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크뜸부기 Wake Island R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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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 |
Hypotaenidia wakensis (Rothschild, 1903) |
분류 | |
<colbgcolor=#fc6> 계 | 동물계(Animalia) |
문 | 척삭동물문(Chordata) |
강 | 조강(Aves) |
하강 | 신악하강(Neognathae) |
상목 | 신조상목(Neoaves) |
목 | 두루미목(Gruiformes) |
과 | 뜸부기과(Rallidae) |
아과 | 불명[1] |
속 | 히포타이니디아속(Hypotaenidia)[2] |
종 | †웨이크뜸부기(H. wakensis) |
멸종위기등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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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및 특징
웨이크뜸부기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미국령 군소 제도의 섬 중 하나인 웨이크섬에 살았던 날지 못하는 뜸부기였으며, 정확히는 웨이크 섬을 이루는 환초 중 웨이크 본섬과 윌크스 섬, 필 섬에 살았다고 한다.성체의 몸길이는 22cm 정도였고, 먹이 외에 물을 따로 마시지 않아도 살 수 있었다.
2. 멸종 과정
외딴 섬에 고립되어 살아가던 동물들이 으레 그렇듯 이 새 역시 외래종에 대한 경계심이 부족한 편이었기 때문에 인간의 남획 및 외래종에 취약하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나마 웨이크섬 자체는 16세기 말부터 여러 유럽 세력들이 발견은 했으되 물과 식량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땅이라 수백 년 동안 외면당했고[3] 기껏해야 난파한 표류자들이나 탐사대가 간간히 방문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비록 새끼들이 집게와 폴리네시아쥐에게 잡혀먹히는 일이 있긴 했어도 멸종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고양이는 이 새가 멸종한 뒤인 1960년대에서야 들어왔다.1898년 7월에 들어서 미국이 이 섬을 점령하고 다음 해에 정식으로 미국령에 편입시켰으나, 1934년에 미해군이 관할권을 얻기 전까지는 여전히 버려진 무인도에 불과해 바다새의 깃털과 샥스핀을 노린 밀렵꾼들이 임시 거처로 썼을 정도였다.
1930년대에 들어서야 이 외진 섬에도 개발의 손길이 닿았다. 팬 아메리칸 항공사가 태평양 횡단 수상기 노선을 개설하면서 기착지와 호텔이 들어섰고, 추축국의 팽창정책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자 미해군이 이에 대응하여 하와이와 괌 등의 해외 영토들을 요새화하였는데, 웨이크섬 역시 중간기착지로서 중요성을 인정받아 1941년 8월에 첫 활주로가 개설되었다. 그렇게 미군이 웨이크 섬에 발을 디뎠지만 군사적 요충지로 지은 군기지 외에는 굳이 개발할 이유가 없는 외진 섬인데다, 미군이 개와 고양이를 들여오진 않아서 뜸부기들의 생존에는 당장 문제가 없었다.
같은해 12월 8일에 일본이 먼저 진주만 공습을 시행한 지 한 시간 만에 웨이크 섬에도 공습을 시도하였고, 이후 12월 11일부터 23일까지의 치열한 전투 끝에 기어이 일본군이 웨이크를 점령했다. 전투과정은 웨이크섬 전투 항목 참조. 이때 전투 과정에서 일부 서식지 파괴가 일어나기도 했다.
미해군은 섬을 직접 무력으로 탈환하는 대신 기뢰와 잠수함으로 섬을 봉쇄하는 것으로 화답했는데, 이런 조치가 뜸부기 멸종을 초래하였다. 섬이 봉쇄당했으니 당연히 식량은 점차 부족해졌다. 주둔한 일본군인들은 굶어 죽지 않으려면 뭐든 잡아서 먹어야 했는데, 굶주린 군인 앞에서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날지도 못하는 새가 돌아다닌다면? 당연히 일본군들은 뜸부기들을 마구 잡아먹었고, 작은 환초섬이라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었으니 더더욱 치명적이었다.
1945년에 일본이 항목하여 전쟁이 끝나자 웨이크섬은 비로소 다시 미국령이 되었지만, 그 섬에 살았던 뜸부기들은 한 마리도 남김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