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22:04:30

후지와라노 사이

1. 개요2. 작중 행적
2.1. 생전( 헤이안 시대)2.2. 에도 시대2.3. 현대
2.3.1. 히카루와의 운명적인 만남2.3.2. 인터넷 바둑의 초고수 sai2.3.3. 토우야 코우요우와의 대국과 깨달음, 그리고 성불
3. 특징
3.1. 성격3.2. 외양3.3. 성별
4.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후지와라노 사이.jpg
藤原佐為(ふじわらのさい) / Fujiwara no Sai

히카루의 바둑의 등장인물.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세계관 최강자다.

성우는 파일:일본 국기.svg 치바 스스무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구자형( KBS),[1] 김장( 투니버스) / 파일:미국 국기.svg 브래드 스웨일.

2. 작중 행적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2.1. 생전( 헤이안 시대)

일본의 헤이안 시대에 활동했던 바둑 기사[2][3] 천황의 바둑 스승이었다. 쉽게 말해 천황에게 뛰어난 바둑 실력을 인정받고 관직까지 받은 인물.[4]

그러던 어느날, 다른 바둑 스승이 천황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건 1명이면 충분하다고 간언하였고, 이게 받아 들여져 승자가 바둑 스승으로 남는다는 조건이 달린 대국에 임하게 되었다. 이 대국에서 사이는 백을 잡았는데,[5] 우연히 상대방의 흑돌 통에 백돌이 1개 섞여 있었다. 본래라면 매너 상 섞여 있다고 말하고 돌려줬어야 했는데, 상대방은 슬쩍 자기가 따낸 돌로 만들어버렸고 이를 눈치챈 사이가 지적하자 "니가 이기려고 그러지 않았냐?"며 적반하장을 시전했다. 심지어 대국을 관전하고 있던 천황이 그냥 대국을 계속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제대로 바로잡을 기회도 사라져 버렸고, 결국 평정심을 잃어버린 사이는 허무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결국 바둑 스승에서 짤린 것도 모자라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억울한 누명까지 쓰고 천하의 나쁜 놈 취급을 받으며 궁에서 쫓겨난 사이는 식음을 끊고 3일간 배회하다 강에 뛰어들어 향년 20세의 나이로 자결했다.

2.2. 에도 시대

자결 후 혼이 되어 한 바둑판에 잠들었다가 무려 800여 년이 지난 에도 시대에 다시 활동하게 되었다. 당시 바둑 기사를 지망하던 어린 소년 쿠와바라 토라지로와 만나 그의 몸에 깃들었고, 이후 사이가 지시하면 토라지로가 대신 두는 식으로 대국 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이의 뛰어난 실력 덕분에 그는 혼인보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고, 이후 혼인보 슈사쿠로 개명[6], 어성기(御城碁)[7]에서 19연승을 기록하며 당대 바둑계를 평정했다. 그러나 슈사쿠가 전염병인 콜레라에 걸려 바둑판에 피를 토하며 사망하자[8], 다시금 그 바둑판에 잠들었다.

참고로 쿠로후네 사건 페리 제독도 아는 걸 보면 상당히 근대와 가까운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작중 언급은 140년 전으로, 쿠로후네 사건이 1853년이고 현대의 배경이 1990년대 최후반[9]인데다 혼인보 슈사쿠도 1837년부터 1862년까지 활약했기에 얼추 연대가 맞아떨어진다. 머나먼 헤이안 시대의 사람인 사이가 현대에 와서도 적응 문제가 크게 없이 없이 무리없이 바둑을 둘 수 있었던 것도 어떻게보면 이 서양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과도기를 살짝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10] 허나 인간이 달에 착륙했다는 등의 과학적인 이야기는 너무 낯선 이야기라서 그런지, 그런 게 있을 수 있냐고 추궁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신기한 상자라고 하거나 헤이안(약 1000년 전)과 에도 시대(약 150년 전) 시절보다 현재와 토라지로 시절이 더 갭이 크다는 등의 소리도 했다.

