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5 20:20:44

토우야 아키라

파일:토우야 아키라.jpg

[ruby(塔, ruby=とう)][ruby(矢, ruby=や)]アキラ / Tōya Akira

1. 개요2. 작중 행보
2.1. 초등학교 6학년 2.2. 중학교 1학년2.3. 중학교 2학년2.4. 중학교 3학년2.5. 2부
3. 특징
3.1. 성격3.2. 작중에서의 위치3.3. 외모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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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히카루의 바둑의 등장인물. KBS 한국어 더빙판 애니메이션에서는 조현성으로 로컬라이징되었다.

성우는 파일:일본 국기.svg 코바야시 사나에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배정미(KBS), 이현진(투니버스) / 파일:미국 국기.svg Scott Perrie

1986년 12월 14일생 / 혈액형 AB형 / 신장 164cm.

작중 일본 바둑계 최강자이자 5관왕(명인, 기성(碁聖), 천원, 십단, 왕좌)인 토우야 코우요우 외동아들로 2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직접 바둑을 배웠다고 한다.[1] 쉽게 말해 천재 유망주가 업계 최강자에게 개인 교습을 받으며 성장한 케이스.[2] 거기에 바둑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까지 더해져 동년배 중에서는 적수가 없는 강자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숙명의 라이벌 신도우 히카루를 만나게 된다.

2. 작중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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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초등학교 6학년

아버지 토우야 명인이 경영하는 기원에 찾아온 신도우 히카루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다. 히카루가 기원에서 자기 또래인 아키라를 발견하고 바둑 한판 두자고 제안해 대국하게 되었는데, 아키라는 히카루의 엄지와 검지로 돌을 잡는 초보적인 모습에 방심 → 이상할 정도의 고전적인 수(마늘모)에[3] 호기심 → 자신의 실력을 시험하는 수에 경악하는 3단 변화를 보였다.

결과는 아키라의 2집 차 패배였는데[4][5], 패배도 패배였지만, 히카루가 바둑을 단 한 번도 둔 적이 없는 초심자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고 만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날의 바둑을 복기만 하다가 히카루를 찾아내서 다시 대국하게 되었지만, 두 번째 대국에서도 완패하고 말았다.[6][7] 이후 계속 히카루에게 집착하게 된다.

명문 카이오 중학교 입학이 확정된 후, 바둑부에 가입해 달라는 교장의 부탁을 거절하고 나오다가 카이오중에서 개최 중이던 바둑 대회를 구경하게 되는데 거기서 결승전 대국을 하고 있는 히카루를 보게 된다.[8][9] 그리고 이날 아키라는 대회 종료 후 히카루에게 아름다운 대국이었고 너를 뛰어넘어야만 신의 한 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2.2. 중학교 1학년

이즈음부터 히카루에 대한 집착과 라이벌 의식을 제대로 불태우게 된 아키라는 다시 한 번 대국하고 싶어 하제중 바둑부에 찾아갔지만, 히카루에게 "너와는 두지 않아."란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10] 그래도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에 지난번 거절했던 카이오중 바둑부 가입을 결심, 학생 바둑 대회 단체전에 선수로 참가해 히카루와 두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바둑부 선배들에게 각종 괴롭힘을 받는 걸 묵묵히 견디는 고생을 하던 중[11], 실력이 가장 뛰어난 아키라에게 주장을 맡기려는 윤 선생에게 억지를 부리다시피 부탁해서 삼장으로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히카루와 대국하게 되었지만, 그 실력은 바닥.[12] 히카루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진 아키라는 결국 대국 도중 '장난치지 마!'라며 소리를 질렀다. 히카루를 보고 아직 자신이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했었지만, 크게 실망한 아키라는 그 길로 바둑부를 탈퇴했다.

직후 그간 미뤄왔던 프로 입단 시험을 치렀는데, 일본에서 프로 바둑 기사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원생이 돼서 차근차근 배우는 방식을 택하지만, 이미 원생들을 아득히 능가하는 실력을 보유한 아키라는 곧바로 일반인 자격으로 프로 입단 시험에 참가해 예선을 전승으로 통과한다.

