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18:30:57

양준혁 vs 이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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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양준혁 & 이종범.png
삼성 라이온즈 No.10 KIA 타이거즈 No.7
양준혁
Yang Joon-hyuk
이종범
Lee Jong-beom

1. 개요2. 상세3. 여담4. 관련 문서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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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준혁 이종범의 라이벌리를 다룬 문서.

2. 상세


KBO 리그에 한정한다면 통산은 양준혁이 뛰어나고[1], 전성기는 이종범[2]이 우위이다.

93~97 이종범이 유격수로써 신의 성적을 찍을 시절 그와 야수로서 유일하게 대항할수 있던 대항마가 양준혁 뿐 이었다.

파일:양준혁vs이종범_5년차까지.png

주로 외야와 1루, 지명타자로 나와서 수비지표가 낮은 양준혁에 비해, 이종범은 93~97시즌 유격수로 다섯 시즌을 뛰었다. 또한 주루 스탯의 차이도 있기에 이종범은 커리어하이 WAR(96양준혁 8.56 / 94이종범 11.77)에서든, 데뷔 후 5년차까지의[3] 합산 WAR(양준혁 34.48 / 이종범 42.16)에서든 양준혁보다 우위에 있다. 게다가 이종범은 95시즌에 방위 복무로 인해 규정상 홈 경기에만 출전이 가능하여 반 시즌을 손해보았는데도 WAR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4] 이뿐 아니라, WAR을 좀더 살펴보면, 양준혁의 개인 커리어 최고 WAR은 96년 기록한 8.56이며, 97년 8.17과 더불어 유이하게 8점을 넘겼다. 반면 이종범은 94년 기록한 11.77 및 97년 기록한 9.70과 96년의 9.52로 WAR 9.0을 3회 넘겼다. 당시 양준혁의 타석 수가 적어서 누적 스탯이 비율에 비해 나쁘다는 건 감안해야 겠지만, 이종범이 팀에 더 많은 승수를 가져오는 선수였다는 건 숫자로 입증되는 것이다. 특히, 이종범은 타격,주루가 뛰어나 그 당시 KBO보다 한참 수준이 높던 일본프로야구의 관심을 받았던 것이다. 이는 단지 포지션 차이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이러한 과정에서 수비나 주루의 세이버 메트리션 지표가 부실하던 과거에는 투승타타라며 국내에서 타격을 더 높게 쳐주는 경향이 강해 보이지 않는 무언가 라는 종범드립의 희생양으로 타격지표에 비해 크게 저평가를 받으며 이종범이 성적에 비해 많이 홀대를 받기도 하였으나 세이버의 대중화로 주루나 수비등의 WAR의 승리기여도 평가가 이루어지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지표로 드러나며 재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양준혁 역시 wRC+등의 세이버 지표로 재평가를 받기도 하는 등의 일로 전성기를 비롯하여 선수생활 전반적으로 타격생산능력은 양준혁이 앞서나 종합적인 능력은 이종범이 앞섰기에 전성기시절을 비롯하여 30대 중반의 에이징커브 이전에는 이종범이 종합적으로는 우위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세이버의 비교에서 국내에서는 세이버 참고자료로 인용되는 스탯티즈의 WAR 관련 논란이 계속 나올 정도로 여전히 세이버가 부실하며 특히나 수비관련 세이버가 부실하기에 가볍게 야구를 보는 라이트팬들의 경우 세이버로 비교해야한다면서 종합적인 세이버가 아닌 wRC+만을 비교하여 wRC+가 30이 넘게 차이나는데 아무리 수비주루가 뛰어나도 이 차이를 메꿀 수 있냐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수비 WAR이 높은걸로 유명한 아지 스미스의 wRC+가 90인데 반하여 마이크 피아자의 wRC+가 140으로 wRC+ 차이는 약 50가까이 차이나지만 아지 스미스가 19시즌 WAR 76.9 마이크 피아자가 16시즌 WAR 59.5로서 두 선수의 포지션이나 수비능력이 극과 극 이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타격생산지표가 세이버의 전부는 아니듯이 하나의 참고자료정도로 생각해야하며 일본야구에서도 타격의 신 이라 불린 카와카미 테츠하루나 장훈이 wRC+는 노무라 카츠야에 비해 훨씬 높으나 통산 WAR이나 평균 WAR은 노무라 카츠야가 더 앞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일본 프로야구에서 이종범이 WAR 5가 넘는 성적을 거두었음 #에 비해, 양준혁은 상위 리그에 진출하지도 못했고, 자기가 MLB 진출 기회가 있었다며 신빙성이 상당히 의심되는 메츠 입단 제의서만을 공개했다는 점을을 감안할 필요가 있으며,[5] 국제대회에서의 활약상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것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결국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KBO리그에서의 통산기록에서는 양준혁이 이종범보다 우위에 있다. 양준혁이 통산 WAR(87.22 vs 67.74), wRC+(160.0 vs 126.1)에서 모두 우위이며, 특히 이종범의 일본에서 KBO 복귀 후에서는 WAR에서 크게 앞선다.(37.83 vs 25.60) 특히 이종범이 2005 시즌을 마지막으로 급격한 하락세에 처한 반면, 1살 더 늙은 양준혁이 2009년까지 은퇴시즌을 제외하면 단 한번도 WAR이 1 아래로 내려간적이 없으며 은퇴 직전 시즌까지도 WAR 3 이상의 좋은 비율스탯을 올린 점에서 꾸준함은 확실히 양준혁의 우위이다.

