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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 창업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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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브린 | 래리 페이지 |
<colbgcolor=#4285F4><colcolor=#fff> 세르게이 브린 Сергей Брин | Sergey Br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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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브린 (Серге́й Миха́йлович Брин)[1] |
출생 | 1973년 8월 21일 ([age(1973-08-21)]세) |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 | |
국적 |
[[소련| ]][[틀:국기| ]][[틀:국기| ]] (1973–79년)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1979년– ) |
학력 |
메릴랜드 대학교 (
컴퓨터과학 /
학사) 스탠퍼드 대학교 ( 컴퓨터과학 / 석사) |
재산 | 1,386억 달러 (한화 약 197조 3,700억원)[2] |
배우자 |
앤 워치츠키 (2007년 – 2015년, 이혼) 니콜 섀너핸 (2018년 – 2023년, 이혼) |
자녀 | 3명 |
종교 | 무종교 |
신체 | 173cm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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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기업인. 같은 유대계 미국인인 래리 페이지와 함께 구글을 창업했다.2. 생애
1973년 8월 21일에 소련 모스크바의 유대계 러시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79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왔다. 여러 인터뷰에 따르면 소련 정부에서 유대인들을 박해했다고 한다.[3] 이후 미국에서 아버지는 메릴랜드 대학교의 수학과 교수로 31년간 일했고 어머니는 나사 고다드 우주비행센터에서 우주공학 연구원으로 일했다.1990년부터 메릴랜드 대학교를 다녔고 1993년, 만 19세의 나이에 컴퓨터과학과 및 수학과 학사를 졸업하였다. 이후 스탠퍼드 대학교에 가서 1995년에 컴퓨터과학 석사를 땄다. 그 과정에서 래리 페이지를 만났다. 래리 페이지에 대한 첫 인상은 좋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둘 다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는 방면에 몰두한 터라 금세 동료가 되었다.
러시아는 그의 모국임에도 토종 포털인 얀덱스가 강세고 구글이 시원찮은 편이다. 물론 구글과 얀덱스간의 관계가 없는것은 아니라서, 2003년에 얀덱스가 구글에게 인수해달라고 협상한적이 있었는데, 구글 본사측에서는 인수협상 비용이 너무 높다면서 인수협상이 결렬되었을 정도였다. 그가 공산 소련에서의 유년기를 좋지 않게 보낸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얀덱스가 잘나가기 시작하면서 그제서야 러시아 시장에도 신경쓰기는 했지만, 정작 구글 검색엔진이 러시아어 결과가 얀덱스보다 못했기 때문에 그 얀덱스를 밀어내지 못하고 2위 포털의 자리를 유지하는 수준이었고,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인해 결국 철수했다.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때문에 한국에 와서 경기를 관전하였다. 본인도 바둑을 좀 둘 줄 안다.
유대인이지만 종교적 영향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라서 유대교적인 격식에 크게 구애받지는 않는 편이다. 2007년 바하마섬에서 ‘ 23앤드미(23andMe)’의 공동 설립자인 앤 워치츠키와 결혼식을 올렸는데 식을 진행하는 랍비도 없이, 앤과 함께 전통 유대교 예식 차양인 추파 아래서 수영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사실 구 소련권 출신 유대계 이민자들은 국가적 무신론 등으로 인해 사실상 무종교인인 경우가 많다.앤 워치츠키와 두 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2015년 이혼했다.
2015년부터 원더러스트의 요가 수련원에서 만난 니콜 섀너핸과 열애를 시작, 2018년 11월 7일 재혼했다.
2019년 12월, 래리 페이지와 동반으로 경영 1선에서 물러났다. 다만 차등의결권으로 인해 페이지와의 합산 의결권은 과반수를 능가한다.[4]
이후 2022년 1월 브린이 이혼 소송을 제기한 이래로 2023년 5월 혼전계약서에 기반한 최종 합의로 이혼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 10억 달러 가량의 재산 분할을 진행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뉴욕타임스는 10억 달러 규모의 위자료를 지급했다고 추정했다.
ChatGPT의 성공 이후 선다 피차이 CEO가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와중에 2023년 7월, 구글에 복귀했다.[5] 인공지능의 가파른 발전으로 인해 AGI 개발을 목표로 다시 사내에 복귀했다고 언급했다.[6]
3. 여담
[1]
Sergey Mikhailovich Brin
[2]
2024년 12월
포브스 기준
세계 부자 순위 8위.
알파벳 지분 5.4%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3]
사실 러시아 내에 연방주체로서
유대인 자치주가 설치되어 현재까지도 존속하고 있고, 소련의 국부인
레닌의 가계에도 유대계 러시아인이 있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반유대주의를 표방하지는 않았으나
스탈린 시기 소수민족 박해와 이스라엘 건국 이후 유대인 이주를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또한 그와 별개로 유대인에 대한 차별 의식이 제정 러시아 시기부터 강하게 뿌리박혀 있다 보니 일반인들 사이에서 유대인에 대한 차별 의식이 표출되는 경우는 흔했다. 그러다 보니 소외된 유대인들이 타국으로 이주하는 경우는 이미 소련 당대부터 흔했다. 다만 현대 러시아에서는
올리가르히가운데 상당수가 유대계이고, 유대인과 집시보다는 체첸인처럼 테러로 낙인찍힌 민족이나 우즈벡인, 키르기스인, 타지크인, 몰도바인들 같이 못사는 나라 출신 사람들을 주로 차별하고 다니기 때문에(...) 유대인에 대한 대우는 나쁘지 않다.
[4]
따라서 특별결의는 이들 둘의 동의 없이 통과가 불가하다.
[5]
2024년 AGI하우스에 참여하며, 피차이 체제 구글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까지 했다.
[6]
세르게이 브린이 비록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분야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상당한 의결권을 보유하고 있는 창업자로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해당 분야를 이끌며 회사에 기여하기엔 용이한 상황이다. 선다 피차이의 경우 상장사의 CEO로서 어쩔 수 없이 단기적으로 가시성 있는 성과를 내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되는 상황과 대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