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로드아일랜드가 아직 정식적으로 미합중국 정부에 가입하기 이전이라 정당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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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로드아일랜드가 미합중국 정부에 가입한 이래로 첫 번째 주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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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지방당(Country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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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저리 켈리 작가의 저서 '주식회사 이데올로기 - 21세기 경제 귀족주의의 탄생' 이라는 책에서는 도어의 반란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도어는 로드아일랜드에서 백인 남성의 참정권을 놓고 벌어진 투쟁의 영웅이었다. 로드 아일랜드에서는 한 때 재산 요건 때문에 성인 남성의 절반 이상이 투표권을 갖지 못했다.
1842년
투표권이 없는 이들이 봉기해 도어 반란(Dorr Rebellion)을 일으켰다. 그들은 모든 백인 남성에게 참정권을 줄 것을 요구하는 그들만의 '인민 헌법(People's Constitution)을 만들고 도어를 주지사로 선출했다. 이로써 로드아일랜드에는 주지사가 두 명인 이상한 사태가 연출되었고, 결국
존 타일러 미합중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반란을 진압했다. 그이후로, 도어는 재판에 회부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결국 1년만 복역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내세웠던 대의가 승리를 거두었다.
1843년 로드아일랜드의
참정권 조항이 개정된 것이다. 1850년대에 이르러서는 투표권의 재산 요건이 거의 모든 주에서 폐지되었다. 토머스 윌슨 도어는
엘리자베스 스탠턴만큼 알려졌어야 할 인물이다. 하지만 도어는 그리 유명하지 않다. 집단적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듯 빈부 차별의 역사가 고스란히 잊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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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해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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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부패 혐의로 수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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