주처럼 지속적으로 스퍼트를 요하고, 아웃코스보단 인코스로 제치는게 유리한 종목에서는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24] 1000m도 초반부터 경기가 빠르게 진행되면 고전하기도 했다.[25] 이런 점에서 이정수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정수는 체력 괴물 노진규보다는 지구력이 약간 약한 대신, 순발력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을 뿐더러 노진규보다 경기 스타일이 좀 더 유연하다. 무엇보다도 경기 흐름을 읽는 눈에서는 이정수가 많이 앞서는 편이며, 가진게 지구력 밖에 없다고 비판받던 이정수가 노진규의 등장 덕분에 기술적인 면이 재평가를 받기까지 했다.[26]
이정수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서로에게 자주 비교 대상이 되기도 한다. 쇼트트랙 팬들 사이에서는 '2009-10 시즌 이정수 vs. 2012-13 시즌 노진규'는 상당한 떡밥이었다. 참고로 이정수가 최고의 폼으로 가장 맞붙고 싶은 상대는 안현수나 곽윤기도 아닌 노진규라고 밝힌 바 있다.[27]
5. 수상 기록
5.1. 주요 국제대회 성적
대회 | 금 | 은 | 동 |
세계선수권 | <colbgcolor=#ffe970,#554600> 4 | <colbgcolor=#c0c0c0,#444444> 2 | <colbgcolor=#cd7f32,#442910> 1 |
세계 팀선수권 | 1 | 0 | 0 |
아시안게임 | 2 | 0 | 0 |
유니버시아드 | 2 | 0 | 0 |
주니어 세계선수권 | 4 | 0 | 0 |
합계 | 13 | 2 | 1 |
월드컵 시리즈 수상성적 | ||||
월드컵 랭킹 | 4 | 2 | 2 | 8 |
월드컵 메달 | 24 | 6 | 9 | 39 |
합계 | 28 | 8 | 11 | 47 |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2011 셰필드 | 종합 |
금메달 | 2011 셰필드 | 1000m |
금메달 | 2011 셰필드 | 1500m |
1위 | 2011 셰필드 | 3000m S.F. |
금메달 | 2012 상하이 | 1500m |
은메달 | 2012 상하이 | 종합 |
은메달 | 2012 상하이 | 1000m |
2위 | 2012 상하이 | 3000m S.F. |
동메달 | 2012 상하이 | 5000m 계주 |
세계 팀선수권 | ||
금메달 | 2011 바르샤바 | 단체전 |
아시안 게임 | ||
금메달 | 2011 아스타나·알마티 | 5000m 계주 |
금메달 | 2011 아스타나·알마티 | 1500m |
유니버시아드 | ||
금메달 | 2013 트렌티노 | 1000m |
금메달 | 2013 트렌티노 | 1500m |
주니어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2010 타이베이 | 3000m 계주 |
금메달 | 2010 타이베이 | 종합 |
금메달 | 2010 타이베이 | 1000m |
금메달 | 2010 타이베이 | 1500m |
5.2. 세계선수권 성적
세계선수권 수상성적 | ||||
대회 | 금 | 은 | 동 | 포디움 |
세계선수권 개인 메달 | 4 | 2 | 0 | 6 |
세계선수권 계주 메달 | 0 | 0 | 1 | 1 |
합계 | 4 | 2 | 1 | 7 |
세계선수권 성적 기록 | |||||||
시즌 | 종합랭킹 | 포인트 | 500 m | 1000 m | 1500 m | 3000 m | 계주 |
2011 | 금 | 102 | - | 금 | 금 | 1위 | - |
우승 | - | 34 | 34 | 34 | - | ||
2012 | 은 | 76 | - | 은 | 금 | 2위 | 동 |
2위 | - | 21 | 34 | 21 | - | ||
2013 | 11위 | 3 | 6위 | - | 6위 | - | - |
- | - | - | 3 | - |
세계선수권 성적 종목 통계 | |||||||
메달 | 종합 | 500 m | 1000 m | 1500 m | 3000 m | 계주 | 합계 |
