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2 14:43:27

이스미 신이치로

파일:RjzE51P.jpg

伊角 慎一郎 / Shinichiro Isumi

1. 개요2. 작중 행보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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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히카루의 바둑의 등장인물. KBS 한국어 더빙판 애니메이션에서는 황현빈으로 로컬라이징되었다.

성우는 파일:일본 국기.svg 스즈무라 켄이치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변현우(KBS), 최재호(투니버스).

1982년 4월 18일생. A형.

일본기원 소속 프로 예비군인 원생. 토우야 아키라에게 자극을 받고 본격적으로 프로 기사가 되기 위해 원생이 된 주인공 신도우 히카루와 안면을 트게 된 이후 와야 요시타카와 함께 많은 도움을 준[1] 4살 위 형이자 함께 프로 기사를 목표로 나아가는 동료다. 덕분에 나이 차이가 있음에도 와야 & 히카루와 허물없이 지낸다.

와야의 평에 따르면 침착하고 날카로운 플레이 스타일이 강점이다. 실제로 프로 입단 시험 도중 히카루와의 대국에서도 상당히 신중하게 두는 바람에 점심시간 전 전반에만 제한 시간을 절반 이상 써 버릴 정도. 후반에도 승기를 굳히기 직전 제한시간을 전부 써 버리는 바람에 계속해서 초읽기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치명적인 실수 전까지는 히카루를 패배 직전까지 몰고 갔었던 것으로 보아 신중한 성격이 초-중반 승기를 잡는 데 꽤나 도움을 주는 듯 하다. 거기에 오치 코스케와의 일전처럼 일단 승기를 잡으면 장고하지 않고 몰아붙이는 등 결단력도 나쁘지 않다. 오치 코스케도 이스미를 평가할 때 잔실수가 거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아 집중력과 침착함도 훌륭한 듯 하지만, 반대로 외적 멘탈은 그리 좋지 못해 프레셔나 돌발 상황에 굉장히 약하고, 결국 시노다의 예언[2]을 그대로 실현시키고 말았다.

히카루가 원생으로 있던 당시의 프로 시험 지원자 중 입단 가능성 1순위로 꼽히고 프로들과 대국해도 대등하게 둘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뛰어났으며[3], 이를 인정받아 프로 기사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바둑 연구 모임 『구성회』의 일원이 되었을 정도다. 그러나 매번 입단 시험에서 미끄러지고 있었는데, 상황에 따라선 독하게 마음을 먹고 승부사 기질을 보여줘야 하는 바둑에서 너무 나도 착한 성격이 발목을 잡아버린 케이스. 특히 소심하고 융통성 없는 순진함 때문에 이런저런 외부 상황에 쉽게 휘둘려 감정 컨트롤을 못하고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패턴이 많았다. 작중에선 모두의 형 포지션이지만, 겉보기엔 그다지 듬직한 느낌이 안 들었던 원인이 바로 이것. [4]

2. 작중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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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가 원생이 된 이후 시작된 프로 시험 본선에서 모두의 예상대로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이며 전승으로 치고 나갔다. 그리고 10승 1패를 기록하고 있었던 히카루와 12회전에 대국 하게 되었는데, 원생이 된 지 고작 1년 좀 넘은 히카루의 실력이 자신과 견줄 만큼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에 신경 쓰고 있다가 휴식 시간 중 오치에게 토우야 아키라가 히카루를 주목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서 멘탈이 흔들리게 되었다.[5]

결국 이게 원인이 되어 대국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고 자신이 유리한 국면에서 단수를 반대로 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6] 그 직후 실수를 깨닫고 바둑돌을 다시 집어 원래 두려고 했던 자리로 옮겼는데, 문제는 이게 반칙 패에 해당되는 행위였던 것.[7] 히카루도 이를 깨달았지만 지적을 하는 게 맞을지 망설이는 사이,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이스미가 먼저 패배를 선언하고 자리를 뜨면서 대국이 이상하게 끝나고 말았다.[8]

히카루는 어차피 최상위권이었기 때문에 이때 흔들리는 멘탈만 잘 잡았다면 그래도 충분히 합격을 노릴 만한 성적이었지만, 이후 양심의 가책과 자신이 한심한 행동을 했다는 모멸감에 빠져 와야 요시타카는 물론이고 원생 1조 상위권 사이에서 은근히 호구로 여겨지고 있던 후쿠이 유타에게도 패하며 2~3위권으로 밀려나는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9]

얼마 뒤 자신과 비슷한 승률을 기록 중인 최대 경쟁자이자 트래시 토크를 걸어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인 오치와의 대결이 됐는데, 오치가 계속해서 앞에서 깝죽대자[10] "닥쳐." 라는 한 마디를 날리고 승리, 곧바로 슬럼프를 극복해 버린다.[11] 여담이지만 이때부터 슬슬 순둥이 같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다크포스를 풍기기 시작했다(...) 보다 어른스러워졌달까.

