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31 16:00:30

송의

<colcolor=#ece5b6>
최종직위 <colbgcolor=#fff,#000>상장군(上將軍)
성씨 (宋)
(義)
아들 송양(宋襄)
생몰연도 ? ~ 기원전 207년
사망지 안양(安陽)
1. 개요2. 생애
2.1. 초회왕을 옹립하고, 교만해진 항량의 죽음을 예측하다2.2. 초회왕의 신임을 받아 초나라의 정국을 주도하다2.3. 죽음2.4. 사후
3. 평가4. 창작물에서의 송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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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초한쟁패기의 인물, 항량과 함께 초회왕을 옹립했다.

2. 생애

2.1. 초회왕을 옹립하고, 교만해진 항량의 죽음을 예측하다

초 의제 원년(기원전 208년), 진나라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중국 대륙 전역에서 옛 6국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초나라의 방계 왕족이자, 귀족 출신인 경구(景駒)가 초왕(楚王)이 되어 팽성(彭城)에서 웅거하자, 회계(會稽)에서 세력을 키운 항량(項梁)과 송의(宋義)는 왕실 직계로 정통성이 경구보다 훨씬 앞서는 웅심을 찾아내어 초나라의 회왕(懷王)으로 추대했다.

항량이 장한(章邯)을 연달아 격파하며 점차 교만해졌다. 진나라 군대를 완전히 섬멸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제나라와 외교 마찰을 일으켜 원군이 끊기고, 그 와중에 병력을 분산시켰으며, 항우와 멀리 떨어지게 된다. 이때 초회왕의 사자로 항량을 찾아 온 송의는 이에 대해 "장수는 교만하고 병졸은 게을러 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자만에 빠진 항량은 송의의 지적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한편으로 병력부족이 조금이나마 걸린 탓인지 송의를 제로 사신으로 보냈다. 제나라로 가던 송의는 마침 초나라에 사신으로 오던 고릉군 현을 만나게 되는데, 송의는 여기서 고릉군 현에게 늦게 가라고 조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무신군은 필히 패할 것입니다."

송의의 예측대로 동아 전투의 대승 후 겨우 2달이 지난 어느 날, 항량은 야밤을 노려 깃발을 숨기고 기습을 가한 장한의 군대에 정도(定陶)에서 패했으며 항량도 이 전투에서 죽는다.

2.2. 초회왕의 신임을 받아 초나라의 정국을 주도하다

초나라가 숨을 돌리며 무신군 항량의 패사에 대한 충격을 극복하는 사이, 북진한 장한에 의해 조나라(趙)는 최악의 형세에 몰렸고, 조나라가 무너지면 다음은 자신의 차례가 될 것이 자명했기에 여러 제후들도 구원에 나서게 되었다. 이때 송의는 초회왕에게 아첨하여 신임을 얻게 된다. 자세히는 항량이 죽기 직전 제나라 사신으로 초나라의 송의를 만났던 고릉군 현이 초 회왕에게 송의의 식견[1]을말해서 신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초회왕은 송의를 상장군으로 임명한 후에 항우를 차장(次將)으로 삼아 조나라 구원에 나서게 하였다. 이때 초회왕은 "진나라의 중심지인 관중(關中)에 먼저 입성하는 사람이 그곳의 왕이 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는데, 모두들 장한의 위세에 감히 엄두를 못냈으나 오직 유방과 숙부 항량의 복수심에 불타는 항우만이 서쪽으로 갈 것을 원했다. 하지만 양성에서의 학살 때문에 다른 제후나 장수들은 항우를 꺼려 초회왕은 성품이 관대한 유방을 관중으로 보내고, 항우를 송의의 휘하에 배속시켜 북쪽으로 보냈다.

경자관군(卿子冠軍)이라고 불린 송의와 항우의 부대는 이렇게 해서 서쪽이 아닌 북쪽으로 행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항우는 딱히 군사적 성과도 없는 송의 따위의 휘하로 들어가라는 조치에 당연히 불만을 품었지만 일단 분을 참고 초회왕의 명령에 따랐다. 그러나 조나라를 돕겠다는 명분으로 조나라에 도착한 송의는 정작 싸움은 안하고 아들을 제나라로 보내 교섭하여 제를 회왕의 측근으로 끌어들이려는 공작만 할 뿐 거록의 장한에겐 관심도 없이 안양(安陽)에서 46일 동안이나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항우가 항의했다.
"진이 조를 포위하여 급한데, 마땅히 빨리 군사를 이끌어 황하를 건너야 하고, 우리 초가 그 외곽을 치고 조는 안에서 호응하면 진군을 깨트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에 송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지 않소. 무릇 소의 등 뒤에 붙어 그 피를 빠는 날파리는 잡을 수 있으나 털에 붙어 있는 서캐는 어찌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진(秦)이 조(趙)를 공격하여 이긴다 할지라도 그 군사들은 피로해 질 것이며, 그리되면 우리는 그 기회를 타서 진군을 파할 수 있소. 이와 반대로 진군이 이기지 못할 경우 군사들을 이끌고 서진하여 피로에 지친 그들을 공격한다면 틀림없이 우리는 승리를 취할 수 있소. 고로 진과 조 두 진영의 군사들이 먼저 싸우게 내버려두어야 하오. 무릇 철갑을 두르고 병장기를 휘두르며 싸움에 임하는 것은 내가 공보다 못 하지만, 장막에 앉아서 작전을 짜는 일은 공보다 내가 더 나을 것이오.

