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윤지(潤之). 호는 일재(逸齋). 본관은 고령(高靈).2. 생애
신광윤(申光潤)은 1468년(세조 14) 9월 24일에 태어났으며, 영의정을 지낸 보한재 신숙주의 손자이다. 신광윤의 아버지는 내자시정을 지낸 신형(申泂), 어머니는 정부(鄭溥)의 딸이며, 아내는 덕산현감을 지낸 지준(池浚)의 딸이다. 아우는 좌찬성을 지낸 신광한이며, 예조참판을 지낸 신종호, 좌의정을 지낸 신용개와는 사촌이다.신광윤은 문음으로 제릉참봉, 사온서 봉사, 사옹원 직장, 한성부 참군을 역임하였다. 연산군의 갑자사화 때 윤필상의 외손서(外孫壻)로 연좌되어 구금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석방되었다.
1510년(중종 5) 전함사 별제로 제수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청안[1]으로 낙향하였다. 1540년(중종 35) 묵정[2]으로 이거하였다.
1546년(명종 1)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으며, 1549년(명종 4) 수질(壽秩)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시율(詩律)에 능하여 그 날의 일을 반드시 시로 적었다고 한다.
1554년(명종 9) 10월 15일에 세상을 떠났으며,[3]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에 추증되었다.
[1]
淸安(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석성리)
[2]
墨井(충북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
[3]
묘비(墓碑)가 청주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금석문(金石文)이다.(
https://v.daum.net/v/2022020913480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