2.3. 현대

2.3.1. 히카루와의 운명적인 만남

슈사쿠와의 만남으로부터 140여 년이 지난 현대 일본 시점에서 주인공 신도 히카루의 큰 할아버지가 '귀신이 씐 바둑판'이라는 소문이 도는[11] 그 바둑판을 재미로 사들여 보관하다 사망하고, 그의 동생인 히카루의 할아버지가 유품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 바둑판을 물려 물려 받아 막이용으로 집 창고에 보관하게 된다. 그런데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온 히카루가 이걸 팔아서 용돈 벌이 하겠다며 만진 그 순간, 사이가 깨어나 그의 앞에 나타나면서 이 작품이 시작된다.

본래 히카루는 바둑에 관심이 없었지만, 사이가 그 무신경한 말들(ex:바둑은 고리타분하다.)에 상처 받고 슬퍼할 때마다 그 의식이 히카루를 감싸서 구토를 유발하는 바람에[12], 본의 아니게 반강제로 히카루에게 대리 바둑을 두게 했다.

처음에는 히카루의 할아버지와 대국을 시도했지만, 이 당시 바둑 생초짜였던 히카루가 바둑을 둘 수 있을 리 없었기에 실패했고, 히카루가 동네 바둑 교실을 다니며 기초를 익힌 덕분에 간신히 바둑을 둘 수 있게 되었다.[13] 그리고 동네 기원에 나갔다가 히카루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토우야 아키라에게 대국을 신청해[14] 드디어 현대 시대에서 처음으로 대국 하게 된다. 이 대국은 호선으로 히카루가 흑을 쥐고 사이가 시키는 대로 뒀는데, 결과는 히카루의 2집 승이었다.[15]

이후 생초보에게 지도기를 받은 느낌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던 아키라가 다시금 길가던 히카루를 붙잡아 2차 대국이 펼쳐졌는데, 본래 사이는 첫 번째 대국 때처럼 지도기를 두려고 했지만, 아키라가 눈에 불을 켜고 무섭게 공격해오자 자기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느껴 어쩔 수 없이 제 실력을 발휘해 아키라를 불계로 꺾어버렸다.[16]

그리고 며칠 뒤, 동년배에 적수가 없다고 생각되던 아들이 2번이나 졌다는 소문을 들은 작중 일본 바둑계 No.1이자 아키라의 아버지인 토우야 코우요우가 히카루에게 네 실력을 알고 싶다며 대국을 제안했고, 사이는 토우야 명인이 자신과 맞먹는 레벨의 초고수라는 사실을 기백만으로 직감했다. 이 대국은 토우야 명인의 기백에 놀란 히카루가 중간에 놀라서 뛰쳐 나가는 바람에 중단되었지만, 초반 몇 수만 둬봤을 뿐인데도 사이는 이 사람이라면 신의 한 수를 추구하는 같은 기사로서 멋진 대국이 가능할 거라며 불타오르게 되었다.

한편 아키라와의 대국 2판을 통해 자극을 받은 히카루가 본격적으로 바둑에 진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기뻐하며 틈 나면 히카루와 바둑을 두는 친구이자 선생님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이는 히카루에게 엄청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의 성장에 기여, 아니 전적으로 키웠다.[17] 과거 및 현대에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세계 정상급인 기사가, 천재적 소질을 가졌지만 티는 잘 안 나는 아이를 24시간 옆에 데려다 놓고 가르친 것. 실제 프로 기사가 돈을 받고 출장 형식으로 바둑 과외를 해주는 시스템도 있긴 하지만, 정상급 기사들은 그런 일에 손도 대지 않는다는 점을[18] 감안할 때 사이와 보낸 3년은 히카루에게 땡 잡은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즈음부터 몸이 없어 히카루가 대신 돌을 둬 줬는데, 첫 등장 이후 사라졌던 부채가 나타나 대국 시 놓을 돌의 위치를 짚어주는 역할을 했다. 사이가 착점을 말로 설명하면 정신사납다는 이유로 히카루가 부채로 말 없이 표시하라고 일러둔게 정착된 케이스인데, 히카루를 통해 타인과 대국하는 장면에서 접힌 부채를 내뻗어 착점을 표시하는 이 행동 자체가 사이표 간지 아이템으로 등극했다.[19]

2.3.2. 인터넷 바둑의 초고수 sai

얼추 바둑에 대한 눈이 뜨이게 된 히카루가 자기 실력으로 바둑을 두기 시작하자 자신이 나설 차례가 격감한 사이는 갑갑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둑 행사에서 인터넷 바둑의 존재를 알게 된 히카루가 여름방학 동안 한 인터넷 카페에서 사이의 소망을 이뤄주기로 한다.[20] 그곳에서 sai라는 닉네임으로 히카루를 통한 인터넷 대리 바둑을 원 없이 두게 된 사이는 전세계 아마추어 고수들은 물론이고 프로 기사들까지 모두 꺾으며 무패를 기록했는데, 특히 이 과정에서 바둑판에 잠들어 있는 동안 새로이 개발된 현대의 바둑 포석 및 정석들을 습득해 한층 더 강해졌다. 우연히 sai와 대국한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와야 요시타카"혼인보 슈사쿠가 현대의 정석을 배운 것 같다."고 평했는데, 그 말이 딱 맞았다.

