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7 23:03:51

애신각라 홍력(옹정황제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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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00><colcolor=#FFD700> 옹정황제의 여인 등장인물
애신각라 홍력
건륭제
이름 애신각라 홍력 (爱新觉罗 弘历)
배우 오재함(아역) → ??[1] → 왕문걸(王文杰)
거주지 원명원 → 수강궁 → 수황전 → 양심전
지위 4황자 → 황제
가족 아버지 옹정제, 생모 이금계, 양모 숭경황태후 뉴호록 씨
아내[2] 효현황후 부찰 랑화, 계황후 오라나랍 여의, 효의황후 위연완[3] 슬하 17남 10녀

1. 개요2. 작중 행적
2.1. 아버지에게 냉대받는 아들2.2. 벼락 신분 상승, 늘어난 입지
3. 실제 역사에서

[clearfix]

1. 개요

드라마 옹정황제의 여인의 등장인물.
옹정제의 4황자이자 견환의 양자이며 본명은 애신각라 홍력이다.

2. 작중 행적

2.1. 아버지에게 냉대받는 아들

옹정제가 아직 옹친왕이었던 시절 강희제의 8황자 윤사와 논쟁을 벌이다, 뜻대로 되지 않자 폭음 후 술김에 열하 행궁의 궁녀 이금계와 동침하여 생긴 황자이다. 그 일을 빌미삼아 당시 8황자 윤사가 선황에게 꼰질러서 크게 혼났고, 친왕의 작위까지 빼앗길 뻔했기에 흑역사 취급을 당하는 듯하다.[4] 옹정제가 이금계를 왕부에 데리고 들어가지 않고 원명원에 방치해뒀고 그녀가 홍력을 낳자마자 죽었기 때문에 궁에서 자라지 못하고 원명원에서 늙은 유모의 손에서, 아버지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냉대 속에서 자랐다. 이렇게 친모가 없기 때문에 애정결핍인지 견환이 어머니가 된다고 하자 드디어 자기에게도 어머니가 생겼다고 매우 좋아한다. 참고로 견환보다, 정확히 말해서 견환의 실제 나이보다 일곱 살 어리므로, 원명원에서 견환을 처음 만났을 때는 11살이었다. 열 살이 넘도록 원명원에 방치되어 자랐던 것. 이 때문에 견환이 홍력의 생모로 세탁되어 환궁했을 때 나이를 무려 10살이나 올려버렸다.

황제가 4황자 이야기만 들으면 화를 버럭 내기 때문에 서재에도 출입하지 못해 당연히 제대로 된 공부도 하지 못했고, 황후[5]를 비롯한 비빈들 역시 냉대한다. 상냥하기로 꼽히는 경빈마저 4황자를 가까이하지 말라고 견환에게 충고했을 정도였다. 그들의 심복들도 마찬가지다. 여름 피서 차 원명원에 들른 황제에게 문안을 올리려고 해도 노비들이 먼저 몰아내는 판이니 그렇다.

황제에게 갓 총애를 받던 시절의 견환이 문안인사도 올리지 못하고 하인들에게 쫓겨나는 홍력을 불쌍하게 여겨 그에게 따뜻한 위로를 해줬을 때, 홍력은 순수한 표정으로 견환의 말을 듣고 즐거워 한다. 이때 4황자가 나중에 황제가 된다는 복선이 나오는데, 황제 쪽에서 4황자를 만나주지 않자 견환이 위로하느라 "아버지는 일하느라 바쁘시답니다~"라고 말하는데 홍력이 천진난만하게 "그럼 내가 아버지 일을 대신 할래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렇듯 견환이 거의 유일하게 홍력에게 따스하게 대해 주었기에 홍력은 견환을 잘 따른다. 이 관계는 후에 4황자와 견환 모두에게 득이 된다.

견환이 폐비되어 출궁하고 난 뒤 롱월공주의 돌 잔치때문에 입궁했을 때, 몰래 쇄옥헌에 가서 슬퍼하다가 지나가던 황제와 딱 마주친다. 이때 4황자가 황제에게 자신과 견환의 인연과 아들로서 아버지를 그리워했다고 이야기하자, 황제도 이때부터 4황자를 보는 것도 싫은 흑역사에서 흑역사이지만 어쨌든 내 아들 정도로 인식이 진화하면서 공부를 시키고 가끔씩 말도 걸게 되었다.