특히 이는 이종범이 도저히 선수로 써먹을 수 없는 기록을 남긴 2007년을 포함, 이종범의 노쇠화가 시작된 2006 시즌 이후를 보면 두드러진다.[6] 2006시즌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2002~2005년 시즌 누적 WAR이 20.25 vs 16.81로 이종범이 앞서며, 이종범이 절반의 시즌을 뛴 2001년을 더해도 22.41 VS 22.3 으로 이종범 쪽이 높다. 2006년 이후로 이종범이 긴 슬럼프를 겪는 동안에 양준혁이 꾸준한 성적으로 이를 따라잡고 추월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커리어 종결 시점에서 통산 WAR이 15 내외 차이나기에 꾸준함은 두말 할 것 없이 양준혁의 우위라고 볼 수 있다.

단,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런 이분법적 평가 때문에 양준혁의 전성기 성적과[7] 이종범의 꾸준함을[8]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종범 vs 양준혁 라이벌리가 워낙 관심을 가지다보니 옹호하는 측 에서 이분법적인 기록만 가지고 다른 한쪽이 비교불가대상이라며 비교열위를 폄하하는 쪽으로 논쟁이 탈선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스탯을 조금만 찾아봐도 알겠지만 상대에게 비교 열위에 있는 분야에서조차 두 선수 모두 굉장했음은 틀림없다.

간혹 김상현이나 이현곤 등의 플루크 사례를 가져오거나 팀 린스컴 드와이트 구든등 전성기가 무척 짧았던 선수를 가져와 전성기에 대한 평가를 폄하하는 케이스가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일부 커뮤니티 등[9]에서 과거 세이버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 타격만을 중시하던 때 나왔던 이야기로 한 쪽을 비교열화하기 위하여 오로지 통산 성적을 찬양해서 생긴 오해로서 MLB에서도 통산이 무조건적으로 우위다라는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10]

어느 종목, 어느 나라를 가도 전성기의 지배력을 단순 통산보다 낮게 보지는 않으며 통산도 중요하다고 여기지만 전성기의 임팩트도 중요하다고 여기에 샌디 쿠팩스와 같은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첫 해 입성자로 선정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으며 농구에서도 마이클 조던에 비해 르브론 제임스나 코비 브라이언트가 누적이 더 좋다고 마이클 조던보다 압도적으로 위이며 비교불가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 처럼 전성기에 대한 평가가 결코 박하지 않으며 MLB에서도 임팩트가 뛰어난 선수들이 누적도 좋은 사례가 많지만[11] 그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꾸준하게 좋은 기록을 세운 돈 서튼등의 투수만 봐도 알겠지만 커리어 내내 상위권에 있었던 선수 역시 고평가를 한다. 결국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레이잉크와 블랙잉크, JAWS 등의 지표로 커리어를 따로 평가하는 것.

둘의 비교는 투수지만 메이저리그의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그렉 매덕스의 비교와 유사한데, 전성기는 페드로가 확연히 앞서지만 통산은 매덕스가 앞서는 점, 페드로도 임팩트에 비해 누적이 저평가 받는 점 등이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최고의 리그인 메이저리그와는 달리 이종범은 상위리그 일본에 진출하여 실적을 남긴 것과, 세이버적으로는 최고였지만 수상 실적으로는 사이 영 상 4회에 빛나는 매덕스와는 달리 mvp와는 연이 없었던 양준혁이라는 점이 있다.