얼마 뒤 우연히 세계 아마추어 바둑 대회 행사장을 찾았다가 인터넷 바둑에서 세계 정상급 프로와 아마추어들을 연파하며 유명세를 달리고 있는 sai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주변의 부추김에 sai와 대국하게 된다. 이때 akira란 아이디를 사용했기에 히카루는 진짜 아키라가 아닐까 의심했고, 사이가 한번 떠보자며 위에 언급된 두 번째 대국의 초반부 수순을 그대로 재현하자 아키라는 경악하며 대회 진행에 더 이상 피해를 주기 싫다는 이유로 불계패를 선언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붙자는 채팅을 걸었고, sai가 응해주면서 재대결이 성사되었다. 재미있게도 이 대국 날이 프로 시험 본선 1국과 일정 및 시간이 딱 겹쳤는데 1패를 감수하고 sai와의 대결을 우선시하는 대담한 결정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번에도 사이의 압도적인 실력에 밀려서 불계패하고 말았다.[13]

이후 앞서 언급된 프로 시험 본선 1회전 부전패를 제외하고[14], 나머지 대국에서 모두 승리해 1위로 프로 입단에 성공했다. 그리고 동년배 라이벌이 존재하지 않는 아키라를 자극하기 위해 동문 선배 오가타 세이지가 아키라에게 히카루가 원생이 된 사실을 알려주지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서도 히카루의 손이 닿지 못할 만큼 높은 곳까지 올라가겠다며 투지를 불태운다.

2.3. 중학교 2학년

프로 데뷔전인 자마 왕좌와의 신초단 시리즈에서 패하긴 했지만[15] 다른 공식전에서 호성적을 거두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젊은사자전[16] 2차전에서 히카루와 만나도록 대진표가 짜여졌지만, 그가 1차전에서 무라카미 二단에게 패하는 바람에 오랜만의 재대결은 무산되었다.[17] 다른 원생과 대국하느라 히카루와 무라카미의 대국을 끝내기 장면밖에 보지 못했던 아키라는 종국 후 무라카미에게 히카루와의 대국 내용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지만 왜 진 사람을 신경쓰냐 차라리 2차전 상대인 나를 의식하는게 어떠냐는 짜증 섞인 답변만 들었고,[18] 그 장면을 지켜봤던 오가타에게도 물어봤지만 조바심 내지 않아도 곧 답이 나올 거라는 말을 듣는데 그쳤다.

이후 엄청난 연승과 승률을 자랑하며[19] 프로 기전에서 대 활약을 하면서 입단 대회 초반 히카루가 6연승을 거두며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소식에 큰 신경을 쓰던 중 카이오중 바둑부 고문 윤 선생이 보여준 '히카루 대 한국인 연구생 홍수영'의 기보를 보게 되고 그 실력에 경악했다. 이에 히카루의 실력을 정확히 알고 싶어서 프로 입단 시험에 참가 중인 오치의 할아버지가 몰래 제안한 과외 일을 승낙[20], 히카루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 오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가 히카루보다 낫다며 반발하는 오치에게 '히카루 대 홍수영'의 대국을 보여주어, 그저 프로 시험 전승을 목표로 하던 오치를 '대 히카루 결전병기'로 방향을 전환시켰다.[21] 그러나 오치는 패했고, 자신이 진 대국은 보여주기 싫다고 하여 이번에도 실력 알아보기는 실패.

2.4. 중학교 3학년

히카루가 2위로 프로 입단에 성공한 이후[22] 일본 기원 행사에서 우연히 마주쳤지만 무시하고 가버렸는데, 이유는 히카루의 데뷔전 상대가 아키라였기 때문이었다.[23] 그러나 당일 아버지 토우야 코우요우가 피로누적+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이 발생해 대국장에 나가지 않았기에 부전패로 처리되어 그토록 고대하던 히카루와의 대국이 또다시 무산된다.

며칠 뒤, 프로 기사들의 연구회에 나갔다가 sai가 아버지 토우야 명인과 인터넷 바둑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sai의 바둑을 보며 예전에 자신에게 참패를 안겨줬을 때의 히카루를 떠올린다.

