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1-20 14:46:56

세우테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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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뤼사이 왕국 군주
Σεύθης | 세우테스 3세
파일:세우테스 3세.png
제호 한국어 세우테스 3세
그리스어 Σεύθης
영어 Seuthes III
생몰 년도 미상 ~ 기원전 312년 이후
재위 기간 기원전 324년 ~ 기원전 312년 이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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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드뤼사이 왕국의 군주. 마케도니아 왕국 필리포스 2세에게 복속한 뒤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던 왕국의 독립을 달성한 인물이다.

2. 생애

그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일각에서는 필리포스 2세를 상대로 끝까지 항쟁한 케르소블렙테스의 아들이거나 형제일 거라 추정하며, 또다른 학자들은 알렉산드로스 3세의 사령관이었던 시탈케스의 형제라고 주장하고, 오드뤼사이 왕조 3대 왕 세우테스 1세의 먼 후손이라는 설도 제기된다. 이 중 어느 쪽이 맞는지는 기록이 미비해서 확실하지 않다.

기원전 320년대 당시 오드뤼사이 왕국은 체계만 그럴듯하게 남아있을 뿐 실제로는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기원전 341년 필리포스 2세가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케르소블렙테스와 테레스 2세를 폐위시킨 이래로, 아에로포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기원전 341년 ~ 기원전 334년), 멤논(기원전 334년 ~ 기원전 327년), 조피리온(기원전 327년 ~ 기원전 325년)이 스트라테고스[1]를 맡아 트라키아를 통치했다. 트라키아인들은 필리포스 2세가 암살된 직후 반란을 일으켰지만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가볍게 제압당했고, 트라키아의 장군 시탈케스는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에 함께 했다.

그러던 기원전 325년, 트라키아의 스트라테고스 조피리온이 오드뤼사이 왕국의 북동쪽에 건국된 게타이 왕국을 향한 원정을 감행했다가 전사했다. 이로 인해 마케도니아의 트라키아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되자, 그는 이 기회를 틈타 반란을 일으켜 수년 안에 트라키아 대부분을 석권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3세가 바빌론에서 붕어한 뒤 섭정을 맡은 안티파트로스 리시마코스를 트라키아의 사트라프로 임명했다. 리시마코스는 트라키아로 향한 뒤 세우테스 3세와 맞붙었다.

리시마코스는 수적으로 열세한 병력으로 트라키아인들에 대항해야 했고, 다른 디아도코이들은 자기들끼리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었기에 아무도 돕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를 상대로 격전을 벌였다. 기록에 따르면, 양측은 두 번 맞붙었지만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양자는 평화 협약을 맺었다. 트라키아 내륙은 그의 것이 되었고, 에게 해와 흑해 연한 지대는 리시마코스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오드뤼사이의 왕 세우테스 3세가 기원전 322년 안티고노스 1세가 지배하는 소아시아로 망명했다고 기술했지만, 학계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간주한다.

기원전 320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세우토폴리스(오늘날 불가리아의 카잔루크 근처)를 건설하고 수도로 삼았다. 이 도시는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를 모델로 삼고 그리스 문화를 많이 반영했다. 기원전 313년 흑해 서쪽 해안에서 리시마코스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동맹을 맺었지만 리시마코스에게 패배했다. 이후 기원전 312년 리시마코스의 딸 베레니케와 결혼해 양자간의 적대 관계를 종식했다. 이후의 행적은 문헌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으나, 기원전 297년 마케도니아 왕 카산드로스가 사망할 당시에도 그의 화폐가 여전히 주조되었다는 사실이 고고학자들의 연구로 밝혀졌다.

한편, 기원전 290년대 또는 기원전 2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세우토폴리스의 비문에는 세우테스 3세, 아내 베레니케, 아들 헤브리젤미스, 테레스, 사토쿠스, 사달라스가 언급되었다. 비문에는 베레니케가 통치자로 명시되었는데, 아마도 말년에 그가 통치하기 힘들어지자 베레니케가 통치를 대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비문에는 필리포스 2세가 과거에 세웠던 마을인 카빌레의 참주 스파르타코스와의 협상이 기재되었다. 스파르타코스는 기원전 281년 이후에 주조된 여러 동전들에서 자신을 바실레프스로 치켜세우는 등 위세를 떨쳤다.


[1] 군사 총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