덕분에 일본에서 열린 국제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한 각국 고수들이 일본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sai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마침 같은 장소에 있었던 토우야 아키라는 sai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akira란 닉네임으로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 접속했다. akira가 토우야 아키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히카루는 akira에게 대국을 신청했고, 사이는 시험해 보기 위해 일부러 지난번 대국과 같은 수순으로 뒀다. 이에 당황한 아키라는 대국을 중지하고, 다음에 날을 정해서 다시 대국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약속한 날짜에 아키라와 다시 대국하게 된 사이는, 이전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불계승을 거두었지만,[21] sai의 정체가 들통날 위험성이 높아졌다고 느낀 히카루가[22]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부터 인터넷 카페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사이는 더 이상 인터넷 대리 바둑을 둘 수 없게 되었다.

2.3.3. 토우야 코우요우와의 대국과 깨달음, 그리고 성불

그 후 카이오중 바둑부 주장 키시모토를 통해 아키라가 프로에 입단한 사실을 알게 된 히카루는 아키라를 따라잡기 위해 일본기원 원생이[23] 되었다. 이때부터 사이는 더 본격적으로 히카루를 지도했고, 덕분에 히카루를 바둑 입문 3년 만에 프로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갓 입단한 프로들과 고단자들이 대결하는 이벤트성 기전인 '신초단 시리즈'에서 히카루의 상대가 이승에 돌아온 후 꼭 상대해보고 싶었던 토우야 코우요우임을 알게 되자[24], 히카루에게 억지를 부려 자신이 대국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대국 성격상 신초단이 흑을 잡고 백에게 주는 덤도 없는데다 역덤으로 5집 반까지 받는 매우 유리한 조건이기 때문에 이대로 그냥 대국했다간 사이가 간단히 이겨버릴게 뻔한 힘빠지는 대국이 될거라며 히카루는 거절했다. 그런데 대국 당일 사이의 강력한 의지를[25] 도저히 무시하기 어려웠던 히카루가 '15집 정도의 핸디를 안고 있다는 전제로 대국하면..'이라는 발상을 하자, 사이가 그런 식으로 두겠다고 해서 대국이 성사되었다. 초고수들끼리의 대결에서 15집이란 큰 핸디를 안았다는 가정하에 뒀기 때문에 사이는 반면 전체에 걸쳐 난전을 유도하는 무리수를 뒀고, 덕분에 제3자의 눈으로 보기엔 대국이 엉망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TV 중계를 통해 이를 관전한 와야, 오치, 아마노 기자 등은 쓴소리를 했을 정도. 그러나 상대 대국자인 토우야 명인을 포함, 쿠와바라 혼인보, 오가타 세이지 九단 같은 고수들은 어렴풋이 대국의 변칙적인 흐름을 알아챘다. 이들은 히카루가(=사이가) 스스로 핸디를 전제한 채 대국했음을 느끼고 히카루의 실력에 대한 평가를 낮추지 않았으며, 쿠와바라 혼인보는 "만약에 또 이런 대국이 벌어진다면 다음에도 저 꼬마에게 돈을 걸겠다"라고 말하며 히카루를 높이 평가하였다. 정확히 말하면 히카루 안에 있는 사이에 대한 평가였지만. 어쨌든 이 대결은 중앙 흑 대마가 몰살을 당한 끝에 불계패를 선언하며 끝났고, 사이는 복잡한 심정을 느끼게 되었다. 히카루에게도 중요한 대국이었는데 그것을 망가뜨려버린 미안함과, 그러면서도 다음번에는 제대로 대국하고 싶다는 열망이 뒤섞였기 때문이다.

