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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간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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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museum.pref.yamanashi.jp/img_kansuke.jpg 파일:Yamamoto_Kansuke.jpg
이름 출가 전 : 야마모토 칸스케(山本勘助/菅助), 일명 하루유키(晴幸)[1]
출가 후 : 도키사이(道鬼齋)
생몰년도 1493(?) ~ 1561(?)

1. 개요2. 생애3. 후손4. 대중 매체
4.1. 풍림화산4.2. 그외

1. 개요

일본 전국시대 무장이자 타케다 신겐 군사. 애꾸에다 절름발이 용모도 추했다고 한다.

2. 생애

다케다 24장의 일원으로, 다케다 24장을 그린 그림 등에서 신겐의 옆에 위치한 애꾸의 사내가 간스케. 동시대의 사료에서 존재가 확인되지 않고 그 활약상을 전하는 사료가 에도 시대에 성립되어 신빙성이 일부 의심되는 <갑양군감>이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사회 일반에서는 인기있는 소재였지만 사학계에서는 전적으로 가상의 인물 취급을 받아 왔다.

하지만 '마시모 가 문서'등 1970년대부터 야마모토 간스케의 이름이 적힌 당시의 문서가 여럿 발견[2][3]되어 사학계에 큰 파문이 일었고, 결국 현재는 아무도 간스케가 실존인물임을 의심하지 않는 편. 하지만 그 문서는 야마모토 간스케라는 이름을 가진 중상급 무사 신분의 가신의 존재를 증명할 뿐이고 그 야마모토 간스케가 에도 시대 군담에서처럼 다케다 가문 내에서 크게 활약했는가의 여부는 불분명하다. 사학계에서는 사나다 유키타카 등 지략에 능했던 다른 가신들의 공로가 후대에 간스케에게 부회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으며 (문서 등 실제 증거에서 유추할 수 있는) 간스케의 실제 역할은 중상급 무사로서 다양한 다케다 가문의 내부 업무에 종사하는 것이다.

문서에서 확인된 간스케의 업무는 신겐의 명령을 전달하거나 수행하는 것인데, 간스케가 처음 실존 인물임이 밝혀진 '이치카와 가 문서'에서는 시나노의 호족 이치카와씨의 활약을 치하하며 문서 말미에 자세히는 이 문서를 가지고 가는 야마모토 간스케가 설명할 것이다라는 구절이 확인되었다, 이후 "마시모 가 소장 문서"[4] 가신이던 오야마다 노부아리가 종기로 인해 사경을 헤매자 간스케에게 문병을 가고 에치고의 우에스기 켄신에 맞서 '유라기(揺らぎ)'라고 불리는 군사 작전을 수행하도록 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사료로 검증이 가능한 내용은 이상이고, '군감'에서의 활약상은 다음과 같다. 간스케는 다양한 나라를 거치며 병법[5]과 교류(경류) 검술을 체득하고, 먼저 스루가의 이마가와 가문을 방문해 갓 영주가 된 이마가와 요시모토에게 임관하려 했다. 그러나 요시모토는 간스케의 추한 용모와 장애를 보고 경멸하며 임관을 거절했고, 간스케는 다년간 실의에 빠져 스루가에서 허송세월을 했다. 후일 간스케는 가이의 다케다 신겐 밑으로 들어가게 되고, 신겐은 200칸[6]의 영지를 하사했다. 아직 가이 1국에 불과하던 시절의 하루노부(=후일의 신겐)를 잘 가르쳐서 스와를 빼앗게 하고,(이때의 악행이 다케다 집안의 큰 업보였다고도 한다) 북시나노를 압박해오는 무라카미 요시키요를 계략으로 격퇴시켰다. 신겐은 이에 간스케를 곧 800칸이나 되는 영지를 주어 보답했는데, 후다이[7]가 아닌 로닌 출신으로서는 파격적인 승진이라고 할 수 있다. 간스케는 항상 5할의 승리가 최고의 승리라 했는데, 10할의 승리는 교만을 낳기 때문이라고 한다.