그 후 (사이를 잃은) 히카루가 바둑을 그만두고 부전패를 거듭하자 직접 히카루의 학교까지 찾아가 이유를 물었지만 히카루는 도망쳐버렸다.[24] 히카루의 일로 답답해하는 와중에도 혼인보전 예선에서 기라성 같은 선배 고단자들을 꺽고 별들의 전쟁인 혼인보전 본선 리그에 입성하는데 성공한다.[25] 본선 입성을 결정짓는 대국을 끝마친 후, 마음잡은 히카루가 달려와 '계속 바둑의 길을 가겠다' 고 하자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라고 대답하며 본격적으로 공식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히카루의 복귀 이후 명인전 1차 예선 상대로 만나,[26] "너와의 대국은 2년 4개월만이다" 라는 대사로 스토커 공식 인증. 사실 이전까지의 대국에선 히카루의 몸을 빌린 사이가 두거나, 중간에 그 대국을 히카루가 뺏는 등 순수하게 히카루 실력으로 둔 적이 없어 둘의 실질적인 대국은 17권에 가서야 이루어졌다.[27] 이 대국의 점심 휴식시간에 "네 안에 또다른 네가 있다" 말하면서 사이의 정체를 어렴풋이 눈치챈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이때의 대사가 "너를 가장 잘 아는 나니깐 알수있어. 나만이 알수있어."이다. 히카루가 당황해하자 '아니다, 니가 두는 바둑이 네 전부다, 그건 변하지 않으니까 그걸로 됐다' 로 마무리했지만. 이에 놀란 히카루가 '언젠간 너한텐 (사이의 존재를)말할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무슨 소리냐며 히카루를 쫓아가며 티격태격하는데, 아키라가 드물게도 그 또래 소년들처럼 감정도 제대로 드러내며 제 나이로 보이는 장면.

이 대결에서 히카루에게 이긴 후 평소 자주 가는 그 기원에서 히카루와 함께 바둑을 두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이후 이 기원에서 히카루와 함께 바둑을 두면서 히카루와 바둑 문제로 투닥거리는 아키라의 모습이 자주 묘사된다. 그런데 생각보다 싸움 내용이 수준높은 바둑 이야기가 아닌 같은말을 몇번 반복 했네 안했네 수준의 초등학생 말싸움으로 변질되는 편인 듯. 히카루는 그렇다쳐도 아키라마저... 그만큼 작중 인외괴수로 보였던 아키라가 히카루앞에서 만큼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히카루와는 진지하게 서로 인정하며, 기회만 되면 계속 붙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준다.

2.5. 2부

히카루와 마찬가지로 중학교 졸업을 끝으로 프로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학업은 그만두었다. 한중일 삼국 주니어 기전인 '북두배'가 열리게 되자, 그동안의 실적(연승상, 승률 1위, 혼인보전 본선 리그 진입)을 인정받아 북두배 일본 대표를 뽑는 예선을 면제 받고 일찌감치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다.

한편 북두배 시작 몇 개월 전에 시작된 혼인보전 본선 리그 5회전에서는 사형 오가타 세이지 九단과 첫 공식전 맞대결을 벌였다. 아버지 다음으로 많이 대국 해 본 상대이니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을 갖고 임해 전력을 다한 박빙의 힘겨루기를 펼쳤지만 국면이 불리해진 끝에 불계패를 선언했다.[28] 기자들이 아키라에게 친한 선배와의 대국이라 주눅이 들어서 제 실력을 못낸거 아니었냐는 식으로 말하자, 오가타가 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노려보면서 "그는 평소처럼 냉정하게 실력을 발휘했다. 그 말인 즉슨, 이 대국은 실력 만으로 승부가 났다는 이야기다."라고 서슬 퍼런 말을 남겼고 넌 아직 나보다 한 수 아래다!라는 견제구를 받기도 했다.

이후 북두배 일본 대표로 최종 선발 된 히카루와 키요하루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29] 며칠 동안 함께 연습 대국을 하며 북두배 준비에 매진했다.[30]

그리고 북두배 당일에는 히카루가 고영하를 향한 일방적 적개심을 활활 불태우는데 시점이 집중되다 보니 1부와 달리 아키라의 존재감은 옅은 편. 한국전에서 대장 자리를 히카루에게 내줄 때도 흔쾌히 동의했다. 다만 히카루와 키요하루가 중국전과 한국전에서 연패하는 와중에 혼자서 2연승을 거두는 활약을 펼치긴 했으며, 특히 한국 톱클래스 루키인 임일환과의 대국을 작중에서 자세히 묘사하며 아키라의 천재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최종화에선 바둑계 공인 히카루의 라이벌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젊은사자전에서 히카루와 대국하는 장면으로 엔딩.[31] 서로 히카루와 아키라를 지지하며 투닥대던 원생 쇼지와 오카가 대국 종료 후 각기 우상을 바꿔버린 점이 개그.