그 후 피로누적+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토우야 코우요우의 병문안을 간 히카루가 자신이 아는 지인이 팬인데 인터넷 바둑으로 대국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해 그토록 바라던 토우야 명인과의 진지한 대국이 성사되었다. 이 대국은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엄청난 관전 속에 진행되었고, 사이 스스로도 이승에 돌아온 이후 최고로 전력을 다해 상대한 승부였다. 결국 사이가 불계승을 거두고[26] 이 승리에 대단히 만족스러워 했지만, 히카루가 토우야 명인이 역전할 수 있는 수를 알아내서 자기에게 알려주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이윽고 신은 히카루에게 이 일국을 보여주기 위해 나에게 천 년의 시간을 허락한 것이다.라고 '자신이 아닌' 히카루를 위해서 자기가 아직 지상에 있다는걸 깨닫게 된다.

토우야 코우요우와의 대국 후, 사이는 자신이 곧 사라질 것임을 깨닫고 토우야 코우요우의 재대국 요청에도 '시간이 없다.'며 머뭇거렸다. 이러한 불안함에 자꾸 대국을 졸라 히카루를 귀찮게하는 등 안쓰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히카루를 가르칠 때도 전보다 예민하게 구는 등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진 면모를 보인다. 그러면서도 왜 자신이 아니라 히카루냐면서 자신과는 달리 미래를 가진 히카루에 대한 질투심과, 히카루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슬픔이 복잡하게 뒤엉켜 남몰래 홀로 괴로워한다.

이후에는 지방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술에 취해있던 오가타 세이지와 대국해주는 서비스 정신도 발휘.[27] 그 후에 행사를 끝내고 귀가해 자려던 히카루를 붙잡고 마지막 대국을 시작했지만, 토라지로와 만나고 히카루를 만나 온 자신의 삶이 신의 한 수를 향해가는 커다란 여정의 하나이며, 자신의 역할이 끝난 것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 때 마지막으로 히카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마침 히카루가 피곤에 지쳐 졸고 있던 바람에 히카루는 사이의 작별인사를 듣지 못했다.[28]

성불하기 직전에 후지와라노 사이의 대사는 어떻게 보면 이 만화의 주제의식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는데..
토라지로(혼인보 슈사쿠의 본명)가 나를 위해 존재했다면 나는 히카루를 위해 존재했다. 그리고 히카루도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겠지. 그렇게 천년.. 2천년이 쌓여간다."

스스로 성불할 운명을 예감하고 있던 사이는 그 이전부터 혼잣말로 계속해서 히카루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중얼거렸지만, 히카루는 사이의 걱정을 그저 기우라고만 생각했고 결국 이후로 만나지 못한다.

사이가 성불한 이후 히카루는 사이를 찾아 헤매지만 도중 슈사쿠의 기보를 보고 그제서야 사이의 천재성을 깨닫고, 슈사쿠 때처럼 사이에게 바둑을 두게 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두었던 것을 후회하며 더 이상 바둑을 두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히카루가 프로 대국에 계속해서 불참하자 결국 이스미가 히카루를 찾아가 히카루와 대국을 벌이는데 대국 도중 히카루는 사이가 자신이 두는 바둑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사이를 만나는 유일한 방법은 바둑을 두는 길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장면에서 히카루가 돌을 손에 쥐고 바둑판 위에 돌을 놓는데 뒤에서 사이의 부채가 같이 나아가는 명장면이 연출된다.

이후 개심하여 프로기사로서의 활동에 복귀, 아키라와의 프로데뷔 첫 공식 맞대결을 펼치고 집에 돌아와 잠에 빠진 히카루의 꿈에 나타나서 말없이 자신이 애용하던 부채를 건네주는[29][30] 장면을 끝으로 더이상의 직접적인 등장은 없다.

2부에서는 이미 성불한 뒤이기에 당연히 나오지 않지만, 그 존재는 2부 전개의 키포인트로 작용했다. 또한 신도우 히카루 토우야 코우요우, 토우야 아키라는 여전히 사이의 강함을 뒤쫓고 있다.