금 | 1 | - | 1 | 2 | 1 | - | 5 |
은 | 1 | - | 1 | - | 1 | - | 3 |
동 | - | - | - | - | - | 1 | 1 |
합계 | 2 | - | 2 | 2 | 2 | 1 | 9 |
- 국가대표 팀으로 활약한 4시즌 중 3시즌의 세계선수권의 결과 기재. 수상기록이 없거나 세계선수권 참여를 하지 않은 시즌은 기재하지 않음. [28]
5.3. 월드컵 성적
월드컵 우승 기록 | ||||
종합 우승 | 2011-12 시즌, 2012-13 시즌 | |||
1500 m 1위 | 2011-12 시즌, 2012-13 시즌 |
월드컵 수상 기록 | ||||
월드컵 랭킹 | 우승 | 2위 | 3위 | 포디움 |
종합 | 2 | 0 | 1 | 3 |
1000 m 랭킹 | 0 | 2 | 1 | 3 |
1500 m 랭킹 | 2 | 0 | 0 | 2 |
합계 | 4 | 2 | 2 | 8 |
월드컵 메달 | 금 | 은 | 동 | 포디움 |
1000 m | 3 | 2 | 5 | 10 |
1500 m | 14 | 1 | 0 | 15 |
개인전 합계 | 17 | 3 | 5 | 25 |
5000 m 계주 | 7 | 3 | 4 | 14 |
메달합계 | 24 | 6 | 9 | 39 |
랭킹 + 메달 합계 | 28 | 8 | 11 | 47 |
월드컵 랭킹[29] | ||||
시즌 | 종합 | 500 m | 1000 m | 1500 m |
2010-11 | 3위 | - | 1위 | 5위 |
2011-12 | 1위 | - | 2위 | 1위 |
2012-13 | 1위 | - | 3위 | 1위 |
2013-14 | - | - | - | 4위 |
랭킹 20위까지 표기[30] |
ISU 에서 계산누락된 2010-11 시즌 종합 3위 결과 포함
[1]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 1500m 금메달
[2]
당시까지는 주니어 대회 우승자는 거의 무조건 차세대 한국 국가대표 에이스라는 인식이 있던 시절이라 현재와 위상이 달랐다.
[3]
ISU 공식 홈페이지에는
티보 포코네가 3위라고 나오나, 도핑으로 인해 해당 시즌 기록이 말소가 되어야 했던 것이 제대로 갱신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4]
2012-13 시즌에는 여자부의
심석희가 1500m 종목에서 같은 기록을 달성했다.
[5]
이런 별명은 자신에게 너무 과분하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도 있다.
[6]
김윤재 2위,
신다운 3위, 곽윤기는
2012 세계선수권 종합우승자이기 때문에 자동 선발이 됐다.
[7]
안 좋은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 밴쿠버 동계올림픽 대표팀은
김성일을 제외한 나머지 4명 모두가 금메달을 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들이었지만, 당시에는 노진규와 곽윤기 이외엔 큰 기대를 할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때는
안현수와
이호석이 두드러지는 기량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둘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외국에서도 이들 기량에 근접하는 선수조차 없었다. 최근에는 외국 선수들의 기량이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보다도 더 향상되어 노진규나 곽윤기도 올림픽 메달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대표팀 에이스였던 이 둘이 이탈하고 결국 최약체의 전력으로 올림픽으로 향한 남자 대표팀은
노메달 수모를 겪고 빈손으로 귀국했다.
[8]
반면 여자부에서는 월드컵 연패를 기록했던 선수들이 무려 4명이나 나왔다(
양양(A),
왕멍,
심석희,
쉬자너 스휠팅).
[9]
신다운은 국가대표 생활을 한 지 한 2년 정도 됐으니 해당이 안된다.
