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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cecec><colcolor=#29499d> 출생 | 1958년 11월 8일 ([age(1958-11-08)]세) |
이스라엘 텔아비브시 야파지구 | |
재임기간 | 제22대 국방장관 |
2022년 12월 30일 ~ 2024년 11월 5일 | |
학력 | 하이파 대학교 (재무학 / 학사 ) |
종교 | 유대교 |
소속 정당 |
|
지역구 | 비례대표[2] |
링크 | |
군사 경력 | |
복무 | 이스라엘 해군 |
1977년 ~ 1982년 , 1984년 ~ 2012년 | |
최종 계급 | 소장 (이스라엘 해군) |
최종 보직 | 이스라엘 남부사령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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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스라엘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2022년 이래로 이스라엘 국방장관으로 재임하다 총리인 네타냐후와의 갈등으로 인하여 2024년 11월 5일자로 경질되었다.2. 생애
1958년 11월 8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폴란드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며 1948년 이스라엘에 정착한 후 간호사로 일했다.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맞서 싸웠으며 1948년 이스라엘로 이민을 와서 곧바로 1차 중동전쟁에 참전했다. 갈란트의 아버지는 엘리트 저격수로 유명했고 요아브 작전에 참가했는데, 나중에 아들 이름도 요아브라고 지었다.갈란트 본인은 경영학과 재무학을 전공했다. 1977년 해군 특수부대인 샤에텟 13에 입대해 1982년까지 복무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알래스카주에서 벌목꾼으로 일했다. 그러다 이스라엘로 돌아와 1984년부터 다시 샤예텟 13에서 복무했다. 1992년, 샤예텟 13 사령관에 임명되었고 1994년부터 해당 직책을 수행할 예정이었으나 1993년 이를 거절하고 해군 지상군으로 옮겼다.
1995년, 샤예텟 13 사령관 시절의 갈란트[3] |
그러다 결국은 샤예텟 13 사령관이 되었고 2002년 총리 비서관이 됨과 동시에 소장으로 진급,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이스라엘군 남부사령관을 맡았으며 이 때 레바논 침공, 가자 전쟁 등을 지휘했다. 그리고 이 전적으로 2010년 8월 에후드 바라크 당시 국방장관[4]은 그를 차기 참모총장 후보로 추천했다. 그러나 갈란트가 경쟁자였던 베니 간츠를 비방하려는 계획을 담은 문서가 유출되면서 논란이 일었고 결국 2011년 2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결국 갈란트 대신 베니 간츠를 참모총장에 임명했으며, 진급에서 멀어진 갈란트는 2012년 33년의 군생활을 마감하고 전역한다.
그 후 2015년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 당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에 입문하였다. 그 후 2019년까지 건설부 장관에 임명되었고,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사회통합부 장관을, 2020년부터 2021년까지 교육부 장관을, 그리고 2022년 국방장관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2023년 초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과 여당에 유리한 사법개혁을 추진하자 텔아비브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졌고, 예비군들마저 네타냐후 정권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며 반대하자 이를 의식한 갈란트는 사법개혁은 국방에 해를 끼치는 요소라며 반대 의사를 표출했고, 이에 네타냐후는 해임으로 답했다. KBS 기사 그러나 여론은 갈란트의 복직을 원했고, 그렇게 강경파 일변도인 네타냐후 정권 하에서 국방장관 직무를 이어가다가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맞이해 전시 내각의 3인방 중 하나[5]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하마스에 납치된 인질 및 병사들의 안전, 국제 여론을 의식해 계속 현실과 타협하는 의견을 계속 내며 네타냐후 인사들과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11월 5일, 네타냐후가 다시 전쟁에 대한 심각한 견해 차이를 이유로 그를 경질했다. 후임으로는 이스라엘의 외교장관이었던 이스라엘 카츠가 임명되었다.
3. 기타
- 아내는 이스라엘군 중령 출신으로, 자식은 1남 2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