송의의 주장은 얼핏 들으면 그럴듯 했으나 사실 군사력 측면에서 진나라와 상대가 되지 않고 이미 자신들만으로는 감당이 안되 주변에 SOS를 요청한 조나라가 주변국들의 도움없이 진나라의 힘을 빼주면 얼마나 빼줄지 의문일 뿐더러 그러다 조나라가 함락 당하기 라도 한다면 장한군의 기세가 올라 오히려 불리해질 뿐이였는데도 송의는 대책없이 행동한것.

이 말은 한 후 송의는 군중에 명령을 내렸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2.3. 죽음

하릴 없이 시간만 흘러 겨울이 닥쳐왔고, 전쟁이 일찍 끝날 것이라고 생각해 월동 대비가 부족했던 병사들은 오들오들 떠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송의는 아들인 송양(宋襄)이 제나라의 재상이 되게 하는 데 힘을 쓰고, 아들을 배웅한답시고 술을 마시면서 신나게 연회를 하며 놀았다. 당시는 이미 11월 즈음이라 날씨가 추웠는데, 마침 비까지 내려 병사들은 굶주림과 추위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었다. 즉, 휘하 병사들은 추위에 고통받고 있는데, 아들을 위해 연회를 벌인 것이다

결국 항우는 송의에 대한 불만이 폭발 직전인 병사들을 선동했다.
"모든 힘을 다해 진군을 협격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 그 기회를 놓치고, 이제는 세상에 기근이 들어 백성들은 굶주리고 사졸들은 콩잎을 먹으며 연명하고 있을 정도로 군중에는 군량미마저 동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식은 호화로운 연회를 열어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으면서 군사들을 이끌고 하수(河水)를 건너 조 땅의 식량을 먹이고 조군(趙軍)과 함께 힘을 합해 진군을 공격하지도 않으면서 입으로만 ‘그들의 피로함을 엿보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무릇 강한 진나라가 새로 건국한 조나라를 공격한다면 아마도 그 세가 아마도 조나라를 압도할 것이다."

"조나라는 결코 강한 진나라의 상대가 될 수 없음에도 어찌 그들이 피로하기를 기다린다는 말인가? 얼마 전에 우리의 군사들이 진군에 의해 패함으로써 좌불안석이 된 왕은 경내의 모든 군사들을 내어 장군에게 내어주어 나라의 존망은 이 한 번의 출격에 달려 있음에도, 오늘까지 사졸들을 돌보지 않고 그 사사로움만 구하고 있으니 송의라는 자는 사직을 지킬 수 있는 신하가 아니다!"

그렇게 어느날 새벽에 병사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항우의 기습을 받아 송의는 최후를 맞이한다.

2.4. 사후

송의를 살해한 항우는 사람을 보내 송의의 아들까지 살해했다. 이어 송의가 초나라를 저버리고 모반하려 했으므로 초 회왕의 명령으로 참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장수들은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본래 초나라 항량이 일으킨 것이니 항우가 옳다고 말했다.[3] 항우는 초회왕에게 이 쿠데타의 결과를 사실상 일방통보 형식으로 통보했고 초회왕은 항우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송의가 한짓이 있거니와 대체자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송의가 갖고 있던 상장군직을 넘겨준다.

3. 평가

향량을 비웃었지만, 정작 본인 또한 그리 잘난 인간은 아니었다. 보기에 따라선 항량만도 못하다고 볼 여지가 많다.

항량과 함께 초 회왕을 옹립하여 민심과 세력을 모으고 항량의 교만을 포착하여 그의 패배를 예견하는 등 정치가나 책사로서의 식견은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령관급의 장군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군재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장군에 올라 초나라 군대를 이끌게 되었음에도, 막상 높은 직위에 오르자 교만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아들과 관련된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이다. 병사들이 추위에 떠는데, 아들을 위한 축하연이나 벌이는 것을 보면 덕장(德將)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군사적 성과보다는 외교적 성과[4]에만 치중했던 것을 보면 용장(勇將)으로도 보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서둘러 조나라를 구하자는 항우의 말에 조나라가 진나라의 힘을 뺄 때 까지 기다리자는 터무니 없는 전략을 내는 것만 봐도 지장(智將)이라고 보기도 어렵다.[5][6][7]

항량의 죽음을 예측했으면서도 항량보다 나을게 전혀 없는 수준으로 군대를 이끌다 죽은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항량의 패전을 예측한 것도 뽀록 아니었냐는 말이 있다.

