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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Alan Bean1932년 3월 15일 ~ 2018년 5월 26일
미국 텍사스주 Wheeler 출생
앨런 빈은 제미니 계획, 아폴로 계획, 스카이랩에 참여한 미 해군출신의 테스트 파일럿이자, 인류 역사상 네 번째로 달에 발을 디딘 우주비행사이다. 아폴로 시절 우주비행사 중에서도 여러 업적을 세웠다.
2. 생애
텍사스 대학교/오스틴 캠퍼스를 졸업하고 ROTC로 임관했으며, 졸업하면서 항공공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1956년에 비행훈련을 마치고 VA-44로 배치를 받아 해군 비행사 경력을 시작하였다. 이후 해군 테스트 파일럿 스쿨에 입교하여 테스트 파일럿 교육을 받았으며 이 때 NASA에서 아폴로 12호를 함께 타게 된 피트 콘래드와 인연을 갖게 되었다. 이후 다시 비행대에서 공격기 파일럿으로 근무를 하다 1963년에 NASA 우주인단 3기로 우주비행사 생활을 시작하였다.하지만 NASA 초기에는 제미니 10호의 백업을 맡기는 했지만 정작 초기 아폴로 계획에는 선발되지 못했다. 대신 나중에 스카이랩으로 이어지는 아폴로 응용 계획(AAP)에 배치되었는데, AAP라는 것이 아폴로 계획이 단순히 돈을 잡아 먹는 계획이 아니라는 것을 외부에 보여주는 얼굴마담성, 그리고 혹시 아폴로 계획이 중간에 중단되었을 때 NASA의 밥줄 역할을 할 보험 성격이 강했기에 NASA 우주인들 사이에서는 처음에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이 계획에 참여하면서 무중력 연구를 위한 중성 부력 시뮬레이터의 최초의 피험자가 되는 등 크고 작은 활동을 하였다.
그렇게 아폴로 본 계획과는 떨어져 지내던 그를 구해낸 것이 피트 콘래드이다. 원래 피트 콘래드가 이끄는 아폴로 계획의 팀은 앨런 빈과 동기인 NASA 우주인단 3기인 리처드 고든, 그리고 클리프턴 커티스 'C. C.' 윌리엄스가 멤버였다. 하지만 C. C. 윌리엄스가 T-38 추락 사고로 순직하면서 팀에 결원이 생겼고, 테스트 파일럿 시절부터 안면을 텄던 앨런 빈이 이 자리를 채우게 된 것. 그렇게 아폴로 본 계획에 합류한 그는 아폴로 9호의 백업을 거쳐 아폴로 12호의 승무원이 되었다.
1969년 11월, 아폴로 12호 임무를 수행했다. 상대적으로 외부적인 부담이 가벼워진 아폴로 12호는 개그성 일화가 많지만 여기에 앨런 빈이 여러 공헌을 했다. 먼저 발사 직후 낙뢰를 맞아 사령선의 전력 공급이 끊겼는데, 다행히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고 있던 EECOM 존 애런이 SCE to Aux라는 해결책을 제시하였으나 정작 승무원 그 누구도 SCE 스위치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앨런 빈이 근처에 있던 SCE 스위치를 찾아 조작하면서 첫 번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달에 도착해서도 사건은 이어졌는데, TV 중계용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실수를 해서 렌즈가 태양을 향하게 했고 이로 인해 안이 바싹 타버렸다고 한다. 결국 월면 활동의 TV중계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한 폼 나는 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용 셀프 타이머를 가지고 왔으나 그것을 찾지 못해 사용하지 못했고, 선외활동 막바지에 그것을 찾기는 했으나 그 때는 이미 늦어 타이머를 달 표면에 던지고 돌아왔다. 또한 귀환 도중 사령선이 바다에 착수할 때의 충격으로 인해 떨어진 카메라에 머리를 맞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후 아폴로 본 계획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자신이 이전에 맡고 있던 아폴로 응용 계획의 연장선인 스카이랩을 통해 다시 우주로 나오게 되었다. 이제는 현역 우주비행사 가운데서는 베테랑이 된 1973년에 스카이랩 3호에서 선장이 되어 여러 과학 임무를 수행했다. 59일 동안 우주에서 생활하였고, 그가 이끄는 팀은 원래 예정보다 50% 더 많은 목표를 달성했다.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우주로는 나가지 못하고 해군 대령으로 퇴역한 뒤 NASA에서 승무원 교육 업무를 맡다 1981년에 그림과 대중강연에 전념하기위해 NASA를 그만뒀다. 이후 화가로서 우주에서 경험한 것을 그림으로 남기기 위해 활동했다.
2018년 5월 26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으로 아폴로 12호의 승무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