3. 여담

  • 당사자들 역시 이러한 팬덤의 VS 놀이에 재미들렸는지 은퇴 후에는 공식적인 인터뷰건 사적인 자리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더 잘했다고 신경전을 펼친다. 대표적으로 2015년 6월 12일과 13일 펼쳐진 삼성과 KIA의 맞대결에서 이 둘이 해설로 함께 경기를 준비하면서 입담 대결을 펼쳤다. 외부에서 보이는 라이벌리와는 별개로 두 선수는 꽤 절친한 사이로 보인다.
  • 2016년 스크린 야구 레전드야구존 광고에 양준혁과 같이 출연해 "일본만 안 갔어도 형 기록 다 내껀디"라는 드립을 시전했다. #[12][13]
  • 아들에게 이종범 vs 양준혁 떡밥에 대해 엠스플에서 물어본 적이 있는데, 이때 이정후는 양준혁 편을 들었다. 이종범이 시무룩해했다고.
  • 양준혁은 2017년 들어서 다른 이유로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다. 여전히 솔로부대로 남아 있는 양준혁에 비해 이종범은 벌써 아들인 이정후가 프로 선수로 입단해서 그해 신인왕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에 양준혁이 마침내 유부남이 될 것이 확정되자 팬덤에서 이종범과 양준혁의 2세 매치 대결이라는 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이정후는 이미 20대라서 양준혁이 허니문 베이비로 속도위반을 하여도 양준혁 아들이 프로야구에 입문할 때 이정후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40대라서 은퇴했거나 은퇴가 머지 않을 나이대가 된다. 차라리 이정후가 일찍 장가가서 아들을 낳아 이정후 아들 VS 양준혁 아들의 대결을 기대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실제로 허구연도 이쪽을 언급했다. 게다가 이종범의 사위 고우석이 2023년 11월 득남 소식을 알리며 양준혁의 아들보다 이종범의 손자[14]가 더 먼저 나와버렸다.
  • 2017년 3월 MBC 에브리원 비디오 스타에 출연해 만담 콜라보를 펼쳤다. 1997년도 신문기사에서 이종범은 "팀에 기여한 만큼은 받아야겠다. 양준혁보다 적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고 양준혁은 "방망이싸움서는 늘 이기고도 이름싸움서는 늘 뒤졌다. 연봉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종범은 "96년 해태는 우승을 했고 삼성보다 순위가 높았음에도[15] 삼성이라는 곳은 우승을 안해도 돈을 더 많이 받는다. 당시에도 내가 2천만원정도 덜 받았다"며 "회사가 (상대가) 안돼요~. 삼성은 반도체 팔고 우리(해태)는 맛동산 10개 파는데~"라며 당시 겪었던 서러움을 재미나게 풀어놓으며 MC 및 게스트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양준혁은 "야구, 당구, 축구는 이종범이 나보다 더 잘한다. 난 이종범보다 잘하는 게 없다"고 이종범을 추켜세웠으나 이종범은 "양준혁이 자신보다 훨씬 부족하다"면서 "자식도 없고 센스도 없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하였다.
  • 양준혁은 김광현 및 심수창과 함께 2020년 11월 25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때 "본인이 상대했던 선수들 중 누가 진짜 천재 같은가?" 란 MC진의 질문에 이종범을 꼽으며 "93년도에 함께 데뷔했는데 그땐 내가 조금 앞섰지만 그 뒤로는 줄곧 뒤쳐졌다." 라며 그래서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김)광현이가 류현진을 라이벌로 생각하듯 2인자에겐 1인자가 가장 큰 라이벌이지만, 1인자는 2인자를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는다. 1인자에게 라이벌은 자기 자신뿐이기 때문." 이라는 웃픈 농담을 쳤다.
  • 본 페이지 두번째 영상에 나온 것처럼 전설의 타이거즈에 양준혁이 최해식과 함께 출연했을 때 나온 질문 중 하나가 "나는 이종범보다 더 야구를 잘했다?"였는데, 이에 대한 양준혁의 대답은 X였다. 양준혁의 설명은 "우리 시대 때에는 이종범이에요. 저는 선수생활을 내가 좀 뼈가 굵고 이래가지고 부상이 잘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나이 먹어서도 힘이 안 떨어졌죠. 우리 시대 때는 이종범입니다."라 평했다. 덤으로 "상대편에서 이종범은 정말 미치겠다."라고도 평했고, "다시 태어나서 야구를 한다면 본인의 스타일로 할 것이냐? 이종범 스타일로 할 것이냐?"라는 질문에는 O를 들면서 "나는 내 야구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약 감독이라면 '양준혁을 택할래? 이종범을 택할래?'라면 당연히 이종범을 택한다."라 답했다.