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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B2A30><colcolor=#ffffff> 왕우 王羽|Jimmy Wang Y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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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왕우 (王羽), Jimmy Wang Yu)[1] |
출생 | 1943년 3월 28일 |
상하이시 | |
사망 | 2022년 4월 5일 (향년 79세) |
대만 타이페이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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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82cm |
가족 |
배우자: 임취(林翠) (1969년 ~ 1975년) 왕개정(王凱貞) (1978년- ~ 1997년) 자녀: 왕형평, 왕 가 라우, 왕 메이 이 |
별칭 | 천황거성(天皇巨星) |
활동시기 | 1966년 ~ 1980년, 1983년 ~ 1991년, 2011년 ~ 2013년 |
영화 데뷔 | 1966년 <호협섬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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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왼쪽 위) 딸 왕형평과 함께, (왼쪽 아래) 리즈시절 이소룡과 함께, (오른쪽) 말년의 왕우
홍콩 영화계에서 활약한 상하이 출신의 액션배우이다. 70년대 이후에는 주로 대만에서 활동했다.
1970년대는 이소룡, 그 이후는 성룡의 포스에 가렸지만, 1960-70년대 홍콩 액션 영화에서는 대표적인 배우였다.
2. 생애
본명은 왕정권 (王正權, 왕정취안). 상하이에서 태어났으나, 대만에서 자랐다. 원래 수영 선수로 수영과 수구를 같이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수영 선수가 수구도 하고, 수구 선수가 수영을 하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그러나 왕우는 수구 경기 중에 폭력 사태를 일으켜 징계를 받아 시합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을 폭행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본인의 말에 의하면 수구 경기를 하는데, 상대팀 선수들이 그의 수영복 팬티를 벗기려고 하는 반칙을 계속 하자 이에 욱해 상대팀 선수를 폭행했고, 패싸움으로 번졌다고 한다.
징계 때문에 수영과 수구를 할 수 없게 되자 왕우는 1964년, 무협영화로 주가를 올리던 영화사인 쇼브라더스의 공개 오디션에 참여하였고 정뢰, 나열과 함께 수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장철 감독에게 선발되어 1966년, <호협섬구> 로 영화 배우로서 데뷔하게 된다.
이후 왕우는 <단장검>, <변성삼협>, <독비도>[2], <금연자>[3], <독비도왕>[4]에 연이어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단숨에 인기 스타가 된다. 당시 그를 일컫는 말이 "천황거성(天皇巨星)"
그런데 왕우는 본래 성격이 거칠어서 항상 끊임 없이 사람들과 싸움을 하며 말썽을 일으켰다. 장철의 회고록을 읽어보면 그가 정강 이라는 감독을 밀치고 촬영장의 집기들을 때려 부수며 행패를 부린 일화가 적혀 있다. 어느 날 장철 일행이 식사를 하러 갔는 데 어디선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자 "또 왕우가 싸우고 있군"이라고 말해서 일행 중 한 명이 나가보니 진짜 왕우가 싸우고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장철도 그를 통제하는게 버거워 지던 상황에서, 왕우는 <용호투>로 감독 데뷔를 하게 된다. 이 영화는 장철의 <복수>와 함께 권격(拳擊) 영화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즉, 이 영화 이전의 무술 영화는 주로 도검을 사용하는 무협물이었는데, 이 영화부터 맨손과 주먹을 사용하는 액션이 대세가 되었다. 중국 쿵푸와 일본 무술의 대결 이라는 플롯의 거의 시초격이기도 한 작품이다. 이소룡은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이라면 발을 좀 더 사용했을텐데... 라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왕우의 발은 서 있기 위한 발이다"라고 깠다. 그래도 비기를 익혀서 사부의 원수를 갚는다거나 마지막 대결장소가 눈 덮인 설경이라 남한산성 근처에서 찍는 등 신선한 시도를 많이해서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참고로 두 사람은 영화계의 라이벌이었지만, 서로 매우 친했다고 한다.
이후 왕우는 쇼브라더스와 계약 문제로 대판 싸우고 쇼브라더스를 탈퇴하였고, 세금 문제 때문에 대만으로 건너갔다. 연예계 활동을 대만으로 옮긴 왕우는 대만에서 <독비권왕>, <패왕권> , <독비권왕대파혈적자>, <전신탄> 등의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1991년, <천녀유혼>의 아류작인 <천인참> 이라는 영화를 끝으로 한동안 영화 출연을 중단하였다. 개인 사업 때문에 바빴다고 한다.
이후 2011년 진가신의 < 무협>으로 스크린에 복귀하였다. 마지막에 견자단과 대결을 벌이는 최종보스로 등장한다. 원래 진가신의 <무협>은 장철의 <독비도>의 리메이크로 기획된 영화였으나 진가신이 시나리오를 여러 번 갈아 엎으면서 <독비도>와는 무관한 영화가 되었다. 이후 2013년작 <실혼>이 있다.
2013년 방한 당시의 왕우옹.