이후 한동안 연승을 달리며 3~4위권 성적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했지만, 또 다른 상위권 강자인 혼다에게 발목을 잡히며 최종전을 앞두고 4패가 됐다. 일찌감치 프로 입단이 확정된 오치(25승 1패)를 제외하고 다음 순번으로 입단이 유력한 와야와 히카루가 3패를 기록 중이었기에 둘 다 최종전에서 1패를 한다면 자신을 포함한 입단 결정 플레이오프가 열리기를 바라야 하는 상황에 빠졌는데, 와야가 후쿠이 / 히카루가 오치에게 승리하며 둘 다 최종 성적 24승 3패로 마무리하는 바람에 최종 성적 23승 4패인 이스미는 결국 한 끝 차이로 4위가 되어 프로 입단에 또 실패하고 말았다. 이때 큰 충격에 빠진 이스미는 죽은 눈이 되면서 눈물을 삼켰는데, 이번이 원생 자격으로 프로 시험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에 더욱 안타까웠을 것이다. 이후 구성회까지 탈퇴하며 한동안 소식을 들을 수 없었는데...

사이가 성불하고 히카루가 슬픔에 젖어 바둑을 그만두려고 할 즈음에 이스미의 소식이 다시 들려왔다. 구성회 출신의 기사들이 바둑 공부 차 베이징 중국기원을 방문했는데 여기에 선배 기사들의 초청을 받은 이스미도 참가한 것. 그간의 방황을 걱정하는 선배 기사들의 말에 쉬면서 마음을 다 잡았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된다며 이번 교류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감을 찾겠다고 의지를 표명했는데, 자신보다 한참 어린 프로 기사 '짜오스'와의 대국에서 변변한 힘도 못쓰고 패한 것에 투쟁심과 향상심이 촉발되어 다시 한 번 대국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짜오스가 지방 기전 참가를 위해 자리를 비워 대국이 어렵게 되는데, 중국 기원 측 사범이 그러면 여기서 짜오스가 돌아오기 전까지 공부하며 기다리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고 이스미가 이를 받아들이며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다른 기사들과 달리 홀로 중국에 남았다.

이스미는 이곳에서의 경험이 프로 입단 시험 재도전에 도움이 될 거라 믿으며 중국 기원 내 자체 리그전에도 참가하는 등 열심히 바둑을 뒀지만, 이전의 프로 시험에서 고전한 원인이었던 외부 자극에 의한 흔들림이 다시 되풀이되어 고전하기 시작했다.[12] 특히 와야와 똑 닮은 '르어핑'이라는 어린 기사에게 신경이 많이 쓰이게 되었던 것과[13], 중국어를 알아들을 수 없다는 점에 혼란을 느껴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이런 이스미를 눈여겨본 실력파 기사 양하이가 자신의 방에 몰래 묵게 해주며 바둑을 지도해 주었다.

양하이는 이스미가 바둑 공부 안하고 놀기만 하는 르어핑에게 졌다는 말을 듣고 그 녀석에게도 질 실력이면 자기 방에 머물게 해줄 수 없으니 2점 접바둑 실력 테스트를 했는데, 다행히 상당한 실력을 겸비하고 있다고 인정함과 동시에 약점이 무엇인지 한 눈에 간파해 외부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바둑에 집중할 수 있는 기술은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깨달은 이스미는 중국의 유망주들과 대국 하며 마인드 컨트롤 방법을 터득했는데 특히 양하이가 주선해 준 르어핑과의 2차전을 2집 반으로 승리하며 트라우마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각성한 게 나름 명장면. 이후 자신에게 패배를 안겼던 중국 유망주들과의 승률도 엄청나게 올랐고 중국의 톱 레벨 기사들과 대국 하는 기회도 가져보며 중국의 선진 바둑을 흡수해 엄청나게 강해졌다.[14] 참고로 작중에서 르어핑과 10초 바둑을 굉장히 많이 뒀다고 하는데, 서로 이겼다가 졌다가 했다는 걸로 봐선 양하이 말대로 둘의 실력은 호각인 듯.

