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01:57:18

욘 아르네 리세

욘 아르네 리세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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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E3657 15%, #C71E2E 15%, #C71E2E 85%, #2E3657 85%)"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71E2E><tablebgcolor=#C71E2E> 파일: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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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욘 아르네 리세 110회 2000.1.31 2013.3.22
2 토르비요른 스벤손 101회 1947.6.11 1962.5.16
3 헤닝 베르그 100회 1992.5.13 2004.5.27
}}}}}}}}}}}}}}} ||
아발스네스 IL
Avaldsnes Idrettslag
파일:John Arne Riise Manager.jpg
<colbgcolor=#EC121E><colcolor=white>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욘 아르네 리세
John Arne Riise
출생 1980년 9월 24일 ([age(1980-09-24)]세)
노르웨이 뫼레오그롬스달 주 몰데
국적
[[노르웨이|]][[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 89kg
직업 축구 선수 ( 레프트백[1], 윙어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C121E><colcolor=white> 선수 올레순 FK (1996~1998)
AS 모나코 (1998~2001)
리버풀 FC (2001~2008)
AS 로마 (2008~2011)
풀럼 FC (2011~2014)
아포엘 FC (2014~2015)
델리 다이너모스 FC (2015~2016)
올레순 FK (2016)
첸나이인 FC (2016~2017)
SK Rollon (2017)
감독 비르키르카라 FC (2019 / 단장)
IL 플린트 (2019~2021)
아발스네스 IL (2021~ )
국가대표 110경기[2] 16골 ( 노르웨이 / 2000~2013)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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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르웨이 축구 선수 출신 감독. 2021년부터 아발스네스 IL 감독을 맡고 있다.

리버풀에서 8시즌을 뛴 한때 EPL 정상급 레프트백 중 한명. 위협적인 슈팅력과 견고한 수비력을 지닌 다재다능한 왼쪽 측면 요원이었다. 다만 리세 본인은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호하는 편이었고, 실제로 2004-05, 2005-06 시즌때는 본포지션인 풀백보다 윙어으로 출전하는 일이 많았고 본인도 그걸 선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2006-07 시즌부터 리버풀이 본격적으로 선수 보강을 하면서 윙어로 출전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80년 노르웨이 몰데에서 출생한 그는 올레순 FK에서 클럽생활을 시작했고, 1998년 17세의 나이에 프랑스 명문 AS 모나코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3시즌 이상 보내는 동안 44차례 리그 경기에 출전, 팀을 1999/2000 시즌 리그 1정상에 올리는 데 기여했다. 2001년 리버풀의 적극적인 구애로, 630만 유로에 리버풀 유니폼을 입었다. 리세는 안필드에서의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냈다. 2001년 8월 리버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1로 꺾고 채러티 실드를 차지한 경기가 그의 데뷔전이었다. 그리고 모나코의 스타드 루이 II에서 펼쳐진 바이에른 뮌헨과의 UEFA 수퍼컵 격돌에선 멋진 데뷔골을 터뜨리며 3-2 승리를 가져오고 트로피를 하나 더 추가했다. 2003 잉글리시 리그컵 우승, 그 다음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도 큰 기여를 했다.

06-07 챔피언스리그 16강전 리버풀 vs FC 바르셀로나 2차전에서 크레이그 벨라미와 함께 서로 1골 1어시스트를 주고받으며 2-1로 바르셀로나를 물리치고 어웨이 득점 우선 원칙에 따라 8강에 올라가며 까임방지권을 얻었을때, 사람들은 '역시 리세다' 하며 생각했다. 비록 당시 벨라미와의 불화로 인해서 팀 분위기가 어수선했지만[3], 리세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며 팀을 8강으로 올려놓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리세는 이전부터 전성기보다 조금씩 기량이 떨어지면서 하향세와 함께, 시즌 초에 영입된 알바로 아르벨로아[4], 파비우 아우렐리우와의 레프트백 경쟁에서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다.[5]

파일:external/www.newshankuk.com/nh_080423_spo_soccer_01.jpg
공을 잡고 기뻐하는 디디에 드록바 옆 사진에 가운데서 좋아하는 사람이 자책골을 만든 살로몬 칼루다.