여담으로 세계 대회를 위해 중국어 한국어도 틈틈이 공부해서, 북두배 때는 통역 없이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3. 특징

3.1. 성격

평소 성격은 원만하고 학교 생활도 무난히 하는 편이다. 기본적으로는 예의범절을 잘 교육받고 자라 깍듯한 성격이며, 또래 친구가 적다 뿐이지 바둑계 인사들과는 원만하게 교류하며 지낸다. 친구이자 라이벌로 인정한 히카루, 북두배에 같이 출전한 키요하루 등과는 제법 투닥거리면서 나이다운 치기를 보이기도 한다.

다만 바둑에 한해서만큼은 양보가 없고 보통 사람보다 훨씬 강하게 고집을 나타낸다. 그것이 잘 드러나는 예가 스폰서를 상대로 져줘야 하는 바둑에서 상대가 바둑을 하찮게 대한다는 이유로 4면대국을 비겨버린 것.[32][33] 아키라의 쇠고집이 그대로 드러난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중학교 시절에는 바둑부 선배가 안 보고 대국하기[34]를 강요하자 웃어넘기면서 도전을 피했지만 "바둑부에 들어온 이유가 뭐야? 얼른 프로가 되어서 타이틀이나 따라. 아니면 실력 과시하면서 최강이라고 뽐내고 싶냐"는 빈정거림에 "최강의 실력자라면 안 보고도 대국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까?"라고 덥썩 미끼를 물고 바둑판을 보지도 않은 채 선배를 박살내 버렸다. 그리고 한 패거리가 들어와서 상황을 보고 멍때리자 "도전자가 또 있을 줄은 몰랐는데 상대해 드리죠"라고 아예 선빵을 날리기도 했다. 하필 히카루와의 대국을 통해 '최강'에 대한 관념이 소용돌이치고 있을 때라지만, 명백히 학폭에 속하는 저런 요구를 그대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말도 안 되는 호승심이 발동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 외에도 히카루가 삼장으로 대회에 나온다는 얘기에 바둑부 고문인 윤 선생에게 이번 한번이면 된다.이번 대회가 끝나면 부활동을 그만두겠으니 삼장을 시켜 달라고 머리 숙여 부탁했을 정도, 히카루와의 대국에 대한 집착은 작중 최강 수준이다.

자마 왕좌의 어그로를 끈 것도 모난 성격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이 경우 아키라가 눈꼽만큼도 쫄지 않고 웃는 얼굴을 유지했기에 자마가 알아서 빡친 것에 가깝다.[35] 자마는 겸손하게 저자세로 나오는 후배를 기대했지만, 아키라는 예의를 갖추면서도 본인을 실제보다 낮출 생각은 하지도 못했던 것. 엄밀히 말해 이 경우 자마 왕좌가 밴댕이 소갈딱지인 거지 아키라가 뭘 잘못한 건 없다. 아키라는 바둑을 배워온 뒤로 평생 동안 실력이 있었는데다, 아버지가 네 실력으로는 또래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으니 자중해라라는 메시지를 심어줬기 때문에, 본인의 능력이 높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일본 바둑계의 최강자인 아버지의 은퇴에 아쉬워하는 관계자에게 "그만큼 제가 분발하겠습니다."라고 웃는 낯으로 지나가듯 말하는 것이 그 증거. 본인이 분발하면 아버지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는 얘기다.

어려서부터 바둑만 둬서 그런지 아버지 토우야 명인의 제자들을 제외하면 친한 사람이 별로 없다. 또래 친구도 거의 없어 보이며, 그래서인지 라이벌이자 친구인 히카루와의 관계가 더 부각되기도 한다. 다만 히카루와 친해지고 나서는 정말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유치한 말다툼이 잦아지고 있다. 북두배를 앞두고 일본 대표끼리 밤샘 바둑 연습을 할때 졸고 있던 키요하루에게 빡쳐하면서 주전자를 던지는 모습 또한 그래도 그 나이대의 아이라는 실감하게 해준다. [36]

3.2. 작중에서의 위치

기본적으로 신도우 히카루와 서로 자극하며 성장해 나가는 라이벌. 사이와 함께 히카루의 목표이기도 하며, 엔딩 즈음에는 사실상 동등해졌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히카루와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동년배 중에서는 적수가 없는 천재 바둑 소년이었다. 심지어 아버지 토우야 명인은 아키라를 어린이 바둑 대회에 일절 내보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아이들의 기를 죽여서 바둑계의 새싹을 잘라내게 되기 때문이라고.[37][38] 이러한 연유로 아버지의 기원이나 어릴 때 잠깐 다닌 바둑 교실 이외에 대중 앞에서 바둑을 둔 적은 없는 듯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중 바둑계에서 토우야 아키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39]