3. 특징

3.1. 성격

첫 등장은 슬픈 유령 정도였고, 토라지로와 만났을 때의 첫 대사를 보면 꽤 기품이나 위엄 같은 것도 있어 보이는데 어째 히카루와 만나고 나서부터는.. 가끔 바둑을 못둬서 갑갑해하거나, 토우야 코우요우와의 일전 이후 사라질 것임을 깨달았을 때 이외엔 성격이 갈수록 귀여워지는 듯 하다. 원작자 홋타 유미가 말하길 '자신이 그럭저럭 귀엽게 그리면 그림 작가 오바타 타케시가 훨씬 귀엽게 그려주고, 또 거기에 자극받아서 더 귀엽게 그리면 오바타가 또 더 귀엽게 그려주고...'의 산물이라고.

성격적인 면으로는 어른스럽고 자상하며 평소에는 나긋나긋 부드럽고 고고한 자세를 취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혈질이 되기도 한다.[31]. 분위기를 잘 타고 보기보다 고집도 세다.

할 말을 똑 부러지게 못 하는 면이 있지만 진지해지면 엄한 태도를 취한다.

약간 촐랑대는 성격인 듯 보이나, 바둑에 임할 때 만큼은 날카롭다. 특히 토우야 코우요우와의 대국에서 투지를 불태울 땐 카리스마에 더해 살기까지 느껴질 정도.

바둑 외에도 보드게임 전반이나 재미있어 보이는 것에 호기심을 많이 가지는 편. 일단 천 년 전의 사람인 만큼 자동우산이나 자동문, 수족관 등을 보면서 매우 신기해한다. 사람이 달에 갈 수 있다는 것도 처음엔 믿지 못했다.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해서 살짝 스친 사람의 얼굴도 곧잘 기억해낸다. 매사 덤벙대는 히카루가 덕을 많이 보는 편.

싫어하는 것은 두꺼비. 두꺼비 뿐만 아니라 두꺼비를 닮은 것도 모두 싫어한다.

히카루의 표현에 의하면 '강아지 같은 녀석'. 원작자인 홋타 유미에 의하면 '엄마, 아빠, 형, 친구, 애완동물(?)을 모두 아우르는 존재'라 하였다.

외전인 '천년 방랑'에 의하면 운동신경이 엄청 둔한 것 같다. 애니메이션이나 일러스트 등에서는 피리 종류를 부는 모습도 종종 나왔지만 원작에서는 오로지 바둑 일변도다.

3.2. 외양

헤이안 시대의 하얀색 남자 복식 가리기누를 입고 있다. 물론 일러스트에선 옷 색에서 문양까지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등장하지만, 작중에는 항상 희고 무늬 없는 옷을 입었다. 서비스신은 거의 없고,[32] 사실 변용되는 경우조차도 헤이안 복식 이외의 옷을 입은 적이 없다. 긴 머리는 거의 무릎까지 내려오는 듯. 연재 초반에는 머리를 묶은 위치가 높았으나(목덜미), 차츰 위치가 아래로 내려왔다. 작가들도 잊어먹었는지, 23권 권말의 1권 시점 외전을 보면 매듭이 아래쪽에 있다. 머리끈도 처음엔 국화 매듭 형태인 듯 했지만 차츰 납작하고 흰 끈 같은 것으로 질끈 묶은 형태로 변형.[33]

원작에서 사이의 키가 공개된 적은 없지만, 애니메이션 신장 대비표의 설정으로는 179cm이다.

3.3. 성별

일본 헤이안 시대에는 남자만 공적인 자리에서 바둑을 둘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34] 사이가 입고 있는 복장도 역시 남자 복식인 가리기누였기에, 일본의 역사나 복식, 바둑에 대해 잘 아는 일본독자들은, 역사적으론 여자일 리는 없지만, 소년만화적 설정이겠지 하면서, 생긴 게 여자니까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런 거 잘 모르는 일반 일본독자나 외국 독자들은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다.

즉, 여자 그려놓고 남자라고 우기기의 정형이었다. 그 증거로 단행본에 실려있는 스토리 작가의 에피소드 소개 페이지를 보면, 편집장이 사이를 "그녀"라고 지칭했고, 스토리 작가의 오너캐가 "사이는 남자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피곤하다."고 독백을 하기도 했다.