2011년, 뇌졸중으로 한 번 쓰러진 후 기적처럼 회복했다. 2013년 부산영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하여, 한국 올드팬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2016년 1월, 다시 한 번 쓰러지고 말았다. 당시에는 위독한 상태라고 기사가 났었다. 가수로 활동했다가 결혼 후 잠정은퇴한 큰 딸 왕형평이 연예계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가 부친의 병간호를 위해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5년 만인 2021년에 퇴원하면서 통원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결국 2022년 4월 5일에 큰 딸 왕형평의 페이스북으로 타이베이의 한 병원에서 수면 도중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기사
3. 출연 작품
3.1. 영화
- 1967년 단장의 검 (斷腸劍)
4. 삼합회
왕우는 삼합회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다. 특히, 대만의 삼합회 조직 죽련방에서는 두목급의 대접을 받았다. 2007년, 대만 대선 당시에는 과거 1980년대 당시 국민당으로 부터 민진당의 거물급 인사의 암살을 청부 받은적이 있다는 폭로를 하여 온 대만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적도 있다.1981년에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방면되기는 했지만, 80년대 활동이 거의 없던 것은 이 사건 때문에 이미지가 너무 나빠져서였다.
성룡은 자서전에서 자신이 나유(羅維, 로웨이) 감독과 결별하고 골든하베스트로 이적하려하자 나유가 공공연히 삼합회 연줄을 통해 성룡을 손 봐주겠다고 떠들고 다녀서, 왕우에게 중재를 부탁해서 로웨이 영화에 두 편 출연하는 걸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당시 화가 난 로웨이가 왕우에게 칼을 들고 덤벼서 경찰이 출동할 정도였다고....
여하튼 성룡은 자신을 지켜준 왕우에게 보은하는 마음으로 한동안 왕우가 만들었거나 관계가 있는 영화에는 어떤 배역이 들어오건 절대 거절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대복성>이 있는데 실제로 대복성은 성룡이 왜 저런 영화에 출연했을까 궁금할 정도로 왕우 중심의 영화이다. 또한 화소도 역시 왕우가 제작해서 그런지 왕우가 굉장히 의협심이 넘치는 캐릭터로 나오며, 역시 이 영화에 출연한 성룡과 유덕화를 화해시키는 일도 한다. 화소도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성룡이 실수로 삼합회 측근을 죽이자 그 형제인 유덕화가 복수하러 쫓아온 것인데, 유덕화를 나유와 그의 삼합회 연줄에 대입하면 당시 성룡을 둘러싼 관계와 굉장히 흡사해진다.
5. 사생활
당대 남자배우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비범한 사생활을 자랑한다. 결혼 전, 유명 감독이었던 진검(秦劍)의 와이프이자 유명 여배우였던 임취(林翠, 본명 증의정. 배우 증강의 여동생이다.)와 바람을 피웠고 그 결과 진검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진검이 자살한 이유는 부인이 왕우와 바람을 피운 것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바이두 백과를 보면 원인 불명이라고도 한다. 진검 (1926~1969) 감독은 홍콩 영화의 여명기인 1950년대 독보적인 감독이었으며, 장철과 동시대인으로서, 수십편의 영화를 감독했을 뿐만 아니라 임취(와이프), 추위안(영화 감독,본명 장보견, 홍콩 영화 배우 장활유의 아들), 사현 ( 사정봉의 아버지, 소림축구의 악당팀 감독) 등 여러 유명 영화 배우를 발굴했는데 그중에는 아역이었던 이소룡도 있다.
진검 자살 사건 이후, 왕우는 1969년 9년 연상의 임취와 결혼하였고, 임취는 영화계를 은퇴했다. 그러나 1975년 이혼했다. 왕우의 성격이 매우 거칠어서 가정폭력을 일삼았다는 설이 있다. 왕우와 임취는 세딸을 두었는데, 첫딸이 바로 왕형평이다. 임취는 1995년에 사망했다.
이후 왕우는 1978년 스튜어디스 출신 왕개정(王凱貞)과 결혼한다. 하지만 왕개정과 왕우의 사이는 곧 악화되었다. 왕개정이 간통하는 현장을 왕우가 경찰과 기자를 대동하고 덮쳐서 한동안 중화권 신문에 떠들석 한 적이 있었다. 결국 1997년 이혼.
그의 집에 가면 금으로 만든 세숫대야가 있단 도시전설도 있었는데, 홍콩과 대만의 TV 프로그램에서 그의 집이 공개되면서 이 도시전설이 사실로 드러났다. #
한국의 여배우 김지미를 보고 반해, 김지미의 이름 지미를 따와 영문 이름을 지미로 지었다는 도시전설이 있으나, 확인 되지 않은 사실이다. 다만 2013년에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해서 한 인터뷰에서 김지미를 좋아해 같이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는데 안되서 아쉬웠다고 언급해 이런점이 와전된 이야기였을걸로 보인다. #
[1]
중국어: 王羽, (
표준 중국어: Wáng Yǔ (왕위),
광동어: Wong4 Jyu5 (웡유)
[2]
국내에서는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로 개봉.
반영자에게 팔이 잘리는 그 영화 맞다.
[3]
국내에선 <심야의 결투> 라는 제목으로 개봉.
[4]
<독비도>의 속편으로 국내에선 <돌아온 외팔이>로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