2.2. 벼락 신분 상승, 늘어난 입지

이렇듯 남들보다 공부를 시작한 것이 좀 늦은 편이지만 남들 잘 때 안 자고 밥 먹을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하는 것을 보면 근성도 있고 공부 머리도 꽤 있는 듯. 아버지에게 그나마 듣는 소리라고는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느냐?"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총애를 받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공부한다. 그런 그의 모습이 황후의 눈엣가시가 되어[6] 독살당해 죽을 뻔하고, 멘붕해서 방황하다가 심미장을 만나는데[7], 마침 태후의 수발을 들면서 태후의 예쁨을 받던 심미장이 '홍력을 지켜야함 → 견환을 데려오죠!' 라는 분위기로 가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수강궁에서 잠시 지내다가 그가 15세 되던 해 폐서인되었던 견환이 4황자의 생모로 신분세탁되어 들어왔기에 4황자 홍력의 출생은 고귀해지고, 자연히 황제의 눈에도 더 들게 된 듯.[8]

원명원에 있을 때부터 견환과는 서로 호의적으로 대한 덕분에 견환을 친모처럼 여기며 효심을 다하고, 견환이 출가 전 낳은 롱월공주에게도 매우 잘 대해준다. 그러나 이것의 나비효과가 꽤나 컸다.[9] 견환 역시 홍력을 자신의 친자식들보다 더 신경 써주고 웬만하면 혼내지 않고 말로 잘 타이르는 편이었다. 하지만 견환도 단 한 번 홍력을 호되게 꾸짖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67화에서 태후의 죽음으로 황제가 슬픔에 못 이겨서 쓰러졌을 때였다. 이때 홍력은 자기딴에는 아버지의 건강을 생각해서 황제에게 인삼탕을 끓여서 직접 갖다드리려고 했지만 견환은 평소와는 달리 "폐하께서 태후의 영전을 지키시느라 몇 번이나 혼절하셨다. 폐하는 널 의젓하다고 생각하시는데 이럴 때 영전을 지키지 않으면 다들 뭐라고 하겠냐? 영전을 지키는 게 인삼탕보다 더 중요하다. 이런 건 여자들이 할 일이니 연연해하지 말라."라고 단호하게 꾸짖었다.[10] 이에 홍력도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생각이 짧았다며 사과하고 견환이 먼저 수황전으로 떠난 뒤 곧바로 황제에게 수황전은 문제가 없으니 푹 쉬시라고 문안 인사를 여쭈며 점수를 딴다.

그 뒤부터는 홍력도 무조건 견환만 쫓아다니며 착한 아들 노릇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 앞길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눈칫밥만 먹고 자란 터라 처세술이 킹왕짱이라 녕귀인이 3황자와 비교하며 지식수준을 시험해 보자 아는 것도 일부러 모른다고 할 정도였다.[11] 게다가 음모와 술수에 능한 자기 아버지와 숙부들의 피는 어디 안 간 것인지, 이복형 3황자 홍시를 황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8황숙과 14황숙의 구명을 주청하도록 부추겨[12] 황실 족보에서 제명당하게 만들었다. 이후 적복진 부찰씨 측복진 오라나랍씨와 혼인도 하고 보친왕에 책봉된다. 옹정제 사후에는 견환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차기 황제로 지목되어 마침내 건륭제로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황제가 되었을 때 홍력은 견환의 친아들이자 자신의 이복동생인 홍염이 언젠가는 자신의 입지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어느 정도 경계하는 눈치였다. 실제로 황제로 즉위하기도 전부터 항상 "홍염이 잘 되면 소자도 기쁠 거예요"라는 식으로 견환의 눈치를 보는 듯한 발언을 자주 했었다.[13] 결국 황제로 등극한 뒤 정백이 언에서 동생 단을 물리쳤다는 춘추시대 고사를 언급하며 "어린 아들을 편애하고 장남을 홀대한 것이 정나라의 화를 불러왔습니다. 친자식한테도 이러는데 양자라면 어떻겠습니까?"라며 압박을 넣었다. 하지만 견환은 이를 벌써 눈치채고 홍염을 (이미 죽은 친아버지인) 과군왕의 양자로 만들어서 황위다툼에 말려들 가능성을 원천봉쇄시켰다.

이런 모습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훗날 자신의 아버지보다 더 나쁜 놈이 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자신의 비빈들에게는 좋은 부군일지는 의문이고 동생 홍염이 자기 자리를 위협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빼면 견환에게 좋은 아들인 건 맞다.

참고로 혼인 당시 황후가 3황자 홍시에게 복진으로 주려고 했던 오라나랍 청앵이 홍력의 측복진이 되었는데, 이때 홍력은 견환과 함께 마주앉아 청앵이 정말 마음에 안 든다고 하소연한다. 이에 견환은 좋든 싫든 아무래도 상관 없으니 그냥 데리고 있는 게 중요한 거라며 달래고, 홍력도 이에 수긍하며 알겠다고 넘어갔다. 홍력도 청앵을 달가워하지 않고 부찰씨를 더 좋아하는 견환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의 건륭제에게는 2명의 황후가 있었는데 첫 황후가 부찰씨인 효현순황후이고, 둘째 황후가 휘발나랍씨(오라나랍씨)인 계황후다.[14]

3. 실제 역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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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을 토대로 한 드라마인만큼 역사와는 관계가 매우 없지만 견환의 모티브가 건륭제의 생모인 숭경황태후 뉴호록씨인만큼 실존역사를 따지고 본다면 견환의 친자식이 된다. 건륭제의 어머니가 못생긴 시녀라는건 어디까지나 야사.[15][16][17]

출신 때문에 냉대받았다는 것도 드라마 창작으로, 출생 당시 생모의 신분이 낮은 편이긴 했지만 오히려 할아버지인 강희제의 살아생전부터 똘똘하고 예의바른 모습 때문에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은 유망주였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큰 신임을 받아 사실상 옹정제 다음 황제로 즉위할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강희제가 옹정제에게 황위를 물려준 이유도 건륭제 덕분이었다는 설도 있을 정도.