자신을 죽인 항우가 군주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처럼 송의도 장군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8]

4. 창작물에서의 송의

드라마 초한전기에서는 드라마 삼국에서 원술을 맡았던 염패가 담당했다. 더빙판 성우는 오세홍.[9] 여기서는 실제 역사와는 전혀 다르게 묘사된다. 일단 송의는 겉으로는 대첵없이 무능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능하기는커녕 매우 영민하고 초회왕에게 충성스러운 자로 그려지며, 주변이 전부다 항우의 사람이라 기댈곳 없는 회왕도 송의에게 큰 의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도 사욕이 아니라 철저히 항우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회왕과 송의의 합의하에 진행되었다. 초회왕을 위협하는 항우의 세력을 꺾고 그를 견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심지어 항우의 행동도 예측하거나 회왕에게 먼저 선수를 쳐서 병력을 장악하라고 하거나 유방을 관중으로 먼저 들여보내 민심을 다독이고 항우를 견제한다는 비책도 송의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러나 의도는 참 좋았고 계획도 착착 진행되는듯 보였지만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항우의 불만을 사게되고 결정적으로 안양진에 주둔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잡음을 막을 만한 마땅한 방법도 없이 지연작전을 펼치다가 항우를 비롯한 초군의 불만을 사게 되고 결국 혈기왕성하고 난폭한 항우를 통제하는 데 실패, 본래의 역사처럼 33화에서 참살당하고 항우가 순식간에 군권을 장악한다. 이후 유일하게 의지할만한 측근을 잃어버린 회왕은 점점더 고립되어 가고 진여와 장이를 통해 항우를 견제하려다 그조차도 진여의 배신으로 실패해 장이는 도망가고 회왕은 결국 항우에게 쫒겨나다가 종리매의 손에 암살당한다.

라디오 드라마 와이파이 초한지에서도 등장하며, 성우는 이정민.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인 초의제에게 권력을 차지할 수 있게 조언을 해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옛날 초나라에서는~" 식의 비꼬는 말을 하거나, 여기저기다가 아이들을 싸질러놓고, 심지어 군사들이 배고파서 지쳐있는데 와이파이나 틀어주라 하면서 혼자 양고기 바베큐 파티를 하는 등, 안좋은 쪽으로 더 자주 모습을 비친다. 결국 아들이 제나라에서 출세한다길래 몰래 열은 캠프파이어 파티를 종리매에게 발각당하여, 참다못한 항우에게 살해당한다.

[1] 항량이 필히 패할 것이라는 말 [2] 고대 중국에는 양이 없었고 고문에서 羊은 무조건 염소를 말한다. 양과 달리 염소는 도망도 잘 치고 사람 말을 잘 안 듣는 동물이다. [3] 다만 항우에게 명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군중은 물론이고 초나라에서도 송의가 진나라와 전투를 하지 않고 계속 시간만 끌었던 것에 대해 상당히 불만이 많은 상황이었다. [4] 제나라를 초회왕의 측근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시도. [5] 물론, 이는 항우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논리로 내세운 것일 수도 있긴 하다만 문제는 항우 한명만의 불만이 아니었을 뿐더러 초군을 제대로 달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것. [6] 사실 과거에 비슷한 전략을 사용해서 승리한 예가 있는데, 유명한 군략가 손빈이 동맹국을 구원해야 할 때 동맹국에 처들어온 적군을 치기보다 그 근원인 침략국을 쳐서 침략군을 되돌아오게 하고 그 루트에 복병을 매복해서 대승을 거둔 적이 있었다. 즉, 송의가 말하는 것은 군사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하책이라는 병법의 예를 말한 것이겠지만 그것도 사실 케바케인 만큼 때에 맞춰서 사용해야 하며, 실제로 당시에는 항우의 말이 더 옳았다. [7] 애시당초 손빈은 미리 동맹국에다 원군이 올 거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해서 사기를 끌어올리는 계략과 이런저런 기타 계략들도 함께 사용했고 그 덕에 동맹국이 방연의 공격에도 버틸 수 있었지만 송의는 그런 것도 없었다. [8] 사실상 군략이 아니라 정략에 특화된 인물이지만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타입이라고도 할 수 있다. [9] 삼국에선 노숙을 맡았다. 덤으로 배우가 맡았던 원술은 이호인이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