4차 카와나카지마 전투에서 부대를 둘로 나누어 산에 진을 친 우에스기 켄신을 협공하려고 ' 딱따구리 전법'을 제안하는데, 천재인 켄신에게 간파되어 실패하고 책임을 지기 위해서 돌격해오는 우에스기군을 막아 싸우다 전사했다고 한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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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스케의 활약은 다케다 신겐부터 다케다 카츠요리까지의 정세를 서술한 <고요군칸>(갑양군감)에 중점적으로 등장하는데, 이 저자로 알려진 코사카 마사노부의 스승이 간스케였다고 한다.

군감에 의하면 각종 병법의 달인이며 절름발이인데도 경류 검술의 고수라고 한다. 절름발이에 애꾸가 검도의 고수라고 전해진 것은 꽤나 신기한 일이다. 어떤 격투기든 애꾸는 치명적인 약점이고, 절름발이라면 더더욱 제대로 된 싸움을 하기 어려운데 경류의 달인이라고까지 평가된 것은 과장이거나 다른 인물의 평과 섞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드라마 풍림화산이나 게임, 또는 영화 등에서는 승려 복장을 한 무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역사만화 등의 매체에서는 무장이라기보다는 닌자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다케다가 닌자의 수장으로 행동했다는 설정이 많이 보인다. 일본인들이 이런 류의 인물을 어떻게 생각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3. 후손

각종 문서와 <군감>에 의하면 간스케는 장남 헤이조에게도 '간스케'라는 이름을 물려주었다고 하여 헤이조는 통칭 '2대째 간스케'로 불리며. 2대째 역시 나가시노 전투에서 전사했기 때문에 매제 쥬자에몬을 대신 당주로 들여 야마모토 가문을 이었고 이는 도쿠가와 가문의 사료에서도 확인 가능하다.[9] 실제로도 다케다 가문에서 이 2대째 간스케에게 군역을 부과해 병력과 각종 장비를 갖출 것을 명령한 서류가 남아 있다.[10]

꼭 당주에게만 '간스케'라는 이름을 물려준 것은 아닌지, 그 후에는 '3대째 간스케' 야마모토 사부로에몬의 형제인 야마모토 헤이이치가 가문을 잇고 이에야스의 아들 유키 히데야스에게 문병을 간 것에 대해 히데야스가 보낸 답장이 남아 있다. 이후에도 '간스케'라는 이름을 물려받으며 타지에서 무사 생활을 이어갔다고 하나 역사상으로 이름이 확인 가능한 것은 4대째 간스케까지다. 이후에도 각지의 번에 야마모토씨의 후손을 칭하는 가문이 남아 있으며, 그 후손을 칭한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일본 제국의 군인인 야마모토 이소로쿠다.

4. 대중 매체

아무튼 실존인물은 애꾸에 절름발이에 추남이기까지 했어도, 미스테리어스한 여러 활약상과 비장한 최후 때문에 대중들에게 인기가 좋으며, 드라마 대망 등에서는 늘 비중이 크게 나온다. 2007년 드라마 풍림화산에서는 아예 주연 자리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4.1. 풍림화산

주인공으로 등장. 배우는 우치노 세이요. 애꾸눈에 절름발이라는 치명적인 장애를 딛고 무사로 성공한다는 훈훈한 성공담을 테마로 했다. 공중파 대하드라마의 쇠퇴기라 그런지 큰 반향을 이끌어내진 못했지만 대체로 막장 고증에 '스위츠'라고 불리는 수준 낮은 시청자층을 노린 대하드라마가 널린 상황에서 오랜만에 나름 제대로 된 정통사극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역덕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상세한 것은 항목 참조.

이마가와 가문에서 추한 용모로 쫓겨나 허송세월을 하거나 '하루유키'라는 이름[11] 및 800칸이나 되는 영지를 받는 등, <군감>의 설정을 대부분 차용했다.

