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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5년 4월 13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한 발언. 이른바 베이징 발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2. 상세
발언 그대로를 놓고 보면 정부보다 기업이 우월하다고 주장한 말처럼 보이지만, 맥락을 보면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행정규제를 지적한 발언에 가깝다.당시 삼성은 부산에 자동차 공장을 건설했는데 부산이 당시 대통령인 김영삼 대통령의 텃밭이라 공장 건설에 정권의 비호를 받은 게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1] 이건희 회장이 이를 반박하며 해당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은 정권교체와 대통령의 개혁 의지에도 불구하고 행정규제와 권위의식은 없어지지 않았고, 반도체 공장 건설을 신청해도 허가는커녕 공장 건설하는 데 도장이 1,000개나 필요하고, 삼성자동차 사업 진출 때는 부산 시민들의 반발이 있어서야 허가를 내주었다는 등 작심하고 무분별한 기업규제와 정부의 태도에 대해 비판 발언을 쏟아내었다.
하지만 정치계 인물들은 이 발언을 듣고 상당히 불쾌하게 여겼다고 하며, 특히 당시 대통령이던 김영삼 대통령은 굉장히 격노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이건희는 일본으로 반도피성 체류를 떠나게 되었고, 한국에 남은 삼성 임원들은 김영삼 대통령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발언의 요지를 해명하면서, 김영삼 대통령의 방미 당시 500만 달러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 건립비용을 기부하고, 파격적인 중소기업 상생방안을 발표하는 등 김영삼 정부에게 기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이건희는 1996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100억 원 규모의 정치자금을 전달한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이듬해인 1997년에 사면 및 복권되었다.
3. 여담
- 현재에 와서는 좌우를 막론한 수많은 칼럼니스트들이 제 입맛에 맞게 가져다 쓰기 시작하면서 오용된 말이기도 하며, 특히 한국 정치와 행정을 비판할 때 인용하는 단골 멘트로 활용되고 있다.
- 김종인은 이 발언을 민간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넘어서고 있는 시대적 배경을 함축한 발언이며, 더 나아가서 이젠 더 이상 정부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는다는 자신감 혹은 오만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1]
과거 이병철, 이건희를 비롯한 삼성그룹 일가들은 현대그룹 회장인 정주영이 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자 질투가 났는지 대놓고 김영삼을 지지했다고 한다. 이후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자신을 지지해준 삼성그룹을 노골적으로 키워주었고, 반대로 정주영의 현대그룹은 김대중 정부로 교체되기 직전까지 김영삼 정부에게 엄청난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기자들이 이건희 회장에게 김영삼 정권의 비호를 받은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할 수 있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