[16] 반대로 이종범의 경우 예능에서는 농담식으로 해외진출만 안 했으면 기록이 다 자기것이라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지만 비교를 했을 때 누가 더 낫냐는 이야기에 장타와 출루등의 기록을 지닌 양준혁이 더 낫다고 이야기를 하며 서로 리스팩해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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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준혁 통산 KBO 타자 WAR 2위, 이종범 타자 6위 [2] 144경기 환산 없이도 best1~7시즌까지 모두 역대 kbo WAR 1위. 144경기 환산 시 격차는 더 벌어진다 [3] 6년차에 이종범이 일본 진출. [4] 참고로 95시즌 이종범은 63경기만 뛰고도 WAR를 무려 5.03이나 찍었다. [5] 이 외에도 호크스에 입단 할 기회가 있었으나 아라가키 나기사의 스카우트 소동으로 인하여 무산 된 바 있다. [6] 노장에 팀 고참으로서 정신적 지주 역할과 포스트시즌등의 클러치 상황에서 활약을 해서 그렇지 WAR 음수를 기록한 2007 시즌 외에도 2006시즌부터 2군에도 자주 오르락내리락 하는 등 결코 좋은 선수라고 하기에 힘든 활약상을 선보였으며 김원섭의 체력문제, 이용규의 부상 등으로 외야진이 자주 빠지는 일만 아니였으면 외야 한 코너를 담당하기에 결코 충분한 성적은 아니였다. [7] 전성기에 야수로서의 종합적인 평가에선 이종범에 밀려도, 방망이만 놓고 보면 커리어하이 심정수(2003년 wRC+ 210.7)와 이승엽(2002년 wRC+ 198.5)을 가져와도 밀리지 않는 선수가 양준혁이다.(1993년 wRC+ 212 / 1996년 wRC+ 207) 다만 양준혁의 플레이스타일이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출루율과 장타의 중요성이 드러나던 시기에 뛰던 선수가 아니였기에 훗날 세이버메트릭스로 분석해보니 진가가 드러난 유형이라서, 당대의 스타성과 현장의 평가로는 타격에서마저 2인자 이미지가 강했다. 심지어 양준혁 본인조차 자신을 동시대 스타들보다 항상 저평가했으니 말 다한 셈. [8] 마흔 넘어서까지도 꾸준했던 양준혁에 묻힐 뿐, 이종범은 한국 복귀 후 은퇴 때까지 스탯티즈 기준 연평균 WAR 2.3을, 36세인 2005시즌 까지만으로 한정하면 연평균 WAR 4.79를 찍은 매우 꾸준한 타자이다. 대체적으로 36세 부근에서 노쇠화가 시작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종범은 36세 이후 커리어에 비해 추하게 못했을 뿐이지 결코 짧은 전성기만 아름답던 선수가 아니었다. [9] 정확히는 2009년 기아의 우승 이후 롯데 팬인 모 네이버 블로거의 주장에서 시작 된 이야기다. 당시 명예의 전당을 줄 때 통산을 보고 주지 단기성적을 보고 주냐며 움짤 몇 개와 구위로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았던 그렉 매덕스등을 칭찬하는 글을 올리곤 했었는데 그 때 주장하던 근거가 투승타타로서 기아 우승 이후 기아에 대한 반감 + 2008 베이징 올림픽 뉴비 유입등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야구팬들을 두드려 패며 계몽시킨다는 궤변으로 인기를 끌며 이 드립이 흥했고 그게 쭉 이어지며 현재도 일부 커뮤니티에서 통산이 임팩트를 압도한다가 정설인 것 마냥 믿고 있지만 MLB에서도 무조건적인 통산을 추앙하지는 않기에 기준점의 하나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10] 단순하게 마크 벌리와 펠릭스 에르난데스만 봐도 WAR이 마크 벌리가 10 이상 높으나 그 누구도 마크 벌리가 펠릭스 에르난데스를 비교불가 우위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마크 벌리의 누적스탯만 보면 명예의 전당에 입성도 노려봄직한 좋은 누적을 가지고 있으나 임팩트가 없었다는 이유로 득표수가 그렇게 까지 많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1] 당장 본문의 이종범도 임팩트의 대명사지만 통산 누적 war도 kbo 역대 8위로 최상위권이다. [12] 사실 이 멘트는 이승엽에게 더 어울리는 멘트긴 하다. 8년을 나가있었는데도 지금의 통산이다. [13] 누적 기록은 몰라도 이종범이, 98~01의 타고투저때 30-30은 한두번쯤 더 했을 수도 있긴 했다.특히 팬들은 30-30을 3명이나 달성한 99년( 제이 데이비스, 이병규, 홍현우)에는 40-40을 달성했을 거라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99년에 30-30을 달성했다면 2루수였던 홍현우와 30-30 키스톤이 되었을 것이다. 추가로 99년은 양준혁이 유일하게 해태에서 뛰었던 해로, 이종범과 양준혁이 모두 해태에서 뛰는 걸 보게 되었을 수도 있었다. [14] 정확히는 외손자. 사위가 고우석이니, 실제로 임신한 사람은 이종범의 딸이 된다. 그리고 때마침 양준혁이 2025년 득녀예정이라 벌써부터 사위쟁탈전 드립이 나오는 중이다. [15] 게다가 1996년에 삼성은 6위에 그쳤다. [16] 양준혁의 상세한 답은 본 페이지 두번째 영상인 전설의 타이거즈 13편 2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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