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15:10:30

송건

宋建
(? ~ 214년)
1. 개요2. 생애3. 창작물에서4. 기타5. 같이 보기

1. 개요

후한 말의 군벌.

2. 생애

184년에 일어난 양주의 난으로 인해 관서 지방이 혼란에 빠지자 농서군 부한현(枹罕縣)[1]을 점거하고 하수(河首)[2] 평한왕(平漢王)을 자칭했다.

고작 하나 빼앗아 왕위를 참칭하고 문무백관을 설치해 승상까지 두었다. 현은 규모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1만 호 전후였다. 조선으로 비교하자면 "조금 규모가 큰 하나를 점령한 뒤에, 을 자칭하고 국가기관을 설치한 뒤 영의정 이하 관리들을 두었다." 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부한현이 한무제 서강 흉노의 침략을 자주 받았던 변방 중의 변방이라 공손연과 비슷한 변방의 맹주라고 할 수 있다. 관중 지방은 당시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지방의 치안이 닿지 않아 송건같은 인간이 수십 년이나 왕 노릇 잘 해먹으면서도 별탈없이 잘 살았다.

그러나, 이렇게 얘기하면 요동 반도에선 상당한 영향력을 자랑하던 공손연에게 실례다. 송건이 군림하던 부한현의 위치는 서평군 천수군 사이에 위치한 시골 깡촌이다. 지형 자체가 고지대였고 부한현 4시 방향에서 11시 방향까지는 치련 산맥 줄기가 있어 험준산령의 요새였고, 북쪽도 황하를 따라가는 협곡 말고는 산으로 막혀있으므로[3] 단지 중원과 멀리 떨어져서 변방 취급을 받던 요동과는 전혀 사정이 다른 것이다. 티베트 지역으로 넘어갈 목적이 아니면 이 부한현을 구태여 들를 일이 없는데, 자신들끼리 세력의 존망을 걸고 싸우던 후한 말기 군웅들이 뭣하러 이런 자그마한 산골 마을에 들려서 송건 따위가 왕 노릇을 하고 있는 걸 막겠느냔 말이다.

결국, 송건의 영토는 군사적으로도 사회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이득이 없는 동네라서 그냥 다른 군웅들에게 방치되었던 것이었고, 그렇게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30여 년이나 통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대단한 업적이었던 셈이다. 유비 촉한이 건국 42년차에 멸망했다는 점을 잘 생각해보자. 아마 인근의 이민족들이나 유민, 도적들이 약탈하러 오는 것이나 좀 막았을 듯 싶다. 과거 시황제 이후에도 살아남았던 위나라와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조조의 위나라가 송건의 영토를 방치했을 뿐이고 존재 자체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214년 10월[4] 조조 관중 군벌들을 진압할 때 하후연을 파견했고 거기다 장합 장기같은 명장들까지 가세한 호화찬란한 진용으로 송건의 영토를 침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송건은 위나라의 1군 에이스 병력들을 상대로 무려 1달 이상이나 버텨냈다. 물론, 부한현이 워낙 지세가 험준하여 수비하기 좋은 지역이기도 했지만 송건이 나름대로 영토를 지켜낼 수 있을만한 능력만큼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달 만에 조조군의 중과부적을 버티지 못하고 부한현을 도륙하여 전멸시키고 송건과 그 부하들은 참수되었다.

《교감기》에 따르면 급고각본과 후한서집해본에는 주건(朱建), 후한서집해에서 전대흔의 설에 인용한 바에 따르면 동탁전에서는 종건(宗建)으로 적었다고 한다.

《부자》에 따르면 송건은 소를 잡아 빌면서 굿했고 끝에 가서는 스스로를 불살라 죽었다고 한다.

3. 창작물에서

토탈 워: 삼국의 DLC 캠페인 182년 천명에서 마이너 세력인 변장 세력의 초기 장수로 등장하며, 149년생으로 설정되어 182년 시점의 나이는 33세. 유형은 감시자, 칭호는 평한왕, 특성은 집요함, 반항적, 경쟁적임, 능력치는 최대 200을 기준으로 전문성 88, 결의 52, 책략 50, 본능 57, 권위 40.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66, 무용 77, 지모 40, 정무 47, 인사 52, 외교 44의 능력치로 164년생으로 나온다.

조경래의 웹소설《삼국지 생존왕》에서는 주인공이 송건에 빙의한다.

4. 기타

30년 가까이 왕을 해먹은 것 때문인지《아틀라스 중국사》라는 책에 있는 삼국시대의 지도에서 세력 중의 하나로 표시됐다.(...) 그러나《 삼국지연의》에선 아예 짤리는 바람에 정사까지 파는 웬만한 삼국지 매니아가 아닌 이상, 아니 웬만한 삼덕도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단, 헌제기 주석인 무제기에 나온 헌제의 위왕 임명 조서의 내용엔 한수와 연합하려 했음에 조조를 위협한 역적으로 올라와 그 세가 위와 같이 작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 디씨 회원은 송건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현 하나를 차지하고 을 자칭하였던 그 담력, 한나라를 평정하겠다는 그 패기, 하후연과 1달 동안 맞서 싸운 그 강인함, 승상 이하 문무백관을 둔 그 조직력, 부한현에서 30년간 독패군림한 그 위엄, 후세의 아틀라스 중국사 지도에도 한말 삼국의 군웅으로 당당히 실린 그 이름. 그 자가 바로 평한왕 송건이로다."

여담으로 금성군은 그 이름 탓에, 환빠와 대륙빠들이 경주시와 같게 본다.

5. 같이 보기



[1] 지금의 간쑤성 란저우 린샤 현(臨夏縣). [2] 황하의 머리(상류)라는 뜻 [3] 현재 있는 호수는 댐 건설로 1961년에 생긴 인공호수이므로 후한대의 지형을 고려할 때 계산에 넣으면 안 된다. [4] 유장 유비에게 항복하고 마초가 평정된 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