특히나 작화가 오바타 타케시의 작화 스타일은 히카루의 바둑 연재 기간 동안 굉장히 많이 변한 편인데, 초반부의 사이는 그야말로 여성 그 자체다. 뒤로 가면서 그나마 조금씩 중성으로 변하고 있지만 그 외모가 역변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방영, 그리고 KBS, 투니버스에서 방영되면서 남자 목소리로 말하는 사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4. 여담

  • 한국판의 제목인 고스트 바둑왕은 사이를 칭하는 것 같다. 만화의 초반부에는 귀신인 사이의 의지를 받아 바둑을 두는 히카루의 모습이 두드러졌기 때문에 해당 제목으로 정해진 듯. 사이의 존재는 이 만화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했고, 사이의 성불은 만화가 완결될 시기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35] 그래서 중반에 사이가 사라진 이후 한국팬들은 "사이도 없는데 왜 고스트 바둑왕이냐!"하고 항의하기도 했다. 결국 완전판은 '히카루의 바둑' 원제 그대로 정발되었다. 일본 원제는 "히카루의 바둑"이라서 당연히 사이의 유무와 관계없이 제목에 대한 항의는 없었다.[36] 다만 사이의 퇴장 이후 만화책 판매량은 타격을 좀 받았다고.
  • 히카루의 바둑 스토리 작가인 홋타 유미가 한국기원에 취재 차 방한했을 때 한국기원 측에서 ' 삼성화재배에 사이를 위한 시드를 준비해둘까요?'라고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한국기원 측에서 해당 작품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참고로 이때의 농담은 작중에서 토우야 코우요우에게 삼성화재배 시드를 준다는 언급이 나오며 진짜로 반영되었다.
  • KBS 한국어 더빙판 애니메이션에서는 좌랑이란 이름으로 로컬라이징 되었다.[37] 게다가 사이의 옷에 해당하는 부분을 전부 뿌옇게 처리하고 밝은 빛이 나게 편집했다. 처음엔 얼굴 빼고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뿌옇게 처리하는 바람에 시청자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 욕을 왕창 먹은 KBS는 결국 사이의 옷을 하얗게 덧칠하는 정도로 수정했다. 사실 사이가 입고있는 의복, 그러니까 귀족들의 평상복이었던 노우시(直衣)의 일종인 카리기누(狩衣)와 귀족들의 일상 모자로 쓰인 에보시(烏帽子)는 신라시대의 관복과 상당히 흡사하다. 몸판과 소매 사이부분이 터진 형태나 소매의 끈장식 등 세세한 부분을 제외하면 신라시대의 단령(團領)과 거의 동일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38] 애초에 에보시는 백제의 변형모(弁形帽)와 거의 동일한 형태의 모자다.[39] 에보시가 관모라는 시각도 있지만, 엄연히 일본의 관복인 소쿠타이(束帶)에는 칸무리(冠)라고 불리는 정식 관모가 따로 있다. 헤이안 시대를 신라 시대로 현지화한 것은 나름대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 2016년 12월 말 ~ 2017년 1월 초까지 한국의 인터넷 바둑 사이트 타이젬 바둑에서 ‘Magister(P)’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유저가, 중국의 인터넷 바둑 사이트 한큐바둑에서는 'Master(P)’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유저가 커제, 이야마 유타, 박정환 등 최정상급 프로 기사들을 상대로 도합 60전 전승을 거두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자 ‘Magister(P)’ & ‘Master(P)’의 정체가 사이 아니냐는 드립이 간간히 나오기도 했는데,[40] 진짜 정체는 알파고의 새로운 버전이였다. #
  • 히카루의 바둑 완전판 번역본에서는 후지와라 가문의 사이로 번역되었다. 사이의 이름 한자표기가 이런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에 적절한 번역이라는 평.[41] 또한 말투도 고려~조선시대에서나 쓰는 옛날 말(아이를 아해라고 칭하는 등)로 완전히 변경되어 사이가 생전에 활동했던 시대상을 적극 반영하는 배려가 들어갔다.
  • 성불한 이후 히카루의 꿈속을 제외하고는 본편에서는 더이상 등장하지 않고 마지막 화에서 목소리로만 등장했다.[42]


