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1880년대의 독일 제국군/북독일 연방의 장성급 장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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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Generalfieldmarsch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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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원수 |
에버하르트 헤르바르트 폰 비틴펠트 | 알브레히트 폰 론 | 카를 폰 슈타인메츠 | |
상급대장 Generalober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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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상급대장 |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알브레히트 | |
병과대장 General der Waffengattung / Admir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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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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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 Generalleutnant / Vizeadmir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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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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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중장 |
레오 폰 카프리비 | |
소장 Generalmajor / Konteradmir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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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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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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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독일 제국군의 상급대장과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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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6> 독일 제국군 육군 원수 카를 에버하르트 헤르바르트 폰 비틴펠트 Karl Eberhard Herwarth von Bittenfel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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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Karl Eberhard Herwarth von Bittenfeld 카를 에버하르트 헤르바르트 폰 비틴펠트[1] |
출생 | 1796년 9월 4일 |
프로이센 왕국 브란덴부르크 베르터 (Werther) | |
사망 | 1884년 9월 2일 (향년 87세) |
독일 제국 본 | |
복무 |
프로이센군 (1811 ~ 1871년) 독일 제국군 (1871년) |
최종 계급 | 육군 원수(Generalfeldmarschall) |
주요참전 |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
주요 서훈 |
붉은 독수리 훈장 대십자상 푸르 르 메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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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비틴펠트는 프로이센군과 독일 제국군의 장성으로 최종계급은 원수이다.2. 생애
비틴펠트는 프로이센 왕국의 명문 귀족가문에서 육군 소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형제들도 모두 그처럼 장성이 되었다.초기에는 홈스쿨링을 받았으며, 나중에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1811년, 비틴펠트는 가족의 전통을 따라 군에 머스킷병으로 입대하였다. 소위의 계급장을 달고 비틴펠트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싸웠다. 이후 1816년 3월 30일에는 중위로 진급했고, 1821년 3월 30일에는 대위가 되며 중대장이 되었다. 이후에도 진급을 거듭하였고, 1864년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이 발발하자, 참전하여 큰 공을 거두었고,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수훈받았다.
이후 발발하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도 참여하였다. 그는 엘베강에 배치된 군을 지휘하여 우선 작센 왕국의 수도 드레스덴을 점령하였다. 본인이 직접 지휘한 쾨니히그레츠 전투에 참여하였고큰 공을 세웠다.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비틴펠트는 처음 공격받은 프로이센군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이후 마을을 습격해 오스트리아 제국군의 좌익을 격파하였다. 이 일로 붉은 독수리 훈장을 받았다. 헬무트 폰 몰트케, 알브레히트 폰 론, 에두아르트 보겔 폰 팔켄슈타인과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의 공로로 같이 큰 금액의 돈을 받았으며 전쟁영웅으로 불렸다.
이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도 참여하였다. 비틴펠트는 점령한 프랑스 영토의 총독으로 지냈으며 1871년 4월 8일 원수로 진급하였고[2], 같은 달 전역하였다. 본에서 살다 1884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