한국 대표팀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무난하게 저 나이대 최강으로 인정받았을 테지만, 홋타 유미가 한국에 취재를 갔다오면서 고영하가 등장하게 되는데... 고영하와 대국을 한 적이 없으므로 뭐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40] 토우야 명인의 평에 따르면 둘의 재능은 비슷한 모양이다. 앞으로 히카루와 더불어 세계무대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인재.

히카루와 함께 주인공으로 봐도 무방하다. 라이벌이 없던 아키라에게 사이라는 강력한 존재를 보여줌으로서 아키라의 성장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고 다시 그 뒤를 쫓는 히카루의 성장의 관계. 따라서 주인공을 아키라 중심으로 이끌어나가도 매우 흥미있는 전개가 되며 파죽지세의 연승행진 및 도저히 이길수 없었던 사이를 향해 끊임없는 도전 정신이 매우 인상적이다.

3.3. 외모

어린 시절에는 기본적으로 차이나 칼라의 자켓에 끝단이 단정하게 접힌 반바지. 정장 느낌이 물씬 난다.[41] 무표정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웃는 걸 보면 굉장히 해맑다. 나이가 들어서도 애니메이션에선 초록빛이 도는 일자 앞머리의 단발이지만, 일러스트에선 종종 색이 바뀌곤 한다. 앞머리는 거의 눈까지 내려오지만 애니에선 눈썹 위로 올라갔다.[42] 중학생 때는 대체로 교복이거나, 공식 대국 혹은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므로 정장 차림이다. 사복을 입은 모습이 굉장히 적게 나오는 캐릭터. 어느 때건 컨셉이 단정과 격식인 듯.

중학교 때 바둑부에 들어가자 여학생들이 얼굴을 붉히며 지도바둑을 둬 달라고 다가온 걸 보면 작품 내 공식 미소년이 맞는 듯하다.

사실 처음 등장할 때의 아키라는 성격도 밝고 여자같이 귀여운 미소년으로 그려졌는데, 초반 이후부터는 히카루와 충돌하고 집착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냉정하면서도 저돌적인 소년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컨셉 자체는 스토리 작가와의 협의 하에 미리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딱히 중간에 계획이 변경된 경우는 아니다.[43] 히카루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첫 등장시 모습을 유지하면서 좀 더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자라났을지도 모른다. 현실은 눈에 힘주면 주변 기온이 내려가는 얼음장 같은 남자 하지만 잘생긴건 여전하다.

4. 기타

  • 성(姓)에 관해서는 번역이 다양하다. 도우야 토우야 토야 도야... 장음 때문인 듯. 국내 정발판에는 '도우야 아키라'로 번역되었지만 완전판에서는 '토우야 아키라'로 번역되었다. 본 문서의 제목은 완전판 번역을 따라서 토우야 아키라. 참고로 진짜로 외래어 표기법을 정확히 따르면 도야 아키라가 맞다.
  • 작중 애용하는 대사로 장난치지 마!가 있다. 번역은 다양하지만 원본에선 대체로 저거 하나인 듯.
  • 오바타 타케시가 그린 10년 후 일러스트 속에서는 기존의 칼단발에서 긴 머리로 헤어 스타일을 바꾸었다. # 묘하게 모자 벗은 후지와라노 사이와 비슷해졌다.
  • 특이하게도 한미일 성우가 전부 여성인 공통점이 있다.