[1] 사이가 귀신이라는 점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메아리 효과가 들어가 있는 특이 케이스. [2] 작중 초반에 잠깐 나온 언급에서 무라사키 시키부 세이 쇼나곤도 바둑을 두었다고 히카루에게 알려주는 걸 보면 그가 살았던 시대는 이들이 활약한 연대와 동시대인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초반 무렵으로 추정된다. 한국사의 고려 시대 초기와 겹치는 시기. [3] 헤이안시대는 신라 시대 후반인 794년에 시작되어 고려 시대 무신정권이 세워질 무렵인 1185년에 끝났다. 당시 고려와 일본 모두 문인귀족 중심이었던 사회권력이 무신에게 넘어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4] 다만 당시 사이가 천황의 또 다른 바둑 스승보다 객관적인 실력 면에서 더 뛰어났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5] 1939년 혼인보전에서 덤이 도입되기 전까지 바둑에서 백에 덤을 주는 규칙은 없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바둑 기사들끼리 승부를 할 때 단판 승부 같은 홀수 대국이 아닌 10번기 같은 짝수 대국으로 우열을 가렸다. 다만 작중 사이와 상대방의 대국은 정황 상 단판 승부로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6] 실존 인물로 에도 시대에 당대 일본 최강의 바둑 기사였다. [7] 1626년 무렵에 시작해 1864년에 폐지될 때까지 230여 년 동안 실시되었던 바둑 경기로, 4대 바둑 가문의 당주, 가문의 후계자, 七단 이상의 기사들만 참가할 수 있었다. 즉, 당대 정상급 바둑 기사들이 자웅을 겨루는 대국이었던 셈. [8] 바둑판에 피를 토했다는 부분 외에는 실제로 있었던 일. 당시 일본 전역에 콜레라가 창궐한 영향으로 혼인보 가문 내에서도 감염자가 많이 나왔는데, 주변에서 만류에도 슈사쿠가 동료 선후배 기사들을 정성껏 간호하다 감염되어 요절했다. [9] 원작 연재는 1999년부터 시작했다. [10] 이런 과도기가 없으면 언어소통에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11] 두건을 쓴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작중 설정 상 사실이었다. [12] 그런데 나중에 사이가 자신이 사라질 것을 걱정하면서 슬퍼할 때에는 히카루가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 사라질 것임을 알게 되면서 점차 히카루와의 연결이 희미해졌기 때문인 듯. [13] 애니메이션에선 할아버지와 대국을 시도하는 장면이 삭제되었고, 곧바로 기원으로 가서 아키라와 대국 → 바둑 교실에 나가서 아키라와의 대국을 되새기며 바둑의 기초를 익히는 것으로 순서가 각색 되었다. [14] 히카루 曰, "내 또래도 있네? 쟤랑 둘래요~." 당시 아키라는 어지간한 아마추어 고수들도 상대가 안되는 이미 프로나 다름없는 실력자였다. 바둑에 무지했기에 가능했던 패기. 글자 그대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15] 다만 이건 대국 전에 아키라가 덤을 적용하고 두자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현대 바둑에서 추가된 백에게 덤을 주는(이 작품이 연재되던 90년대 말에는 5집 반, 현재는 한국&일본에선 6집 반/중국에선 7집 반이 백에게 주어진다.) 규칙을 적용했다면 이 대국은 아키라의 3집 반 승리였다. 다만 규칙을 적용 했어도 사이의 실력으로는 무난하게 승리했을 것. [16] 사이가 말하길 "단숨에 목과 몸통을 벨 수 밖에 없었다." [17] 보통 사람은 볼 수 없었던 사이가 깃든 바둑판의 핏자국을 본 것 자체가 히카루의 재능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18] 이 레벨에 들어가는 기사들은 국내외 기전 스케줄이 빡빡해서 내제자를 두는 경우를 제외하면, 바둑 강의를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다. [19] 원래 그 부채(카와호리)는 헤이안 시대 남자 귀족들의 필수 아이템이었는데 얼굴을 가리거나 뭔가 가리킬 때 손가락질 대신에 부채를 사용했다. 참고로 당시 여자 귀족들은 히오우기라는 나무 부채를 사용했다. [20] 참고로 이 인터넷 카페는 하제중 바둑부 동료인 미타니의 누나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이었다. 히카루가 미타니에게 소개를 받은 것. [21] 참고로 sai와 대국하기로 약속한 날은 아키라의 프로 시험 첫날이었는데, Sai와의 대국을 위해 대국장에 나가지 않아 부전패하는 리스크까지 감수했다. 와야는 이를 두고 우리 원생 모두를 깔보는 행동이라며 분노한 건 덤. [22] 토우야 명인이 운영하는 기원의 단골 손님 한 명이 인터넷 카페에 있는 히카루를 발견하고 아키라에게 그 사실을 알려줬다. 