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d0000>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보치콥스키
Влади́ми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Бочко́вский Vladimir Aleksandrovich Bochkovsk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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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e400,#ffe300> 출생 | 1923년 6월 28일 | ||
소련 우크라이나 SSR 티라스폴 | |||
사망 | 1999년 5월 7일 (향년 75세) | ||
트란스니스트리아 티라스폴 | |||
복무 | 노농적군 | ||
1941년 ~ 1946년 | |||
소비에트 지상군 | |||
1946년 ~ 1980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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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d0000><colcolor=#ffe400,#ffe300> 부모 |
아버지 알렉산드르 블라디미로비치 보치콥스키 어머니 클라브디아 이바노브나 보치콥스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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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니나 | ||
자녀 | 아들 알렉산드르[1] | ||
병과 | 기갑 | ||
최종 계급 | 기갑중장 (소비에트 지상군) | ||
주요 참전 | 독소전쟁 | ||
주요 서훈 |
레닌훈장 소비에트 연방 영웅 적기훈장 적성훈장 (3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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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파괴 이력 | 36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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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의 군인.2. 생애
1941년 4월 노농적군에 징집돼 제1하르코프기갑사관학교에 입학했다.2.1. 제2차 세계 대전
2.1.1. 독소전쟁
1942년 5월 중위로 졸업한 보치콥스키는 임시로 우랄 군관구의 제19전차훈련연대장을 역임했다. 1942년 6월 제11근위전차여단에서 소대장으로서 브랸스크 전선에서 전투를 치르다 그가 탑승한 T-34-76이 독일 육군에 의해 화염에 휩싸여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 한 기차역으로 후퇴했으나 다시 폭격과 포격 공격을 받았다. 보치콥스키는 소대원들에게 플랫폼 근처에 방어선 구축을 명령한 뒤 한동안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채 전차 안에서 생활했다.1942년 8월 12일, 브랸스크 전선 근처 전투 당시 왼쪽 허벅지에 큰 부상을 입어 탈출이 불가했다. 빅토르 페도로프 상사가 그를 구출[2]한 뒤 미추린스크 병원에 입원했다. 1942년 가을에 복귀한 보치콥스키는 제1근위전차여단에서 복무해 화성 작전을 지휘했다.
1942년 12월 21일, 최전방 기갑부대와의 통신이 두절되자 마을에 있던 급유차량과 식량, 탄약으로 그들을 안전하게 수송하란 임무를 받았다. 작전을 무사히 끝낸 공로로 용감한 군인임을 증명해냈다. 쿠르스크 전투에서도 살아남은 보치콥스키는 항공 지원까지 충분히 받으며 3대의 독일 육군 전차를 노획한 뒤 16대[3]의 전차를 파괴했다. 1944년 4월부터 그는 드네스트르강 근처에서 후방 지원을 담당하며 여러 도시를 해방시킨 공로로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법령에 소비에트 연방 영웅 후보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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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 시절의 보치콥스키 |
2.2. 사망
기갑부대를 지휘하다 은퇴 후 전사 군인 추모위원회에서 근무했다. 1999년 5월 7일에 사망한 뒤 티라스폴의 다닐 공동묘지 명예의 거리에 매장됐다.3. 진급 이력
- 1943년 2월 21일: 중위
- 1943년 12월 3일: 대위
- 1946년 3월 5일: 소령
- 1950년 4월 8일: 중령
- 1954년 12월 18일: 대령
- 1961년 5월 9일: 기갑소장
- 1977년 10월 27일: 기갑중장