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탄데르 Santand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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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스페인 | ||
지역 | 칸타브리아 | ||
면적 | 36㎢ | ||
인구 | 172,044명 | ||
시간대 | UTC+1 ( 서머타임: UTC+2) |
산탄데르 Santand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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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 칸타브리아의 중심 도시로 이베리아 반도의 북쪽 해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칸타브리아 해와 접해 있다.2. 지리
산탄데르는 지중해성 기후가 대부분인 스페인 다른 도시와 다르게 서안 해양성 기후를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산탄데르 뒤에 위치한 칸타브리아 산맥이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더운 공기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산탄데르는 여름은 일반적으로 온난하고 기온이 좋으며 일반적으로 스페인 대부분의 지역에 존재하는 극심한 더위가 없으며 겨울은 바다의 열 조절 효과로 인해 그다지 춥지 않다.3. 경제
산탄데르에서 가장 큰 기업은 산탄데르 은행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은행이다. 산탄데르 은행은 전 세계 각지에 1만 3000개 이상의 지점을 갖고 있다. 주 고객은 유럽과 중남미이지만 최근에는 아시아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칸타브리아 대학교나 마르케스 데 발데실라 대학 병원을 위시한 공공기관에 대부분의 산탄데르 시민들이 근무하고 있다. 금융과 공공부문 이외에 강점을 보이는 분야는 관광 및 레저이다.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를 지니고 있는 산탄데르의 강점을 살려 컨벤션 유치, 국제 회의 유치, 문화 축제 및 크루즈 산업 등 다양한 방면으로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4. 역사
산탄데르는 고대 정착민들이 비스케이 만의 폭풍우로 부터 자신들과 배를 지키기 위해 만든 도시이다. 그 이후 로마인들이 들어와 항구로 사용하였으며 히스파니아 북부의 상업과 광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산탄데르는 게르만족과 바이킹들의 약탈을 당하였고 다른 히스파니아 북부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내륙의 험한 산지로 이주하였다. 이 일대에 사람이 다시 돌아온 것은 알폰소 2세 때 성채 수도원을 만들면서 였다. 이슬람의 침략에 맞서 기독교 신앙을 고취시키기 위해 로마 시대에 순교한 성 에메테리우스와 성 셀레도니우스의 유골을 옮겨와 수도원을 건설한 것이다. 그 이후 수도원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고 1187년 알폰소 8세는 산탄데르에 푸에로[1]를 부여하였다.그 이후 산탄데르는 칸타브리아의 다른 도시와 함께 상업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연합을 하였고 공동으로 영국과 플랑드르에 양모 및 밀가루를 수출하였다. 산탄데르 만의 훌륭한 항구 덕분에 중세 후기 카스티야의 중요한 항구이자 신대륙과의 무역을 위한 주요 거점이었다. 특히 1748년 부르고스와 산탄데르를 연결하는 이른바 양털길을 건설하라는 왕실의 명령에 의해 지배적인 위치가 통합되어 항구를 북부 무역의 중심지로 격상하게 되었다. 산업 혁명 즈음에는 산 마르틴 조선소가 들어서고 알라르 철도의 개통으로 카스티야와 교통량이 증가하였다. 스페인의 중심지인 카스티야의 물산을 해외로 수출하는 거점이자 카스티야로 물품을 수입하는 통로가 된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붐으로 부르주아들이 성장하였고 이는 산탄데르에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게 하였다. 또한 19세기 후반 건강과 관련된 새로운 레저 개념을 도입한 유럽 부유층들 사이에서 온천 붐을 이용하여 산탄데르는 전 유럽의 여름 휴양지로 각광받게 되었다. 산탄데르는 스페인 국왕인 알폰소 13세가 가장 좋아하는 피서지였고, 이를 안 산탄데르 시의회와 시민들은 이곳에 막달레나 궁전을 건설해 국왕에게 받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과 내전이 끝날 때 쯤 벌어진 대화재로 산탄데르 도심의 14헥타르가 파괴되었고 건물의 90%가 소실되었다. 약 1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약 7천 명의 사람들이 강제 실업 상태로 들어섰다. 다행히도 희생자는 마드리드 소방관인 훌리안 산체스 가르시아 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페인 정부와 산탄데르 시정부는 곧바로 재건에 들어갔다. 1954년까지 이 광범위한 재건 작업은 거의 완료되어 5개의 공공 건물과 170개의 민간 건물이 새로 지어졌다. 하지만 파괴된 도심에는 부르주아 주택이 들어섰고 원래 살던 저소득층 주민들은 강제로 교외로 쫓겨났다.
5. 관광
- 사르디네로 해변 (El Sardinero) : 총 길이 1,300미터, 깊이 79미터에 달하는 이 해변은 고운 황금빛 모래와 적당한 파도가 특징이며 호텔, 레스토랑, 카지노가 즐비하며 스페인에서 가장 우아한 해변 리조트 중 하나로 꼽힌다.
- 산탄데르 대성당 (Catedral de Nuestra Señora de la Asunción de Santander) : 성채 수도원 위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대성당
- 막달레나 궁전 (Palacio de la Magdalena) : 산탄데르 시의회와 시민이 스페인 왕실에 여름 별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 궁전으로 1977년 산탄데르 시의회는 궁전을 다시 매입하였다. 산탄데르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곳으로 현재까지도 회의 및 회의장으로 사용되고있다.
- 마탈레냐스 해변 (Playa de Mataleñas) : 마요르 곶과 메노르 곶 사이에 위치한 해변으로 갯벌에 둘러쌓여 있어 특이한 광경을 자아낸다.
- 카보 마요르 등대 (Faro de Cabo Mayor) : 1839년 8월 15일에 문을 연 등대로 화강암 십자가와 이에 매달린 사람의 실루엣으로 구성된 기념비가 있는데, 1941년 스페인 내전 당시 카보 마요르에서 스페인 공화국에 충성하는 군대에 의해 추방된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었다. 현재 이 곳은 예술 센터가 들어서 있다.
- 페레다의 정원 (Jardines de Pereda) : 산탄데르 시의 공공 공원으로 1805년에 항구의 부두로 사용되었던 곳을 공원으로 만들었다. 해변 산책로와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로 매우 붐비는 공원이다.
- 보틴 센터 (Centro Botín) : 이탈리아의 건축가 렌초 피아노와 스페인의 건축가 루이스 비달이 설계한 건물로 산탄데르 은행의 회장 이름을 따서 만든 미술관으로 칸타브리아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진흥에 이바지 하고 있다.
- 카메요 해변 (Playa de Camello) : 해변의 왼쪽에 자리잡은 바위가 낙타와 닮아 카메요라는 이름이 붙은 해변으로 근처에 막달레나 궁전이 있어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 해변이기도 하다.
[1]
국왕 등의 통치자가 부여의 영역을 다스릴 때 해당 영역이나 그 주민에게 양여한 특권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