그 말을 들은 아키라가 즉시 히카루가 있는 인터넷 카페에 찾아갔는데, 다행히 이때는 히카루가 바둑을 두고 있지 않고 있었던 덕분에 정체를 들키지 않았지만, 이 일로 인해 히카루는 sai의 정체가 들통날 위험성이 높아졌다고 느끼게 되었다. [23] 일본기원에서 직속으로 육성하는 일종의 프로 예비군. 프로 시험 예선 등에서 특혜가 주어지며 주말마다 모여 바둑 공부 및 대국한다. 한국기원의 연구생과 같다고 보면 된다. [24] 본래 토우야 명인은 바쁜 일정 때문에 신초단 시리즈에 참여하는 걸 매번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었는데,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히카루가 입단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와의 지명 대국을 조건으로 참여를 수락했다. [25] 바둑 두고 싶다고 다소 투정부리긴 해도 사이는 엄연히 성인이고 히카루는 그야말로 개초딩이어서 여태까지는 계속 사이가 보모 포지션이었다. 그런데 여기선 사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야말로 생때를 부린다. 절정이 대국장에 갔을때 히카루의 자리에 앉아서, 들어오는 히카루에겐 눈길도 안 주고 (미리 앉아있던) 도우야와 계속 마주보고 있는 것. [26] 1997년 5월 1일 제22기 명인전 본선 리그에서 치러진 린하이펑 九단과 요다 노리모토 십단의 대국이 모티브다. 당시 기보. [27] 히카루가 sai와 관계가 있음을 깨달은 오가타가 대국하게 해달라고 절실히 요청해 왔지만 히카루는 얼버무리면서 계속 피해왔다. 이미 오가타는 행사 후 뒷풀이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히카루한테 사이와 두게 해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사이도 저정도 만취라면 히카루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고, 자신과 대국을 열망에 대한 보답, 곧 소멸할 것을 깨닫고 조금이라도 강자와 대국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으로 대국을 해주었다. [28] 애니메이션에서는 최종회 15회를 앞두고 주인공 앞에서 소멸했다. [29] 애니메이션은 최종편인 75화. [30] 이후 히카루는 사이가 그랬듯 부채를 항시 상비하게 된다. 사이의 의지를 이어가겠다는, 사이를 목표로 하겠다는 히카루 나름의 의지표명인지도. [31] 주로 바둑과 관련된 점에서 [32] 아카리와 나세의 바니걸 정도가 유일하다. [33] 일본 전통 양식을 보면 보통 그런 것으로 머리를 묶었다. [34] 헤이안 시대에도 바둑을 두는 여성이 있다고 작중에서 사이가 언급하긴 했지만 그건 사적인 자리에서고, 천황의 바둑 스승으로 활약하는 식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활동할 수는 없었다. [35] 같은 시기에 연재되고 방영되던 유희왕 어둠의 유우기와 비슷한 포지션의 인물이었다. [36] 만화의 주제 상으로도 히카루가 사이를 만나 성장하고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바둑의 길을 찾으며 사이 없이도 자립하는 것으로 완결되었기 때문에 고스트 바둑왕이라는 제목은 히카루의 바둑보다 주제를 제대로 담고 있지 못 하다. [37] 고려 조선 시대에 존재했던 관직명 중에도 좌랑이라는 이름이 있긴 있었다. 다만 신라 시대에는 사내 랑 자를 죽지랑, 기파랑처럼 이름이나 호칭에 사용한 경우가 매우 흔했으므로 그냥 신라 느낌 나게 임의로 지은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38] 사실 노우시와 단령 모두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거라 비슷한 게 당연하다. [39] 참고로 변형모(弁形帽)는 원래 스키타이인들이 주로 착용하였던 모자다. 이것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전파된 것으로 보여진다. # [40] 다만 사이 드립은 어디까지나 몇몇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한 정도였고, 이 당시는 이미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패한 이후라 데미스 허사비스가 ‘Magister(P)’, ‘Master(P)’의 정체를 밝히기 전부터 다들 ‘Magister(P)’, ‘Master(P)’가 알파고일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41] 영문판에서도 같은 의미인 Fujiwara no Sai로 표기했다. [42] 머나먼 과거와 머나먼 미래를 잇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들 모두가.. 들립니까? 내목소리가- 이 원작 마지막화의 나레이션은 정황상 사이의 목소리일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