[1] 다만 일본이라 만으로 나이를 세기 때문에 한국식으로는 3~4살이다. 아키라가 12월 생이므로 한국식으로는 4살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2013년 12월 생 아이가 2016년 12월 전에만 바둑을 시작하면 만 2세 때부터 바둑을 배운 셈이 된다. 엄청 어리긴 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 [2] 덤으로 오가타 세이지 같은 선배 문하생들 + 아버지와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톱 레벨 기사들과도 대국 및 공부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셈. [3] 소목에 날일자로 걸쳤을 때 마늘모로 받는 정석. 과거엔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으나 덤이 생긴 현대바둑에선 느리다며 잘 두어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바둑 인공지능들이 이 수를 두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따라 두게 되면서 이제는 고전적인 수가 아니게 되었다. [4] 다만 이건 대국 전에 아키라가 덤을 적용하고 두자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현대 바둑에서 추가된 백에게 덤을 주는(이 작품이 연재 되던 90년대 말에는 5집 반, 현재는 한국과 일본에선 6집 반/중국에선 7집 반이 백에게 주어진다.) 규칙을 적용했다면 이 대국은 아키라의 3집 반 승리였다. [5] 참고로 이 대국은 1851년 10월에 혼인보 슈사쿠와 혼인보 슈와가 둔 기보를 사용했다. 한국의 프로기사 조연우 二단의 해설. [6] 본래 사이는 첫 번째 대국 때처럼 적당히 봐주면서 지도기를 두려고 했지만, 아키라가 제 실력을 드러내며 무섭게 공격해오자 자기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느껴 어쩔 수 없이 진심 모드로 아키라를 불계로 꺾어버렸다. [7] 사이와 아키라의 2차전 해설. [8] 실제로는 후지와라노 사이의 지시대로 뒀다. [9] 1990년 7월 19일 승단전 오카 미츠오(岡光雄) 八단 vs 칸다 에이(神田英) 九단의 대국 내용을 반영했다. 해설. 당시 기보. [10] 히카루는 하제중 바둑부 활동을 통해 실력을 키워 대리바둑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아키라에게 도전하겠다는 결심을 했기에 '아직은 때가 아님'이라는 의미로 일부러 거절했다. [11] 아키라의 실력이 너무 뛰어난 데다 바둑부 고문인 윤 선생에게 특별 대우를 받고 여자 부원들이 지도기를 부탁하는 등 다른 남자 부원들의 시기를 받기 딱 좋은 포지션에 있었다. [12] 대국 초반까진 사이의 지시대로 뒀는데, '저 녀석이 집착하고 있는 건 내가 아닌 사이의 실력'이라며 중반부터 자기 실력으로 승부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대국 내용은 초반엔 수준이 높았지만, 중후반은 아직 실력이 모자른 히카루가 뒀다보니 엉망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 [13] 참고로 이 대국은 1998년에 열린 신초단 시리즈 중 고바야시 사토루 九단과 김현정 初단의 기보를 사용했다. 한국의 프로기사 조연우 二단의 해설. [14] 당시 세계 아마추어 바둑 대회 행사장에 있었던 와야 요시타카는 아키라가 왜 안나왔는지 알고 있었고, 이걸 프로시험에 지원한 모두를 무시하는 비매너 짓거리라며 이를 갈았다. [15] 본래 실력대로 뒀으면 좋은 승부가 되었을 건데 원생이 된 히카루가 이 대국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뭔가 보여주기 위해 무리수를 많이 뒀으며, 당대 최고수 중 한 명인 자마 왕좌가 이를 놓칠 리 없었기에 지는 게 당연했다. [16] 저단자급 프로기사와 원생들이 참여하는 제한기전. [17] 이 대국에서 히카루는 악수를 호수로 바꾸는 장면을 연출했지만 끝내기에서 계속 당하는 바람에 결국 6집 반 차이로 패하고 말았다. [18] 그 후 2차전에서 무라카미는 아키라에게 무참하게 깨졌다. [19] 히카루가 오치와 최종국을 두던 시점에서 20연승을 기록하고 있었다. [20] 입단 대회에서 두어진 기보는 공식적으로 외부에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참가 중인 사람을 통해 알아낼 수 밖에 없는 상황. [21] 히카루가 전승의 가장 큰 걸림돌이긴 했는데... 중간에 이스미에게 패하며 전승 입단은 일찌감치 물거품이 되었다. [22] 참고로 오치, 히카루, 와야 요시타카가 입단했다. [23] 정확히는 승단 대회. 과거엔 프로 기사들이 여기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만 승단 할 수 있었다. 