[10]
이때는 종양에 대해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때였다.
[11]
당시에는 1차 월드컵 1500m 결승에서 본인에게 거칠게 몸싸움을 걸던 아믈랭에게 복수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12]
쇼트트랙 선수에게는 특히나 치명적인데, 코너를 돌 때 왼손으로 균형을 잡기 때문에 왼쪽 팔 부상은 참고 경기에 참여할 정도의 부상이 아니다.
[13]
당장 파벌 싸움의 시작이 차순위에도 못 들었던
안현수를 대표팀으로 꽂아넣은 것 부터였다.
[14]
하지만 실패하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왔다.
[15]
2014년 2월 초순
원자력병원에서도
건국대학교병원 마크가 있는 팔걸이를 하고 있었다.
[16]
이 암으로 인해 군대는 면제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예술체육요원 복무 중 질병으로 소집해제된 것으로, 이미 군 면제를 받지 않았다면 2011년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되었을 것이다.
[17]
정확하게는 거대 세포종인데, 95%가 양성으로 분류된다.
[18]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 이 날은 시즌 마지막 경기인 2차 국가대표 선발전의 마지막 날이었으며 선수들은 시합이 끝난 후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19]
올림픽 금메달만 4개에 무려 37세라는 가장 늦은 나이까지 선수 생활을 한 캐나다의 전설이다. 더군다나
안현수,
곽윤기 등의 정상급 선수들도 본인과 여러번 맞대결을 했음에도
노진규를 최강의 라이벌로 꼽은 것.
[20]
노진규 본인이 언급한 내용이다.
[21]
간단하게 체력과 힘만으로 승부를 본다는 것인데 말이 쉽지 실현시키기 굉장히 어려운 경기 스타일이다.
[22]
자리를 내주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노진규가 인코스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도 아웃코스로 크게 도는 습관이 있어 자리를 내주는 경우가 간혹 있다.
[23]
곽윤기도 이를 잘 알았기에 2012년 세계선수권 슈퍼파이널에서 이 점을 잘 공략해 종합 우승 경쟁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24]
시니어 데뷔 초기에는 계주에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2012-13 시즌 이후로는 계주 2번 주자도 맡을 만큼 실력이 늘었다. 더군다나 체력이 워낙 좋아서 계주에서는 마지막까지 지치지를 않아 다른 선수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5]
노진규가 시니어 국가대표로 처음 활약하기 시작한 2010-11 시즌까지만 해도 아직 1000m가 지금처럼 빠르게 진행되는 종목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노진규의 1000m 성적이 그렇게 나쁘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그 후 부터는 500m를 두 번 타듯이 빠르게 레이스를 진행시키는게 트렌드가 되어 체력 뿐만 아니라 스피드와 무엇보다도 경기 운영능력이 더욱더 중요하게 되었다.
[26]
물론 이정수도 슬럼프 이후 우여곡절 끝에 2014-15 시즌 대표팀에 복귀했었으나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2016-17 시즌에 폼을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며 많은 비난을 받았다.
[27]
맞대결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13-14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 1500m에서 1위를 다퉜는데 당시까지 건강 상 문제가 없었던 노진규가 승리했다. 이정수는 2위로 들어올 수 있었으나 골라인 코앞에서 미끄러지며
박세영에게 2위를 내주고 3위로 통과했다.
[28]
세계선수권 결과 기재 : 수상기록이 없는 시즌 결과는 제외, 8위까지의 개인 종목 순위 결과와 포인트의 기록. 2023년 세계선수권 부터는 종합제와 3000 m 슈퍼파이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메달과 순위결과만 기재.
[29]
월드컵 랭킹 표기는 랭킹 20위까지 표기를 기준으로 한다. 20위를 넘는 성적은 전체 커리어의 상위 80%를 기준으로 기재한다.
[30]
랭킹 표기: 20위까지 표기 (전체 랭킹기록 11개 중에 91%인 10개까지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