그렇게 4개월 간 중국에서 무사 수행을 한 이스미는 외부자 자격으로 프로 입단 시험을 치기 위해 일본으로 귀국했다. 그런데 와야와 만나 히카루가 바둑을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히카루를 찾아가 히카루에게 아키라의 소식을 알려주며 히카루를 자극해 봤지만 히카루가 바둑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자 히카루에게 마지막으로 대국을 신청했다. 프로 입단 시험 때 자신의 불찰로 찝찝하게 끝났던 대국을 제대로 다시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 히카루는 이스미의 간절한 부탁에 마음이 움직여 '이스미를 위해서'라는 이유를 마음속에 다지며 고집을 잠시 접어두고 이스미와 대국하게 되었는데, 대국 중 서로 예전보다 강해졌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히카루는 사이의 바둑이 자신의 바둑 속에 살아있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사이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바둑을 계속 하는 것이었음을 깨달은 히카루는 다시 바둑을 두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게 되었고, 이스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후 시작된 프로 입단 시험에서 이스미는 전승으로 합격했다.[15] 비록 히카루, 와야, 오치 등 예전의 라이벌들이 이미 프로가 되었기 때문에 주요 프로 시험 경쟁 상대가 혼다, 아다치, 코미야, 나세, 후쿠이(후쿠)와 외래 지원자였던 카도와키 정도 밖에 없긴 했지만 카도와키도 이스미를 제외한 나머지 수험자들로부터 전승을 따낼 정도의 실력자였고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한자리를 놓고 혼전이 벌어진 걸 감안하면 역시 대단한 성과라 할만하다. 이후 신초단 시리즈에서도 쿠와바라 혼인보에게 6집 반 승을 따내는 쾌거를 거뒀다. 이 신초단 시리즈가 보통 백에게 공제가 돌아가는 일반 바둑 룰과는 달리 하단자인 신초단에게 역공제가 돌아가는(즉 선공+공제를 모두 한쪽이 가지는) 신초단에게 유리한 대국임을 감안해도 역시 대단한 성과. 상대인 쿠와바라 혼인보는 심리전이 주특기로[16] 오가타, 쿠라타 등 젊은 실력파 기사들로부터 혼인보 타이틀을 지켜온 정상급 기사이고, 이 신초단 시리즈에서 같은 유리한 조건을 등에 업고도 아키라, 와야, 히카루[17]는 정상급 프로 기사에게 패배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실제로 대국 상대인 쿠와바라 혼인보도 이스미의 대단함을 보고 기억해두겠다는 말을 남겼다.[18]

이후 한중일 바둑 대항전인 북두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좋아했지만 나이 제한(...)[19]에 걸려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북두배 때는 와야와 함께 북두배에 출전한 히카루를 응원했다. 본작의 스토리는 북두배를 끝으로 끝났지만 작중의 미래에 아키라와 히카루를 위협할 기사로 기대되는 캐릭터이다.

