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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e8b57><colcolor=#ece5b6> 북송 비황족 추존 황제
옥청소응궁 | 玉淸昭應宮 |
|
시호 | 성조천존대제(聖祖天尊大帝)[1] |
명칭 | 경령궁(景靈宮) → 옥천소응궁(玉淸昭應宮) |
주군 | 성조(聖祖) |
건립 | 1008년 ( 진종 대중상부 5년) |
북송
카이펑 선덕문 (現 중화인민공화국 카이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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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송진종 시기에 건립된 도관(道觀)으로 본래는 송 황실의 시조 조현랑을 모시는 묘(廟)에 불과했으나 건물 자체가 존호를 얻어 독립성을 인정받아 별개의 신(神)으로 간주되었다.2. 역사
본래 명칭은 경령궁(景靈宮)으로 상술했듯 조현랑의 신주를 봉안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경령궁에 도가의 창시자이자 상덕제(上德帝)로 존봉된 태상노군, 시조신 황제(黃帝)를 모시기 위해 축조사업을 진행하는 등 그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으며 옥황상제가 봉안되자 진종은 그를 봉안한 건물 자체를 옥제의 수호신으로 간주하여 옥청소응궁(玉淸昭應宮)으로 명칭을 격상시키고 1016년 성조(聖祖)로 일컫음과 동시에 천존대제(天尊大帝)[2]로 추시하였다.사실 그 본질은 조현랑을 모시던 신전이라는 점과 시호가 자신의 주군 조현랑과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옥천소응궁은 조현랑의 분신(分身)과 같은 존재로 봐도 무방하다. 또한 조현랑도 옥황상제를 보좌하던 신하라는 점에서 옥천소응궁은 옥황상제의 배신(陪臣)에 들어맞는다.
이후 진종의 뒤를 이은 송인종 시기 진종의 어진과 각지에 난립하던 송 황제, 황후들의 어진을 경령궁에 모두 배향하면서 송조 제2의 종묘(宗廟)로 그 의미가 격상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