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9 12:46:30

이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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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世賢
병음: Lǐ Shixian, 리시이안
(1834~1865.8.23)
1. 개요2. 승리
2.1. 2차 강남대영 공략
3. 패배
3.1. 좌종당과의 전투3.2. 태평천국 최후의 잔당
4. 평가

1. 개요

이세현은 태평천국의 군사 지도자로 시왕(時王)에 봉해졌다. 충왕 이수성의 사촌 동생이며, 이수성의 동생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으로 큰 두각을 보인 인물이다.

2. 승리

2.1. 2차 강남대영 공략

청나라의 강남대영(江南大營)은 태평천국의 천경을 공략하기 위해 두 번째로 건설되었다. 1858년 3월의 공방전에서 약 20만 명의 청군이 강남대영을 지키고 있었지만 1860년 5월 이세현의 군대가 천경을 탈출할 때 유인당했다. 이세현은 부유한 절강성의 모든 지역을 취할 수 있었다.

3. 패배

3.1. 좌종당과의 전투

1862년 청나라 좌종당에게 절강의 이세현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좌종당은 성공했고 많은 치열한 전투 끝에 절강성을 탈환했다. 이세현의 병력은 전쟁을 시작했을 때의 35만 명에서 1864년 천경이 함락될 때에는 2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천경이 함락된 후, 이세현은 잔여 병력과 복건성으로 탈출했다.

3.2. 태평천국 최후의 잔당

1864년 10월 12,000명의 태평군은 장저우를 점령했다. 그들은 다음 해 여름 항복할 때까지 도시를 지켰다.

이세현과 그의 남은 군사 4만 명은 천경 이전의 태평천국의 근거지였던 광동성 동부로 돌아왔다. 좌종당은 여섯 명의 부장들에게 7만 명을 이끌고 이세현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1865년 5월 1일 2만 명의 태평군이 좌종당에게 항복한다. 이세현은 승려로 변장하고 탈출했다. 5월 23일 이세현은 태평군으로 돌아왔으나 왕해양을 비롯한 부하들은 1865년 8월 25일 그를 배신해 살해한다. 이세현이 배신당해 살해당한 이유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첫 번째는 도망쳤다가 돌아온 그를 믿지 못하고 죽였다는 설이 있으며, 또 한 가지는 이세현을 죽인 왕해양이 과거 이세현의 부장을 죽이는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킨 상황에서 죽은 줄 알았던 이세현이 살아 돌아와 자신의 입지가 위험해질 상황이 되자 먼저 죽였다는 설이다.

4. 평가

사촌 형인 이수성, 진옥성과 더불어 태평천국 후기의 대표적인 명장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이수성과 함께 움직이거나 혹은 독자적으로 움직이며 상당한 전공을 올렸고 좌종당 상대로도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경 함락 이후 복건성 일대를 휩쓸고 다니며 상군의 중요 간부 중 한 명인 임문찰을 전사시키는 등 죽기 전까지 뛰어난 군공을 보여주었다.

군재 뿐만이 아니라 정치력도 상당한 인물이었다. 군사적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정치적으로는 "부패한 관리들을 베거나 쫓아내고 선정을 베풀었다" 정도만 언급되는 이수성과는 달리 점령지의 각종 제도를 정비하고 개선하며 상업을 육성하고 인재를 모집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등 구체적으로 점령지를 개선시키는 뛰어난 정치력으로 태평천국의 유지에 기여했으며 천경 함락 이후로도 태평천국 군이 수만 단위의 병력을 운용하며 최후의 저항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와 접촉했던 서양인들도 이세현은 군재 뿐만이 아니라 정치력도 겸비한 인물이라 높이 평가되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시점에서 이미 태평천국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으며, 뛰어난 인재 한두명이 분전한다고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고 결국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