리세의 리버풀 커리어 말년에 있어서 가장 기억되는 장면인 07-08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의 자책골은 리버풀 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장면. 안필드에서 열린 1차전에서 리버풀의 디르크 카윗의 선제골로 1-0으로 경기가 끝나나 했던 후반 추가시간 4분, 첼시의 살로몬 칼루가 회심의 크로스를 리버풀 오른쪽 사이드에서 올렸고 마침 그 볼은 골문 가까이에서 대기하던 리세에게 떨어졌다. 리세는 오른발이 세모발인 것으로 유명한데, 볼이 그 쪽으로 떨어지자 어쩔 수 없이 다이빙 자세를 취하며 헤딩으로 걷어내려던 볼이 어이없이 골문으로 빨려들어갔고 그렇게 경기는 1-1로 종료되었다.

리세는 마치 형장의 이슬로 이끌려가는 사형수마냥 얼굴에 수심과 그늘이 가득했고, 허망한 리버풀 선수들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반대로 경기 종료 직전에 1-1 무승부를 만들어낸 첼시 선수들은 펄쩍펄쩍 뛰었다. 별명이 첼시 킬러일 정도로 언제나 첼시에 강한 모습을 보여왔던 리세였기에 더 충격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이 실수가 없었다면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6] 많은 리버풀 팬들이 안타까워했다.

리세는 07-08 시즌을 끝으로 2008년 여름 500만 유로에 AS 로마로 이적했다. 로마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세 시즌 동안 129경기를 출전하여 9득점과 9도움을 기록했다. 로마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든 건지 리버풀에서의 안좋은 기억 때문인지 리버풀로의 복귀설이 떠돌때 이를 부인하며 로마에 잔류할것이라고 했다. 사실 오래 전부터 첼시를 데꿀멍시키는 06년 커뮤니티 실드에서의 크고 아름다운 중거리슛 등 리버풀에서 제라드의 오른발과 리세의 왼발이라 할 정도의 절륜한 슈터로서 올드팬들에게는 강렬한 이미지가 없진 않으나, 하필 마지막 기억이 너무도 끔찍했다.

그래도 EPL이 좋긴 한가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풀럼 FC로 이적하여 핵심 수비수로서 활약했다. 30대가 되면서 리버풀 시절의 운동량과 왼발킥을 선보이진 못했지만 그의 친동생인 뵈른 헬게 리세도 풀럼 소속이었기 때문에 둘이 같은 팀에서 뛴다는 것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이 많았다. 형과 달리 동생은 오른발잡이다.

쭉 커리어를 계속해오다 키프로스 리그의 아포엘을 떠난 후 고향에서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몸을 관리해온 욘 아르네 리세는 은퇴를 고민했었으나 인도 슈퍼 리그의 델리 디나모스에서 좋은 제안을 해준 덕분에 다시 인도로 진출하여 선수로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며, ISL는 10월 3일에 시작하였다.

2015년 후반기를 ISL의 델리 디나모스에서 보낸 욘 아르네 리세는 2016년 3월 자신의 데뷔팀인 올레순 FK와 3개월 단기계약을 맺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욘 아르네 리세의 은퇴수순으로 생각했고, 시즌 종료 후인 6월 13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역시 은퇴를 선언했다.

8월 19일 욘 아르네 리세가 ISL의 첸나이 FC로 이적한다는 오피셜이 떴다. 이후 한 시즌이 끝난 뒤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2000년부터 발탁되어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가장 많은 경기인 110경기에 출전하였다. 2000년 1월 31일에 아이슬란드를 상대로 처음 대표팀에 데뷔했으며 노르웨이 대표팀에서 총 110경기의 A매치 경력을 쌓으면서 세계적인 수비수로 평가받아 왔다. 32세때 국대에서 물러났다.

다만, 국제대회 본선 커리어는 아예 없는데, 리세가 현역일때 노르웨이가 국제대회 본선에 나온 것은 유로 2000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20세때 선발된 유로 2000때는 당시 자국 최고의 클럽중 하나인 로젠보리의 주전이었던 안드레 뵈리될모(André Bergdølmo)[7]와 리세 이전 리버풀의 레프트백이었던 스티그 잉게 뵈른비(Stig Inge Bjørnebye)가 있었기 때문에 본선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고 벤치에만 있었고 그 이후로는 노르웨이가 16년 동안 쭉 예선탈락만 하면서 본선 진출을 못했기 때문이다.