3. 기타

처음에는 주인공을 도와주는 형뻘 캐릭터 정도의 위상인 평범한 캐릭터라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프로 입단 시험 때의 양심적인 행동과 그 이후 번민 및 극복 에피소드 당시 수많은 팬들의 심금을 울려 단숨에 초인기 캐릭터로 등극했다.[20] 실제로 인기투표에서 11,366표를 획득, 2위인 후지와라노 사이를 7500여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제치고 1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특히 여성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참고로 작가가 일본의 프로 기사들 3명에게 '히카루의 바둑에서 어떤 캐릭터를 제일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만장일치로 '이스미'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언급했을 정도. 유튜브에서 히카루의 바둑 리뷰를 진행한 한국의 프로 기사 조연우도 이스미 관련 에피소드에서 너무 공감이 가고 심정이 이해가 된다고 인증하는 등 현직 프로 기사들부터 일반 독자층에게도 고루 공감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1] 특히 연상의 아저씨들과의 대국에서 기에 눌리거나 트래쉬 토크에 말려들어 실력을 100% 못 내던 히카루의 약점을 고쳐주기 위해 아재들이 많이 다니는 기원만 골라서 다니며 일종의 무사 수행을 제안해 준 게 크게 작용했다. 덕분에 히카루는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멘탈의 소유자가 되었고, 이는 히카루가 프로 시험에 합격하는데 있어서 플러스 요인이 되었기 때문. [2] "전승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3] 한국으로 치면 연구생 1조 1위 포지션. [4] 오히려 1조 에이스도 아니었고 작중 패배 횟수가 그렇게 적지 않았던 와야가 도리어 흔들리지 않는 멘탈 덕분에 프로 시험의 강자로 떠오르게 된다. [5] 히카루가 갓 원생이 되었을 즈음에 자신이 토우야 아키라의 라이벌이라고 주장하긴 했지만, 이때는 허세 정도로 생각해 별 신경을 안 썼다. [6] 히카루의 예상 외 실력에 장고를 하느라 먼저 초읽기에 몰린 것도 원인. 이때 히카루는 약 15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7] 당연한 이야기지만 프로 시험이나 공식전 등에선 한번 손가락에서 떨어진 바둑 돌을 다시 집어서 다른 자리에 두면 이유 불문하고 반칙 패가 선언된다. [8] 이후 히카루가 기록 용지에 반칙 패가 아닌, 불계패로 표시해줬다. [9] 여담으로 히카루도 이스미와의 대국이 찝찝하게 끝난 걸 신경쓰다가 다음 대국 상대인 후쿠이에게 패했다. [10] 심리전이라기 보다는 이쪽도 나이가 어리고 있는 집에서 오냐오냐 키운 덕분에 할 말 못할 말 구분을 잘 못 하는 듯 하다. [11] 이 때 대국을 바둑 인공지능인 릴라 제로로 분석해본 결과 이스미가 우변을 타개하는 도중 오치가 말도 안되는 떡수를 둬서 졌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스미가 우변 쪽에 만들던 집을 견제하려면 다른 곳으로 넘어가던 도중 끊어서 단수치면 되는 간단한 국면이었는데, 이걸 오치가 괜히 이어주는 실수를 했다고. 프로를 준비하는 원생이 뒀다기엔 말도 안 되는 장면이지만 만화니까 그냥 넘어간 듯. [12] 베이징의 중국 기원에는 나이는 어리지만 전국에서 특별히 선별 된 프로들이 수두룩하게 모여 있었기 때문에, 이스미가 전력을 다해도 그들에게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이스미와 가볍게 10초 속기 바둑을 둔 이스미 또래의 무명 기사의 실력이 너무 엄청나 일본의 九단 수준이라며 경악했을 정도. [13] 대국 후 르어핑에게 "날 우습게 봤지? 난 이스미 따위한텐 안져~"라는 조롱을 당했다. [14] 이 과정에서 처음에는 거북하게 생각했던 르어핑과도 친해져, 이후 와야와 만날 때마다 와야를 르어핑이라고 놀려 먹는 개그를 일삼게 되었다(...) [15] 오치도 못 해낸 일이다. 중국에서 확실히 성장하고 온 셈. 또한 전년도에는 모두 10대 초반 3명이 합격했다면, 이스미가 합격했을 당시에는 반대로 10대 후반의 연장자들이 합격한 셈. [16] 혼인보전 7차전에서 도전자이자 작중 젊은 기사들 중에선 최강이라 평가 받는 오가타 세이지 九단을 트래시 토크로 살살 흔들어 심리전에서 우위를 차지한 에피소드가 대표적. 결국 이때 된통 당한 오가타는 거의 잡을 뻔 했던 혼인보 타이틀을 놓치고 말았다. 옛날의 이스미가 외부 자극에 마음이 흔들려 중요한 지점에서 발을 삐끗하는 것이 단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꽤나 겹치는 부분이 있다. [17] 다만 히카루는 신초단 시리즈 때 본인 실력으로 토우야 명인에게 도전했다가 패배한 게 아니었다. 당시 히카루는 사이가 내놓은 수를 바둑판에 옮기는 역할만 했을 뿐이고 심지어 사이에게 15집의 핸디가 있다는 가정 하에 둔 변칙 대국이었다. [18] 어찌보면 원생 시절 프로 테스트를 아깝게 실패한 것이 전화위복이 됐다고 볼수도 있다. 당시 이스미는 멘탈 면에서 명백한 약점을 갖고 있었고, 뛰어난 실력에도 한번 패하면 생각이 많아져 기력이 널뛰기하는 기복이 심한 기사였다. 이 상태로 프로가 되었다면 원생 시절보다 훨씬 혹독한 환경, 쿠와바라처럼 노골적으로 심리전을 걸어오는 고수들, 언론의 주목 등 때문에 멘탈이 박살나 무너져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탈락 후 중국 유학 덕분에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멘탈을 장착하게 되었다. [19] 18세 이하의 젊은 기사들간의 대항전인데, 이스미는 19세. [20] 작화를 담당한 오바타 타케시의 작화력 상승으로 인해 이스미가 오치와의 대국 에피소드 즈음에 엄청난 미남 캐릭터로 업그레이드 된 것도 인기 상승에 한몫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