재밌는 것은, 드라마상 간스케의 친구이자 연적, 라이벌로 등장하는 평민 출신 무사이자 군사 지망생인 '헤이조'가 드라마 방영 이후에 새로 발견된 '마시모 가 소장 문서'들에서 간스케의 아들(2대 간스케)의 이름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간스케의 실존 여부가 처음 판명난 '이치카와 가 문서'로 유명한 시나노 호족 이치카와씨가 작중에서 코사카 마사노부(토라츠나)와 함께 활약하는 것으로 잠시 등장한다.[12]

4.2. 그외

1989년 작품으로 그 주군인 신겐을 다룬 NHK 대하드라마 다케다 신겐(드라마)에서는 놀랍게도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보낸 스파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다케다 가문에 가서 가신인 척 하고 섬기며 첩보 업무를 하라는 명을 받고 신겐의 밑에 갔다가, 자신을 믿지 못해 인질을 잡고 협박하는 요시모토와 대비되는 당당한 신겐의 리더상에 매료되어 신겐의 가신이 된다. 혹시나 배신할까봐 요시모토가 인질로 잡아 둔 가족은 후일 신겐이 요시모토에게 정식 외교석상에서 요구해서 되찾아오고, 요시모토에게 찾아온 그가 본래는 총기가 번득이던 요시모토가 거만을 떨고 이전과 달리 긴장이 풀려버린 부분들에 대해 지적을 않고 칭찬만 하는 모습을 보고 요시모토의 어머니인 쥬케이니[13]는 빠르게 칸스케의 태도변화를 파악하고 "그것은 (한집안 사람이 아닌)남을 대하는 태도요. 그대도 다른 가문의 사람이 다 되었구려."라고 한탄한다.

무사 신분이지만 첩보 업무를 해야 해서 승려 복장을 하고 날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바쁘며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노부나가측과 밀통하는 등의 비밀스런 외교 업무도 수행한다. 과묵한 칸스케와 대비되는 실없는 남자이지만, 철두철미한 지략가라는 점에서는 통하는 바가 있는 사나다 유키타카와 함께 신겐의 장점 중 하나였던 첩보업무를 전담하며 활약한다. 하지만 4차 카와나카지마 전투에서 우에스기 켄신의 진을 정찰하던 중 중상을 입는데, 켄신이 신겐의 본대를 급습한다는 정보를 본진에 알리기 위해 부하를 전령 삼아 탈출시키고 자신은 적을 막아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다. 당시 일본 대하드라마에서 빠지지 않고 출연하던 샐러리맨 가장 캐릭터로 차가운 첩보 무사지만 가족에게는 따뜻한 가정적인 남자인데다 농민인 부하들에게도 존경받는 사람이라서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덤으로 이 드라마에선 신기하게 애꾸도 절름발이도 아니다. 배우는 대하드라마에 너무 나와서 지겹다며 욕까지 먹는 유명 배우 니시다 토시유키.

명탐정 코난의 등장인물인 나가노 현경의 형사 야마토 칸스케의 모델은 애꾸눈, 절름발이, 이름을 보아 이 사람이다.
파일:山本勘助.jpg 파일:山本勘助2.jpg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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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나가의 야망 신생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지략이 높은 전형적인 지장 캐릭터지만 그보다 지략을 비롯한 능력치가 전반적으로 높은 사나다 유키타카에게 밀리는 경향이 있다. 노부나가의 야망은 초기 시리즈를 제외하고 군사의 개념이 없어서 신겐에게 조언하는 역할로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군사 캐릭터지만 삼국지와 같은 군사는 못 되는 무장이다. 그나마 군웅집결에서 유키타카가 사나다 가문으로 분리가 되어서 쓸모가 있다.

삼국지 12에서는 신장전생 시나리오에서 고대무장으로 등장. 능력치는 지력이 95에 정치 75을 제외하면 나머지 능력치는 전반적으로 매우 낮다. 전법은 허유엄살.

이세계는 스마트폰과 함께.에서도 등장했지만 정확히는 지구의 칸스케가 아닌 이세계의 칸스케지만 불사의 보옥이라는 아티팩트를 이용해서 타케다 군을 괴뢰시켰다.

사신소년에서 겐타 코어로 등장한다. 수식어는 '독안의 사무라이'.