[1] 견환이 감로사에 간 직후에 딱 한 번 등장한 청소년기 모습으로, 배우 정보도 없다. [2] 오직 정실인 황후만이 아내로, 원후 부찰씨와 계후 오라나랍씨만이 아내라고 할 수 있다. [3] 이쪽은 추봉으로, 생전에 혼인한 아내는 아니다. [4] 참고로 이런 치졸한 방식으로 옹정제를 괴롭힌 8황자 윤사는 당연히 옹정제의 즉위 후 보복을 정통으로 받아 본인과 가족들까지 모조리 족보에서 제명당하고 옹정제에게 개돼지라는 멸칭을 하사받는 걸로도 모자라 종인부에 유폐당해 그곳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5] 전추가 4황자가 불쌍해 보였는지 황후에게 양자로 삼는 게 어떻냐고 하자 황후는 "황상이 4황자를 싫어하시는데 들여서 뭘 어쩌라는 게냐?"이라고 말했다. [6] 자신이 양자로 들인 3황자 홍시를 황태자 자리에 올리기 위해 노력 중이였는데 정작 홍시는 자질이 부족한데 비해, 공부를 늦게 시작한 4황자는 훨씬 똑똑하고 공부를 비롯한 다른 수업도 열심히 하니 바로 제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7] 자신을 쇄옥헌의 혜빈이라고 소개하자 쇄옥헌이라는 키워드에 반응하여 도움을 요청한다. [8] 양모이자 호적상 친모인 견환이 만주족 8대 성씨인 뉴호록씨의 성을 가지고 입궁한데다, 희비로 책봉받은 뒤에는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하며 귀비로까지 올라갔다. 홍력 입장에서는 황제가 보기도 싫어하는 천한 궁녀 소생의 황자에서, 만주족 명문가 출신 후궁 소생의 황자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9] 롱월을 견환에게 데리러 왔는데 경비가 견환이 딸을 뺏으려고 하는 거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어 버렸다. 자세한 내용은 근석, 소배성 문서 참조. [10]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자면 "아들, 이리 좀 와봐. 오늘은 엄마가 따끔하게 한 마디 해야겠어. 네 아버지가 지금 인삼탕이나 끓여오는 아들을 좋아할 것 같냐, 아니면 할머니의 영전을 지키는 효심깊은 아들을 더 좋아할 것 같냐. 이런 일은 내관이나 시녀가 해야될 일이지, 네가 할 일이 아니야!"라는 의미다. [11] 그것도 단순히 모른다고 한 게 아니라 "배움이 늦은 저를 어찌 형님과 비교하겠습니까? 그저 노력할 뿐이지요"라며 애둘러 표현한다. [12] 홍시는 이때 순진하게도 "음, 역시 우리 아우야. 이렇게 생각이 깊다니."라고 홍력을 칭찬하고 있던 중이었다. [13] 황제가 되기 전 친왕 직위를 받았을 때 견환에게 "홍염의 작위는 네가 줬으면 한다(=네가 황제가 되었으면 한다)"라는 말을 듣고 놀라며 감격해하는 걸 보면, 아무리 견환이 자신에게 양모로서 잘 대해주긴 했어도 설마 친아들 홍염이 아닌 양아들인 자신을 밀어줄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이건 홍력 뿐만 아니라 황후도 같은 생각이였다. 황후는 옹정제의 사후에 자신을 찾아온 견환에게 난 이제 모후황태후(선황의 정실)이니, 성모황태후(선황의 후궁)인 견환보다 서열이 높다며 여전히 지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견환이 친아들 홍염이 아닌 양아들 홍력을 황위에 올렸다는 소리에 세상에 너같은 어미가 어디있냐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 [14] 효의순황후 위가씨는 생전 영의황귀비라는 지위에 있었고 사후에 효의순황후로 건륭제가 추증한다. [15] 다만 정사 기록에도 건륭황제의 어머니에 대해 즉위 전의 기록에서는 뉴호록씨가 아닌 전씨로 기록된 곳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한족민주주의자들의 역사왜곡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다만 견환 문서와 관련 역사 자료를 봐도 숭경황태후 뉴호록씨가 시첩 출신에 신분이 한미한 후궁이었다는건 사실인 것 같다. [16] 건륭제의 출생에 대해서 말이 많은 이유도 건륭제가 자기 출생지를 자꾸 여기랬다, 저기랬다 해서 그런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기록에는 자기가 옹친왕부에서 태어났다고 했다가, 또 다른 기록에는 원명원같은 피서산장에서 태어났다고 했다는 등, 말이 자주 바뀐다. [17] 청나라의 멸망 후 권력을 손에 쥔 한족이 만주족의 국가인 청나라를 깎아 내리기위해 한 일 중 하나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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