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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윤재선(尹在善) |
본관 | 무송 윤씨[1] |
출생 | 1901년 1월 17일 |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 연포리 (현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무연리 연포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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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72년 12월 16일 (향년 71세) |
가족 | 아버지 윤세용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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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901년 1월 17일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 연포리(현 밀양시 부북면 무연리 연포마을)에서 독립유공자인 아버지 윤세용의 5형제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대구부 남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으로 이주하였다.그는 1927년 음력 9월 손봉현, 손호 등과 함께 해원교(解怨敎)라는 종교단체를 조직하였으며, 만주에서 활동하던 신민부(新民府)에 군자금을 제공하기 위해 당시 밀양군(현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泗淵里)의 부호 김태진(金泰鎭)을 타겟으로 삼았다.
이에 김태진의 장남인 김용출에게 해원교 교주와 만나게 해주겠다며 유괴하였고, 이를 빌미로 김태진에게 군자금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여 2차례에 걸쳐 3,000원의 자금을 받아냈다.
그러나 1928년 7월 30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같은 해 8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 강도상인, 다이쇼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등의 혐의로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72년 12월 16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밀양 문중 26세 선(善)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