현재는 국내외 기전에서 성적을 내거나, 공식전에서 승수를 쌓아서 승단 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차이가 있다. [24] 두 사람이 대화한 건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따라와라" 라고 선언한 이후 처음이다. 만나도 무시하던 아키라가 학교까지 직접 찾아간 걸 보면 아키라 본인도 히카루와의 대국을 학수고대하던 것. [25] 참고로 실제 일본 바둑계에서 중학생 프로 기사가 혼인보전 본선 리그에 진출한 적은 없다. 시바노 도라마루가 17세의 나이로 혼인보전 본선 리그에 진출한게 최연소 기록이다. [26] 아키라의 실력이라면 명인전 본선에 있어야 했지만, 작년 리그에서 쿠라타 아츠시에게 패해 예선전 리그에 남게 된 상황. 이게 아니었으면 히카루와 아키라가 공식 기전에서 대국 하는 건 상당히 늦어졌을 것이다. [27] 이때의 대국은 1999년 NHK배 나카노 히로나리 vs 혼다 쿠니히사의 기보가 사용되었다. # [28] 참고로 같은 시각, 히카루는 연구회 대선배인 모리시타 시게오 九단과 혼인보전 2차 예선 2회전 대국을 치러 아키라와 마찬가지로 패했다. [29] 히카루는 키요하루가 호텔방을 잡으면 거기에서 연습 대국을 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지만, 아키라는 우리 부모님이 중국에 가 계셔서 현재 우리집에는 나 혼자 뿐이니 우리집에서 묵으며 연습 대국을 하자고 제안했다. [30] 둘째 날에는 일본 대표팀 단장인 쿠라타 아츠시도 찾아와 지도해줬다. [31] 히카루가 첫 수를 두는 장면에서 끝났기 때문에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32] 국회의원 일행이 안하무인으로 기사들을 무시하고 바둑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보이자 아키라가 화가 나서 저질러버린 사건으로 접대 바둑이라 봐 주지만 너희들은 프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정도의 퍼포먼스로 이해할 수 있다. 자신보다 하수라지만 네 명을 상대로 이기지도 지지도 않게 집을 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 반 집 덤이 없긴 했지만 이것만으로도 기예 수준이다. [33] 국회의원이 처음엔 프로를 상대로 비겼다며 잘난척을 하다가 "그런데 4명을 상대로 동시에 비기는게 가능한가?"라고 서서히 진실을 깨달으며 소름돋는단 표정을 보이는게 압권. 여담으로 아키라의 돌발행동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이 이를 좋게 본 덕분에 결과적으론 잘됐다. 아예 발라버렸어도 됐지만 오히려 상대를 부끄럽지 않은 선에서 봐주며 자기 주장도 한 것이다. [34] 맹기(盲棋)라고 하여 사실 프로들 사이에서는 이벤트성 경기로 꽤나 자주 하는 대국이다. 물론 중학생에게 이 정도 경지를 요구하는 건 미친 짓. [35] 실제로 유현의 방에서 기록담당과 기자에게 농담도 건내면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든건 토우야 본인이었다. 이런 토우야가 사회성이나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36] 정확히는 키요하루가 연습 도중에 졸고있던 히카루, 아키라를 깨웠는데 정작 깨우던 당사자가 자니깐 둘다 빡쳐서 연출된 장면이긴하다. [37] 실제로 아키라의 재능에 짓눌려 바둑을 그만둔 대표적인 캐릭터가 하제중 쇼기부 부장 카가 테츠오다. 아버지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둑을 시작했지만, 바둑교실에서 만난 아키라에게 밀려서 만년 2위에 머무르며 심적 부담이 컸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아키라가 걱정 어린 눈빛과 함께 "내가 져줄까?"라고 하며, 진짜로 져주기까지 하자, 멘붕에 빠져 바둑을 그만뒀다. [38] 히카루를 만나기 위해 중학교 바둑 대회에 나갈 때도 전후 사정은 잘 몰랐지만 명인이 왜 중학교 바둑부에 가서 바둑을 두려하는지, 불편한 기색을 내기도 했다. [39] 일본 최강 기사인 부친의 개인지도를 받는데다 부친을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프로기사들&토우야 명인 연구회 소속 프로기사들과 대국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으니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도 하다. [40] 히카루와 홍수영의 번외 대국을 보러 기원에 따라갔을 법도 한데 따로 고영하와 대국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41] 사립 초등학교 교복으로 추정된다. [42] 표정 표현을 위해서라고 한다. [43] 다만 토우야 아키라의 캐릭터 설정은 기획 과정에서 좀 오락가락한 감이 있는데, 처음에는 전형적인 열혈 라이벌 캐릭터적인 디자인도 만들어졌었다고 한다. [44] 그 뒤을 이은 것이 데스노트 L, 바쿠만 니즈마 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