3. 플레이 스타일

맨유전에서 보여준 슈팅[8]

역대 최고의 슛 파워를 논할 때마다 순위에 들어가는 선수로 악마의 왼발이라는 별명답게 공격수 못지않은 강한 왼발 슛이 장기였다. 한때 EPL 최고의 파워키커로 세트피스에서의 중거리슛은 골키퍼가 손을 뻗기도 전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뿐만 아니라 강인한 체력과 월등한 피지컬을 앞세운 오버래핑과 수비는 팀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기본적인 수비력이 썩 좋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체력과 피지컬로 이를 보완했다. 어떻게 보면 나다니엘 클라인이 수비력이 엄청 좋은 편은 아니지만 체력과 스피드로 메꿨던 것과 비슷하게 보면 될 듯. 리세가 리버풀을 떠난 뒤 파비우 아우렐리우, 호세 엔리케, 존 플라나간, 알베르토 모레노 등이 주전 레프트백 위치를 차지했지만 다들 심각한 하자를 안고 있던 터라 2008년 이후 10년간 리버풀에 리세만한 풀백은 없었다는 의견이 대부분. 결국 2016-17 시즌때 미드필더인 제임스 밀너가 풀백 알바를 뛰고 그 다음 시즌에 앤드루 로버트슨이 오기 전까지 리버풀은 레프트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이 선수의 킥력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바로 리즈 시절의 어원인 앨런 스미스의 끔찍한 다리부상 사건. 맨유소속으로 2005-06 시즌을 뛰던 앨런 스미스는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프리킥을 차려는 리세 앞에 수비벽을 세웠는데 점프한 상태에서 리세가 찬 공에 발목을 맞아 제대로 착지를 못하고 그라운드에 부딪히고 그 충격으로 발목 윗 부분 발목이 골절되었다.[9] 안그래도 스미스는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 변경 후 헤메고 있었기 때문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부상으로 빠지고 축구 선수로서는 나락에 빠지고 말았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 노르웨이 올해의 축구 선수: 2006

5. 여담

  • 2016년 1월 18일 안필드에서 열린 EPL 22라운드 리버풀 vs 맨유전에서 리세가 안필드에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다! 단순 경기관람을 위해 온것으로 보인다. 관중석에 껴있던 필 존스는 덤이다.
  • 2017/18 시즌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 4강에 복귀하여 로마와 격돌하게 되자 '로마를 응원해야겠다는 수줍은 로마 지지선언을 하여 일부 콥들에게 까이기도 했다. 한편 라치오[10]에서 뛰는 루카스 레이바는 아주 당당하게 올림피코에서 콥들과 함께 리버풀을 응원하겠다는 폭탄선언으로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고. 그래도 2차전이 명승부로 마무리되며 리버풀이 결승에 진출하자 콥들을 배경으로 제이미 캐러거와 함께 선수단 인터뷰를 진행하고 흥이 난 콥들에게 오랜만에 전용 응원가를 듣는등 모두에게 훈훈하게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
  • 득점 시에 상의 탈의 세리모니를 자주 선보였었다.
  • 현역 시절 외모를 보면 나름 잘생긴 편이었다. 사진마다 다르긴 하지만 꽤 미남으로 보일 사진이 많다. 다만 나이가 들며 주름이 생겨서 좀 무서워졌다.현역 사진도 웃는 사진은 무섭다. 토니 크로스를 닮았다는 의견도 있다.[11]

[1] 이외에도 AS 로마 시절에는 센터백도 소화한 적도 있었다. [2] 노르웨이 국대 역대 출장 1위. [3] 그 유명한 골프채 사건이 있은 뒤에 캄프 누 원정에서 승리를 했다. 자세한 것은 벨라미 항목 참조. [4] 본 포지션은 라이트백이지만 리버풀과 레알 입단 초에는 레프트백으로도 자주 뛰었다. [5] 바르셀로나 원정에서의 그 명경기 역시 리세는 윙어로 출전하고 아르벨로아가 열아홉 리오넬 메시를 마크했다. 물론 리세는 베니테스 시절에 풀백과 윙어를 고루 뛰어가던 선수였고 메시를 마크하기 위해 수비력이 좋은 아르벨로아까지 붙인 것으로 보인다. [6] 2차전 스탬포드 브릿지 경기에서도 1-1 스코어로 정규 시간 90분이 지났고, 연장 혈투 끝에 첼시가 3-2로 승리해 결승에 진출했다. [7] 뵈리될모는 유로 2000의 활약으로 AFC 아약스로 이적하고 이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등에서 활동했다. [8] 공에 힘이 얼마나 많이 실렸으면 회전을 먹고 위로 휜다. [9] 발목에 맞은 것 자체로 부상을 당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좋게 포장하면 리세의 킥력이 워낙 강하니까 그런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10] 라치오와 로마는 같은 연고지를 쓰고 있는 라이벌 관계이다.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 문서 참조. [11] 그러나 크로스는 눈썹과 눈이 좀더 선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