[1] 하루유키라고 하는 이름이 전해지나, '하루'라는 자는 주군인 다케다 하루노부(= 다케다 신겐)가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의 이름 중 한 글자를 하사받은 것이라서 '헨키(偏諱)' 문화의 풍습상 남에게 함부로 내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이름은 신빙성이 의심된다. 실제로 신겐의 가신들은 신겐이 주군에게 받은 존귀한 글자 '하루(晴)'가 아닌 신겐 본인의 이름자인 '노부(信)'의 글자를 하사받았고, 신겐 부친인 노부토라 대의 가신들은 '토라(虎)'자를 하사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하루유키라는 이름은 창작된 것으로 보는 편. 신장의 야망 등에서는 간스케가 아닌 하루유키란 이름으로 나온다. [2] 정확히는 山本菅助라고 적혀 있다. 같은 이름을 다른 한자로 표기하는 경우가 일본 중세시대에는 흔한 일이라, 이 菅助가 勘助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3] 일본측 위키에 따르면 1969년에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 하늘과 땅( 우에스기 겐신이 주인공인)을 시청하던 홋카이도 지역의 한 주민이 "어? 우리 할아버지 때 저기 나오는 사람들 이름이 적힌 종이가 집에 있었던 것 같은데?"하고 떠올려내고는 집안에서 대대로 소장해오던 그 문서를 찾아냈는데 공교롭게도 거기에 야마모토 간스케라는 이름이 떡하니 실려 있었던 것. [4] '소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치카와 가 문서는 후손이 대대로 물려받은 문서이지만 마시모 가 소장 문서는 관계 없는 사람이 수집한 고문서에서 발견된 것이기 때문이다. [5] 일본에서는 같은 '병법'이라는 한자라도 '효호'라고 읽으면 무술을 뜻하고, '헤이호'라고 읽으면 병법을 뜻한다. 간스케는 교류(경류) 검술도 배웠지만 후자를 중점적으로 익혔다. [6] 세입이 쌀 기준인 고쿠다카가 아닌 '칸다카'인 경우인데, 이 경우 비옥도에 따라 지방마다 '고쿠'로 환산했을 경우의 수입이 달라지므로 계산이 복잡해진다. [7] 대대로 다이묘 가문을 섬긴 원로 가신단. [8] 이것 때문에 시니컬하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대실패가 제일 유명한 업적인데 명군사로 평가된다며 조롱하기도 한다. [9] 오다 노부나가가 가이를 공략했을 당시 다케다 가문 및 그 가신들을 철저히 탄압했으나, 살아남은 가신들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보호했기 때문에 다케다 가문의 유신들은 도쿠가와에게 연판장을 돌려 충성을 맹세했는데 이 명단에 야마모토씨의 이름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10] <군감>에서는 800칸까지 영지를 늘려 주었다고 하는데, 서류의 내용을 보면 대략 1대째 간스케가 처음 하사받은 200칸 정도 되는 영지에 해당하는 병력 동원령이다. 화승총, 성문을 부수는 파성추와 장창인 나가에야리 등, 당시 다케다 가문의 장비에 대해 간략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11] 역사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가신들이 "'하루'라는 글자는 윗사람인 쇼군에게 받은 이름이 아니냐"라면서 함부로 하사할 수 없음을 지적하는 장면이 직접 등장한다. [12] 역사에서는 간스케가 종기로 사경을 헤매는 오야마다 노부아리에게 문병을 갈 것을 지시받았고 노부아리는 병사로 추정되는 요절을 했으나, 드라마에서는 포로로 잡았으나 사랑에 빠졌던 적장의 딸이 얀데레가 되어 잠든 사이 노부아리를 찔러죽인다. 실제 노부아리는 부자가 동명이인이고 아들은 젊은 나이에 급사했으나, 드라마의 노부아리는 등장 시기와 연령으로 보아 1명의 중년 가신으로 처리한 듯. [13] 이마가와 가문의 실권을 쥐고 막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정치가로, 작중에서도 직언을 아끼지 않는 참모격 정치인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