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부시대의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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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체스터의 패주 영어: Rout of Winches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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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 1141년 9월 14일 | |
장소 | 잉글랜드 왕국 윈체스터 | |
원인 | 윈체스터를 둘러싼 마틸다와 스티븐 왕 세력의 경쟁 | |
교전국 | 스티븐 왕 지지 세력 | 마틸다 지지 세력 |
지휘관 |
불로뉴의 마틸다 블루아의 앙리 기욤 드 이프르 |
마틸다 글로스터의 로버트 레지널드 드 던스턴빌 |
병력 | 미상 | 미상 |
피해 | 미미함 | 궤멸 |
결과 | 스티븐 왕 세력의 승리. | |
영향 | 스티븐 왕의 석방과 내전 장기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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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정부시대 시기인 1141년 9월 14일, 불로뉴의 마틸다가 이끄는 군대가 마틸다의 군 사령관 글로스터의 로버트를 습격해 생포한 전투.
2. 배경
1141년 2월 2일, 스티븐 왕이 링컨 전투에서 글로스터의 로버트가 지휘하는 적군에게 패배하고 생포되었다. 그 후 스티븐은 글로스터 성에 이송되었다가 브리스톨로 옮겨졌고, 마틸다는 3월 3일에 윈체스터에서 그곳의 대주교이자 잉글랜드의 교황 특사이며, 스티븐 왕의 형제인 블루아의 앙리와 접촉했다. 앙리는 마틸다와 협의한 끝에, 잉글랜드 성직자들을 이끌 권리를 자기에게 주는 대가로 마틸다를 "Domina Anglorum(잉글랜드의 여군주)"로 받들기로 했다. 그는 윈체스터 대성당에서 각지의 주교들과 대수도원장들을 초빙한 뒤,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틸다에게 왕실의 금고를 여는 열쇠를 넘기고 주교와 대수원장들이 그녀에게 복종하도록 했으며, 그녀에게 여전히 대적하는 자들을 파문하기 시작했다.스티븐 왕에 의해 캔터베리 대주교로 선임되었던 베크의 테오발드는 윈체스터 대주교로부터 출두 명령을 받았지만, 마틸다에게 즉시 가담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충성 서약을 바꾸기 전에 스티븐 왕과 이야기하기를 고집했다. 이후 수도자들과 함께 브리스톨로 찾아간 그는 감옥에 갇혀 있던 스티븐과 상의했다. 스티븐은 그가 새 여왕에게 충성하는 걸 허가하기로 했고, 테오발드는 4월에 윈체스터로 가서 윈체스터 대주교와 합류한 뒤 부활절 이후 스티븐을 폐위하고 마틸다를 여왕으로 추대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마틸다는 이 자리에서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의 여군주"로 선포되었다. 이후 열린 행사에서 그녀의 추종자들이 충성을 바쳤지만, 상당수 대영주들은 그녀를 따르길 꺼려서 사절을 보내지 않았고, 스티븐 왕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런던 시민들도 마틸다 여왕에게 복종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겨서 사절을 일부러 늦게 보냈다.
한편, 스티븐 왕의 왕비로서 런던에 군림했던 불로뉴의 마틸다는 남편을 풀어주고 아들 외스타슈가 영지를 물려받는 걸 허락해 준다면, 남편이 잉글랜드 왕위를 완전히 포기하고 순례자로 살도록 설득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마틸다 여왕은 이 제안을 단호히 거부하고 6월에 런던으로 향했다. 불로뉴의 마틸다는 켄트 지방으로 피신했고, 마틸다 여왕은 윈저 성에 자리잡은 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정식으로 대관식을 치를 준비에 착수했다. 그러나 본래 신성 로마 제국의 황후였던 그녀는 자신을 찾아온 런던 사절단에게 몹시 오만하게 대했고, 높은 세금을 즉시 납부하라고 명령했다. 가뜩이나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런던 시민들은 이에 강한 반감을 품었다.
얼마 후, 불로뉴의 마틸다 왕비가 기욤 드 이프르와 플란데런 용병대, 그리고 켄트 출신 민병대를 소집한 뒤 런던으로 진군해 인근 농촌을 약탈했다. 이에 시민들은 그녀에게 호응하기로 마음먹었고, 당초 마틸다 여왕을 추대하기로 했지만 형제를 풀어주길 거부하고 조카에게 영지를 물려주는 걸 거부한 것에 불만을 품었던 블루아의 앙리 주교도 여기에 가세했다. 6월 24일, 런던 수비대가 봉기를 일으켜 윈저 성으로 쳐들어가 약탈을 자행했고, 마틸다 여왕은 가까스로 탈출해 옥스퍼드로 피신했다. 그 후 글로스터의 로버트와 합류한 마틸다 여왕은 자신을 배신한 윈체스터 대주교에게 복수하고 다시 한 번 영주들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아내기로 마음먹고 윈체스터로 진격했다.
3. 전투 경과
1141년 8월 12일 윈체스터에 도착한 마틸다와 로버트는 윈체스터 시를 장악했고, 블루아의 앙리는 올베시에 있는 성채로 피신했다. 마틸다는 당장 성채를 포위해서 공략할 수 있었지만, 그러는 대신 앙리에게 출두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가기를 거부하고 런던으로 사절을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불로뉴의 마틸다는 즉시 윈체스터로 가기로 하고, 기욤 드 이프르와 함께 군대를 일으켰다. 9월 중순, 불로뉴의 마틸다가 이끄는 군대가 윈체스터 외곽에 자리잡았다. 이리하여 윈체스터 성채를 포위하는 윈체스터 시의 마틸다 여왕 군대가 불로뉴의 마틸다 왕비의 군대에게 포위당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졌다.당초 마틸다 왕비의 편에 섰던 에식스 백작 제프리 드 맨드빌과 펨브로크 백작 길베르트 드 클레어는 전황이 기울었다고 판단하고, 부하들을 이끌고 불로뉴의 마틸다에게 귀순했다. 여기에 기욤 드 이프르가 윈체스터 북족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여 옥스퍼드와 글로스터로 향하는 경로를 차단했으며, 런던 민병대가 추가로 윈체스터로 향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글로스터의 로버트는 9월 14일에 윈체스터를 탈출하기로 했다. 그는 마틸다 여왕의 탈출을 지켜주기 위해 후방에 남기로 했고, 콘월 백작 레지널드 드 던스턴빌이 정예병으로 구성된 선봉대를 이끌고 앞서 가기로 했다. 그들은 윈체스터 서쪽 문에서 몰래 나와서 솔즈베리로 향했다.
얼마 후, 불로뉴의 마틸다 왕비는 적이 달아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즉각 윈체스터 시로 진입하라고 명령했다. 장병들은 곧장 윈체스터 시로 진입했고, 글로스터의 로버트는 이들의 공세를 저지하면서 천천히 후퇴했다. 선봉대는 윈체스터에서 북서쪽에서 약 8.5마일(13.7km) 떨어진 곳에서 테스트 강을 무사히 도하한 뒤 마틸다를 글로스터로 데려다줬지만, 나머지 부대는 적군에게 궤멸되었다. 글로스터의 로버트는 테스트 강을 건너지 못하고 적군에게 에워싸인 채 분전하다가 결국 항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