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f><colcolor=#000> 프로이센 왕국의 왕자 요아힘 폰 프로이센 Prinz Joachim von Preuß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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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요아힘 프란츠 훔베르트 폰 프로이센 (Joachim Franz Humbert von Preußen) |
출생 |
1890년
12월 17일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 베를린 궁전 |
사망 |
1920년
7월 18일 (향년 29세) 바이마르 공화국 프로이센 자유주 포츠담 |
배우자 | 안할트의 마리 아우구스테 공녀 (1916년 결혼 / 1919년 이혼) |
자녀 | 카를 프란츠 |
아버지 | 빌헬름 2세 |
어머니 |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
형제 | 빌헬름, 아이텔 프리드리히, 아달베르트, 아우구스트 빌헬름, 오스카, 빅토리아 루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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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 육남이자 막내 아들.2. 생애
1890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어머니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막내동생 빅토리아 루이제와 함께 찍은 사진.
이후 장교로 교육을 받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전쟁 중에 요아힘 왕자 역시 유럽에서 새로 설립된 여러 군주국의 후보로 간주되었다. 1916년 부활절 봉기 당시 일부 아일랜드 독립 지도자들로부터 아일랜드 국왕 후보로 고려되기도 했는데[1] 요아힘이 영어를 못한다는 게 긍정적인 요소 중의 하나였다.
1916년 안할트의 마리 아우구스테 공녀와 결혼해서 슬하에 아들 카를 프란츠를 두었다.
1918년 독일 11월 혁명으로 아버지 빌헬름 2세가 퇴위함에 따라 모든 프로이센 왕족들은 작위를 잃었다. 평민으로 전락한 요아힘 왕자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게다가 아내 마리 아우구스테와의 관계는 이미 악화되기 시작해서 결국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9년에 이혼했다. 이혼의 직접적인 원인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보고에 따르면 마리 아우구스테는 예전에도 다른 남자와 도망치기 위해 남편과 아이를 버렸으며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혼 후 요아힘은 1920년 7월 18일 포츠담에서 권총 자살했다. 향년 29살. 빌헬름 2세의 자녀들 중에서 가장 먼저 사망했다. 한 소식통은 그가 재정적 어려움에 처해 있었고 "큰 정신적 우울증"을 겪었다고 보고했다.
참고로 1890년 11월 셋째 고모인 그리스의 왕비 소피아와 어머니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황후가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는데,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황후는 이 일 때문에 당시 임신 중이던 여섯째 아들인 요아힘 왕자를 조산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요아힘 황자가 멘탈이 약해서 자살로 단명한 것을 생각해보면 틀린 주장은 아닌듯...?
한편 어머니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황후는 안 그래도 건강이 안 좋았는데, 막내아들의 자살 소식까지 듣고 충격을 받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서 이듬해에 사망한다.
3. 가족관계
자세한 내용은 호엔촐레른 가문 문서 참고하십시오.3.1. 자녀와 후손
아내 마리 아우구스테와 외아들 카를 프란츠 |
후손들의 이력이 좀 특이한데 요아힘의 아들 카를 프란츠는 의붓할머니의 딸[2]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그후 2번 더 결혼해서 슬하에 총 3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3남 2녀 중 아들 셋은 첫번째 결혼에서 얻었고 딸 둘은 세번째 결혼에서 얻었다.
카를 프란츠의 차남은 요절, 삼남은 외동딸만 두어서 그의 남계후손은 장남의 가계로만 이어지고 있다. 그 중 카를 프란츠의 장남 프란츠 빌헬름(즉, 요아힘의 손자)은 러시아 현 로마노프 가문의 당주 후보인 마리야 여대공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다.[3]
그 외 3번째 결혼에서 얻은 두 딸은 각각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4. 여담
- 막내 여동생인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와 함께 유이하게 증조할아버지 빌헬름 1세,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 증조할머니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 사후에 태어났다. 막내 형인 오스카는 1888년생이지만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사후에 태어났으며, 증조할머니인 아우구스타는 살아있었다.
- 형제자매 중에서 유일하게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다른 형제들은 모두 포츠담에서 태어났다.
5. 대중매체
- Hearts of Iron IV의 유명 모드 카이저라이히에서는 독일 제국이 승전국이 되어 살아있기 때문에 자살하지 않았으며, 조지아가 포티 조약을 유지한 채 군주정을 복고하면 조지아의 왕 이오아킴으로 즉위한다.
[1]
이들도 군주제에 부정적이긴 했으나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2]
할아버지
빌헬름 2세의 후처 로이스그라이츠의 헤르미네 로이스가 전 남편에게서 낳은 딸.
[3]
참고로 마리야 여대공의 고모인 키라 키릴로브나 여대공은 요아힘 왕자의 조카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의 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